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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완 목사 예화모음(거룩, 경건 편)
▣ 거룩하라
성경: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상담가들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결코 음주량을 줄이거나 저녁에만 조금씩 마시라는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판사는 상습 절도범에게 절대로 “좀 참으세요. 주말에만 도둑질하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결한 삶은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거룩에의 요청 앞에 서있습니다. 생각이 거룩해지고 말이 거룩해야 하며 행실이 거룩해야 합니다. 심지어 침실까지도. 마치 그것은 선교지를 향한 우리의 소명만큼이나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송길원 목사
▣ 조각가의 거룩한 손
독일의 어느 조각가가 예수의 초상을 볼 마음이 생겨 시작한 지 4년 만에 완성했다. 그는 만족하여 주일학교 학생을 불러서 자기가 조각한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누구와 같으냐?"라고 물었다. 학생은 "어떤 유명한 사람과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작업에 들어가 6년 만에 예수의 초상을 조각한 후에 그 학생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학생은 놀라며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하신 예수님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그는 만족하였다.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에서 국신(國神)인 비너스 조각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은 예수를 조각한 거룩한 손이므로 당신 나라의 더러운 신의 초상을 조각할 수 없소."라고 거절하였다.(겔42:20, 고후1:12)
▣ 거룩한 삶
거룩한 삶은 마땅히 투자가 있어야 한다. 거룩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곧바로 거룩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거룩은 순간순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룩한 삶보다 주님을 세상에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없다. 거룩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준다. 한편, 성도들이 거룩하지 않으면 범죄하는 신자처럼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가져다준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한 값,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거룩은 발전되어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 조건들 중에 몇몇은 고백과 상환, 항복, 성경공부,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주를 섬기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다. 거룩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기질 그리고 의복과 연관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히12:14)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오늘 나의 삶의 동기와 목적 속에 하나님을 잊지 말게 하소서. 죄의 자은 것이라도 분별하고 거절하게 하시고 거룩을 따라 살게 하소서.
/한태완 목사
▣ 거룩한 교제를 힘쓰라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 거룩해야 한다.
참으로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우리가 거룩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 같아져야 한다. 베드로가 교훈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은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래 사욕과 악을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은 주님의 거룩하심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삶에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디는 "거룩한 삶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휠씬 좋다. 등대들은 그 빛으로 주의를 끌기 위해 종을 치거 나 대포를 쏘지 않는다. 등대들은 그저 빛을 비출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파스칼은 "거룩한 삶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힘 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의 거룩함의 능력과 역사가 우리 삶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지는 못하면서 입술로만 거룩을 말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붙들려 살게 하옵소서.
▣ 우리를 부르심은 거룩케 함이니
성경: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4: 7,8)
사람은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위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또 누가 불러주느냐에 따라 그 파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일 당신에게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 자체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시고 당신을 찾아오셨다고 가정해보자. 사람이 부른 것과 견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직접 우리를 자녀로 불러 주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상에 합당한 삶을 살자.
