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종은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그것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이에 따라 불교의 진리가 담고 있는 경전과 불교의 교리를 최우선시한다.
이와 달리 선종은 모든 인간이 불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며
수행과 해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의 성품임을 깨닫고 부처가 되는 것을 강조한다.
교종과 선종 중 무엇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 선종보다 교종의 입장을 지지한다. 교종은 경전의 이해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불교 진수로 생각하고 그것의 이해와 실천까지 강조하는 사상이다.
즉 배움을 통한 가르침을 중시하고 그것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이라고 정리 해볼 수 있다.
반면 선종은 모든 인간이 불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여 수행과 해탈을 강조한다.
모든 이가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의 성품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너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배움이 있어야지만 수행과 해탈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과 이론적 배움이 합쳐졌을 때 진정 바람직한 행동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종을 더 지지한다.
▶ 지눌은 자신의 마음 이 곧 부처의 마음이고, 자신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임을 단박에 깨닫는
‘돈오’와 함께 불성을 깨닫고 난 이후에 수행을 통해 기존의 집착이나 번뇌 또는 망상과 같은 습기를
없애나가는 ‘점수’를 이야기한다. 그와 달리 성철은 불성을 단박에 깨닫는다면,
단박에 깨달았기 때문에 수행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입장의 돈오돈수를 이야기한다.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중 무엇을 더 지지하는가?
= 지눌의 돈오점수를 더 지지한다. 돈오돈수란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는 것’이다.
돈오점수는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단계가 따른다는 것이다.
점수에 대해서 좀 더 논해보자면 결국, 한번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전 과정에 점점 그 깨달음을 닦아가는 것 역시도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이 개념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돈오’의 개념을 완벽히 숙지해야 한다.
‘돈오’는 단번에 자신의 마음에 갖추어진 불성을 깨우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이제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진정한 깨달음이랑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닦을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만약 다시 더 닦아야 한다면 아직 덜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돈오점수’는 단박에 불성을 깨우쳤다 할지라도, 과거의 번뇌나 행실을 갑자기 버릴 수는 없으므로
이를 점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수행이 계속되었을 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눌의 ‘돈오점수’를 지지한다. 또한, 지눌의 주장처럼 선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킴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선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수행으로서 화두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지눌의 ‘돈오점수’를 지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