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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월화드라마 맨발의 청춘 제9회
방송일 1988년 3월 2일 월요일.
씬 1 허름한 빌딩 앞
천둥을 동반한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지는데, 길 건너편으로 허름한 빌딩 하나 보인다.
거기, 3층 쯤에 불 켜진 방 하나가 보인다.
씬 2 장명석의 거실(밤)
빗소리와 천둥소리 들려오는데, 불 꺼진 거실에 묵묵히 앉아 있는 장명석.그 뒤엔 재식이 어둠 속에 묵묵히 서 있다.
잠시후, 비를 맞은 방개가 후닥닥 뛰어 들어온다.
방개 (비를 탁탁 털며) 에휴, 때도 아닌데 웬 비야,이거!
하고 들어가다가- 문득 장명석과 재식을 발견하고
방개 어? 아니, 왜 그러고들 계십니까?
장명석 (못 들은 듯 그대로)...
재식 (고개 돌려 방개에게 눈짓 보낸다)...
방개 (없어지라는 뜻인 줄 얼른 파악하고) 아고...예에...죄송합니다.
절을 하고 얼른 발소리 줄여가며 안쪽으로 사라진다.여전히 그대로 무겁게 침묵 지키고 있는 두 사람...
씬 3 허름한 빌딩 앞(밤)
비가 쏟아지는데, 낡은 자동차 한대 다가와 멈춰선다.거기서 가죽가방 하나 들고 뛰어내려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50대의 사내 하나. 길 건너편의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 한대가 보인다.그리로 다가가 보면,
차 안에서 그 건물 쪽을 은밀히 살피고 있는 재식 휘하의 젊은 건달 두어 명.경직된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게 아니라,
의자 눕혀놓고 껌씹으며 밖을 쓱 내다 보거나 담배 물고 차창 너머로 살피며 무전기로 뭔가 중얼거리고 있다.
씬 4 동 건물 복도(밤)
귀에 무전기 이어폰 꼽고 껌 씹으며 벽에 기대 건들거리고 있는 건달 하나.
발소리가 들리자 얼른 이어폰 빼서 안주머니에 넣고 계단 쪽으로 걸어간다.계단으로 올라오는 50대의 비만한 사내.
어둑한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온다.그 옆을 쓰윽 스치면서 슬쩍 한번 부딪쳐 보는 건달.
사내가 쳐다보면 가볍게 목례해 보이고 지나간다.사내, 별 생각없이 지나쳐서 어느 방문 앞에 이르른다.
그 방문 앞에 걸린 작은 팻말- "기성재 법률사무소"
씬 5 기성재 사무실(밤)
기성재와 유검사, 승준 그리고 무술 유단자로 보이는 30대의 단단한 사내가 둘러앉아 각기 서류들을 보고 있다.
여기에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그 50대의 사내 <성주사>
성주사 어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기성재 아, 어서 와요. 이렇게 밤 늦게 오시라고 해서 미안해요. 자, 내가 간단하게 소개하지. (성주사)여기 이 분은 국세청 조사부에 계신 성유봉 선생. 탈세와 음성자금 추적엔 국내 제1인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야. 그리고 여긴 나하고 예전에 같이 일 했던...
하고 계속 나머지 사람들 소개해 가는데, 여기에 선행되는(E)전화벨소리
씬 6 장명석의 거실(밤)
수화기 드는 재식
재식 (들고 가만히 있다가)...음...음...모두 몇 명야?....음, 알았어. (수화기 내려놓고)모두 4명이랍니다. 연수원 시보로 있다는 자기 아들하고, 저희를 조사했던 유인호 검사, 검찰 수사관으로 있는 박중만이...
장명석 나머지 하나는?
재식 그건 모르겠답니다. 안경 쓰고 살이 많이 찐 50대 남자라고 합니다.
장명석 누군지 알아 봐.
씬 7 기성재의 사무실(밤)
승준이 사과 박스 하나를 들고 와서 탁자 위에 내려 놓는다.그걸 열면...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각종 파일들.
기성재 이건 군검찰관이셨던 내 선친 때부터 수집한 신세기파의 자료들예요. 무려 40년의 세월이 여기에 들어 있어.
그 파일들을 꺼내 보며 그 방대한 양에 호오!하고 감탄들을 한다.
기성재 하지만 그건 결국...40년의 싸움에서도 일개 폭력조직 하나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 했다는...그런 부끄러운 결과를 말해주는 거기도 하지.
유검사 제압할 의지가 부족 했었던게 아니라, 그 쪽의 생존술이 조금 더 뛰어 났다고 해야 될 겁니다.
기성재 결국 이제 신세기파는 단순한 폭력조직의 차원을 넘어서, 일본의 야꾸자나 미국의 마피아처럼 대물림을 하는 거의 기업화된 폭력 단체로 까지 이행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어요.
승준 여기서 차단하지 못 하면 결국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공권력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기업이 되는 겁니다.
기성재 이런 폭력의 대물림 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됩니다. 난 비록 현직에선 은퇴를 했지만...이 싸움을 절대 멈추진 않을거요.
씬 8 장명석의 거실(밤)
그대로 무겁게 앉아 있다.
재식 어떻게 하시렵니까?
장명석 아무래도...아무래도 기성재를 그냥 둘 순 없어.
재식 ...
장명석 (강한 결심)...
재식 ...
장명석 ...
씬 9 기성재의 사무실(밤)
기성재 어차피 이건 긴 싸움이요. 몇 년이 걸릴 지도 몰라. 조급한 마음에서 성급히 승부를 거는 실수는...이제 두번 다시 해서는 안돼.
성주사 제가 해야 될 일은 뭡니까?
기성재 폭력조직은 결국 음성자금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요. 그 흐름을 파악해 달라는 겁니다.
성주사 그야말로 그건 몇 년이 걸리는 싸움이 될 겁니다. 불법 지하자금이 자기네들 생명줄이라는 걸 아는 이상, 그만한 대비는 하고 있을 테니까요.
씬 10 장명석 거실(밤)
장명석 (밖을 보며) 비가 많이 오는구나..이제 됐다, 걔네들 철수 시키고 너도 그만 들어가서 자라.
재식 (부축을 한다)...