▣ 직업과 거룩한 소명
대검찰청 신우회 연말 예배에 설교자로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식사 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하다가, 검찰 총장이 앞에 나와서 하는 인사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면 성경을 읽은 다음에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눈에 꼭 드는 검찰청이 되게 하옵소서.’ 남은 임기 동안 제가 최우선순위를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검찰 복음화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약과였습니다. 기독교 교도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선진국처럼 교회가 경영하는 교도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런 운동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일부 기독교 단체가 교도소를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천 지검장 되시는 분이 대뜸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기독교 교도소가 만들어지면 내가 소장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에 가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잖아요? 얼마나 좋은 황금 어장인가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검장의 자리가 높습니까, 교도소 소장의 자리가 높습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직업이 검사지만, 마음은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있으니, 그 직업이 얼마나 거룩한 하나님의 소명이 되겠습니까?「요한이 전한 복음」/ 옥한흠 ▣ 거룩한 희생 아프리카 오지의 한 마을이 복음화되었는데 그 까닭은 이렇했다. 어느 날 서양인 선교사가 마을 근처에 선교 캠프를 세운 후 전도에 나서자 동료 선교사가 “이 근처는 매우 잔인하고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반드시 총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면서 총을 주었다. 그가 마을에 접근했을 때 원주민 전사들이 창을 겨누며 다가섰다. 그는 웃으면서 미리 배운 원주민 말로 “저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라고 말했다. 그 때 원주민 전사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포위했다. 긴박한 순간 총 잡은 손에 힘을 준 그는 잠시 갈등하다가 총을 내려놓았다. 결국 그는 원주민 전사들의 공격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그들이 선교사 주검 곁으로 다가갔을 때 실탄이 장전된 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은 총보다 위대했다. 그들은 거룩한 희생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후 마을 전체가 복음화된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순교의 밀알로…. /김상길 논설위원 (국민일보)
▣ 경건 속 쉼터
신학대학원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였다. 한 방에 4명의 친구들이 함께 생활하였는데 이중 침대 두 개와 2인용 테이블 두 개가 다정스레 붙어 있었다. 2년 동안 같은 방에서 뒹굴었기에 친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고 자연스레 서로의 사람됨을 알게 되었다. 공부하는 방법도 각각 다르고 잠자는 시간도 달랐지만 서로 익숙해져 갔다. 한 학기 정도 지나고 나니 생활 습관도 비슷해졌다. 나는 시험이 바로 눈앞에 있어도 밤 12시가 되면 반드시 취침을 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시험 기간에 생긴 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밤 12시가 되어 침대에 누웠다. 아직도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잡시다!"라고 말을 하자 두 명의 친구가 자기 책상 위의 전등을 끄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불을 켜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참 기다리다가 말을 꺼냈다. "내가 너희를 2년 동안 가르쳤으나 아직도 내 말을 듣지 않는도다." 그러자 옆에 누워있던 친구가 내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랍비여, 그자가 누구니이까?"
그때 불을 켜놓고 공부하던 친구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나와 눈이 마주친 자가 바로 그니라." 우리 방안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한참을 배꼽잡고 웃어댔다. 우리는 가끔 신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유머를 사용한다. 공부와 경건의 훈련이 때로 우리를 건조하게 만들지만 보잘것없는 공간에서도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웃음의 보름달을 띄우곤 했다. 들판 위에 조그맣게 피어 오른 들풀과 이름 모를 꽃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시절 우리 마음엔 언제나 잔잔한 기쁨이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 나는 공사중이에요」, 김원태, 두란노
▣ 참된 경건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 말한 대로 거짓 경건은 이중 죄악입니다. 경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정적이며 고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경건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이란 동적이고 활기찬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참된 경건은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세상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참된 경건은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면서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사는 것은 바른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해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 「도시 속의 사막」/ 이성희
▣ 치우침 없는 균형의 경건
지난날의 인류의 역사는 좌우 극단의 대립으로 피를 흘려온 기억을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날의 지구촌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분쟁과 비극도 따지고 보면 소위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려는 이들의 독선으로 말미암은 것들입니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평등이 진보적 가치를 대표해 왔다면 복음과 자유는 보수적 가치를 대표해 왔습니다. 성경은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복음과 자유를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한때 기독교 운동의 양 극단을 대표하던 이들은 둘 중 하나를 철저히 외면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최 근세 역사도 이런 비극을 온 몸으로 겪어 왔고, 아직도 계속되는 남과 북의 분단이나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남남 갈등도 따지고 보면 극단적인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 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자는 오늘 우리에게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진리도 균형이고, 경건도 결국은 균형의 미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통전적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좌우 어느 쪽으로든 우리의 시야가 굴절되는 것을 예방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어떤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우리가 마땅히 포옹해야 할 모든 가치를 예수 안에서 용해하는 자정능력을 갖습니다. 예수는 가장 보수적인 분이면서도 가장 래디칼한 진보적 시각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비전이요, 희망입니다.“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네 발길을 끊어 버려라”(잠4:27)역사의 주인되신 주님, 우리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 다만 예수를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가정에서 먼저 경건을 배울 것
