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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중국의 티벳족(Tibetan)
1. 선교지의 개요
티벳족은 중국 대륙 각지에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 거주하고 있다. 그 중 서남부의 티벳고원 지역에 대부분 집중 거주하고 있으며 그 밖에 칭하이(靑海), 쓰추안(四川), 깐쑤(甘肅), 윈난(澐南) 등에 소수가 분산 거주하고 있다. 티벳고원의 정식 행정명은 서장(西藏)자치구이며 동쪽으로 쓰추안 성, 남동쪽으로는 칭하이 성, 북서쪽으로는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서쪽으로는 잠무카슈 미르, 남쪽으로는 인도/네팔/부탄/미얀마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수백 년간 티벳족은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 의해 신권 통치를 받아 왔다. 그러다 1950년 중국이 티벳을 침공해서 점령했다. 중국은 티벳, 불교의 교단 조직을 해체하고 도로, 학교, 병 원을 건설함으로써 티벳를 근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티벳족은 1959년 이 지역의 수도인 라싸에서 대중봉기를 일으켜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중국이 이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달라이 라마 14세는 인도로 망명했으며, 현재까지 인도에서 임시 정부를 이끌고 있다.
-지리적 위치-
티벳 고원은 지구상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운 고원으로 그 해발(바다 표면으로부터의 높이)이 3500m-5000m나 되며, 아시아 대 륙의 중요한 하천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렇게 해발이 높기 때문에 지형, 지질, 인문, 동물, 식물 등 여러 면에서 독 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리상으로 티벳 고원은 북쪽으로는 쿤룬 산맥을 경계로 신장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치렌산 끄트머 리인 르웨산에서 깐쑤 남서쪽의 샤허, 린탄을 거쳐 남쪽의 쓰추안 분지를 경계로 원구이 고원과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인도, 부탄, 시킴, 네팔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파미르, 카라코람을 경계로 인도, 파키스탄에 접해 있다. 위도상으로는 티벳 고원의 대부분이 북위 27-36도, 동경 75도-100도사이에 있으며, 동서로 약 2500Km, 남쪽으로 약 1200Km에 걸 친 총 200만Km 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다.
티벳(서장자치구)은 중국서남부에 위치하며, 면적은130만여 ㎢대략 전 중국의1/8에 해당하는 넓이이다. 인구는 251만인데 그중 장족(藏族)이 96%이며, 나머지는 한족(漢族), 먼빠족(門巴族), 낙파족(珞巴族), 회족(回族)등이 있다. 자치구는 라싸(拉薩)를 수도로 하고, 일곱 개 행정구역 -참도(昌都)지구, 낙추(Naqu.那曲)지구, 산남(山南)지구, 시가체(日喀則)지구, 아리(阿里)지구, 닝트리(林芝)지구, 라싸(拉薩)지구-으로 구분된다. 각 지구(地區)는 우리나라의 도(道)에 해당되며 다시 여러개의 현(縣)으로 나누어진다. 현(縣)은 우리나라의 군(郡)으로 생각하면 되고 현(縣)아래의 최고 작은 행정단위는 향(鄕)이라고 한다. 향(鄕)은 우리나라의 면(面) 혹은 리(里)로 생각하면 된다. 각 현(縣)의 중심도시를 진(鎭)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군청(郡廳)소재지로 생각하면 무난하다
-자연 재해-
지진 관측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서 지진이 가장 많은 곳은 타이완을 제외하고는 단연 티벳 고원이 손꼽힌다. 여기서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지진계의 6도 이상으로써, 1988년의 네팔 대지진 및 윈난 대지진도 모두 그런 지각 운동과 관계가 있다.
