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가/이영수
어답산 정기 받은 화성옛터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배움에 전당..(중략)
화성국민학교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큰 집이었습니다.
임금님이 밟았다하여 어답御踏인 어답산이 교가 첫 소절에 나옵니다.
천년의 전설 태기왕의 전설은 실체도 문서도 없지만 입에서 입으로
천년을 이어왔습니다.
아버지 또 아버지도 잘 모르는 설화이지만 왕의 힘과 위엄이 늘 내 편인 줄
알고 있었던 어린 시절 이었습니다.
후세에 알고 보니 태기왕은 슬픈 왕이었습니다.
신라 박혁거세에게 핍박받고 쫒기며 권토중래를 꿈꾸다 끝내 자살한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배너광고처럼 불쑥 나타난 “횡성 태기왕은 누구인가?”
가늘게 낚시 줄에 매달린 미끼처럼 물속에 있던 왕이 불쑥, 낚시에 꿰어 다가왔습니다.
왕은 말 했습니다. 슬프다고..
70명 조금 웃도는 친구들이 22회라는 번호를 부여받고 졸업했습니다.
이제 함께 졸업한 친구는 이 세상에 60여 명 뿐입니다.
천년의 시간에도 왕의 슬픔은 어명으로 살아있는 것일까
왕을 뒤따라간 친구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쌍탑유에스비/이영수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점점 멀어지는 천년의 거리, 메말라버린 땀방울
펄럭이는 붉은 깃발이 칼날을 조율하는 전쟁터
사내들의 사랑과 욕망이 거기 있었다.
탑둔지 쌍 탑*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에 갑옷을 씻고
장엄한 하루는 말발굽소리에 사라진다.
태기왕의 꿈은 대를 이어 우는 울음이었다
나 어릴 적 어답산 너머 임금의 전설을
눈깔사탕처럼 주머니 속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탑둔지 쌍 탑은 출력이 멈춘 고장 난 유에스비
천년의 기억에 여기저기 제살 터져나간다.
*횡성군 갑천면 중금리 탑둔지에 소재했던 9세말 경 건립된 쌍 탑.
지금은 횡성 댐 수몰로 1998년 구방리 망향의 동산으로 이전
첫댓글 어답산과 태기왕의 전설을 읊은 대서사시 감상 잘 했습니다.
이제 월보시인은 구인회의 우물 안에만 있을 수 없는 큰 문인입니다.
드넓은 창해로 나아가 대한민국의 시문단에 우뚝서시기를...
월보님 대단하셔요.봉님 말씀처럼 이젠
저의 만의 오라버니가 아니라는것을 부정 할 수가 없내요. 흑
편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세 편의 서사시 감상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