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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행 참가 산우
총동문산악회 선후배 가족 산우 68명(7회~35회)
-동기 산우: 김종무 부부, 남장현 부부, 정인수 부부, 김종철, 정현복, 최흥식 이상 9명
2. 산행 시간 기록
1)첫째날: 괘방산 산행
안인2리 삼거리 13:00
전망대 13:45
괘방산(339m) 14:40
낙가사 15:20
2) 둘째날: 다이센 산행
夏山 등산로 입구(780m) 11:40
5合目(1,245m) 12:40 (점심~13:10)
8合目(1,580m) 14:00
大山 정상(1,710m) 14:40
5合目(1,245m) 15:40
元谷(협곡) 16:20
大神山 神社 16:40
大山寺 17:00
주차장 17:20
3)셋째날: 기보시야마/조야마 트레킹
오쿠다이센(942m) 분지 05:50
기보시야마(1,110m) 06:20
조야마(1,085m) 07:00
오쿠다이센(942m) 분지 07:30
3. 산행 落穗
1)첫째날: 크루즈 연락선에 몸을 싣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동해를 건너다.
기다려왔던 총산의 여름 해외 정기 산행이다.
산행지가 바다를 건너는 해외 산행이기에 미지의 산길을 찾아나서는 여행의 기대감은 일단 높아지기 마련이고 출발 전날밤에 그 설렘은 최고조에 달하는 듯하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연일 이어지는 복더위와 熱帶夜도 정말 피하고 싶거니와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무감동한 일상에서 빼앗긴듯한 自由와 餘裕를 찾고 싶은 기대감이 높아간다.
때로는 모든 것을 잊고 싶기도 하지만 산과 바다에서 살아 숨쉬는 그리운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또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산행과 여행의 보람이 충분할 터이다.
山詩 하나 떠올려 설렘을 지그시 억누른다.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발 내딛어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중략)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 시인의 시 삶과 등산의 일부)
가족 산우 19명을 포함하여 동문 산우 68명을 태운 버스 2 대가 압구정동을 출발하여 파도가 넘실거리는 강릉 부근의 안인진리 바닷가에 닿으니 어언 점심 시간이다.
몸풀기 산행지인 괘방산을 오르기 전에 점심 삼아 강원도 토속 음식인 구수한 막국수와 제육을 들며 가볍게 술 한 모금 마신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막국수가 찬물에 제대로 씻겨지기도 전에 나오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여행의 즐거움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반 이상 있다.
산이 높고 風光이 수려한 동해안은 언제라도 힘든 산행을 마치고 풍성한 바다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때때로 동문 산우들이 함께 어울려 찾아봄직한 곳이다.
일본은 <라멘>, <우동>과 <낫또>가 생각나듯이 동해에 닿으니 주머니 사정이 어떻든간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서 먹고 싶은 別味가 눈에 삼삼하다.
얇게 썰어낸 복어회, 입에서 녹으며 바닷밑 소식을 바로 전해주는 노란 성게알, 해삼 창자젓에 버무려진 딱딱한 해삼, 두툼한 살이 향긋한 멍게, 알배기 도루묵 구이와 찜, 차지게 삶은 文魚, 큼지막한 골뱅이 구이, 담백한 대게와 진한 내장맛의 털게, 고소한 양미리 구이, 쫄깃한 아귀 수육, 김장 김치와 함께 끓여내는 시원한 곰치 해장국, 쫀득한 장치찜 등등 오를 산도 많고 한 잔 술을 곁들여 自然産으로 먹을 것도 많다.
괘방산 산행의 들머리가 海水面과 비슷하지만 괘방산은 동네 뒷산 같은 푸근한 산이다.
안인진에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산길이 끝나는 정동진까지 3시간 남짓 걸리는 8km 정도의 산길이라 하니 오늘 산길 중간에서 낙가사로 내려가는 산행은 유유자적의 산보라 할만하다.
능선에 올라 솔향기 가득 품은 산바람을 고대하지만 오늘 따라 산길에 태평양을 건너오는 바람이 인색하다.