- 인구 -
티벳의 전체 인구는 약 580만 명(국내인구 560만, 네팔 6만, 인도 10만, 부탄 3천)이다. 95년 중국 정부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티벳자치구와 칭하이성(靑海省)을 합쳐 462만의 티벳인이 있다. 전체 티벳인 중 10% 정도만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동일한 퍼센트의 인구만 문자를 사용할 수 있다. 티벳자치구의 면적은 121만㎢로 남한의 12배가 넘는다
-기후/온도-
기후는 대체로 건조하며 습도는 낮다. 남쪽의 히말라야 산맥이 인도양으로부터 몬순을 가로막기 때문에, 연 강수량은 히말라 야 남쪽 경사면에서 2500mm를 넘고 북쪽 경사면에서는 250mm이하로, 북쪽으로 갈수록 적어진다. 요컨대 티벳는 연강수량이 250mm 이하인 건조한 땅이다. 이 때문에 기온의 일교차가 크고 또 고도가 높아 평균기온이 낮다. 티벳의 독특한 고원 기후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첫째, 지세가 높고 공기가 희박하여 대기중의 수분 함량도 적고 공기 가 맑고 건조하여 일조(日照)시간이 길다. 둘째, 고원 위에서는 복사가 강하고 일조가 충분하지만, 지면이 거의 벌거숭이여서 낮 에 열을 흡수하는 것도 빠르나 밤에 열을 방출하는 것도 빨라 기온이 신속히 하강하므로 일교차가 매우 크다. 통상의 일교차가 1 6도-18도C나 되므로 '낮에는 홑옷, 밤에는 외투'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셋째,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고원은 강한 서풍의 영향을 받아 날씨가 매우 한랭하고 공기가 건조하며, 지면에서는 항상 강한 편서풍이 분다.
-민족의 구성-
티벳인은 중국어로 짱(藏)족이라 한다. 짱족은 다시 라싸(拉薩)인, 캄바(康巴)인, 암도(安多)인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쓰고, 생김새와 성격도 다르다. 간쑤(甘肅), 칭하이(靑海), 쓰촨(四川)에 사는 암도인은 외모가 잘 생겼고 언어도 제일 고급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암도인 가운데 기독교 인구는 2~3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티벳자치구의 동쪽에 있는 창더우(昌都)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캄바인은 숙련된 전사(戰士)들로서, 지금도 붉은 실을 꼬아 머리에 쓰고 남성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닌다. 사용하는 언어는 저급한 편이라 한다. 라싸인은 라싸(拉薩)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이곳은 티벳의 정치, 경제, 종교 중심지로서 중간적인 성격을 띈다.(*티벳인은 비교적 단일 종족으로서 대다수가 종족 기원이 같고 동일한 종교와 언어를 가지고 있다. 티벳족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먼저 중부와 서부의 개발지대인 티벳강 계곡에 거주하는 종족으로서 머리가 둥근 형태이고 중국인 및 버마인을 닮았다. 나머지 종족은 중앙 티벳의 귀족과 동부와 북동부의 유목민으로서 머리를 기르며 키는 크고 마른 데다 코는 매부리코이다.)
-언어-
언어는 티벳-버마어계에 속하며, 악센트로 음소가 연결된 단어를 구별한다. 7세기 이후 산스크리트 불전을 번역하기 위해 굼타문자를 모체로 하여 문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역마다 각각 방언이 달라 서로 통용되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티벳자치구는 대체적으로 중앙과 서부, 남서부, 남부 4개의 방언구로 나뉜다.(*브리태니커 백과 사전 : 시노티벳어족의 티벳미얀마어군에 속하는 티벳어(또는). 티벳, 부탄, 네팔과 시킴을 포함하는 인도 북부의 일부 지역에서 쓰인다. 이 말은 학자들에 따라 보통 4개의 방언군, 즉 중부, 남부, 북부(티벳 북부에서 사용), 서부(티벳 서부에서 사용) 방언들로 나눈다. 티벳의 수도 라싸에서 널리 쓰이는 방언이 중부 방언군에 속하는 반면, 남부 방언군은 주로 시킴, 부탄, 네팔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서부 방언들은 소리 체계가 더 보수적이어서 고대 티벳어의 어두의 자음결합과 어말의 폐쇄음(음성관을 완전히 막아서 내는 소리)을 매우 잘 보존하고 있는데, 다른 방언들에 비해 성조의 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티벳어는 인도어에 기원을 둔 매우 보수적인 문자로 쓰여져 있는데, 이 문자의 현재 형태는 9세기부터 쓰여왔다. 정자법은 7세기 무렵의 티벳어 발음을 반영하므로 오늘날 표준 티벳어의 발음을 적합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중국을 주께로(94년 3/4월호) : 티벳족은 통일된 문자를 갖고 있다. 장문(藏文)은 서기 7세기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 였는데 4개 모음과 30개 자음, 자모로 이루어진 병음 문자이며 좌에서 우로 글을 쓴다. 자체는 머리가 있는 자와 머리가 없는 자 의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장어는 위장(衛藏) 강(康), 안다(安多)의 3종류 방언으로 구분된다.)