사도 바울은 과부들에게 그들이 먼저 가정에서 경견을 보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아마도 어떤 다른일을 맏기에 앞서과부들은 가정적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한번은 주님에 의해 귀신에게서 놓인 한 사람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그의 달라진 행위로써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라고 하셨다. 세상조차도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그의 가장 추악한 자아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의 한 훌륭한 희극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참으로 좋은 친구"라 불린다. 다른 한 사람이 "당신은 이 좋은 친구들중의 한 명을 집에서 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 단순한 질문속에서 얼마나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가! 그는 먼저집에서 이타심과 순종과 경외심-한 마디로 말하면 경건-을 보이는가? 딤전 5:3-16; 벧후 1:3; 3:11
▣ 부모의 경건
신실한 자녀로 양육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축구 중계를 보고,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흥행 영화 DVD를 빌려 보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가 성경 읽는 모습을 목격한 자녀는 몇 명이나 될까? 당신의 자녀가 부엌 식탁에서 하나님 말씀을 탐독하는 당신의 모습을 가장 최근에 본 것이 언제인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 루스 그레이엄(Ruth Graham)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평생 성경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중국에서 자란 그녀는 선교사이셨던 부모님이 매일 성경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우리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셨다. 의료 선교사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정신없이 바쁘셨던 분인데도 아침 시간에는 항상 성경과 함께했다. 또 밤이면 일을 마치신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와 똑같이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의 관심과 헌신을 그 정도로 차지하는 것이라면, 나도 한번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생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데이비드 제러마이어
▣ 경건한 삶을 위한 질문
'
웨슬리가 경건생활을 위해 스스로 자문했던 내용입니다.
1. 항상 기도하는가?
2.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
4. 욕심 내는 것은 없는가?
5. 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 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경건에 이르는 훈련은 영원의 삶을 위해 가장 유익한 일입니다. 스스로 질문해보면서 자신의 경건생활을 점검해보십시오.
주님! 경건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경건한 태도가 무너지는 때가 언제인지 점검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킨러의 경건의 시간
데니스 킨러는 자신의 탁월한 경건서 「주님과 함께하는 오늘」에서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 한 가지 선택에 대해 말한다. 그가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더 깊이 알고 싶은 갈급함이 있었다. 킨러는 매우 신앙심 깊은 한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 신앙생활에서 좀더 빨리 성장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킨러에게 홀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킨러는 시간을 좀 과장해 말했으나 그 친구는 간단하게 “시간을 두 배로 늘려”라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그들의 대화는 끝났다.
그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킨러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제과점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친구의 본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 일찍 자명종을 맞춰 놓고 친구가 제안한 대로 해보려고 노력했다.
킨러는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려 했을 때 무릎을 꿇은 채 잠든 적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만 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비참할 정도로 공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서히 의무적으로 하던 일이 기쁨이 되었다. 그는 다른 것 없이 살아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시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 읽기」/ 알리사 힌손
▣ 경건의 실천
한국 교회는 온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선교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갖게 됐고,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됐다. 도처에서 한국의 도움을 기다리며, 한국 교회를 배우려고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 교회의 성장 동력은 경건의 실천에 있었다. 새벽기도와 가정예배, 말씀 중심의 사경회, 그리고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던 순교적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건의 모습들은 안타깝게도 변질되고 있다. 기복적 신앙을 추구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세속적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화되면 맛을 잃게 된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림을 받고 짓밟히기 마련이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할 때, 우리는 맛을 찾고 온 세상을 비추는 거룩한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국민일보 겨자씨
▣ 경건과 섬김
폴란드, 체코와 접경 지역에 위치한 독일의 헤른후트는 기독교 경건주의의 모체였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중심지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경건과 섬김' 두 가지 도전을 받았다. 헤른후트 공동체 설립자인 폰 진젠도르프 백작은 "내게는 한 가지 열정만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오직 그분입니다"라고 고백했다. 모라비안들은 이런 내적 경건을 바탕으로 개신교로서는 최초로 세계 곳곳에서 해외 선교를 펼쳤다.
