안동 [안동②] 조선판 ‘사랑과 영혼’, 오늘밤 꿈에 천천히 와 이르소

[강성일]

STORY② 조선판 ‘사랑과 영혼’
오늘밤 꿈에 천천히 와 이르소

1998년 안동 정상동, 택지개발을 앞두고 주인 없는 무덤들을 이장하던 중 관 위에 ‘철성 이씨(고성 이씨)’라고 적힌 무덤이 발견된다. 문중의 입회 아래 진행된 발굴 작업은 400년 넘게 땅 속에 묻혀져 있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니 전 세계 고고학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조선판 ‘사랑과 영혼’, 원이엄마 이야기다.

발굴된 무덤의 주인공은 이응태(1556~1586)라는 사람이다. 문중 족보에도 이렇다 할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만큼 평범한 사나이의 삶과 죽음이 이렇듯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함께 묻힌 편지 한 장 때문이었다.

‘워늬 아바님께 샹백, 병슐 뉴월 초하룬날 지비셔(원이 아버님께 올림,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라는 제목의 이 편지엔 서른 한 살의 나이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원이엄마상]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젊은 여인의 황망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담은 편지는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고 또 말해 달라”

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끝을 맺는다. 현재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이 편지는 절절한 심정을 꾹꾹 눌러 적은 한글편지라 읽는 내내 가슴 한쪽이 뜨거워진다. 그녀는 남편의 쾌유를 빌며 삼았던 미투리 한 켤레를 꿈길에서라도 신어달라는 마음이었는지 관 속에 함께 넣어 두었다. 삼과 자신의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만든 것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한다. 신체의 일부로 여겨졌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을 만큼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절대적이었으리라.

안동시는 이응태의 무덤이 발견된 곳에서 가까운 도로변에 원이엄마상을 세웠다. 택지개발로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를 배경으로 미투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선 여인의 모습은 어쩐지 처량하다. 사랑이 너무도 가벼워진 시대에 죽음마저 갈라놓지 못했던 이들의 사랑은 어쩌면 그와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미투리를 형상화했다는 월영교의 소박하고 진중한 아름다움은 지금도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다. 해가 저물어 달이 떠오르면 월영교에는 하나 둘 불이 켜지는데, 깜깜한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불빛이 마치 원이엄마의 꿈길 같다.

 
[월영교의 밤]

 
[월영교의 낮]

---

---

글. 사진 : 여행작가 권다현

출처 :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 경북 BEST 스토리텔링 자원 DB "이야기가 흐르는 땅 1권 " 안동편

* 위 글과 사진은 저작권자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사용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