-정치적 상태-
티벳 종족은 기원전 200년경 중국 북서부의 대초원에 거주했던 유목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세기까지만 해도 티벳 왕국은 중앙 아시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변화를 겪는 가운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티벳은 러시아의 영토 확장과 인도의 국경 수비정책간에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로 전락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 이라마가 등장해 티벳은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잠시였고 1950년 중국 공산당이 티벳을 점령하므로써 티벳은 중국의 일부로 귀속되 었다. 그리하여 1965년 서장 장족 자치구로 되었다. 1987년 이래로 티벳인의 현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동같은 형태로 나타났으며 1989년 3월부터 1990년 5월까지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정치 환경은 불안정한 상태이다. '돈과 이주민들 앞세워 중국이 티벳을 다시 침공'이라는 제목으로 티벳의 중심가 라싸와 티벳의 문화가 최근 이주해 온 중국인들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 92년 중국 정부는 티벳의 이주 제한 을 해제함과 아울러 중국 내에서의 임금보다 2-3배 높은 일자리까지 제공함으로써 중국인의 이주를 부추겨 티벳족의 독립 열기를 누그러뜨리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티벳인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어 가고 있으며, 티벳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조용히 진행해 가고 있다고 보도한다.
-중국인 이주정책-
티벳인과 문화, 환경을 가장 위협하는 것 중에 하나는 중국인들과 군인들의 티벳 유입으로 티벳이 중국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당국의 중국인 이주정책으로 1980년에 티벳에 거주하는 티벳인들이 6백만 명인 반면 중국인들은 7백 5십만 명에 이르렀었다. 수도 라사의 경우만 해도 1946년까지만 해도 대 사원에 있던 2만 여명의 승려 수보다 적은 인구가 살았었는데 지금은 20여 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으며 라사 인구의 70%가 중국인이다. 티벳인들에 대한 산아제한, 낙태 강요와 불임시술이 이러한 티벳의 중국화를 가세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1984년부터 1가정에 2명의 자녀만 낳은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중국인 이주 정책과 산아제한 정책의 추진 결과 티벳인들은 경제, 교육, 정치, 사회 영역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며 티벳 문화와 전통은 급속한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일례로 중국의 경제정책도 티벳인보다는 중국인들 우선이고 대다수의 기업들은 중국인 소유인데 캄과 암도 지방에서 계곡에 위치한 좋은 땅들은 대부분 중국인들에게 분배되었지만 티벳인들은 점점 황무지로 쫓겨나고 있다. 주요한 행정직은 중국인들이 차지했다. 더욱이 중국인들은 티벳 사람들에 비해 삼림과 광물개발에 있어서 우선권을 부여받았다. 라사에 있는 1만 2천개의 가게들과 식당 중에서 단 300개만이 티벳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133개의 사업체를 소유한 반면 티벳인들은 15개의 사업을 소유하고 있다. 다른 지방에서도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영국언론에 의하면 암도 지방의 도시 중심에서는 상황이 훨씬 좋지 않다고 한다. 중국은 티벳에서 행해지는 개발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하지 않는다. 이 개발은 중국 이민자들에게 혜택을 주어 티벳으로의 유입을 장려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의 티벳 문화말살 정책은 티벳어 사용 금지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든 학교는 티벳어대신 중국어를 가르치고 정부 문서도 중국어로 출판한다.
2. 경제
-주요 산업-
천연의 목장이 총면적의 66%에 달하여 옛부터 목축이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반면, 양, 야크, 소 등을 방목해 왔다. 또한 농업 기술의 진보로 많은 종류의 곡물과 야채, 과수가 재배되고 있고, 고지에서의 보리 재배나 이모작과 3모작의 농사도 가능하게 되 었다. 그리고 수력이나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그 개발도 기대되고 있다. 수도 라싸를 중심으로 목재 가공, 제분, 시멘트, 농기구, 자동차 수리, 제철 등도 발달되었다. 1991년 중앙 정부와 서장 자치구 정부가 현 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야루짱뿌강, 핑추하, 라싸하 중부 유역지구에 10억원을 투 자해 수리, 에네르기, 농업 항목을 건설키로 하였다. 야루장뿌강, 핑추하, 라싸하 중부 유역 (약칭 '1강2하')은 서장 고원의 중 심 지구와 주요 알곡 산지이다. 이 지구에는 서장의 두 개 대도시인 라싸, 시가제와 산남 지방의 18개 현이 망라된다. '1강2하' 공사는 모두 12개의 수리공사, 3개의 에네르기공사, 3개의 농업공사, 여러개의 목축업과 임업공사 및 2개의 농업 종합 개발구의 건설을 포함한다.