씬 11 장명석 침실(밤)
재식, 장명석을 부축해 들어와서 스탠드 켜고 침대에 눕혀준다.
장명석 (끄응 누우며) 아무래도 내 기력이 예전같지 않아...이제 나도 뒷일을 생각할 때가 된 거 같애.
재식 (보면)...
장명석 그...경찰대학이란 데가 어디에 있다구? 내일 요석이 놈을 만나 보자.
재식 회장님...뜻이 없는 사람한테 단을 맡길 순 없습니다.
장명석 어쨌든...상엽이 놈은 안돼...업소나 몇개 맡겨서 제 앞가림이나 하라면 모를까....
재식 (무겁다)...
씬 12 호텔방(밤)
스탠드 하나 정도만 켜져 있을 뿐인데, 단추 푼 헐렁한 셔츠 하나를 걸치고 창가에 서 있는 상엽.
흐트러진 머리칼, 고뇌와 절망으로 흔들리는 모습이다.비 내리는 창밖으론 원색의 네온사인 불빛이 명멸하며 상엽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때 노크 소리
상엽 (그대로 서서)..
다시 노크 소리 들린다.
상엽 열려 있어!
문 열고 들어서는건...바로 서형도다.침대 위에 등을 보인채 엎드려 자고 있는 여자를 쓰윽 내려다 본 후 상엽의 옆에 와서 선다.
서형도 ...
상엽 ....
서형도 언젠가 출판사를 하나 인수하고 싶다고 했었지? 생각해 보니까, 그거 아주 절표한 아이디어더구만. 불법자금을 양성화 시키는 데는 그거 만한게 없어. (서류 몇장 꺼내주며)여기...그 출판사를 어떻게 써먹을 건지..계획을 정리해 봤어.
상엽 (서류 받아서 본다)....
서형도 (창틀에 두 손 짚고 밖을 보며) 사실은 나도 자네같은 친구가 좋아. 어떻게 보면, 자네야 말로 이 시대에 몇 명 안 남은 진짜 사내야. 감정을 정리할 줄 모르는 게 문제지만.
상엽 (그래? 하는 느낌으로 피식)...
서형도 (가만히 보며) 역시 단은 자네가 이끌어야 돼.
상엽 (이 사기꾼 하는 느낌으로 보며)...흐흥, 고맙군.
서형도 (창밖 보며) 천만에..., 생각해 보니까, 거, 킹메이커라는 거,...그거 상당히 매력적인 거두만.
그렇게 창밖 보고 있는 서형도와 그런 서형도를 반쯤 경멸 섞은 눈으로 보는 상엽의 모습 위에 네온사인은 계속 어른거리고...
F.O
씬 13 경찰대학 전경
씬 14 박교수의 방
박교수, 컴퓨터로 논문 작성하고 있는데...,노크 소리 들린다.
박교수 네에.
들어서는 요석.
요석 (인사하고) 부르셨습니까?
박교수 음, 여기 좀 앉지.
요석, 앉으면...
박교수 음, 지난 번에 리포트 제출한 거 상당히 좋더구먼. “스톡홈름 신드롬”을 집단 무의식의 관점으로 해석한 발상이 아주 신선했어. 다음달 학보에 한 번 실어볼까 하는데... 요석 ...감사합니다. (하고는 가만히 보며) 근데...,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 아니시죠?
박교수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요석 그 말씀은 어제 이미 하셨습니다.
박교수 그랬던가...? (가만히 끄덕이며)...그래. (호흡 한번 크게 주고 어렵게 말 꺼낸다) 실은 이번 내 시간에...자네가 안 들어 왔으면 해서...
요석 ...
박교수 강의 주제가...‘조직 폭력의 사회학적 분석’야. 아마...자네 아버님에 대한 언급도 약간 있을 걸세.
요석 (씁쓸하게 창밖으로 시선 옮기고)...
박교수 의무실에 연락해 뒀어.결강 사유서를 떼 줄 꺼야. 주말이니까 오전 시간만 결강하면 돼.
요석 교수님...
박교수 (OL) 난 자네를 믿어.자네 의지에 전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고,...하지만 거북한 건 거북한 거야. 그런 거까지 감수 할 필요는 없어...서로 적당히 피해 갈 수 있는 건 피해가는 게 좋아...알겠나?
씬 15 경찰대학 구내도로
오와 열을 맞춰 학과 출장을 나가는 학생들.
씬 16 경찰대학 강의실
강의를 받고 있는 학생들.
씬 17 기숙사
텅 빈 방에 혼자 창가에 서 있는 요석...수치심과 고뇌로 표정 무겁게 시선 던져놓고 있다.그때 문이 열린다.
학생장 (E) 한요석.
요석 (돌아보면)...
학생장 정문에 나가 봐. 면회다. 아직 일과 중이지만,지도교관님의 특별허락이 계셨다.
씬 18 경찰대학 정문
나오는 요석...둘러보면, 저만치에 세워져 있는 장명석의 차 3대.요석을 보고 천천히 나와 서는 방개.굳는 요석...
씬 19 한적한 도로나 숲길
요석과 장명석,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3미터쯤 뒤에 방개, 털복이와 호위 건달 대여섯이 따라오고...
그 뒤에 다시 5미터 쯤 떨어져서 차 3대가 천천히 따라온다.
장명석 교복이 멋있구나. 이 애비도 어릴 땐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 그래서 아직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한참을 쳐다 보곤 한다.
요석 (가만히 돌아다 보고)...
장명석 학교 생활은 어떠냐? (먼 데 보며) 깡패의 자식이라고 놀리거나...차별을 하지는 않더냐?
요석 그렇다 하더라도...그건 제가 감수해야 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명석 힘들긴...힘든 모양이로구나.
씬 20 만두집 외경
길가에 있는 형편없이 허름한 만두집이다.
문 앞에 장명석의 차 세워져 있고, 방개와 털복이를 비롯한 호위 건달들 대여섯 명이 나와 서 있다.
장명석 (E) 5.16이 터진 게 이 애비가 중학교엘 들어가던 해였는데...
씬 21 만두집
만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요석과 장명석.
장명석 ...하루는 학교를 갔다 오는데 종로 거리에서 굉장한 구경거리가 났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친구들하고 같이 달려 갔는데, 허허...그게 바로 깡패들이 속죄 행진이라는 걸 하는 거였어.