마을 중심에 있는 흰색 나무판자벽으로 된 교회당 모습은 경건함과 소박함 그 자체였다. 교회 마당에서는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 어린이와 어른들이 서로 손잡고 산책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유전자 이상으로 똑같은 얼굴 모양을 한 다운증후군 장애인들이었다. 교인들은 수백년 동안 이렇게 고통받는 이들을 섬겨 왔다. 경건과 섬김은 쌍둥이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은 이웃의 고통을 보게 하고, 주님을 향한 열정은 약자를 사랑하게 만든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국민일보 겨자씨
▣ 경건 된 어머니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주님의 모친 마리아, 모세의 어머니 유니게는 성서의 대표적인 경건되고 현숙한 어머니들이다.
탕자 어거스틴이 목메어 애원하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이탈리야로 도망치던 밤에,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밤새 울고 기도하는 소리를 등뒤에 버리고 멀리 떠나 방탕하던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무디의 아버지는 40세에 별세하고 유복자 쌍둥이를 합해서 아홉 자녀를 키운 무디의 어머니는 밤마다 벽난로 앞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자녀들이 잠든후에는 밤을 새워 울며 기도하던 어머니였다. 아침에는 햇살처럼 밝고 맑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웨슬레의 어머니 스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성자처럼 믿음의 자녀로 키워 감리교의 어머니로 유명하다.세상에서 만난 나의 첫사랑 내게 처음 언어와 기도를 가르치고 주님과 하나님 아빠를 부르게 해 주신 분, 내 신앙의 원적지 내 어머니.(어느 사모록에서)
▣ 경건의 계절로서 사순절
그리스도의부활을 감격과 기쁨으로 맞이하는 부활절을 기다리며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명상하며 지키는 사순절은 기독교인들의 경건훈련을 위한 적절한 절기이다.
사순절은 성회수요일(성회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부활주일 전날까지 46일간을 지키게 된다. 6번의 주일과 평일 40일간을 합한 46일간이다.
우리들이 해마다 지키는 이 사순절 기간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당하신 죽음과 고난을 명상하며,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새롭게하는 계절이다. 교회전통으로 이 사순절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훈련의 기간이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훈련이란 기도생활과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일, 그리고 금욕생활과 구제의 생활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같은 경건생활 훈련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보다 성실하게, 철저하게 살기 위하여, 준비하며 훈련하는 일이다. 특히 사순절 기간이 46일 중에 여섯번의 주일을 빼면 평일로는 40일이 되는데,40이란 숫자는 교회의 전통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행하신 40일간의 금식은 메시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보며,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지내신 것으로 계산되는 40시간은 부활의 아침을 맞기 위한 시간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하기에 참으로 적절한 계절이다. 구체적으로 금식하며,특히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를 갖는 일과 말씀을 명상하며 주님의 흔적을 생각하는 일, 그리고 자기의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하기에 유익한 계절이라 하겠다.
▣ 경건의 시간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요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규칙적인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예수를 더 잘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루이스 스미스는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 생활을 했던 여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생활의 긴장과 공허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주님께 도움을 구했을 때. 성령님께서는 그녀가 전에는 한번도 유의하지 않았던 이사야 30장으로 주위를 돌리게 해주셨습니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이라고 15절에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30분간을 경건의 시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위대함.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몇 가지 어려운 일로 가득찬 머리로 그녀는 홍해를 건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수 십만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너게 하셨는가” 를 깨달았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나의 하루 중에 일어날 어떤 홍해든지 안전하게 건너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끝낼 때에는 확신. 자신.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신경쇠약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곧 영감과 능력으로 넘치는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은 그녀가 신경쇠약의 위험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경건의 연습
막스 비어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는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죠오지 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음뿐 아니라 행동에도 야비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름답고 순결한 미어리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얼굴이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 하고 그를 거절했습니다. 로드 죠오지 헬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고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미어리에게 청혼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하게 된 그는 날마다 그의 위선을 감추고 참을성 있게 너그럽게 보이려고 힘썼습니다. 좋은 사람같이 보이려고 끊임없이 그의 나쁜 성질을 억눌렀습니다. 어느 날 옛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로드 헬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면이 벗겨졌을때 거기에는 거룩한 얼굴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얘기는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사람은 날마다 노력했던 만큼의 선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인격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여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 경건의 훈련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경건 생활에 대해 정제된 지혜를 제공해주는 고전으로는, 16세기 도미니칸 수도회에 속했던 평신도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연습]을 들 수 있다. 그 책에서 그는 편지와 대화를 통해. 눈 코 뜰새없이 바쁜 일상 생활 중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계속 자각하며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지 않는다. 때때로 하나님을 잠시 생각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며, 당신의 슬픔을 그분께 내려 놓고, 슬픔 가운데서도 당신에게 주시며 이미 주신 은총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산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하나님은 되도록 자주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당신의 슬픔을 위로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식사할 때든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라도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라. 잠깐잠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은 크게 외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러한 경건의 훈련은 우리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며,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자주 생각하도록 우리 마음을 훈련시킬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기도의 주제가 되지 못할 만큼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없다. 우리가 연습하고 훈련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4:8
▣ 경건한 가정
가정이야말로 축복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타락과 불의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남긴 교훈 가운데 하나가 도덕불감증과 가정의 파괴였다.