-생산물/천연 자원-
광물 자원은 풍부하지만 까다로운 지형과 혹독한 기후로 인해 경제는 아직도 미개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주요 농작물로는 보리, 밀, 기장, 메밀, 콩, 마, 겨자 등이 있다. 야크와 암소의 교배종으로부터 얻은 버터는 주요 낙농산물이다. 그밖에 다양한 채소를 재배해 주식을 보충하는데, 여기에는 무, 순무, 당근, 감자, 완두, 파슬리, 상추, 톼토, 양배추 등이 포함된다. 또한 마늘, 양파, 박하, 미나리, 콜리 플라워, 호박, 가지도 재배한다. 천연 자원으로는 석탄, 철, 천연소다 등을 산출한다.
-주수입/주수출-
티벳의 수입품은 차.설탕.쌀이고 수출품은 모직물이다.
3. 생활 조건
-음식(식습관)-
티벳인들의 식생활은 가축과 쌀보리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양고기는 가장 중요한 동물성 식품이고, 우유가 가장 중요한 음료 다. 우유로는 버터.치즈.술 등을 만들어 먹는데, 특히 버터로 만든 차는 하루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주식은 참파인 데 쌀보리의 볶은 가루를 소유차 (소나 양의 젖을 바짝 졸여 만든 기름)나 쌀보리를 빚은 술에 개어 먹는 경단같이 생긴 음식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티벳족은 양도 아니고 소도 아닌 '링니우'란 일종의 쇠고기를 잘게 썰어 쇠꼬챙이에 꿴뒤 모닥불에 구워서 먹기를 좋아한다.
티벳족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번한다. 이들의 식사하는 시간과 내용을 보면, 오전 7시에 참파와 양젖으로 만든 소유차를 먹고, 오전 10시쯤되면 참파와 양고기 구이를 소유차와 곁들여 먹는다. 오후 2시쯤이면 링니우 고기를 잘라 쇠꼬챙이에 꿰어 구운뒤, 만칭뚠러우라는 우리의 곰국 비슷한 탕과 함께 먹는다. 오후 7시쯤이면 참파와 호밀로 만든 죽이나 수제비를 먹고, 밤11시쯤이면 양고기 국물에 만 국수를 먹는다.
-의복-
티벳족은 남녀 머리 모두에 복잡한 장식을 달고 있으며, 남자들은 긴 수염과 여자들은 가닥가닥 땋은 머리가 특징이다. 의복 은 위에 견직물로 짠 긴 소매의 짧은 윗도리를 입고, 그 곁에 펑퍼짐하고 두리뭉실한 긴 두루마기를 걸쳐 입은 후에 허리띠를 맨 다. 여자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앞치마를 두른다. 유목지역에 거주하는 티벳족은 소매가 넓고 품이 풍성한 양가 죽 저고리를 입는다. 티벳 여인들은 모두 우중충한 빛깔의 모자와 치마, 모자란 해가림을 위한 일정한 것이 아니나, 치마란 그들만이 걸치는 둔탁 한 '쭈바'라는 것이다. 이는 두 팔과 목만을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통치마로, 일년 내내 갈아입지 않고 매일 그것을 입다가 옷 을 갈아 입는 정해진 날을 기다려 갈아 입는다고 한다.
-주거-
티벳고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돌이나 벽돌로 벽을 만들고 널직한 진흙 지붕을 얹은 1-2층 가옥에서 거주한다.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보건위생 -
갓난아기 뿐만 아니라, 티벳인은 태어나서 거의 몸을 닦지 않고, 또 대변을 누고 나서도 닦지 않는다. 왜냐하면 춥고 건조한 티벳에서는 물이 귀중하기 때문에 기화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히려 몸을 닦지 않고 때투성이로 있으면, 이 때가 공기 로부터 몸을 차단시키는 작용을 하여 체력 유지에 도움을 준다.
-지형이 삶에 미치는 영향 -
티벳고원은 기후가 혹독하게 춥고 풀의 생장 기간이 극히 짧은데다가 곤충도 적어 새나 짐승 따위도 별로 없다. 다만 이 고원 의 특수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종만이 여기서 살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로는 야크와 티벳 영양이 있다. 야크는 티벳 고원의 가장 전형적인 동물로서, 해발 6000m의 높이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온 몸에 길고 두꺼운 털이 덮여 있어 추위와 눈, 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고원의 혹독한 기후에 능히 적응할 수 있다. 야크는 또한 힘이 세어 이 고원에서 가장 실용적인 운반 수단으 로 쓰여지고 있다.