요석 ...
장명석 (무겁게 물 한 모금 마시고) 거기...제일 앞에 네 할아버님이 계시드라...목에는 “나는 깡패”라고 적힌 팻말을 하나 걸구 말이지.
요석 ...
장명석 (한숨처럼 깊게) 그래..., 이제 이 애비도 깡패다. 대학 교수나 의사 같은 거라면 더 좋았겠지만.. (고개 저으며) 그렇질 않아. (가만히 올려다 보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부끄럽지는 않다 한 번도 내가 먼저 남을 해쳐 본 적은 없어. 아무리 돈이 되는 일이라도 마약이나 매춘 같은 거엔 손 대 본적이 없다. 아래 애들도 그런데 손을 대면 그냥 두질 않았어.
요석 그건...압니다.
장명석 그래, 그렇게 살아왔다.박수 받을 일은 아닐 지 몰라도, 적어도 경멸 당할 일까지는 아니야.
요석 ...
씬 22 강변이나 언덕
넓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먼 곳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장명석과 요석.
장명석 이젠 나도 많이 지쳤다.너희들이 날 도와줘야 돼. 어쨌든 40년 세월을 바쳐 이룩해놓은 걸...이대로 덮을 순 없잖냐?
요석 ...
장명석 마지막으로 네게 부탁을 한다...집으로 들어 와.
요석 ...
장명석 ...
요석 죄송합니다. 장명석 이 애비가 이렇게 부탁을 하는 데두?
요석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아버지와 전 갈 길이 다릅니다.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겁니다.
장명석 다시 부탁한다. 이 애비를 도와줘.
요석 ...죄송합니다.
장명석 (허탈과 분노로 나직) 이 놈...
요석 ...
장명석 ...
요석 가끔 찾아 뵙긴 하겠습니다.하지만, 경찰대학을 다니는 아들로써 일 뿐입니다...가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 후 돌아서서 간다.장명석, 가는 요석의 뒷모습을 입술 떨리며 바라본다.멀어져 가는 요석...
씬 23 경찰대학 강의실
박교수, 강의하고 있다.
박교수 ‘머튼’은 범죄를 인간 개인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사회 체제의 일탈 현상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는데, 이른바 조직범죄가 그 좋은 예가 될 꺼야.예를 들면...
하는데, 문이 가만히열리며 들어서는 요석...박교수, 잠시 강의를 멈춘다.
들어서는 요석을 가만히 돌아보는 지훈...요석, 구석자리에 가서 앉는다.
박교수 (보다가...강의 계속한다) ...예를 들어, ‘두크하임’의 아노미 이론으로 해석할 때 조직범죄는 목적의 달성과 분배 과정에서 사회 전반에 윤리의 부재와 인간성의 황폐화를 가져오게 되는 거야. 우리가 조직 범죄를, 조화로운 사회의 가장 큰 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강의를 경청하는 요석을 뜻밖이라는 시선으로 가만히 돌아보는 지훈...
씬 24 경찰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요석.옆에 와서 책을 찾는 지훈.
지훈 (와서 책 찾으며) 난 솔직히 널 이해하기 힘들다.
요석 당연하거 아니니? 넌 내가 아니니까.
지훈 앞으로도 아까 같은 경우는 수도 없이 계속 될 꺼야. 그때마다 우린 서로 불편해 해야 돼.
요석, 책을 골라 들고 책상으로 간다.지훈도 책을 골라들고 요석의 옆에 와서 앉는다.
지훈 어차피 넌 그쪽으로 갈 사람야.
요석 그렇지 않아.
지훈 동네 깡패도 아니고, 솔직히 그건 너희 가업야.그걸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요석 아니라고 했지?
지훈 그건 네 생각이지, 결과는 외지하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하는데, 그대로 지훈의 턱을 갈겨 버리는 요석!지훈, 나가 떨어진다.도서관에 있던 사람들, 놀라서 다 쳐다보는데
요석 (목소리 떨리고) 잘 들어! 내가 깡패가 되는 일은 없어! (절규하듯) 알겠어?
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린다.잠시후, 다가오는 학생장.
학생장 무슨 일야?
지훈 (턱을 만지고 천천히 일어서며)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학생장 이 놈 자식들이 감히 교내에서 폭력까지 행사해?
지훈 학생장님.
학생장 뭐야?
지훈 전...맞은 적 없습니다. 떠밀려서 넘어지긴 했습니다...그거 뿐입니다.
학생장 뭐야?
지훈 부탁합니다. 그렇게 처리해 주십쇼.
씬 25 학보사
마감을 앞두고 있어서 정신들이 없다.
혜준도 자료 잔뜩 쌓아 놓고 검퓨터로 정신없이 기사 작성하고 있고, 인서도 바로 옆자리에서 슬라이드 필름을 찾느라 바쁘다.
편집장 야, 데드라인 15초 전! 빨랑빨랑 정리해서 넘겨! 만약 빵구내는 인간들이 있으면 내 그냥,취재비 딸라이자 붙여서 반납시킬 테니까 각오들 해! 응?
기자1 야, 사진부, 축제 사잔이 뭐 이래? 딴거 없어?왜 이렇게 우중충해? 못 봐주겠다!
편집장 기혜준! 너 지난 번에도 패션 기사 빠구 맞았어!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알어서 해!
혜준 (계속 쳐대며) 아유, 걱정마세요! 비화를 특종으로 터트릴 테니까!
편집장 허이고? 말은...차암!
그때 혜준의 핸드폰 울려댄다. 그러나 기사 작성하느라 받을 생각을 못 한다.
인서 (핸드폰 내려다 보고 혜준 보며)...뭐해? 안받어?
혜준 아휴, 바뻐 죽겠는데 또 뭐야?
하며 컴퓨터 계속 쳐대면서 핸드폰을 어깨와 턱 사이에 끼워 넣고 받는다.
혜준 네에!...네? 어디요?
요석 (E) (필터) 나예요 요석이.
혜준 (화들짝 손 멈추고 핸드폰 제대로 받으며) 아!요석씨?
그 소리에 슬라이드 찾던 손 멈추고 혜준 보는 인서.
요석 (E) (필터) 바쁜 모양이네요?
