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2일, 목요일, Hanga Roa, Easter Island, Residential Apina Tupuna (오늘의 경비 US $28: 숙박료 9,000, 식수 3,600, 콜라 1,300, 1,500, 1,500, 관광 30,000, 환율 US $1 = 600 peso) Easter 섬은 약 160 평방 km 면적의 거의 정 삼각형 모양이다. 울릉도의 2배 정도 크기의 섬이다. 제일 높은 산의 높이가 약 500m이고 전체적으로 평지가 많아 보이는 제주도 같은 섬이다. 한때 야자수 숲이 무성했는데 약 5백 년 전에 숲이 완전히 없어져서 이제는 거의 초원처럼 보인다. 일설에는 남태평양 섬에서 야자수 씨를 먹고 사는 쥐가 들어와서 야자수 씨를 다 먹어치워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하고 다른 설은 남미에서 고구마가 들어와서 고구마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서 원주민들이 야자수 숲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약 1000년 전에 남태평양 섬에서 이주를 해왔다는 것이 통설인데 남미 대륙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단다. Easter 섬은 세계에서 제일 고립된 곳이라고 한다. 서쪽으로는 1,900km 거리에 Pitcairn 섬과 4,000km 거리에 Tahiti 섬이 있고 동쪽으로는 3,700km 거리에 남미대륙이 있다. 서북쪽에는 하와이 군도가 있고 남쪽에는 남극대륙이 있다. 그러니 Easter 섬 주위는 망망대해뿐인 것이다. 통상적으로 뉴질랜드, 하와이 군도, Easter 섬을 잇는 삼각형 지역을 Polynesia 혹은 남태평양이라고 부른다. 지난 1000년 동안 이 섬의 인구가 제일 많았을 때가 약 만 5천 명이었는데 백인들이 처음 도착했던 18세기 초에는 약 4천 명으로 줄었고 지금도 약 4천 명인데 그중에 원주민은 약 2천 명이란다. 조그만 섬이고 인구도 많지 않았는데 원주민들은 여러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서 화합하지 못하고 부족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신라 건국 이전의 경주 지역에 있었던 6촌과 비슷하지 않았나 하고 상상을 해보는데 경주 6촌은 합쳐서 신라로 발전했지만 이 섬의 부족들은 화합을 못하고 18세기 초에 백인들이 도착해서 섬을 차지할 때까지 싸움만 해왔던 모양이다. Easter 섬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이라 한때 외국 회사들이 들어와서 (주로 프랑스) 양 목장을 경영해봤으나 경제성이 부족해서 얼마 후에 떠나버렸고 가톨릭교회의 미션도 얼마 동안 있다가 떠난 후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땅이 되어버렸다. 19세기 중반에 칠레 정부가 섬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땅 주인이었던 외국 회사들과 가톨릭교회로부터 섬을 사드렸다. 이곳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고생을 해왔다. 백인들에게 땅을 모두 빼앗기고 살던 마을에서 모두 쫓겨나서 지금 이 섬의 유일한 도시인 Hanga Roa에 주거가 한정되어서 거의 수용소 생활을 하다시피 해왔다. 그리고 수많은 남녀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많은 원주민들이 섬 탈출을 시도 했으나 대부분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주로 Tahiti 섬 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데 4,000km 거리는 조그만 통나무배로 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다. 제일 큰 피해를 받은 것은 19세기 중반에 페루 배들이 나타나서 섬 전체 인구의 반이나 되는 약 2천 명의 원주민들은 노예로 잡아다가 남미 각지에 팔아버렸다. 나중에 이 사건 때문에 세계 여론이 나빠지자 곤경에 빠진 페루 정부가 원주민 400여명을 모아서 Easter 섬으로 강제로 송환했으나 노예선 같은 열악한 위생 상태와 음식 때문에 송환 도중에 배에서 대부분 죽고 단 16명이 Easter 섬에 도착했다. 이들 조차 배에서 천연두에 걸린 환자들이어서 섬에 금방 천연두가 창궐해서 섬의 원주민 인구가 단 20여명으로 줄었다. 