-운송수단-
티벳은 설산으로부터 녹아내린 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려 마을마다 강이 형성되어 있다. 강이 많기 때문에 강을 건너기 위 한 운송수단이 발달하게 마련이다. 라싸남부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라싸강의 강폭은 최고 1백미터에 이를만큼 큰 강이다. 석양이 비치는 라싸강에 8명쯤 태운 2척의 [주크]가 아슬아슬하게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배의 크기에 비해 사람이 좀 많이 탄듯한 것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물살을 해치며 유유히 건너가는 주크는 티벳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모습이다. 주크는 우리의 나룻배같은 역할을 하는 티벳의 전통 가죽배, 야크나 양가죽을 꿰매 만든 것으로 가볍기 때문에 등에 짊어진 채로 옮길 수도 있다. 야크 가죽으로 만든 주크는 길이 3m, 폭 1m50㎝의 비교적 큰 배와 , 길이 2m, 폭 1m 크기의 작은배 두 종 류가 있다. 큰 배는 대개 야크 가죽 8장, 작은 배는 5장을 이어 만든다. 양가죽 주크는 내장을 빼낸 통 양가죽에 바람을 넣어 부 풀게 한 뒤 가죽을 연결, 그 위에 뗏목처럼 나무를 얹은 것이다. 대개 양가죽 16장을 이은 길이 2m30㎝, 폭 1m50㎝ 크기의 배가 일반적이다. 이들 주크는 3백㎏이 넘는 야크도 거뜬히 실어나를만큼 수송력이 뛰어나다. 강을 건너는 간이 배이기 때문에 배를 나아가게하는 노는 한쪽 방향에만 매단 경우가 일반적이다. 야크 가죽을 꿰매 만든 주크는 바닥이 촘촘하지 않아 물이 바닥으로 스며든다. 따라서 운행중 물을 퍼내면서 도강하기 때문에 처음 타보는 사람은 불안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티벳에서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라싸강과 르카쩌지구에서 산난지구로 흐르는 얄룽창포강에서 주크를 흔히 볼 수 있다. 티벳에서 주크가 운송수단으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리를 놓더라도 여름 우기가 되면 다리가 쉽게 유실되는 것은 물론 도로도 두절 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크는 손쉽게 만들 수 있어 티벳서민들의 발이 되고 있다.
4. 사회 구조
-가족제도 -
티벳에서는 일부 다처제나 일처 다부제가 보통으로 행해지고 있다. 다만 다처일 경우의 여자들은 자매간이고, 다부일 경우의 남자들은 형제일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집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딸만 있을때, 그 집에 들어간 양자는 장녀뿐만 아니라 나머지 딸들과도 혼인을 하였다. 또 야크나 양을 쫓는 유목민이 가족의 단결을 위해 일처를 공유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풍속은 엄한 환경속에서 일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티벳에는 씨족사회의 모계 풍습이 아직도 나아있다. 티벳인들의 일처다부제는 흔히 티벳을 찾는 이방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유 풍습 중의 하나다. 티벳 창탕고원 니마현에서 만난 디기(18)라는 처녀는 "언니의 남편이 세명이며 집안의 재산 상속과 가계도 언니가 이어간다"고 수줍어 하면서 귀띔해 주었다. 일처다부제는 오직 유목민들만의 풍습이 아니다. 티벳 수도 라싸의 한 여행사 사무실에 여직원은 남편을 두명 두고 있었다. 티벳의 일처다부제의 생활방식은 여성우위의 사회풍습을 통해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 티벳에서는 야크를 끄는 힘든 일을 제외 하고는 김매는 밭일, 초원에서 양떼를 몰거나 양젖을 짜는 일 등이 모두 여자들 몫이다. 요리나 빨래, 바느질 등 가사는 남녀가 같이 하지만 가정의 중요 결정권은 여자쪽에 있다. 일처다부제 가정은 전체 가구수의 25%를 차지하고 5% 일부다체제의 가족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처다부제에서 남편은 형제간이 가장 일반적이고 친구간 또는 심지어 부자간에 남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자간에 부인을 공유하는 경우는 아버지가 홀아비가 됐을 때에 한한다. 반면에 일처다부제에 비해 보기 드문 일부다처제는 자매 또는 어머니와 딸이 남편을 공유하는 경우다. 어머니와 딸이 한 남편을 섬기는 일부다처제는 어머니가 과부가 된 뒤 가족을 부양할 남자가 필요한 경우에만 이뤄진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먼저 새 남편을 맞이한 뒤 딸이 성장하면 계부와 결혼시켜 남편을 공유하는 것이다. 티벳의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는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어려운 척박한 땅인 고지에서 유목민들이 생존의 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뤄낸 독특한 풍습이다. 따라서 티벳인의 이름은 혈연에 바탕을 둔 성개념은 전혀 없고 오직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이름 마저도 단순해 구별이 어려울 때는 이름앞에다 늙고 젊음, 출생지, 생김새의 특징 등을 곁들여 이름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회적 관습-
티벳족들이 전통적으로 신봉해 온 티벳 불교(라마교)는 티벳족의 문화, 역사, 풍습 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결혼 : 티벳족은 결혼에 있어 전통적으로 양가의 문벌,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을 매우 중요시해 왔지만 점차 현대화 의 영향을 받아 지금은 많이 변화되었다. 근친간의 통혼에 있어서는 각지역마다 다른 관례들이 존재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모계 친척간의 결혼만을 허락하는 반면, 어떤 지역에서는 비교적 먼 관계의 부계 혈족간의 결혼만을 허용한다.