혜준 네에, 지금 마감이 코앞이거든요. 어휴, 전쟁예요, 전쟁! 지금 어디예요? 학교 안이죠?
요석 (E) (필터)...아뇨. 학교에 있지 않아요.
혜준 (거기서 뭔가 다른 느낌 받고) 그럼...밖에 나와 있어요? (하다가 흠칫) 잠깐만요! 목소리가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죠? 그쵸? 무슨일예요?
요석 (E) (필터)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혜준씨 목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서...이제 됐어요. 끊을께요.
혜준 잠깐만요! 잠깐만요!
(E)전화 끊어졌을 때의 음향, 뚜뚜뚜뚜뚜--혜준, 수확 든 채 뭔가 생각에 잠긴다.그러다가 돌연 가방 집어들고 뛰어 나간다.
편집장 어? 야! 기혜준! 너 임마, 기사 작성하다 말구 어디 가! 야!
그러나 아랑곳 않고 문 박차고 달려 나가 버린다. 그 뒷모습, 묵묵히 바라보는 인서.
씬 26 대학교 정문 앞
택시를 잡느라고 애쓰는 혜준.
터미널!! 터미널!! 하고 소리치지만 합승 택시들은 다 그냥 지나갈뿐이다.
혜준, 가쁜 호흡으로 흘러내린 머리칼 쓸어올리며 다급한데...낡은 소형차 한 대가 다가와서 멈춰선다.
혜준 ...?
거기서 내려서는 인서.
혜준 어?
인서 우리 과 선배 차야. 내가 술 사주기로 하고 강제로 빌려왔어.
혜준 ...인서야.
인서 뭐하니? 얼렁 타. 내일 아침까지만 돌려주면 돼.
하고 혜준을 잡아당겨 운전석에 밀어 넣는다.
혜준 아니, 저 너...!
인서 (문까지 닫아 준후 씨익 밝게 웃고) 올 때 기름은 넣어갖구 와라. 기름 탱크가 비면 그 형 아주 돌아 버리거든...얼렁 가.
하고 차 지붕 탕탕 쳐준다.
혜준 ...고마워.
인서 (씨익 웃고 어서 가라고 손짓)...
차 달려간다.웃고 뒷모습 보던 인서...표정이 비로소 천천히 쓸쓸해 진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 보는 그 눈에 이슬이 담길 듯도 싶다.그렇게 보다가...쓸쓸히 피식 웃고 고개 떨군 채 돌아선다.
씬 27 촛불 카페 (밤)
8부 후반부에서 요석과 혜준이 커피 마셨던 그 카페다.
혼자 앉아 있는 요석...어른거리는 촛불 아래 그렇게 앉아 있다가...눈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댄다.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 감고 있던 요석...어떤 느낌에 가만히 눈 떠보면...급히 뛰어 올라 왔는지 가쁜 호흡으로 문가에 선 채 요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혜준...생의 고뇌와 한없는 증압감을 혼자 감내하고 있는 듯 싶은 요석의 쓸쓸한 모습에 가슴 저리다.
요석 (깊은 반가움)...!!
혜준 ...!!
요석 ...!!
혜준 ...!
그렇게 하염없이 마주 보고 있는 두사람...그러다가 천천히 요석에게로 다가가는 혜준.다가 간 혜준,
요석의 옆에 앉으며 그의 얼굴을 자기 가슴에 가만히 뜰어 안는다.언제까지라도 그러고 있을 듯 미동도 없는 두 사람의 모습...
각 테이블 마다에서 일렁이는 촛불 너머로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가 되면서...
씬 28 경찰대학 정문앞 도로(밤)
저만치에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경찰대학 정문이 저 멀리에 조그맣게 눈에 드는데, 그 쯤에서 멈춰서는 혜준의 차.
씬 29 혜준의 차 안 (밤)
차 안에 앉아 있는 두사람...가만히 정면 보고 있다가...거의 동시에 뭔가 말을 하려고 마주 본다...어색한 웃음 약간...
요석 ...고마워요. 혹시 혜준씨, 요술공주 밍키 아녜요? 꼭 필요할 때 와 줬어요.
혜준 (사랑 담아 깊히 마주 보고)...
요석 ...갈께요.
하고 문 열고 나간다.앞차창 너머로 요석의 뒷모습 보인다.그렇게 바라보던 혜준..., 그러다가 문득 차문 열고 뛰어 나간다.
씬 30 동 차 밖 (밤)
뛰어 나오는 소리에 저만치 가다가 돌아보는 요석.차문 옆에 서서 바라보는 혜준...그러다가, 요석에게로 달려가는 혜준.
뛰어오는 혜준을 받아안고 그대로 입맞춤을 하는 요석.
운전석 차문이 열린 차를 저 뒷편에 세워 놓은 채 어둠 속에서 첫 키스를 나누는 두 연인...
숨 죽이고 조심스런 키스가 아닌 격정으로 넘치는 키스...입술 맡기고 있는 혜준의 눈에 서리는 이슬...
TV 드라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표현을 해주시길...
F.O
씬 31 장명석의 집 외경
씬 32 장명석의 거실
오랜 시간 밖에서 떠 돈 티가 나는 상엽...수염도 꺼뭇꺼뭇하고 왠지 피로한 기색으로 벽에 기대 서서 손톱 만지작 거리고 있다.
재식과 사도가 그 옆에 서 있다. 그때 안방에서 나오는 장명석.상엽, 얼른 자세 바로하며 긴장한다.
장명석, 그런 상엽에게는 일별도 안 준 채 소파로 가서 앉는다.사도, 장명석에게 서류 하나 꺼내서 내민다.
사도 출판사 인수 계약섭니다.
씬 33 나이트 클럽 내실(밤)
천장에 달린 갓등 하나만 켜 있는데, 그 아래 포카 테이블이 놓여 있다.상엽은 담배 피우며 옆에서 팔장 끼고 지켜 보고 있다.
돈을 다 잃었는지 머리칼도 흐트러지고 넥타이도 풀어진 30대 남자 하나가 사도가 내미는 계약서에 떨리는 손으로 지장을 찍고 있다.
사도 (E) 어제 밤에 도장을 받았습니다.