로마가정들의 붕괴와 함께 역사가 무너져 가는 그 마지막 황혼을 지켜보면서 한 철학자는 "애국자여 가정을 지키시오"라고 호소했으며 "신이여, 기도하는 가정을 로마에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시오"라는 기도문을 남겼다고 한다.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1:18)
▣ 경건한 자기통제
알렉산더 바쉐가 중요한 실험을 하기 위해 그 준비로 수년간 갖은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어느 날 그는 탁자 위에 여러 신기한 도구들을 실험할 수 있도록 쌓아 놓은 후에 집을 잠깐 비웠다. 그 사이에 그의 어머니가 연구실을 지나가다가 그만 치마로 쌓아 놓은 실험 도구를 건드려 모든 도구들을 박살내고 말았다.
이에 놀란 그의 어머니는 모든 사실을 며느리에게 고백하였다. 이 말을 들은 바쉐는 잠시 정신을 잃은 듯이 잠자코 서있더니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가 5분 후에 맑은 정신으로 유쾌하게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기 식구들에게는 결코 그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페어맨 로저스에게 “나는 5분 동안은 나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했지요”라고 했다.
이러한 정열의 자기 통제는 그 인격이 하나님을 닮았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노하기를 더디하는” 분이시기에 감정의 폭발에 좌우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비록 죄에 대해서는 영원히 분을 품으시는 분이시나 언제나 변함없이 침착하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들을 축복하셨다. 왜냐하면 단지 화평케 하는 자들만이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줄 알기 때문이다.
▣ 경건의 연습은
곤들메기라는 물고기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심리학자들이 그 물고기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곤들메기를 잡아 커다란 수족관에 넣고 그 수족관 안에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며 살게 했습니다. 며칠후 이 곤들메기와 먹이인 작은 물고기 사이를 얇은 유리막으로 차단하였습니다. 곤들메기는 바로 눈 앞에 먹이가 있었지만 아무리 잡아 먹으려고 해도 유리막에 부딪힐뿐 번번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후 유리막을 치워주었습니다. 푸집한 만찬을 다시 허락받은 곤들메기가 먹이를 향해 돌진을 하여 포식할 때까지 사냥을 계속할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었습니다. 바로 머리 위에 놀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보고도 이 곤들메기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곤들메기에게 이들 작은 고기들은 이미 잡아먹을수 없는 그림의 떡쯤으로 세뇌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내 곤들메기는 그 풍성한 만찬에의 참여를 거부한채 이 주일쯤되는 어느 날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습관이라는 무서운 것입니다. 경건의 습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7-8)
오늘도 경건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경건을 연습하라
해리 에머슨 포스딕(Herry Emerson Fosdick)은 크리스챤 설교자는 아니었습니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한 번 쯤, 귀 기울여야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말을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압력을 가하지 않고 수증기나 기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동력기를 통과하지 않고 물을 빛이나 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인생도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헌신하고 훈련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의 말에 공감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오늘도 경건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경건을 연습하라
아다리 바둑을 두기를 매우 좋아하시는 목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 주간에는 여유시간만 있으면 바둑을 두었습니다. 주일날이 되어 강단 위에 서서 보니 성도들의 머리가 바둑알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바둑의 아다리치는 것이 이쪽 저쪽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흰머리, 검은머리가 흰 바둑알 검은 바둑알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눈을 다시 한번 비비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기도드리셨습니다.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까지는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말이 아멘이 아니라 아다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다리!!