-장례 : 티벳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사별의 슬픔을 극락왕생의 희망으로 대신한다. 티벳에 서는 장례식 방법중의 하나에 조장(鳥葬)이 있다. 그들은 우선 사람이 죽으면 직업적인 장례사가 와서 시체를 흰 헝겊에 싸서 한 곳에 안치해 두고 기도승으로 하여금 기도문을 외우게 한다. 이 기도는 사자의 영혼을 체외로 불러내 극락정토로 보내기 위함이 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서도 머리에 온기가 남아 있으면 극락에, 그리고 발끝에 온기가 남아 있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시신은 곧 '라꾸바'라고 불리는 시신 처리자에 의해 수습되면, 날을 받아 이른 새벽 교외에 있는 장지로 옮겨진다. 거기에는 시신을 해부할 넓은 반석이 상비되어 있고, 시신이 올려지면 '라꾸바'에 의해 머리와 몸체, 그리고 수족부터 토막토막 으로 잘리워진다. 또 뼈에서 떼낸 고기들은 사방으로 하늘을 향해 흩뿌려진다. 그리고 '라꾸바'는 인간 대퇴골로 만든 피리를 불 어 주변의 산새들을 모은다. 이때 공중에는 이를 기다려 나타난 새들이 닌무하고 주위에는 들개들이 무리지어 나타난다. 마지막 으로 남은 뼈들은 다시 추스려져서 피와 함께 빻아서 새알처럼 뭉쳐 던져주면 그로써 새와 개들에 의한 인육향연은 끝이 난다고 한다. 티벳어에서는 이를 '쟈돌' 이라 하는데, 일종의 조장형식으로 일반에서 행해지는 장법이다. 그리고 이는 새들에 의해 죽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천장(天葬)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모든 물질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에서 나서 다시 그곳으로 돌 아가는 것으로 여겨, 영혼은 시체에서 떠나면 시체는 하나의 빈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티벳에서는 조장외에도 하천이 있는 지방에서는 하천에 띄워 물고기의 밥이 되게 하는 수장(水葬)법도 있다. 흙에 묻 는 토장은 그 시체가 땅속에 오래 남는다는 이유로 거의 행하지 않으며, 다만 나라의 중죄인이거나 전염병 환자에 한해 토장이 가능하다. 화장도 있긴 하나 이는 고급 라마승에 한할 뿐, 일반에서는 화장이 금지되어 있다. 그 이유는 산에 나무가 없는 것도 이유이지만, 그 연기가 하늘을 더럽혀 비와 눈이 내리면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 자 는 반드시 이 세상 무엇으로든 다시 태어 나고 다른 것으로 환생된다고 믿고 있으며, 그것도 내세에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소원하고 있다.
-교육-
서장 자치구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과거 매우 낙후되었으며, 지금도 역시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공식적인 학교 교 육이 아니라 각 지역에 분포된 라마교 사원에서 교육을 받는데,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은 모두 불경의 전파와 보급 등을 주내용으로 삼고 있다. 현재 사원 교육을 받는 이들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매우 적다. 1951년 중공 정부는 티벳의 교육 발전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였다. 1990년 전국 인구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89년 현재 서장에 총 68개의 중학교와 2,983개의 소학교, 그리고 4개의 대학교가 세워져 있다. 문맹률 역시 43%로 감소되었다.