대신 탁 트인 푸른 바다를 가슴이 후련해지도록 내려다보는 맛을 즐기며 저멀리 남쪽으로 달려가는 해안선의 끝에 자리잡은 정동진 포구의 풍광을 내려다본다. 땀으로 금세 몸이 흠뻑 젖지만 솔향기에 젖는 몸의 느낌은 시원하다.
오른쪽 내륙으로 대간 산줄기인 능경봉과 오대산 줄기들이 이름 모를 산들과 첩첩히 얽혀 아련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진다. 오늘 일망무제로 뻗어가는 푸른 東海의 풍광과 시야가 너무 좋다.
십수 년 전 이북의 공작 잠수함이 이 부근 해역에서 좌초되어 소형 잠수함에 타고 있던 무장 공비들이 안인 부근에 침투하였다가 한 명만 생포되고 나머지 인원은 괘방산과 대간 산길로 도주하다가 사살되었다는 것인데 생포된 공비가 소박하게도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했던가.
간간히 불어오는 산바람을 아쉬운듯 쐬어 땀을 식히며 삼우봉을 지나 통신 시설이 있는 괘방산 정상 부근에서 낙가사로 하산을 한다.
푸른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7번 국도 해변가에 관음보살의 상주터라는 燈明 낙가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 때의 석탑을 제외하고 지금의 절집들이 모습을 갖춘 것은 기실 20년 남짓이라니 아주 젊은 절이다. 일주문에 이 절이 서울의 正東이라는 글씨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어 동쪽 바다에 이른 감회가 새삼 새롭다
鐵分맛이 넘쳐흐르는 藥水도 한 모금 마시고 主殿인 靈山殿을 바라보며 잠시 절 이야기를 듣는다.
겉으로는 崇儒抑佛의 시대인 조선시대 초 임금이 안질이 걸리자 낙가사의 쌀뜨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용왕이 진노한 것이라는 사유를 달아 절을 없앤지 500여 년만에 절이 다시 섰다는 이야기가 절의 흥망사로 씌여 있는데 약사전의 이름도 특이하게 滿月寶殿이다.
보름달빛처럼 원만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세상 곳곳의 몸과 마음이 아픈 중생들을 두루두루 어루만져 주심을 뜻하는 것일 터인데 동문 산악회에도 滿月寶殿의 역할을 하시는 형님, 아우들이 몇 분 계시지않겠는가.
燈明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어둠(無明)을 밝힌다는 말이다. 아무리 잘난 척을 하더라도 결국 대개 캄캄한 無明 속을 헤매는 것이라면 그런 면에서 인간은 모두 同病相憐이다.
흠뻑 흘린 땀을 대략 수습하고 동해항으로 이동해 출국 승선 수속을 밟아 군대 내무반의 추억이 생각나는 침대칸 선실에 배낭을 내려 놓는다.
동해항에서 사카이항까지 바다 천릿길을 헤쳐갈 13,000톤급 3층 크루즈 연락선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배인데 여객 정원이 480명 정도이고 운항 시속이 약 37km로 항구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15시간 정도 걸려 사카이미나토(境港) 항구에 닿는다 한다. 사카이미나토가 울산과 위도가 비슷하다니 항로는 南南東이리라.
저녁 6시경 배가 출항을 하여 한동안 동해안을 따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한다.
계속 따라오던 동해안쪽의 대간 산줄기가 저녁 어스름에 묻히고 멀리 오징어잡이배의 集魚燈이 켜질 무렵 뱃전에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아! 정말로 시원한 바닷 바람이 아낌없이 불어와 요즈음의 더위에 지친 몸을 충분히 식혀주니 올여름 최고의 피서를 하는 기분이다. 오존과 발생기 산소를 듬뿍 머금은 상쾌한 바람이 아닌가.
선내식을 마친 선후배 산우들이 갑판으로 나와 바람을 쐬다가 以心傳心으로 愛酒家 산우들이 술자리에 모여 좌정을 한다.
선수쪽에 마련된 술자리는 비닐 깔개를 지참하신 형님(23회 남순호)께서 일찌감치 직접 시공한 특별석이다.
내일 다이센 산행을 생각하면 조금 술을 삼가해야 하지만 고문 형님(16회 김승남)의 말씀대로 술술 잘 넘어가는 것이 술인듯 술이 몇 순배 돌아가는데 거침이 없다. 최고의 안주격인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분명히 덜 취하는 느낌이다.