경건의 훈련은 아주 중요합니다.
▣ 예배의 경건
예배는 기독교인의 지고의 의무이다(레 10:1-11참조).
교회에 가서 저녁식사 때의 얘깃거리나 만들어 오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에 임할 때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신령과 진정으로’(요 4:24)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신성해야 한다. 진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말이 내면의 참되고 솔직한 표현인지 마음을 살피고 계신다. 예배시간이 지루하다면 어쩌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감이 상실되고 있는 징조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배가 꼭 근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격과 갈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흐트러진 몸과 마음, 안일한 자세 등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는 아니다. 이제, 예배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 진지하게 이 날의 예배와 자신과 예배 인도자를 위해 기도드리기 시작하라. 분명히 새로운 은혜를 맛보기 시작할 것이다.
▣ 경건의 연습을 하라
1. 열심히 성경을 읽으라.
2. 의미를 연구하지 않고 대강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3. 이 지식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다른 책들을 부지런히 구하고 이용하라.
4. 다른 사람들과 이 목적을 위하여 대화를 자주 가지라.
5. 남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 자신의 영혼의 유익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지식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라
6. 거룩한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당신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도록 기도하라.
7. 당신이 가진 지식을 따라 실천하라. 이것이 더 많이 아는 첩경이 될 것이다.
오늘도 경건의 연습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21세기와 경건절제운동
‘21세기’와 ‘경건절제운동’은 왠지 안 어울리는 것같습니다. 21세기의 시대정신에 비해 경건은 너무 보수적이며 절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부정적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21세기에 더욱 경건을 강조하여야 합니까? 그것은 많은 사람이 더욱 자신의 유익과 쾌락을 위하여 살아가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건이라 함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삶입니다.
왜 21세기에 더욱 절제를 강조하여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소비문화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문화 속에서는 과소비가 필연적입니다. 왜냐하면 소비를 통하여 남에게 인정받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비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필요보다는 욕망에 의한 소비를 하게 함으로써 생태계 파괴에도 결정적인 악영향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절제는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의 생활덕목이 돼야 합니다.
/임성빈 목사(장신대 교수)
▣ 그 사람은 죽었소
중국의 그리스도인 워치만 리는 삶에 있어서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워치만 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걸고 마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작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이 워치만 리를 바라보면서 “당신도 돈이 있으면 와서 함께 합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에 워치만 리가 아주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옛날에 마작놀이를 하던 워치만 리는 이미 죽었소!”
이처럼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넘어뜨리기 위해 과거에 우리가 범하였던 못된 죄와 악습을 기억나게 해 시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도 워치만 리처럼 “과거에 살던 나는 죽었소”라고 담대히 외쳐야만 합니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고귀하게 살자
고귀의 반대는 불량, 혹은 악성은 아닙니다. 물론 불량도 악성도 결코 고귀는 아닙니다. 고귀의 반대는 보잘 것 없이 하찮고. 너그럽지 못한 도량, 즉 소시민적이라는 것, 또는 인생의 하찮은 목적만을 생각하는 동시에, 주로 자기 자신의 것, 혹은 자기의 가장 차가운 주위의 것만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에 반하여, 고귀라는 것은, 안계가 넓고,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도량이 넓으며, 일신상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진력하는 일입니다. 그것에는, 사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세상의 무엇에 위압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7:6)
▣ 경건함의 진실성
어느 교회 여 선교회 회장님이신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부동산 투기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에 부동산 투기에 일주일 내내 열심히 아파트와 땅을 보러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주일저녁 여선교회헌신예배의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주일 오후에도 이곳 저곳 아파트와 땅을 보러 다니다가 저녁예배시간이 다되어서야 급히 교회에 오게되었고 사회를 보러 올라갔습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의 부름을 낭독하고, 찬송을 부를 시간,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찬송가 109동(!)을 부르겠습니다”
모래와 씨앗은 겉보기에 비슷합니다. 그러나 모래는 생명이 없고 씨앗은 있습니다. 가치와 판단은 겉모양의 크기나 꾸밈에 있지 않습니다. 그 생명력에 있는 것입니다. 경건은 경건의 형식과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은 경건의 생명에 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경건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병든 모습입니다.