-예술-
티벳족들은 종교적 회화, 철가면 그리고 목각 판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회화 방식은 채색과 안면의 묘사에 있어서 다른 여타의 것과 구분된다. 그들의 오래된 문화는 종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승려들은 신의 행동과 태도를 재현하는 독특한 춤 을 춘다. 전설, 역사적 사건, 고전적인 독창, 그리고 음악에 관한 논쟁이 오페라나 경가극의 형태로 비교적 자유롭게 그러나 매우 정성스럽게 상연된다. 티벳의 민요와 지방 민속 춤은 활기찬 색조와 기쁨, 단순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5. 종교
티벳 불교의 유래는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7세기 초 손첸 감포왕은 당나라 태종의 딸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또 네팔의 왕녀와도 결혼하였다. 이때 불교가 당과 네팔에 의해 전파되었으니 지금과 같은 티벳 불교 양식은 아니었다. 티벳 불교는 본교라는 그들 독자 종교의 무속적인 특색과 당나라 이래로 전래된 중국식 불교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나라 때 이루어진 몽고식 불교를 통합해 발전되었다.
티벳 불교의 특징으로는 첫째, 적극적으로 종교적인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이 티벳을 점령할 때까 지 티벳 사람들의 25%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둘째, 티벳 불교에서는 현세의 달라이 라마를 살아 있는 활불 로 생각하고 국왕이자 관음의 화신으로 믿고 있어서,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그의 영혼은 다시 살아나 49일이 경과하면 다른 몸에 수태되어 다시 어린 아이로 이 세상에 환생한다고 믿고 있다. 그 아이가 자라 5세쯤 되면 자연히 그 용모와 행실이 그 이전의 달라이 라마를 닮게 되고, 자연히 나라의 예언자나 섭정들의 눈에 띄게 됨으로써 그가 곧 다음 달라이 라마로 선정된다고 믿고 있다. 세째,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세속적 통치권을 함께 지니는 전통이 형성되어 왔다. 넷째, 각자 가족과 배우자를 거느리는 온화한 측면과 사나운 측면을 지니는 신격들이 많이 있어서, 전문적인 종교인들은 그 신격들을 심리적 과정의 표상으로 간주하지만 일반 신자들은 실재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티벳 불교의 주요 종파인 황모파(黃帽派)는 달라이 라마와 핀첸 라마에 의해 영도되었는데, 17세기부터 1959년 중화인민공화 국의 침략으로 달라이 라마의 신성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티벳에서 정치적 지배권을 형성해 왔다.
지금은 비록 중국의 폭력적인 지배에 신음하고 있지만 티베트 민중을 구원하기 위한 붓다들의 환생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달라아라마, 카르마파, 판첸라마. 3명의 환생 붓다들은 오늘날 티베트 민중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성자들이다. 달라이라마 - 망명정부 세우고 독립운동 주도, 세계적 종교지도자(왼쪽사진)
티베트인에게 달라이라마는 환생한 관세음보살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다. 그는 현재 티베트의 종교적·정치적 지도자로 본명은 텐진 가쵸.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던 해 16세 나이로 14대 달라이라마에 즉위하였으며, 1959년 중국의 암살위협을 피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탈출해 40여 년간 인도 달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우고 티베트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대 중국 투쟁은 불교에 바탕을 둔 비폭력과 자비 사상으로 끊임없는 기도와 명상, 그리고 대화로 중국을 설득하고 있다. 그는 티베트 독립을 위한 무장 게릴사 캄바의 대 중국 폭력투쟁을 끈기있는 대화로 종식시키고, 이를 해산했으며 대신 세계 각국에 티베트 승려들을 보내 티베트 문화와 불교를 전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89년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달라이라마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으며, 달라이라마의 인격에 교화된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카르마파 - 지난해 중국탈출, 달라이라마 이을 차세대 지도자(오른쪽사진) 2000년 1월 5일 세계는 눈 덮인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달람살라로 탈출한 15세 소년 우기엔 트린리 도르제의 모습을 통해 티베트의 또 다른 정신적 지도자 카르마파의 존재에 대해 접하게 됐다. 카르마 카규파의 수장인 그의 탈출은 곧 중국과 인도의 심각한 외교분쟁으로 비화됐는데, 이는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달라이라마의 뒤를 이어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 차기 주자라는 무게 때문이다. 그는 한때 규또 사원에서 조용히 은신하고 있다가, 올해 인도정부의 난민지위 부여를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인도에 있는 티베트 불교사원을 참배하고, 또 지진피해를 입은 지역민을 위해 법회를 진행 한 것들이 그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국을 탈출한 점 등 달라이라마와 비슷한 인생여정을 밟고 있는 카르마파가 과연 달라이라마에 버금가는 종교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판첸라마 - 티베트가 인정한 아미타불의 화신, 현재 중국에 억류(밑의사진)
달라이라마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면 판첸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티베트 사람들에게 숭배되고 있다. 그러나 판첸라마는 지금 티베트인들도 생사를 알 수가 없다. 1995년 겐둔 최끼 니마라는 6살의 소년을 달라이라마가 판첸라마의 화신으로 인정한 순간 중국은 또 다른 정신적 지도자의 탄생을 우려해 이 소년을 납치해 갔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정치범이기도 한 판첸라마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 중국은 판첸라마 납치 이후 또 다른 판첸라마를 발견했다며 대대적인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소년의 부모는 모두 공산당원으로 밝혀져 중국인들의 만행이 외부에 알려지기도 했다. 2001년 4월 25일은 납치된 판첸라마의 13번째 생일이다.
