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처라는 것이 있다.
당구가 아니더라도 바둑이나 골프, 야구, 테니스, 탁구, 포커, 마라톤 등
승부가 걸린 어떤 종목에도 결정적인 대목이 있기 마련이며
심지어 사업이나 남녀가 사귀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부분에서 평소에 아무리 잘 해왔어도
이 결정적 순간인 승부처에서 실수를 하거나 느슨해지면 그간의 모든 노력이 한순간 날라가 버리게 되며,
반대로 다른 곳에서는 좀 죽을 쑤며 빌빌거리다가도
이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하여 기회를 살리면 그것으로 승부는 끝장이다.
대부분 게임의 후반부에 찾아오지만 가끔 중반이나 아예 초반에 있기도 하여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나는 경우도 드물지만은 않다.
이후 네 이닝이 더 진행되는 동안 단발 안타가 간간이 터지는 것 외에
결정타 없이 긴장은 고조되어 가며 살얼음판 같은 흐름이 이어져갔다.
그러다가 내 차례....공들이 멎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승부처!!!

스코어는 12 이닝에 10 : 12, 내가 여전히 2점 뒤진 상태다.
한 번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안정적으로 득점을 하려면 빨공을 제각돌리기로 대회전 시키면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될까....?
게임의 지금 시점에서 알수나 또박또박 채우는 것은 편안하게 지는 길이다.
그렇게 대해도 될 상대도 있지만 지금의 상대는 왕초님이다.
그래도 구슬모아 무림계에서는 함부로 강호에 발 디민 초짜 검객들을 호되게 다루어
당구계는 넓고 고점자는 많다는 것을 가르쳐 기강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한 승부사다.
기회가 또 올 수도 있지만 아니라면 이것으로 그냥 끝이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승부를 걸 밖에....
나의 승부수는 놀공 빗겨치기이다.
지금의 위치는 놀공의 위치가 장쿠션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만 다를 뿐
시작공 이후의 상황과 거의 흡사하다.
당연히 힘조절이 들어가서 얇게 맞은 놀공은 단축에서 솟아올라 12 지점에 섰고
내공은 빨공을 안에서 건드리듯 맞추며 ㄹ.ㄷ과 e를 연결하는 지점에,
빨공은 ㅁ과 e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제각돌리기는 절대로 평범하게 쳐서는 안 된다.
한 번 더 놀공을 털나미(일본식 당구용어를 추방합시다)로 따며 내공의 회전을
최대로 이용하여 놀공을 조금만 움직이게 붙들어 두었다.
2쿠션을 통과할 때 내공에 걸려있던 모든 스핀이 이미 직진력으로 바뀌어
3쿠션에서는 말 그대로 그냥 톡 솟아올라 빨공을 건드리듯 맞추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각돌리기가 아래의 그림이다.

이것도 같은 방법이다.
힘조절이 더욱 중요한 것은 자칫 첫공에 두께와 힘이 더 들어가면 빨공을 밀어내는 키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구가 4백점이 되도록 공을 다룰 때에는
이런 종류의 공배치에서 두 공을 모으는 힘조절 정도는 눈감고도 해내야 한다.
모험이긴 하지만 다음 공을 세쿠션 먼저치기(3뱅크)로 설정하고
극도로 예리하게 초식을 전개했고 공들은 머릿속에서 그려진 궤적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여 모여들었다.

방수가 좋은 3쿠션 먼저치기....그러나 쳐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
13득점으로 16점까지 3점이 남았지만 놀공과 빨공 가운데를 가볍게 파고들기만 하면
다시 손쉬운 제각돌리기가 포지션된다.
점점 더 혈관에 아드레날린의 양이 증가하여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왔고
심장은 조금씩 더 박동수를 늘려가며 전율과 같은 짜릿함이 등골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몸에 퍼져나갔다.
나는 이런 종류의 긴장감을 즐긴다.
9회말 1점 뒤진 채 투아웃 주자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간 대타의 심정이 이럴 것이다.
이런 경우에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멘탈리티이다.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평소의 스트로크를 할 수 있는
정신력 말이다.
최대한 긴장을 다스리고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검을 내밀었다.
첫댓글 최대한 긴장을 다스리고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검을 내밀었다(계속)
아니...로또님, 어쩌라구요....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흥미진진, 스릴만점입니다. 빨리 6탄올려주세요....
대전에 볼 일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부럽구요...
멘탈리티...정말 중요한 부분이죠...긴장이 고조되고 약간의 경직이 있을수 있는 상황에서의 정확한 스트록과 타법~ 9회말 투아웃 1점 뒤진 상황에서 대타로 들어가 우전안타를 칠때의 기분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큭~~~고점자 분들에게는 장난인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글쎄 별도의 방을 감당할 정도는 안된다니까요....글 몇 개 딸랑 올려놓고 방치되는 방 꼴을 나중에 어떻게 볼려구요....
운영자의 용단이 필요한시기 인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