현재 원주민 인구가 2천 명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묵고 있는 원주민 민박 가족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967년에 공항이 생기고 이 섬의 Moai 석상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후로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매년 6만여 명이 다녀가는데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이 섬에는 도시라고는 비행장이 있는 Hanga Roa 하나뿐인데 현재 공공 서비스 수준이 (식수, 쓰레기 수거, 도로 등등) 1년에 관광객 만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관광 서비스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관광 붐이 크게 일고 있다. 이번에 여행하는 Galapagos 군도와 Easter 섬 두 곳이 모두 최근에 관광 붐이 일고 있는 곳이다. Galapagos 군도와는 달리 이곳에는 원주민이 있어서 일부는 독립을 원하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원주민들도 인정한단다. 그래서 일부 원주민들은 좀 더 현실적인 자치를 원하고 있는데 칠레 정부가 별로 귀를 기우리지 않는단다. 오늘은 단체여행 그룹에 끼여서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섬 전체를 도는 긴 여행을 했다. 주로 이 섬의 명물인 Moai 석상과 석상이 놓인 제단 Ahu를 구경하는 여행이었다. 원래 Ahu에는 Moai 석상이 없었는데 후에 Moai 석상을 Ahu 제단 위에 세워놓게 되었다 한다. 이 섬에는 300여 개의 Ahu와 900여 개의 Moai가 있는데 90% 이상이 해변에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주민들이 해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곳 원주민들이 원래 바다 멀리에 있는 섬으로부터 온 이주민들이기 때문에 고향 쪽으로 Ahu 제단을 세우다보니 마을보다 더 바닷가 쪽에 위치를 정했다고 한다. 나중에 Ahu 제단 위에 Moai 석상을 세울 때는 마을에서 Moai 석상을 바라다볼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석상이 내륙 쪽을 향하도록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Easter 섬의 모든 Moai 석상들은 바닷가에 있고 모두 내륙 쪽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Moai 석상은 바닷가가 아니고 내륙에도 있다. 제일 많이 있는 곳이 Moai 석상을 만든 곳인 채석장들이 있는 곳이다. 이 채석장들은 해변에서 10km 내지 20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곳에서 석상을 거의 완성한 다음에 해변으로 운반해서 제자리에 놓은 다음에 마지막 손질을 했단다. 채석장에 있는 석상들은 거의 완성을 한 다음에 무슨 이유에서 인지 해변으로 운반을 안 한 석상들이다. 채석장에는 작업 중에 중단한 석상들도 여럿 있다. 뿐만 아니라 해변으로 운반을 하다가 중간에 방치한 석상들도 있다. 섬에 정변 같은 갑작스런 정치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작업을 중단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Moai 석상은 조상숭배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란다. 어떻게 300톤이나 되는 Moai 석상을 채석장으로부터 10km 내지 20km 떨어진 해변까지 운반했는지 하는 것이 학자들의 큰 쟁점이 되어왔다. 둥근 나무를 철로의 침목처럼 깔고 그 위에 석상을 올려놓고 밧줄로 끌어서 운반했을 것이라는 것이 그동안 통설이었는데 최근에는 석상을 세운 채로 밧줄에 묶어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운반했을 것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단다. 뻗정다리를 가진 사람이 뒤뚱거리며 걷는 그런 식이다. 이것은 석상이 걸어서 자기 자신을 운반했다는 원주민들의 전설적인 주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Easter 섬의 석상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에 “쓰나미” 같은 천재와 전쟁 같은 인재로 모두 쓰러져버린 것을 (마지막 석상은 1838년부터 1850년에 쓰러진 것으로 추정) 근래에 일부 석상들을 복구 작업을 통해서 세워놓았다. 그래서 Easter 섬에는 관광 책자에 나오는 “standing statue"보다 쓰러진 채로 있는 ”fallen statue"와 작업 중에 방치한 “buried statue"가 훨씬 더 많다. 오늘 하루 종일 석상 구경을 했다. 미화 $50 짜리 관광인데 돈이 아깝지 않은 정도로 흥미진진한 관광이었다. 이곳 관광안내소인 Sernatur에서 소개받은 관광이었는데 Estafan이란 친구가 가이드를 하는 소그룹이었는데 가이드가 너무나 재미있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가이드를 했다. 