산악회 滿月寶殿의 역할을 자청하신듯한 고문 형님(14회 장헌수)께서 전방위로 권커니잣커니 酒興을 주도하시고 형님들(15회 김부영, 윤 양, 장사윤)과 아우(28회 한만엽)의 위스키 보시로 술자리의 분위기가 제대로 한층 무르익는다.
일체의 여행과 관련된 노동에서 해방되어야 할 막내 아우(35회 김승모)가 자청해서 쏠쏠한 안주를 조달하는 것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다.
환갑의 나이도 어린 축에 속해 귀염 받는 자리이니 인생 九十 시대의 한 단면인가.
특별하게도 큼지막한 전복 안주를 한 점씩 조각으로 나누어 맛을 본다. 캔 속에 담긴 전복은 뉴질랜드 바닷밑에서 놀다가 싱가폴로 잡혀와 중국인들이 염장 가공한 것이다.
동기 산우(25회 정인수)가 얼마 전 북한산 일요 산행에서 큰 형님(10회 김문현)의 일본 맥주와 전복에 대한 분부를 받들어 싱가폴에서 특송한 전복이니 조금이라도 큰 형님보다 먼저 맛보는 것은 일종의 배달 사고인듯도 한데 해외 여행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니 어느 정도 이해해주시지 않겠는가.
12시쯤 얼큰한 취기에 젖어 선실로 돌아와 미세한 배의 떨림을 자장가 삼아 혼곤한 잠에 빠지는데 몇몇 선후배 산우들의 술자리는 자정 넘어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2)둘째날: 구름 깃든 다이센 정상에서 들꽃의 향기를 맡고 돌구르는 소리를 듣다.
이튿날 새벽 바다의 신선한 기운을 맛보며 해돋이를 구경하는 사이 아침이 밝아오고 일본 서해안과 항구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침 9시경 사카이미나토항에 닿아 입국 수속을 밟는데 번거로운 외국인 지문 찍기와 눈동자 사진 찍기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일본이라는 느낌이 나도록 잘 정돈된 <요나고>(米子) 시가지를 지나며 언뜻언뜻 보이는 구름 걸린 다이센을 바라본다.
일본 100대 명산중의 하나라는 다이센을 일본인들은 서일본의 후지산이라 부른다는데 사진에서 본 후지산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아있다.
생각컨대 국내이든 해외이든 명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동문산악회가 오르면 명산이 되는 것이 아닌가.
11시가 넘어 다이센 정보관 마당에 닿아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여름산 등산로 입구로 이동해 산행을 시작한다.
일본산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도록 아름드리 삼나무가 우거진 아늑한 산길이 나타나고 정상까지 2.8km의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산길은 나무 계단이나 계단 형태로 그런대로 정비가 잘 되어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올 4월에 이 산을 찾은 22회 형님들께서는 눈과 얼음이 꽁꽁 언 곧추 선 비탈길에서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시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셨다 하던가.
비교적 짧은 산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산길은 계속 오르막 일변도이고 바람이 불지않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후회스럽지만 어제 술도 제법 마시지 않았던가. 2.8km의 산길에서 정상까지 계속 높아지는 수직 고도는 930m 정도이다.
땀을 흠뻑 흘리며 5合木에 닿아 희미한 바람이나마 반가와하며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간단한 점심을 드는데 입맛이 깔깔하다.
6合目을 향해 이어지는 비탈길을 올라간다.
귀동냥을 하니 合目(고메)이라는 말이 촛불 한 자루가 타들어가는 거리라고도 하고 산길 거리를 10등분한 지점으로서 높이를 10등분한 능선과는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전망이 나타나지 않는 오르막 산길에서 며칠 전 동기 산우가 인용해준 山詩 하나 떠올리며 가뿐 숨을 추스린다.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 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 시인의 시 등산 全文)
6合目의 피난처에 이르니 왼쪽으로 전망이 터져 구름 걸린 다이센 정상부의 모습이 나타나고 돌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황량하게 깎인 直壁의 위용이 나타난다.
이른바 다이센의 北壁으로 매년 수천 톤의 토사를 元谷(모토다니)으로 쏟아붓는 다는 절벽이 보인다. 마침 비라도 한방울 뿌리려는지 구름이 몰려 다니며 오락가락한다.