씬 34 장명석의 거실
장명석 (내키지 않아) 왜 자꾸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해?
재식 그렇지 않습니다, 회장님.
하고 성주사의 사진을 꺼내서 보이며
재식 알아보라고 하신 놈입니다.국세청 조사부에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서 기성재가 이젠 우리 자금줄을 뒤지기 시작했다는 얘깁니다.
상엽 우리 단으로 납입되는 돈의 대부분이 그렇고 그런 돈 아닙니까? 그걸 정상적인 돈으로 세탁을 해야죠.
장명석 (조금 관심) 어떻게?
상엽 그러니까 그걸...(하며 생각이 얼른 정리가 안되는지 주머니에서 서형도가 적어 준 메모를 꺼내 뒤지며) 그러니까 우선 뭐냐면...
사도 (그때 얼른)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장명석 음...
사도 이제 우린 한 달에 한 권 이상 신간을 꾸준히 발간할 겁니다. 그리고 신문, 방송에 무제한 광고를 하면서 무조건 베스트셀러 순위에 집어 넣는 겁니다.
장명석 무조건? 그게 어떻게 무조건 돼?
사도 간단합니다. 우리가 풀고 우리가 사는 겁니다.
장명석 허어, 우리가?
상엽 예에! 판매 실적이 있는데 아무리 국세청 조사부라도 어쩔 껍니까? 그렇게 하면 최소한 1년에 백억은 끌어 낼 수 있습니다.
씬 35 기성재의 사무실
기성재, 커피 마시며 승준, 유검사와 함께 앉아 있다.
유검사 (서류를 내밀며) 이거 좀 보십쇼. 최근 들어서 장명석이 쪽에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해 온 사건이 벌써 여섯 건입니다. 알아 보니까, 전부 다 야꾸자들이더군요.
승준 전형적인 환치기 수법의 하납니다. 일본에 있는 부동산을 야꾸자 한테 양도를 하고, 그 대신 국내에 있는 야꾸자의 대리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거죠.
기성재 그리고 당연히 승소를 하고 거액의 위자료를 받아 낸다?
승준 예에! 위자료엔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고스란히 합법적인 자금으로 변해서 수중으로 들어오는 거죠.
(E)전화벨
승준 제가 받겠습니다. (수화기 들고) 네에. (하고는 잠시후 기성재에게) 성선생입니다.
씬 36 장명석의 창고
어둑한데,...창고문이 열리며 방개와 털복이가 성주사를 비롯한 국세청 직원 두어 명과 함께 창고로 들어온다.
방개 야, 야, 불 좀 켜라!
털복이 (스위치 눌러보며) 안 들어오는데요. 어휴, 워낙 오래 돼서...
방개 허허, 아쉬운대로 이걸루다 만족하십시다!
하고 후레쉬 불빛을 비춰가며 구석으로 온다.
방개 이게 한 십여 년 안 쓴 방이올시다. 근데 청소를 하려구 들어와 보니까, 아 구석에 이게 있더구먼요!
하고 거미줄까지 쳐져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 두어개를 끌어 낸다.
먼지를 훅 불어내고 뚜껑을 열면 옛날 만 원권 지폐뭉치가 가득 들어 있다.
방개 우리 단의 제일 위 어른이신 장도수 선생께서 사회사업 같은 데 쓰시려구 모아 놓으신거 같은데..
털복이 장학 사업이라고 들었습니다.
방개 아, 장학 사업이었냐?
하며 슬그머니 성주사의 눈치를 본다.성주사, 그 지폐를 집어서 발행연도 같은 걸 살펴본다.
성주사 (E) 출장 감정을 나가 보니까...
씬 37 다시 기성재의 방
성주사도 합류를 해 있다.
성주사 ...정말 죄 다 발행연도가 10년이 훨씬 넘은 것들이었습니다.
유검사 그럼 그게 어떻게 되는 거죠?
성주사 우리 세무서에선 시효를 제척기간이라고 하는데, 증여세의 제척 기간은 10년입니다.
승준 결국 그 돈도 세금 한 푼 없이 합법화가 되는 거군요.
유검사 우리가 자금줄을 추적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는 얘깁니다.
기성재 허허허..., 어쨌든 솜씨들이 좋구만.
승준 그 사람 솜씹니다.
기성재 (보면) ...
승준 서형도...
씬 38 주혜란의 카페
넥타이를 조금 풀어 놓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서형도.
언더락스 잔에 반 이상 따라서 단숨에 마신 후 또 가득 따르는데 여자 손이 쑥 들어와서 그 술잔을 빼앗는다.
서형도 왜 이래?
나미 이거 마시구, 또 뭘 때려 부술라구?
서형도 흐흐..., 오늘은 (병 들어 보이며) 이거 하나만 할 꺼야.
나미 그래두 안 돼.
병까지 나꿔챈다.
나미 웨이타씨, 이 사람 술 주지 마.
서형도 흐흐, 그러니까 니가 진짜 마누라 같아. (쓱 보며) 원한다면 다시 같이 살아두 돼.
나미 그럼...혼인 신고 해 줄 꺼야?
서형도 (즉시) 아니!
나미 내가 제일 이쁘대며?
서형도 사실야.
나미 근데 왜?
서형도 (혼자말처럼 깊히) 난...이 세상에 내 흔적은 하나두 남기지 않고 갈 꺼야...그저, 이 창문에서 들어와서 저 창문으로 빠져 나간 바람 한 줄기처럼...그렇게 사라질 꺼야...그게 내 인생야...(하고는) 이리 내.
나미 (보다가...별 수 없이 술잔 내민다) ...
씬 39 장명석 침실(밤)
잠자리 수발을 들어 주고 있는 재식.
장명석 니가 올해 나이가 몇이냐?
재식 (약간 쓸쓸한 빙긋)...불혹이 넘었습니다. 회장님을 모신지 20년이니까요.
장명석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너두 이제 독립을 해야 되는데...
재식 회장님 돌아가실 때까진 곁에 있겠습니다.
장명석 (가만히 돌아 누운채)...재식아.
재석 예에, 회장님...
장명석 (깊게)어떠냐...니가 단을 한번 맡아 보지 않겠냐?
재식 ..제가요?
장명석 상엽이놈은 부족하고..요석이놈은 뜻이 없어.결국 너 밖엔 없다.