가이드의 개인의 차로 보이는 조그만 8인승 차에 영국 남자 2인, 네덜란드 여자 2인, 일본 여자 한명, 그리고 나로 빈자리가 없었다. 나 외에는 전부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일본 여자는 좀 특이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인데 백인 피가 좀 섞인 것 같기도 한 미인이었다. 옷도 멋있게 차려 입고 양쪽 손에 반지를 여럿 요란스럽게 끼었는데 하나도 천하게 보이지 않았다. 코에는 팥알만 한 보석이 붙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좀 야하면서도 품위 있게 차린 여자였다. 영어가 너무나 유창해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미국 국적의 일본인 인 것 같았는데 일본 태생인지 미국 태생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본어도 유창했고 (다른 일본 여행객들과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일본 여자는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한국에도 두 번이나 방문했고 (단순한 관광이 아니고 학교를 통한 문화교류) TV 드라마 겨울연가와 배용준도 잘 알고 있었다. 근래에 나도 한국 신문에서 읽은 것 같은데 일본과 한국에서 공동으로 조사를 했는데 일본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비율이 30%인 반면에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 비율은 60%이었다며, “We Japanese like Korea more than you Koreans like Japan."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나도 궁금하다. 엉터리 조사인가? 소위 ”한류“ 때문일까?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넓은 것일까? 나중에 “I like Japan too, my son-in-law is Japanese." 했더니 ”Ya?" 하면서 흥미를 보였다. 좀 과장했나 싶어서 “Japanese-American." 했더니 ”That's different." 해서 다시 말이 막혀버렸다. 이 여자에게 좀 당한 것 같은 기분이어서 좀 씁쓸한 기분이었다. 여행지도 바닷가에서 10km 내지 20km 떨어진 이 산에 있는 채석장에서 Moai 석상을 만들어서 바닷가로 옮겨서 세워놓았다, Moai는 원주민 말로 석상이란 뜻이다 채석장에는 다 만들어 는 놓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치해버린 석상들이 많다 시대에 따라서 모양이 조금씩 다르나 대부분 이 모양이다 대부분 땅속에 파묻혀 있는데 상체 부분만 땅밖으로 나와 있다 Moai 석상은 조상숭배 관습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두 석상은 거의 땅에 파묻히고 머리 부분만 나왔다 이 석상은 넘어져서 거의 다 파묻혀있다 작업 중에 방치해버린 석상이다 바닷가로 옮기다가 방치해버린 석상들도 많다 석상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채석장이 있는 이 산의 분화구 호수에는 방목하는 말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석상들은 대부분 이렇게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석상들은 Ahu라 불리는 제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석상이 없는 Ahu도 많다 석상들은 모두 바다 반대쪽을 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석상들 앞에는 항상 마을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석상의 전면을 바라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란다 현재 Easter 섬에 이렇게 서있는 석상들은 모두 넘어져있는 것들을 다시 세워놓은 것들인데 (아마 관광 목적으로) 아직도 넘어져있는 석상이 훨씬 더 많다. 사진 한 가운데 석상이 넘어져있는 Ahu가 보이는데 그 앞쪽으로 있는 공터는 마을이 있던 곳이다 한 가족이 살던 집터인데 잠만 자는 좁은 곳이다 음식을 만드는 곳은 잠자는 곳에서 좀 떨어져있다 원주민들이 "세상의 배꼽"이라 부르는 신비스런 돌이다 이 돌에 손을 대면 행운이 온다는데 ... Easter 섬에는 약 300개의 Ahu와 (Moai 석상이 없는 곳까지 포함해서) 900개의 Moai가 있는데 90%는 바닷가에 있다 마을이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