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를 넘나드는 한 낮 오후
거실에 편안히 앉아있으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늘을 찾아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강낭콩을 까고있는데
휴가중인 남편은 회사에 볼일이 생겼다며 춘양까지 태워다 줄테니 시장에 들러보란다.
옷입은 그대로 검정고무신에 모자를 눌러쓰고 장날 구경을 하러 시장에 내렸다.
한시간이나 여유가 있으니 몇미터 안되는 시장구경을 하기엔 지루한 시간이다.
불과 몇달 전에는 갖가지 채소 모종이며 과수 묘목을 늘어놓았던 시장가에는 땡볓이 늘어서있다.
그래도 뭔가를 팔아 손자들 용돈이라도 주려는 것인지
할머니 몇분이 고구마줄기랑 호박 가지 상추들을 가져와 부채질을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두부 콩나물 아저씨는 꾸벅꾸벅 졸며 더위와 타협을 하고 있고
울진에서 온 생선 아저씨는 얼음에 채워진 싱싱한 고등어처럼 씩씩하게 손님을 부르고있다.
연쇄점에 들러 아주 천천히 에어컨 바람을 공짜로 느끼면서 몇바퀴를 돌아
고무장갑과 면봉을 사고 얼음붕어 두마리를 사서 나오니 이크크~~ 더워라.
아까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야채아줌마에게 붕어 한마리를 불쑥 내밀자
아까 검정고무신 신은 여자가 아줌마였네?ㅎㅎㅎ~~~
요즘도 저런 신발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느냐 하며 웃었단다.
옛날 아줌마 어릴때 어머니가 검정고무신을 사오셨는데
학교 앞에서만 신발을 신고 학교를 벗어나면 신발을 들고 맨발로 집까지 걸어다녔었다며
깔깔웃는 아줌마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들어난 들쑥날쑥 엉성한 치아를 보며 나도 웃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뻥! 하는 튀밥 튀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 하고나니
온 시장 가득 꼬신내가 더위를 몰고 간다.
옆에서는 냉동생선 부부가 할머니와 언성이 높아졌다.
할머니의 잔돈 6천원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시비를 가리지못해
할머니는 땡볕에 죄없는 생선아저씨를 보고 안달을 하고
아저씨는 또박또박 상황설명을 해드렸는데도
할머니는 돈을 어디다 흘려버렸는지를 몰라
장난감 사달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칭얼대고 계신다.
옛날 같으면 사건이 해결 될 때 까지 지켜보는 오지랖도
더위에는 이길 장사가 없어 오지랖은 한쪽 귀에만 걸려있고 한쪽 귀로는 흘려버리고
정류소로 들어가 앉을 자리를 물색하여 겨우 자리를 잡았다.
때맞추어 희끗희끗한 머리에 단발퍼머를 하고
곱게 핀을 꼿은 예쁘게 생긴 학산동에 사신다는 일흔여섯의 할머니 한분이
세번만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다며 정류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얼음붕어 한마리씩을 돌렸다.
얼굴이 함지박만하게 커다랗게 생긴 어떤 할머니는 붕어모가지를 잡고 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춘다.
남의 기쁨에 붕어 한마리씩 들고 정류소안이 환하게 밝아진다.
버스 한대가 들어오니 밀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평상으로 옮겨앉아 땀을 식히느라 모자를 부채삼아 흔들고 있자니
옆에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시던 할머니가 자기 부채를 내민다.
부채를 받아서 옆자리에 앉은 모든사람들에게 바람을 일으켜드리니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영주에서 옷을 팔러 온 아줌마는 돈주머니를 차고 옷보따리를 끌고 들어오더니
차시간이 조금 남은 모양으로 그 가운데 가장 젊은 나에게 와서
일바지를 사라, 쫄바지를 사라, 면티셔츠를 사라, 하며 흥정을 건낸다.
아이들이 보내준 집에 있는 옷도 못다입고 죽을 것인데 뭘 또 사라고요...
더운날 한개 팔아주지못한 미안함에 고개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린시절 장날엔 떡전골목에 낯이 살짝 얽은 아줌마의 두툼한 팥시루떡이 맛있었다.
봄날 하교길에 파장에 들러 용돈 남은 것으로 고소한 콩고물이 묻은 쑥떡을 사 가면
엄마랑 동생들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
큰 언니인 나는 엄마나 동생들에게 빈 손을 보이는 것을 미안해 했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부터는 내 아이들과 남편에게 빈 손을 보이는 것을 미안해 했다.
시골 장날엔 항상 어린시절의 추억과 인심이 풍요로워지는 행복감을 느낀다.
첫댓글 넉넉한 인심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했더니 글을 읽으며 반성을 합니다
모든게 내 하기 나름인것을.....
장날이면 꼭 쑥 떡 아주머니를 찾곤 했었습니다
한 잎 먹고 나면 오는 길에 나눠 주기도 하고.....
버스안에서 할머니들과 나누는 대화는 정이란것이 인심이라는것이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할머니들의 외로움은 버스안에서 푸념으로 풀고 내릴때는 어느새 친해져 있음을...
가끔 아주 가끔 장날에 가는 풍경을 그려주신 자매님글에 푹 빠집니다
저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니기도 해요 조선 나이키^^
시골장날 구경하는 즐거움은 시골출신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여행을 할때는 항상 장터에 가보면 그 지방의 말투와 인심을 알 수 있지요...
어찌 이리도 상세하게 글로 옮겼을까 싶네요
같이 장에라도 다녀온 느낌입니다
두부 콩나물 기본으로 사면서 시장보기 시작하여
물에서 갓 올라온것같은 울진에서 온 싱싱한 고등어 오징어도 사고
하나로 마트 들러 시원한 붕어 한마리 입에 물고
물엿이며 식초며 라면,,,ㅎㅎ 이렇게 사고 나면
다육이들을 구경하고 옵니다
언니랑 같이 시장가면 꼭 떡 한조각 사서 묵고 와야지 ㅎㅎ
응, 꼭 떡 사먹으러 가자~~~
물오징어를 좋아하는데 요즘 너무 비싸서 망설이다가 그냥 왔는데
오늘 우리 동네 풋굿에 갔다가 오징어무침 한접시 묵고 왔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