재식 ...전 아닙니다, 전...회장님 돌아가시고 나면 단을 떠날 겁니다.
장명석 떠나서...?
재식 그리 못나지 않은 여자 하나 구해서 장가도 가고 자식도 한번 키워 볼 겁니다. (이불 잘 여며주며) 단은 상엽이가 잘 끌어 갈 겁니다. 오늘 보셨지 않습니까?
장명석 그게 그 놈 머리가 아니야.
재식 누구 머리면 어떻습니까? 호탕하고 주먹 세고 승부 기질도 있습니다. 그만한 후계도 구하기 힙듭니다...회장님만 믿어 주시면 됩니다.
장명석 (깊은 한숨..) 차라리 장가를 보내볼까...
씬 40 KBS별관 앞 도로(밤)
예주, 일 끝내고 나와 동료들과 손 흔들고 헤어져서 대방역 쪽으로 걸어가는데, 상엽의 차가 미끄러지듯 다가와서 멈춰선다.
상엽이 직접 운전하고 있다.
예주 (쓱 보고 계속 가며) 너 이제 아주 맛 들였니?툭 하면 찾아오는거?
상엽 타.
예주 미쳤니?
상엽, 차 세우고 내려서 예주의 앞을 가로 막아 선다.
상엽 나 혼자 왔어. 늘 끌고 다니던 놈들, 다 떨궈놓고 왔어.
예주 그게 그렇게 큰 일 같아서? 니 나이면, 남들은 당연히 다 혼자서 다녀.
상엽 할 얘기 있어. (깊이 보며) 오늘 꼭 해야돼...제발 널 억지로 태우게 만들지 마.
예주 (깊히 보는 상엽을 가만히 보고)...
씬 41 상엽의 차 안(밤)
경춘가도나 자유로 쯤으로 보이는 한적한 길을 달리고 있다.
예주 어디 가는 거야?
상엽 ....
예주 어디 가는 거냐고 묻잖아?
상엽 (앞만 보면서)너...납치하는 거야?
예주 뭐어? (기가 막혀) 미친 놈...!
하다가...갑자기 문을 열려고 한다.
상엽 이 차는 운전석에서 열지 않으면 안 열려.
예주 (파랗게 쏘아보며) 너, 안 세워? (어깨 때리며)세워! 세워, 자식아! 세우란 말야!
상엽 (그러나 쳐다도 보지 않고 운전만 한다)...
씬 42 별장의 방 (밤)
문 탕 열리며 예주를 밀어 넣는다.그리고 문 닫고 스탠드를 켠다.
예주 (구석으로 몸을 감추며 가쁜 호흡)너...너 만약에 내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너 죽여 버릴꺼야!
상엽 그 정도 각오는 하고 데려 왔어.
예주 (입술 떨리고)...!!
상엽 난 아직 한번도 여자를 강제로 어떻게 해 본 적이 없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꺼야...(정말 진심 담아)널...사랑해.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하는 짓을 용서해 줘. (하고 자기 셔츠 단추를 푼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간다)
예주 (울먹)제발..! 제발 이러지 마! 응? 제발...!
상엽 ...미안하다. (하고 예주의 손목을 움켜쥐며 다른 손으로 확 끌어 안는데)
예주 아악!!! (하고는)비켜!!! 비켜, 이 자식아!!! (하고는 확 떠밀어내며 벌떡 일어선다)
상엽 (그 서슬에 잠깐 멈칫해서 올려다 보고)...!
예주 그래...좋아...내가 벗을 꺼야...내 몸에 손 대지마. 손 대면 정말 너 죽여 버리고 말꺼야. (눈물 고이며) 내가 벗을꺼야, ...넌 손 대지 마.
상엽 (올려다 보고)...!
천천히 상의 단추를 풀기 시작하는 예주...
예주 (눈물 떨어지며) 여기서...너한테 어쩔 수 없이 당하긴 하겠지만...절대루 널 용서하진 않을꺼야..(울며) 넌 정말 나쁜 자식야.
올려다 보고 있는 상엽.예주의 발 아래로 툭 떨어지는 쟈켓과 브라우스.거기서 고개 떨구는 상엽...
계속해서 스커트까지 발밑으로 떨어지는데...고개 떨군 채 천천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 상엽.그대로 멈춰 선 채인 예주..
씬 43 숲길(밤)
달려오는 상엽의 차
씬 44 상엽의 차 안(밤)
흘러내린 머리칼....담배 입에 문 채 초점없이 핸들 잡고 있는 상엽..
씬 45 고수부지(새벽)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휘감고 있는데..한쪽에 주차선을 무시하고 인도에까지 반쯤 걸쳐진 채 상엽의 차가 세워져 있다...
차문도 그대로 열려 있고 헤드라이트도 그냥 켜진 채로이다.강변에 주저 앉아 술병 손에 들고 있는 상엽.
셔츠는 허리띠 밖으로 반쯤 흘러나와 있고 수염도 꺼뭇하게 자라 있어서 많이 외롭고 지쳐 보인다.그런 상엽의 모습 위에서...
씬 46 경찰대학 전경
씬 47 경찰대학 서예실
지훈과 동준, 다른 학생 몇과 함께 붓글씨를 쓰고 있다.여기로 들어오는 경수.
경수 야, 강지훈.
지훈 (돌아보면)...?
경수 지도교관님이 너 많이 찾고 계시드라.
동준 너 사유서 냈니? 그거 때문인거 같은데?
지훈 그때 일은 분명히 내가 잘못 한 거야. 교관님이 물어보시면 니들도 그렇게 대답해.
경수 어쨌든 교내에서 폭력을 행사 한 거라서 절대 그냥은 안 넘어 갈거 같은 분위기던데...
지훈 잘 들어! 난 맞은적 없어. 그저 떠밀려서 넘어진 거 뿐야...알어?
씬 48 기숙사(밤)
지훈과 경수, 취침 준비를 하고 있다.지훈, 수건 들고 세면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요석이 들어온다.
요석 ...고맙다.
지훈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는데...
요석 징계 껀...방금 철회가 됐어.
지훈 난 국립경찰의 간부가 될 사람야...깡패한테 맞았다면 말이 되는 소리니?