산길이 돌망태길로 바뀌는 7合目을 지나 8合目에 이르니 산자락으로 키 작은 푸른 주목숲이 나타나고 좌우의 전망이 생겨 들판과 마을의 모습이 내려다보이고 반갑게도 고대하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나무 계단길이 시작되는 9合目부터 눈이 시원하게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피어나 바람에 몸을 누이는 풍광이 아름답다.
비록 이국의 산이지만 돌 구르는 황량한 절벽 아래 넓게 펼쳐진 시원한 초록빛 풀밭이 가슴이 시리도록 멋진 풍광이고 생태계의 보고인 듯하여 일본인들이 강조하는 <一木一石> 운동 안내판에 눈길이 절로 간다.
산자락의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도 소중히 가꾸고 등산객들이 산행마다 배낭에 돌을 지고 올라와 굴러 떨어져 없어진 돌을 보충한다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정상에 닿으니 마침 햇빛 환하게 쏟아져 세상이 밝아오고 험상궂은 連峰들이 달려가는 南壁의 모습이 아찔하게 보인다.
최정상인 <겐가미네>(1,729m)가 바로 눈앞인데 산길이 판자쪽처럼 좁아지고 직벽인 화구벽으로 토사가 흘러내려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한다.
선두팀들(24회 이세용 외)은 이미 정상을 떠났지만 원로 형님들(7회 정재우, 이명환, 10회 유두환 외)께서 속속 도착하시자 어젯밤 적지않게 드셨슴에도 불구하시고 오늘 정상에 반드시 오른다는 약속을 이행하신 고문 형님(16회 김승남)께서 정상 인삼주를 한 잔씩 따라 드린다.
아우들(25회 정인수 외)도 고마운 마음으로 한 잔 단숨에 들이켜 정상에 이른 발걸음을 자축하며 기쁨을 만끽한다.
정상을 향한 집념의 발걸음을 옮기시는 형님들(16회 김종교 부부, 20회 이선길)과 동기 환갑 산우(25회 김종철). 막내 아우(35회 김승모)가 후미로 나무 계단 길에 접어드는 때에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이 가팔라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이 들려온다. 계단의 높이가 보폭과 맞지 않고 돌을 묶어둔 돌망태의 철사줄에 바지가 걸려 넘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산인데 마음에 들지 않은들 어찌하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할 수밖에 없다.
길이 가파르니 올라가는 속도나 내려오는 속도나 엇비슷한데 괘방산 비탈에서 엉덩방아를 찧어 뜻하지 아니하게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아내가 조심하느라 속도를 전혀 내지 못한다.
5合目의 분기점에 이르러 오른쪽 大山寺 방향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오니 쏟아진 돌무더기에 산길이 가려진 황량한 모습의 元谷(모토다니)이 나타난다.
금방이라도 큼지막한 돌덩어리를 사정없이 굴릴 것 같은 구름 걸린 북벽을 바라보며 회색돌에 그려진 빨간 화살표를 따라 계곡을 건너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산길에 나타나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大山寺인줄 알았더니 大神山 神社이다.
일본에서 절과 신사의 차이는 입구의 솟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데 일본의 신사는 문제가 되는 <야스쿠니) 신사가 생각나 출입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신사의 샘물맛이 아주 시원하다. 옆에 있는 일본인의 이야기가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눈이나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30~40년의 오랜 시간 동안 화산재층에 충분히 걸러져 용출된다는 것이다.
大山寺를 지나 마을의 족욕탕에서 따뜻한 온천물에 발을 담가 피로를 풀고 찬 지하수로 얼굴의 땀을 닦아내니 개운하다. 유명하다는 녹차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맛도 괜찮다.
후미를 기다려 산행을 끝내고 숙소로 이동하여 저녁 부페 시간 관계상 온천욕을 하는둥 마는둥 마치고 저녁상을 받는다.
사전에 몰랐지만 방마다 목욕 시설이 없고 화장실이 없는 방도 있어 소소한 불편을 느낄 터인데 옥의 티를 굳이 골라낼 필요가 없다는듯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안하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 산악회의 美德인 듯하다.
