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 향기가 행복을 주듯이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다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유혹에 다가가다가. 물론 얼마 전부터 ‘무슨 향기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외부 특강 후 바로 집에 들어왔다. 물론 그 전에 미용실에도 갔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그득해서 발길을 돌렸다. 그 언젠가도 그랬었다. 그때는 미용실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었다. 눈웃음을 살짝 지으면서 “내일 오세요” 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도 한참 지난날이 오늘이다. 그 누군가는 얘길 했다. 미용실이 거기뿐이냐고. 머리도 별로라면서. 그런데 한번 단골을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를 못한다. 식당도, 병원도, 운동하는 장소도. 매사 이런 편이다. 이게 특성인가. 넘어지면서 죽는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덜 다쳐보려고 몸부림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낼 당장 특강이 오전 10시부터 있는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참으로 난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넘어지게 한 주인공은 금목서다. 온몸을 피어나는 꽃잎들로 장식해가고 있었다. 금목서의 질투심이 날 넘어지게 했을까. 그동안 정성을 많이 쏟았다. 여름날의 뜨거운 빛이 점점 스러져 가면서 약간 관심이 낮아졌다. 스스로 잘 자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생각으로 다른 일들에 매몰되다 보니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금목서는 날 많이 봐줬다고 생각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장미꽃을 꺾어주다가 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하잖은가. 거기에 비하면 난 그래도 다행이지 않을까. 릴케의 장미 사랑은 유난했다. 1907년 작 ‘장미의 내부’에서 “이 근심을 모르는/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어느 곳의 하늘이 비춰지고 있을까?”라면서 장미 사랑을 가없이 보여줬다. 나 역시 장미를 좋아한다. 시골집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낼 때 상당히 큰 화단을 가꿨다. 육화, 해당화, 골단초 등을 비롯한 다년생은 물론 글라디올러스, 칸나, 맨드라미, 금잔화, 코스모스 등은 물론 각종 이름 모를 화초까지 길렀다. 화단 가는 형형색색의 채송화로 빙 둘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이 집, 저 집으로 꽃을 교환하러 다녔다. 우리 집에 있는 꽃을 갖다주고 없는 꽃을 가져왔던 것이다. 한없이 행복한 유년 시절이었다. 이런 목가적 상념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김소월 시집을 읽게 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길들어진 독서열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릴케의 사랑이 장미라면 나의 사랑은 금목서가 아닐까. 그 언젠가 어느 산사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되었다. 입구에서부터 홀리는 게 있었다. 그 향기의 줄기를 찾아들어 갔다. 그 끝 무렵에서 금목서가 한창 향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처음 맞대면 했을 때는 금목서인 줄도 몰랐다. 지나가는 스님에게 물은 후에야 알았다. 그때부터 금목서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먼 훗날 어느 지인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화분에 키우고 있던 금목서를 내게 주었다. 잘 길러서 꽃까지 피웠는데 달려드는 진드기에게 잃고 말았다. 우연한 기회에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 현재의 금목서다. 아마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미 사랑보다 더 짙은 사랑을 퍼부을 것 같다. 그래서 두렵다. 사랑하기에 혹여라도 아플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했다. 깨달음은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는 과정에서 생겨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가장 밑으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위로는 모든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금목서가 스스로 향기를 피워내 주변인들을 행복하게 해 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