6. 기독교 상황
티벳족은 오랫동안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17세기에 이르러 북인도에서 활동하던 예수회의 신부 안드라데 신부 등 여러 신부들이 티벳에 들어갔으나 라마승의 간섭 등으로 이렇다할 열매를 맺지 못했다. 1877년 중국 내지 선교회소속의 제임스 카메론 이 티벳에 도착했으나 대부분이 불교도인 현지인들로부터 대적을 받았으며 고립적인 상황과 불리한 지형 조건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다. 많은 씨앗이 뿌려졌으나 신비주의와 광신주의가 가득한 이 땅에서의 결실은 거의 거두지 못했다. 최근 들어 세개의 선교 단체가 이 종족에게 접촉하고 있다. 현재 그들 인구의 0.3%미만이 신자이다. 1948년 성경이 티벳어로 번역되었다. 거의 모든 성경책이 중국 당국에 의해 훼손되었으므로 저들이 성경을 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재 티벳대학과 티벳사회과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선교하는 서구 선교사들도 몇 있다. 선교하기에는 너무 척박한 땅이지만 한 영혼이라도 주께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일한다고 한다. 또한 극동방송이 1990년부터 매일 15분간 티벳어 전도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또한 일부 사역자들은 인도와 네팔에 흩어져 있는 티벳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티벳선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라싸에 한국인이 사역하여 세운 지하교회가 있다고 들었지만 분명치는 않고, 칭하이와 인근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몇 명의 서양 선교사들이 있다. 티벳인들을 위해 사역할 사역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티벳의 영적 중심지인 라싸로 들어가는 관문도시로는 쓰촨성의 청두(成都)와 칭하이성의 꺼얼무, 네팔의 카트만두 세 곳이 있다.
7. 선교를 위한 접근 방법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와중에서 효과적으로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를 도와줌으로서 친구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 컴퓨터 교육, 사회개발 사업, 의료사업 지원 등이다.
-교통편-
비행기: 현재(1993) 연결되고 있는 항공편은 성도와 네팔의 카투만두밖에 없다. 그중 성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라싸를 찾는 것 이 가장 무난하다. 요금은 항공 이용료, 보험금까지 190u$$. 일주일에 두편씩 있다. 네팔의 카투만두 해운은 조금 더 비싼 편이 나 결항이 심한 편이다.
표구하기: 공항편 버스를 타는 곳과 구입하는 곳이 다르다. 표는 중국 남서항공에서 취급하며 사흘 전부터 예약한다.
8. 기도제목
- 모든 티벳인 교회들이 성장하여 복음으로 훈련된 현지인들이 어디에든 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 그리고 30여개의 티벳 방언 들이 있는데 이 언어들로 된 성경이 번역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들 언어로 성경이 속히 번역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현재 라싸 방언으로 된 성경은 재발간을 기다리고 있으며 복음성가는 4개의 방언으로 번역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문명수준이 낮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필요한 종족이고 할 수만 있다면 통일된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복음을 전하는데는 매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헛된 종교에 매여 속아 살아가는 티벳족의 굴레를 벗겨 주시고 영적 자유를 주소서
- 암도(청해성)지역부터 고속도로를 놓고 있는데 이 대로로 말미암아 복음화가 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 대학에 다니는 불타는 사랑을 가진 많은 일꾼들이 일어나서 이 땅에 많은 사역자들이 들러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