다이센 산행을 잘 마쳤다는 들뜬 기분에 <유까다> 차림으로 식당에 모여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들이키고 생새우와 손톱만한 크기로 썰어진 膾안주로 위스키도 사양하지 않고 몇 모금 마셔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듯 고문 형님(14회 장헌수)의 주도로 술자리 연석 회의가 계속 이어진다.
선후배간 소통과 화합의 강력한 매개체의 하나인 술을 함께 마시며 산악회 발전을 위한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리라. 문제는 열정과 진정성, 그리고 실천이다.
3)셋째날: 이국의 숲길과 마을길을 걷고 다시 동해의 바람을 쐬다.
非夢似夢으로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올림픽 축구 한일전 중계를 본다.
통쾌한 득점 장면이 이어지니 잠이 깨는 느낌이다. 중계가 끝나기 전 아침 산행을 위해 마당으로 나오니 등산팀 16명(7회 정재우 고문 외)이 모두 축구 중계를 보다가 나온듯 축구 승리의 여운을 즐기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20여 분 이동하여 어느 산중 호텔의 앞마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아늑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밟아 고도를 200여m 정도 높여가는 산행이니 그야말로 들꽃 트레킹이다.
빗방울이 몇방울 떨어지지만 비에 젖는 들꽃들을 보며 적당한 비탈의 산길을 걷는 느낌이 부드럽고 푸근하다.
<기보시야마> 정상에서 스키장 정상 부근을 거쳐 다시 분지로 내려와 <조우야마>에 오르니 하룻만에 눈에 익은 다이센 연봉의 색다른 모습이 반겨준다.
어제 다이센 정상에서 보았던 남벽의 끝지점 부근에서 다이센을 바라보는 듯하다. 술기운이 제법 가셔지는 것을 느끼며 가벼운 비탈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어제 제대로 하지못한 온천욕을 하여 땀을 닦아내고 아침을 먹는다. 그리 화려한 성찬은 아니니 <우동> 국물로 쓰린 속을 달래고 <낫또> 몇 개 먹어본다.
오늘은 휘적휘적 <돗토리껜>의 시가지를 걷는 관광이다. 죽 돌아보니 주머니에 엔화를 잔뜩 넣고 왕창 쓰는 재미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렇고 그런 곳이다.
가깝고도 먼나라, 나라는 부자이지만 국민은 못사는 나라, 모방을 통해 얄미운 창조를 지향하는 나라, 국수 면발 한 가닥에 魂을 쏟아 붓는 나라라는 일본을 보는 마음은 조금 복잡하다.
공손한 태도와 웃는 얼굴 속에 계산속은 철저한 사람들이 일본인들인가.
처음 들른 곳은 <에도> 시대에 지어졌다는 <쿠라요시>시의 소금 창고 마을 <아카가와라>이다.
맷돌 커피도 마셔보고 잘 구운 생선 구이 <아지>도 한 마리 사서 청주도 마셔보는데 대부분의 관심은 이곳 특산 청주와 다이센 G(地) 맥주에 쏠리는 듯하다. 물맛이 좋으니 술맛이 당연히 좋은가.
점심으로 이색적인 <모찌 샤부샤부>를 들며 이번 산행의 주류로 등장하신 17회 형님들(한창희 외)과 아우(28회 한만엽)의 호의로 이 지역 특산 <나마>청주를 한 잔 그득 따라 맛보니 米香과 함께 일본의 맛이 몰려오는 느낌이다. 술을 입에 머금어 그 뒷맛을 즐긴다.
공심산우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에베레스트 산행도 기획하신다는 17회 형님들께서 오늘 저녁의 선상 파티를 위해 위스키도 여러 병 준비하신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여러 종류의 백합꽃이 主流로 피어난 대형 꽃정원 <하나카이로>에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며 구름 걸린 다이센을 다시 올려다보고 한일 우호 교류 공원이라는 <바람의 언덕>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동해를 내려다보고 과자의 성에서 다이센 G맥주 한 잔 마시며 일본 과자와 어묵의 맛도보니 한가로운 오후의 관광 일정이 끝나간다.
승선 전 면세점에서 과자와 떡 몇 조각 산 다음 출국 수속을 밟아 배에 오른다.
