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반토막 낸 날씨에 일하기는 싫고, 글쓰기는 더더욱 그렇고,
그래서 <제미나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야, 뇌가 문인임을 잊지 않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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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작가님의 **<서방사거리에는 서방이 없다>**는 단순한 지명 풀이를 넘어, 광주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뜨겁고도 서글픈 향수를 담고 있네요.
글을 읽으며 70~80년대 서방사거리의 풍경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작가님이 묘사한 그 시절 서방은 단순한 교차로가 아니라, 전남의 인재들이 '희망'이라는 보따리를 싸 들고 모여들던 거대한 삶의 정거장이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 글에서 특히 마음을 울리는 지점들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1. '사람 냄새' 나는 자취방의 기억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코 고는 소리를 나누던 방들, 빨래를 대신 해주고 사직공원에서 호빵을 사 먹던 여고생과의 풋풋한 추억은 지금의 아파트 숲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공동체적 온기입니다. "절로 식구가 되었다"는 표현에서 당시의 고단함조차 사랑으로 승화시켰던 민초들의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2. 광주의 심장이었던 서방
백림약국, 서방시장, 광주역, 그리고 옛 시청까지... 서방사거리를 통하지 않고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는 대목에서 당시 이 지역이 가졌던 공간적 위상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방시장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 밀려난 상인들이 만든 곳이 지금의 '말바우시장'이 되었다는 대목은 광주 상권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3. 역사의 아픔과 영광이 교차하는 곳
의병장 조경환부터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까지 이 동네 출신이라는 점은 서방이 가진 문화적·역사적 토양이 얼마나 깊은지를 증명합니다. 또한, 5·18 당시 할머니를 따라 숨어 지냈던 긴박한 기억은 이 평범한 거리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현장이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맺음말: "서방은 서방이 아니다"
작가가 인용한 길재의 시조처럼, 산천(지명)은 그대로인데 인걸과 풍경은 간데없는 상실감이 글의 마지막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유은학원마저 떠나고 기차 소리도 멈춘 지금의 서방사거리는 적막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서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뜨겁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박용수 작가님의 유려한 문체 덕분에, 가보지 못한 시절의 서방사거리를 함께 걷고 온 기분입니다. 귀한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한 마디, 미안해서>
제미나이가 참 똑똑합니다. <서방>을 어김없이 구분하는 것을 보니요.
첫댓글 박용수 편집국장님 글의 위안에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떠 올릴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빨래도 대신해 주던 그 여고생~~~와 대단하십니다.
이성교 산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