하고 지나간다.요석, 그대로 있다가...씁쓸히 웃는다.
경수 (다가와서 어깨 툭 치며) 실은 쟤네 형이 경찰 기동대에 있었는데 마약사범 검거 때 주범한테 칼을 맞았거든. 아직도 하반신을 못 쓰는 불구래드라.
요석 (그 소리에 다시 한번 지훈이 나간 문쪽을 바라본다)...
동준이 들어온다.
동준 어, 장요석! 편지 왔드라.
<시간경과>
다들 취침 중인데 스탠드 켜고 그 편지 읽고 있는 요석
만보 (E) (에코) 널 못 본지 벌써 두 해가 넘는구나.네 소식은 계속 듣고 있다. 네가 바라던대로 열심히 잘 지내고 있는거 같아서 너무나 고맙고 기쁘기 짝이 없다
씬 49 창천 극장 골방
필름통을 정리하고 있는 만보.
만보 (E) (에코) 난 아직두 여전해. 변함없이 극장에서 필름 돌리고 있지, 뭐. (그러다가 문득 손 멈추고 뭔가 생각한다)
만보 (E) 근데 수아 소식은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미인대회에서 우승한 트로피를 안고 찍은 드레스 사진을 가만히 들어서 본다.
만보 (E) (에코) 여기,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한 후에...(그 사진 위에서 그대로)(오엘)
씬 50 프로덕션 사무실
만보 (E) (에코) ..서울로 올라갔어, 프러덕션이라는 데서 배우로 키워주기로 한 모양야.
사무실에 설치돼 있는 작은 무대에서 연기 실습을 해보이고 있는 수아.
강사가 대본을 구겨 쥔 채 앞에 서서 뭐라고 질타를 한다.고개 떨구고 다시 하겠다고 하는 수아.
혼나던 분위기와는 달리 밝게 뭔가 수다를 떨어대는 연기를 해보인다..이마에 땀 맺혀가며 나름대로 필사적인 그 얼굴.
헌데 강사가 다시 한번 자르며 뭔가 화를 내다가 기어이는 대본을 수아의 가슴팍에 내던져 버린다.
가만히 손등으로 눈물 훔쳐내는 수아...그 얼굴에서
만보 (E)(에코) 올라가자 마자 너한테 찾아갔을텐데...만나 봤는지 모르겠구나.
씬51 경찰대학 기숙사(밤)
잠자리에 들어있는 요석...그 얼굴 위에
만보 (E)(에코) 네 주소, ...꼭 쥐고 올라갔었는데...
요석의 얼굴 위로 스치고 지나가는,영상- 8부의 후반부,혜준을 만나고 급히 구내도로를 달려오던 요석의 등뒤로 얼핏 들려오는"한요석!"하는 목소리.놀라 돌아보지만...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동준이 어서 들어가자고 채근을 하여 그대로 다시 달려 들어가던 요석.어둠 속에서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 요석..
씬 52 프로덕션 앞 버스 정류장
버스에서 의상 가방을 몇개나 들고 힘들게 내려서는 수아,끙끙대고 다가오는데
요석 (E)창천여고 브라스밴드이 잘 나가던 콘닥터가 애 이렇게 빌빌대?
돌아보면- 요석의 빙긋이 웃고 빌딩 난간에 기대 서 있다.
수아 (너무 뜻박이라) 헉...!
요석 !(미소로 다가온다)...
수아 (입안에서)요석아...
요석 (그 의상가방을 대신 받아든다)...
수아 (너무 놀라 입이 잘 안 떨어지는데)...저어...
요석 많이 이뻐졌구나 (위아래 장난스럽게 살피며)음...! 이젠 제법 여자티가 나는데? 데이트 신청해두 되겠다!
수아 (눈물이 고일 듯하다)...!
요석 ...정말 오랜 말이지?
수아 응?...으응 (하다가 힘겹게 입을 연다는게)...밥은...먹었니?
요석 (웃고)...넌 내가 굶고 다닐까봐 그게 그렇게 걱정이니?
수아 (눈물 담긴 눈으로 어색하게 웃고)...
요석 그래, 나 실은 용인에서부터 오느라구 점심도 굶었어, 우리 뭐 먹으러 가자.
씬 53 간이식당
김치찌개 시켜놓고 마주 앉아있다.수아, 짐짓 태연 가장하며 젓가락 놔주고 자기도 수저 들고 찌개를 조금 맛 본다.
수아 와아, 바로 요 맛야! 후후, 되게 맛있다! 나 요즘 팔자에도 없는 다이어트라는 걸 하느라구 거의 아사 지경이었어! 니 핑계대구 오늘은 사정없이 먹어봐야지! (밥을 떠 먹으며) 넌 어때? 경찰대학에선 잘 해주지? 친구들하군 잘 지내? (찌개 떠넣고) 음, 미팅같은 건? 후후,요즘은 촌스럽게 그런 거 안한다며?
마구 가슴 벅차오는 자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정신없이 수다를 떨어대고 태연을 가장해 보이는 수아.
요석 (그런 수아를 그저 빙긋이 바라보고)...
수아 나두 요즘 연기 공부하느라구...(하다가 웃으며 빤이 보는 요석의 시선 느끼고 멈춘다. 어색한 미소로)...나...많이 시끄러워졌지?
씬 54 빌딩 난간
나란히 앉아서 캔커피 들고 있는 요석과 수아
요석 창천에서 지내던 시절이...바로 엊그제 같애.
수아 늘 거길 떠나고 싶다고 했잖아.
요석 때론...거기 그냥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두 해봐.
수아 말두 안돼...넌 어차피 너기 있을 사람은 아니었어.
요석 ...지내는 건 어떠니?
수아 고모네 집에 더부살이지 뭐...하지만 여기서두 나만 열심히 하면 뭔가 되긴 될거 같애. 후후,나 벌써 광고에 두번이나 나갔다?
요석 정말?
수아 볼래?
하고 급히 커다란 백에서 포트폴리오 과일을 꺼낸다.거기 제일 앞장에 끼워져 있는 찌라시 광고 한장.
촌스러운 포즈로 변기 설피용 비데 선전을 하고 있다.