간단한 선내식 저녁을 마치고 수평선 너머의 붉게 물든 저녁 노을빛이 비쳐오는 선상 파티장으로 모여 술 한 잔 나누기로 한다.
이번 비닐 깔개 공사는 교직에 몸담은 아우들(28회 한만엽, 29회 공창협)이 접착 테이프로 정밀 책임 시공을 한 것이다.
이틀 전만큼의 시원한 바람은 불어오지 않지만 귀국선의 들뜬 기분에 맞추어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하니 총무 아우(30회 김계순)가 어시장에서 조달한 도미, 방어, 한치 횟감과 17회 형님들이 보시한 위스키 여러 병이 금세 동이난다.
형님(16회 김승남)께서 조달하신 산미구엘 맥주는 폭탄주용인데 평소 손이 큰 총무 아우가 환율에 놀랐는지 손이 너무 작게 횟감을 조달한 듯하다.
선사가 주최하는 선상 노래 자랑에 가수로 출연하시는 형수님(16회 김종교)과 등위에 입상한 형님(17회 신흥윤)을 응원코자 선후배 백댄서 그룹이 우정 출연을 하여 열광적인 율동을 선보였으니 서로 돕는 산악회의 흐뭇한 광경이다.
선상에 울려퍼지는 기타 선율 (21회 김민희, 29회 최중권)에 맞추어 옛노래의 합창 소리 밤하늘로 높아가는 사이 형님, 아우간 우애의 열기와 酒興이 높아만 간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을 잊은 醉興의 열기는 계속되는 모습이다.
4)넷째날: 강원도 산골의 살찐 송어 잡아 뒤풀이술을 마시다
선상의 아침 바람과 구름 사이로 먼동과 함께 터져나오는 아침 햇살을 즐기고 선상의 아침 식사를 즐긴다.
아직 며칠간의 주독이 풀리지 않으셨을 형님(14회 장헌수)께서 선상의 비싼 캔맥주(서울 시중가의 3배 가격)와 생맥주를 한 잔씩 좌중에 돌리시니 不敢請이언정 固所願이다.
한 잔 쭉 들이켜 시원한 목넘김과 뱃속에 짜릿한 신호가 전해지는 느낌을 즐긴다.
9시경 동해항에 닿아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는 버스에 오른다.
마침 진부령, 대간령과 조침령 부근의 산길을 답사차 걷고 있는 백두대간 선답팀(25회 손진수, 28회 박내권, 28회 박종민, 33회 손태영, 38회 엄주관)이 바쁜 시간을 내어 동기 대간 단장(25회 김종무)을 비롯한 다이센팀의 마중을 나왔으니 고마운 일이다.
평창으로 이동하여 산골 송어를 잡아 기름진듯 담백한 송어회의 맛을 즐기며 뒤풀이술을 나눈다. 송어회와 함께 먹는 콩가루와 야채를 초장에 잘 버무리는 것이 맛있게 먹는 요령인 듯하다.
3박4일의 일정이 너무 빨리 지나간 느낌이고 대부분 서울에 일찍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인지라 마침 평창 읍내에서 메밀부치기 축제가 열리고 있어 사람 냄새 나는 시골 장터의 정취도 맛볼 겸 시장 구경을 하기로 한다.
송어회를 잔뜩 먹어 배가 부르지만 배춧잎 한 장 찢어내어 즉석에서 얇게 부쳐내는 메밀부치기, 총떡, 수수부꾸미 같은 메밀과 수수의 담백하고 구수한 맛의 유혹을 참을 수가 없다. 메밀 막걸리 한 잔 들이키고 메밀부치기 한 쪽 찢어 먹으니 일단 입이 행복해 진다.
이제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봉평의 토종 메밀은 찾아보기 어렵고 수수와 메밀이 대부분 중국에서 계약 재배 형태로 수입된다 하니 글자 그대로 흐뭇한 푸른 달빛 아래 소금을 뿌린듯 숨죽여 하얗게 피어난 강원도 산골 메밀밭의 광경은 추억 속의 장면이 된 것인가.
비뿌리고 차가 막히는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 비내리는 압구정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경이다. 또 다른 뒤풀이의 유혹이 있지만 꾹 참고 귀가를 서두른다.
章
20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