▣ 고넬료의 경건
사도행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면서 일어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잘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정에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인하여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세례를 받게 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경건의 삶을 통하여 성령의 신비스러운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복음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꾸준하게 경건을 연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겸손히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고 섬길 때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라(행10:2)
/김정석 목사(광림교회)
▣ 세 가지 조심할 것
동양의 성현 공자는 "군자유삼계(君子有三戒)", 즉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첫째로, 청년기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는 때이므로 혈기를 다스리지 아니하면 인생의 방향이 빗나갈 수 있음을 주의시켰습니다.
둘째로, 장년기는 혈기가 왕성한 시기이므로 싸우는 일에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앞으로 전진만 하다 보면 좌충우돌하며 사방에 대적을 만들 수가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셋째로, 노년기는 혈기가 쇠한 때인데, 이때는 욕심이 많아지므로 재물이나 명예를 얻는 것에 주의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사람이 늙을수록 혈기는 쇠하지만 욕심은 반비례하여 커지므로 그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명예를 잃게 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양심의 법이 있어 자기를 다스리고 죄로부터 자신을 정결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에 세 번씩 자기를 반성하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임을 알고 끊임없이 정결하게 살도록 애써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세속을 경계할 때, 경건의 능력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입니다
▣ 흠없게 보존되는 삶
얼마전 경남 마산의 애리원 주경순 원장님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습니다. 그 분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전쟁 고아, 불우한 아동들을 보살펴 왔습니다. 그 분의 부친은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 반대운동하다가 투옥된 주남선 목사님입니다. 나름대로 받은 사명이 있어서 산모를 돕는 조산소를 운영하다가, 광복 직후 불우어린이를 돕는 일에 전적으로 뛰어들어서 사재를 털어서 애리원을 세웠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버림받은 어린이들과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 분의 어린이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별세하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책상 모서리에 붙이고 다닐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지금까지 2500여명의 불우아동들을 사회 각 분야로 배출했고, 640명을 부모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주 원장님은 개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법인에 맡기면서 사회에 환원하고, 평소 유언에 따라 시신도 부산 고신의료원에 기증했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고 빈손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바로 이런 주원장님의 삶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영, 혼, 몸을 흠 없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종말이 되어갈수록,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 자신을 흠 없게 보존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
▣ 실천해야 할 경건 3가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오물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자신의 얼굴을 깨끗하게 씻을 것입니다. 만일 씻지 않는다면 그의 얼굴은 오물이 묻어 있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무언가 마음에 부담을 느낄 때는 그 부담을 떨쳐내기 위한 행동 즉, 실천이 수반돼야 합니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부담에 둔감해짐은 물론 점점 진리에 대해서 멀어지고 말씀에 대해 온유한 태도가 사라지게 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경건에 대해 다음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은 직분자의 은사 중에서 첫 번째 은사를 ‘절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절제의 은사 중 최우선은 바로 언어의 절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는 충분히 우리의 언어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 극도로 흥분했거나 기분이 나쁠 때는 우리 언어를 조절하고 절제하기란 성령의 도움 없이는 힘듭니다.
둘째, 인색함의 문제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유학 보내는 데는 많은 비용을 쓰기도 하고 몇백만 원짜리 스타킹이 잘 팔린다는 신문기사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자꾸 닫히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런 인색함의 문제를 성령의 도움으로 능히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거대한 유행의 풍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절대로 신앙인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습니다. 거대한 신앙의 역풍이 부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익숙해지면 하나님이 어색해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과 야고보의 권면을 늘 마음에 새길 수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본문: 약 1;26∼27
* 기도: 세상과 함께 흘러가는 믿음의 삶이 아니라 세상을 거스리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인색하지 않으며 입술의 열매를 맺는 귀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찬용 목사 (부천성만교회)
▣ 영적 엥겔 계수
통계학에 '엥겔 지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가정이나 사회 또는 국가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전체 생계비 지출 총액에서 음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엥겔 계수가 높을수록 후진국에 속한다. 말하자면 자기 소득 중에서 먹는 것에 쓰는 비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진국에 가깝다. 반대로 그 비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엥겔 계수도 똑같다. 하루에 자기 육체의 본능을 위하여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을수록 그는 덜 경건한 사람이다. 반면에 경건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한다면 경건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장엄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 안에서가 아니라 불꽃 튀는 유혹과 욕망의 현장에서 말이다. 자기 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말이다. 나의 인기나 명예가 짓밝히려는 바로 그 곳에서 말이다. 그 때 거기에서 하나님을 좇아 행동하는 경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느 하루가 아니라 매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경건이란 훈련의 결과요 반복의 열매이다. 이와 같이 경건한 사람을 살기 위해서, 지금 그대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힘을 쏟고 있는가?