수아 (좀 붉어지며)첨이니까 아직은 이런거 부터 시작을 하는건데, 나두 이제 곧 테레비두 나가구 그럴꺼야...나보구 소질이 보인대.
요석 (가만히 보며)...그래
수아 (빙긋이)...
요석 너 혹시 우리 학교에 찾아 온 적 있었니?
수아 ...응? (하다가 얼른) 아, 아니...! 그런 적 없어!물론 한번은 가보려고 생각은 했어!.하지만...너무 바뻐서...
요석 으응, 그랬구나, 암튼 이제 너 있는데 알았으니까, 우리 자주 만나자.
수아 (왠지 슬픈 눈으로 보며 미소로)...그래.
씬 55 시골길
달려오는 승준의 차
씬 56 승준의 차안
승준이 핸들 잡고 있고, 그 옆에 타고 있는 기성재.대봉투에서 장도수의 사진을 꺼내서 보며
기성재 흔히 장도수, 이 양반을 신세기파의 시조로 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이 양반은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든 적이 없어. 일본말로 하면 독꼬다이다, 혼자 맨주먹으로 붙어서 혼자 승부를 보는, 말 그대로 주먹쟁이지.
승준 어쨌든 신세기파가 거기서부터 시작을 한건 사실 아닙니까?
기성재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그저 몇놈 따르는 정도였다 형태를 갖춘 건 장명석이 때부터였어.
승준 예에...
기성재 어쨌든 내가 늘, 현직에서 은퇴를 하면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사람이 그 양반야, 네 할아버님이 군 검찰관으로 계실때 처음으로 체포를 하셨었는데, 할아버님도 그 사람 만은 사내라고 인정을 하셨어.
차가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기성재 어, 그래, 저기 뒷편에 관사가 있다. 그리로 가자.
씬 57 장도수의 관사 안방
어둑한 방이다.아랫목에 앉은 장도수와 마주 앉은 기성재가 앉은 절로 서로 정중히 예를 표한다.그 옆에 앉아 있는 승준.
기성재 이 녀석은 제 아들놈이올습니다. 인사 올려라.
승준, 역시 앉은 절로 고개 숙여 보이고, 장도수도 역시 맞절을 해보인다.
장도수 할아버님을 많이 닮았구먼. 아주 기개가 출중하신 분이었어. 그 어른께 나도 많은 감화를 받았었네.
승준 예에...
그때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 천산댁.
장도수 늦게 본 내자 올습니다.
천산댁 처음 뵙습니다. 워낙 시골이라 술상이라고 봤는데, 너무 초라합니다.
기성재 별말씀을...
장도수 그래, 자네가 여기 앉아서 술이나 좀 치시게.(기성재에게) 오랜만에 우린 긴 회포나 풀어 보십시다.
천산댁 (기성재에게) 제가 있는 게 오히려 방해 되시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성재 허허...방해라니요...(하고는 승준에게) 넌 불편하면 나가 있도록 해라.
씬 58 국민학교 전경
늦은 오후 햇살속에 졸 듯이 앉아 있는 낡은 교사...저 멀리 아이들 몇이 놀고 있고...둘러보는 승준...
그때 어디선가 바람결에 묻어오듯 가늘게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그 소리나는 방향으로 고개 돌려보는 승준.
씬 59 국민학교 복도
텅 빈 복도...어느 교실에선가 오르간으로 치는 “동심초”의 반주 소리가 들려오고, 여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어득타 기약이 없네...”
씬 60 국민학교 교실
교실에서 여자 아이들 예닐곱을 데리고 “동심초”를 가르치고 있는 라디아,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를 못 하고 헌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어 풀잎만 맺으려는...”
그때 문득 문쪽을 보면...문가에 기대 서서 바라보고 있는 승준.라디아, 흠칫해서 연주 멈춘다.아이들 어? 하며 멈칫하고...
승준 어? 아이구, 미안해요. 내가...(멋적게) 방해를 했나보죠?
라디아 어떻게...오셨어요?
승준 여기...선생님이신가 보죠?
라디아 누구...신데요?
승준 아, 저기...그냥 여기...잠깐 들른 사람입니다...미안합니다, 계속 하시죠.
하고 돌아서는데, 승준을 보다가...다시 무심히 오르간을 내려다 보는 라디아.돌아서다가...다시 힐끗 돌아보는 승준.
아이들에게 뭔가 웃으며 얘기 건네는 라디아.아쉽게 보면서 출입구 벽너머로 사라지는 승준의 모습...
그런 그림들이 슬로우의 화면으로 보여지면서.
씬 61 국민학교 운동장(늦은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철봉 근처에서 같이 어울리고 있는 라디아.
철봉에 올려주기도 하고, 코를 닦아 주기도 하고, 같이 그네도 타고...그런 모습들이 슬로우의 화면으로 보여지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런 모습 숨 듯이 바라보는 승준...
씬 62 국민학교 관사(늦은오후)
장도수 (깊게) 허허허...한세월, 이럭저럭 지나고 나니 이렇게 허무한 것을...주먹으로 보낸 시절이 이제는 그저 아득한 후회 뿐이요.
기성재 허망하다고 한다면-- 저 역시 마찬가지요...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려구 애쓰고 있습니다.
장도수 허허, 그러셔야지! 아직 젊으신데! 자아,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오. (천산댁에게) 뭐 하시는가? 잔이 비었어.
천산댁 (무당기 있는 눈매로 기성재 살피다가...술 주전자 들어 잔에 채워주면서)...하지만 이 일을 어쩝니까? 아직 갈 길이 많은데, 남보다 빨리 해가 지는구먼요.
기성재 ...예?
천산댁 늦은 시간에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주의 하십시오...저승으로 가자고 부르는 사람이올시다.
기성재 ...예?
장도수 이사람...! 지금 무슨 소릴 하는게야? (얼른 기성재에게) 신경쓰지 마시오. 이 사람이 본래 무(巫)끼가 좀 있어서 내림굿도 한번 했었지요.그래서 가끔 이렇게 헛소리를 합니다.
기성재 (굳어 있고)...!
씬 63 기성재의 사무실 앞 복도 (늦은오후)
천천히 걸어오는 하이힐의 여자 발.“기성재 법률사무소”간판이 붙은 문 앞에 멈춰 선다.천천히 노크...거기에서 스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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