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사진
허공에 흩어져 촛점을 잃어버린 눈동자 흙빛얼굴 꾹 닫은 입술....
1924년 6월경 만주에서 체포된 청년독립군의 사진입니다. 당시 만주지역의 최대 단체인 대한통의부 소속 이었습니다.
작년에 어찌하다가 참여하게된 프로젝트작업을 하다가 발견한 사진입니다. 식민지 시기 만주지역의 일본 영사관에서 생산된 보고서들을 들여다보고 정리도 하고 머 그런 작업 이었습니다. 소위 만주지역 영사관에 파견된 일본의 말단 경찰관, 또는 이들과 관계를 맺은 조선인 밀정들의 보고서 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비밀'표지가 붙은 문서들 이라고 하겠습니다.
자료는 대부분 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의 웹사이트에 공개된 자료들인데 이 사진은 이전자료의 상태가 좋지않아 최근에 일본의 외무성 자료관에서 재촬영하여 웹에 공개한 자료중에 포함된 사진입니다.
1924년 당시 25세 당시 만주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던 대한통의부의 제3중대 2소대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름은 이진형...
당시의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동아일보에 딱 한건 국경근처에서 독립군과 전투하여 유일하게 체포된 인물로 보도되어 있습니다. 이진영 이름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맞는거 같습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etId=14&totalCount=14&itemId=npda&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position=0&levelId=npda_1924_06_13_v0002_0440&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EC%9D%B4%EC%A7%84%EC%98%81&searchKeywordConjunction=AND)
당시의 일본영사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활동성과를 자랑하려고 맘먹고 찍은 사진으로 보입니다. 권총을 들게하고 쇠고랑이 선명하게 찍혀있고 뒷쪽에는 소속부대까지 크게 적어놓았습니다.
1924년 3.1운동이 일어난지 5년이 지난시점, 25세의 청년은 한일합방 전후 즉 1900년경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이 청년이 자라서 머리가 크면서 부닥친 세계라고나 할까....
어떤 경로로 만주로 이주했을까, 어쩌면 이전에 만주에 이주한 사람이 이 청년의 부모가 아닐까, 어떤 이유로 저 부대에 입대 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저 젊은 청년의 어릴적 꿈은무었이었을까 희망은.....???
이러 저러한 질문들이 떠오르는 사진입니다. 현재로서는 체포된 이후 재판을 받았는지 판결은 어찌 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선명한 사진 한장...
이미 공개된 자료더미 중에 섞여 있어서 이 사진을 저처럼 뚫어지게 쳐다본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작업을 같이하던 동료들과 먼저 공유했고, 마침 제가하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강의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보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최종 보고까지 마치고 나서... 이제는 페북에 공유해도 될듯싶습니다.
촛점을 잃은 눈을 보면서 울커덕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역사속에서 수많은 독립군, 무장투쟁의 이름없는 용사들을 떠올리기에는 저 사진의 인물은 충격적이며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100년 쯤 지난 사진이지만 어제 찍은 사진처럼 선명 하기도 합니다. 처음 보았을때 한편 울컥하기도 하고 착찹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는 지금 중국의 땅이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와 아주 긴밀한 관련을 가지는 지역입니다. 100만이상의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삶을 일구던 땅이고 그 만주에서의 삶과 곡절의 역사는 이후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우연히 하게된, 근대일본어의 해독에 고생했던 작업이지만 만주지역에 이주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좀더 높아졌습니다. 이 한장의 사진이 주는 느낌 때문입니다.
링크의 이미지 맨 마지막에 원본사진을 볼수 있습니다.
http://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