/이재철
▣ 경건한 생활
안토니오는 자기의 가산을 다 나눠 가난한 사람을 주고 굴속에 들어가 은둔생활로 고생하였습니다. 하루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헌 신을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말이 들리었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곧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 고치는 노인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은 성자가 오므로 반가히 환영해 드렸습니다. 안토니오는 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십니까?" 하였습니다. 노인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생활이 가난하므로 매일 신 고치는 것으로 생활비를 삼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보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배워주는 것으로 과정을 삼습니다."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건한 생활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등지는 생활이라고 생각해 불의와 빈곤과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 이 세상에서는 경건한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산으로, 기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는 것이 경건한 생활인줄 압니다. 그러나 경건한 생활이란 별난 생활방식이나 모양에 있지 않습니다.
경건생활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생활이 경건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불의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읽기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생활이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경건한 생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생활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 말한 대로 거짓 경건은 이중 죄악입니다. 경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정적이며 고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경건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이란 동적이고 활기찬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참된 경건은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경건은 세상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참된 경건은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면서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사는 것은 바른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해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무엇입니까? 경건은 하나님을 닮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풀무에 연단한 금으로 믿음을 갈고 닦아 연마할 때 빛나는 것입니다. 예배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 연습을 해야 할까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해야 합니다. 날마다 거듭해야 합니다. 완전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계속 연습하고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은혜와 진리에서 자라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대로 닮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얼굴, 성품, 생활을 닮으려면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닮으려면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우리는 온유와 겸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태양처럼 빛나지는 못해도, 태양 광선을 반사하는 달빛처럼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의 빛, 온유의 빛, 겸손의 빛, 봉사의 빛을 이 세상에 반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천군과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반열에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본문 8절에 말씀하시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자신을 타락한 세속으로부터 지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겸손으로 무장케 하심으로 우리가 교만과 아집을 버리게 하시고 인자와 온유로 옷 입게 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살고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근면과 인내와 성실이란 무기를 갖춤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케 하시며 봉사의 마음을 갖게 하심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민첩하게 보는 눈을 주시고 그들을 가까이 돕게 하시며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심을 의식함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한태완 목사
▣ 경건, 거룩에 관한 성경말씀
0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 2)
0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로마서1:18)
0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데살로니가전서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7,8)
0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5)
0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0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디도서 2:12)
0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야고보서1:26, 27)
0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베드로후서1:6-7)
0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 1:15)
0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5)
▣ 경건에 관한 금언
0 경건은 두려워함과 함께 시작하여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마루단티누스)
0 세상을 사랑치 않는 것, 이것이 경건생활의 첩경이다.
0 세속에 물들어 갈 때 경건은 사라지고 기도가 끊기며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도 단절된다.
0 경건에는 휴식이 없다.(세익스피어)
0 경건이란 것은 목숨을 바쳐도 후회없을 만큼의 신심 깊은 봉사와 성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종파, 어떤 단계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헤르만 헤세)
0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훌륭한 설교자이다.(세르반데스)
0 나는 경건이야말로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미덕이며 어떤 재능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경건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영혼 속에 엄숙한 감정을 기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세계를 대하는 같은 인간에 관한 외경, 존경의 기분, 자기도 그 일원이며, 책임을 분담하고 있다는 감정이다.(헤르만 헤세)
0 무엇보다도 먼저 소중한 것은 인생에 대한 척도가 경건해야 한다. 사람은 지식의 향상과 아울러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알프레드 테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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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