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틸다 <MATILDA>의 기원 ♣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춤추는 마틸다, 호주의 국가가 될 뻔도 하였던호주 이주민의 슬픈 애환이 담긴 <핍박받는 노동자,닭도둑의 흔들거리는 짐짝 - bagage> 춤추는 마틸다는 호주 원주민(아이버리진)의 춤추는 여신 냔피<nyanpi>의 전설과 프랑스의 엄마찾아 삼만리의 원조인 고아소녀(소년)의 가방속 춤추는 인형이 결합되어져 1800년대 말엽 호주로 이주되었던 호주 이주민의 가방속 훔친 닭이 전승되어지고 완성된 이야기이다.
1, 외롭고 황량한 고아 소녀, 마틸다 --- 프랑스의 국민 혁명당 초창기 시절(1700년대 중후반) 가난에 찌들어 타지(타국)으로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 고향집을 떠나 머나먼 여행길에 오른 소녀(혹은 소년이라고도 함)가 있었다. 그 소녀의 이름은 마틸다였다.
어릴적에 엄마가 떠났던 지라 마틸다는 엄마의 얼굴도 기억하지를 못한다. 다만 엄마를 만나게되면 증거로 보여 줄
하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태엽 도자기 인형이 있을 뿐이다. 엄마가 돈 벌러 타지로 떠난 후, 나이어린 마틸다는 할머니손에 자라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마틸다는 천하의 고아가 되어버린다. 열살 갓 넘은 마틸다는 엄마를 찾아 정든 고향땅을 떠나게 된다. 그녀의 가방 속에는 엄마가 어려서 울지말고 씩식하게 자라나라고 선물로 주고간 춤추는 태엽 도자기 인형을 넣은 채 멀고도 먼 고난의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아무 것도 없이 달랑 떠난 상태였기에 마틸다는 굶기를 예사로 하였고, 또한 어두컴컴한 밤에도 늑대 울음 소리를 들으며 날 새기를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느 덧 마틸다는 지나는 마을 틈틈이 날품팔이를 하며, 때로는 산에서 나는 나물이나 먹을 거리를 캐다가 행상을 하며 하루 하루 버텨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틸다는 지나가다가 어려워서 길에 나와 구걸을 하는 걸인들에게 자신이 굶어가면서 모아 놓은 돈이나
일용할 빵을 그들에게 선사하기도 하는 착한 소녀였다. 그런 어느 추운 겨울 날, 며칠을 굶은 마틸다는 지나던 마을의 부자집에서 귀한 도자기 인형이 없어지자 마틸다 그녀를 의심하게 된다. 아니라고 부인을 하는 마틸다에게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가방속이 의심간다며 추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완강히 부인을 하는 마틸다에게 마을 사람들은 심한 매질을 하여 추운 눈속에 내버려둔다.
눈속에서 동사로 죽어가면서도 마틸다 소녀는 가방을 가슴안에 꼭 쥔채 죽어간다.
고아소녀 마틸다의 슬픈 얘기가 전해 진후 많은 부모들은 험난한 세상을 꿋꿋히 살아가는 뜻으로 춤추는 도자기 인형을 자신들의 어린 자녀에게 선물을 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 무육이의 모듬구이 (문화 예술 자료 모음집)에서 발췌 ---
2, 2중적 모습의 여전사, 엘리자벳 공주
--- 마틸다 란 이름의 시작은 11세기말 영국의 헨리 1세로 거슬러올라갑니다. 헨리 1세의 딸 엘리자벳은 1114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5세와 결혼합니다. 1125년 하인리히 5세가 죽자 1128년에 프랑스의 앙주지방 백작인 조프르와와 재혼합니다. 조프르와 백작과 재혼하기전 조프르와 백작은 엘리자벳에게 요정의 이름인 마틸다를 그녀에게 지어줍니다. 이 때부터 엘리자벳은 마틸다라고 불리웠읍니다.
1135년 부왕인 헨리 1세가 사망하자 헨리 1세의 사촌형인 스티븐(스테판)이 왕위를 계승하 1139년 영국을 침입하여 내란을 일으킵니다. 마틸다(엘리자벳)은 스티븐을 내몰고 지배권을 장악했으나 오만과 압제 정치에 반대한 런던시민에게 쫓겨납니다. 그리고 다시 스티븐이 등극합니다. 후에 스티븐이 죽자 마틸다는 아들 헨리 2세를 왕위에 올려 플랜태져넷 왕조의 기초를 다집니다. 이때부터 '마틸다'는 귀엽고 이쁜 그러나 2중적 모습을 지닌 여성킬러를 의미하게됩니다. 그리고 원래, 마틸다란 어원은 정숙하고 기품있는 젊은 처녀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프랑스의 구전 문학에서도 등장하는 요정의 이름이기도 하다.
--- 무육이의 모듬구이 에서 발췌 ---
Harry Belafonte - Matilda <1959, 바나나보트 앨범>
♣ 호주의 춤추는 마틸다 기원 ♣
흔히 호주식 속어 ( Aussie- English's slang) 로 swag man (스와그맨)은 떠돌이, 방랑자(Vagrant, Vagabond)라는 뜻이다. 또한 Waltzing 은 떠돌아다닌다는 뜻의 Walking과 같은 뜻과(Peter Russel-Clark 해석) 히치 하이킹, 떠돌이들의 흔들거리는 가방, 세 가지 뜻이 있다. Matilda 는 방랑자, 광부 등이 휴대품을 넣고 다니는 보따리. (Swag)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Waltzing Matilda 는 떠돌이들이 걸어갈때 흔들거리는 가방,Swag (미국식 - bagage)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재활용 시장이나, 좌판대를 말하기도 하는 bagage 는 원래 떠돌이의 가방, 좌판대에서 유래한 것이다,
1, 호주 원주민 ( Aborigine - 에버리진)의 사막의 춤추는 여신 ' Nyanpi '
--- Nyanpi 는 호주 원주민들의 전설에 나오는 춤의 요정(여신)을 말한다. 원주민어로 춤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호주 대륙에는 약, 500여 원주민 그룹이(에버리진- Aborigines) 4만에서 12만년으로 추정되는 유구한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 서로의 교류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문자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문학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만의 문화는 엄연히 존재한다. 신을 추앙하고 복을 기원하는 코로보리(Corroboree) 의식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세상이 열리고 인류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타종교에 못지 않은 창세기 신화도 가지고 있다. 코로보리 의식 가운데,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악어 사냥을 하러 마을을 떠나서 유람할 때, 그리고 악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올 때 불러주는 노래가 바로,땅의 여신과 달의 여신의 점지로 태어난 춤추는 여신 냔피 (Nyanpi)가 자신들을 보호해준다는 내용의 노래인 것이다. --- 무육이의 모듬 구이 (문화,예술 자료 모음집) 발췌 ---
사막을 외로이 ... 어둠이 찾아오면, Nyanpi 여신이 나타나 그대의 앞길을 밝혀줄겁니다 외롭고 힘들다고 슬퍼 말아요. 당신곁엔 항상 Nyanpi 여신이 있으니까요. 자 ! 힘을 내어 Nyanpi 여신을 보아요 자 ! 힘을 내어 Nyanpi 여신의 춤을 보아요. 당신곁엔 항상 Nyanpi 여신이 있으니까요.
호주 문학과 문화, 그리고 호주 원주민인 에버리진의 문화를 얘기를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1973년, ‘인간의 나무(The Tree of Man)’라는 탐미적인 심리소설을 써서, 오랫동안 문화적 열등의식에
시달려오던 호주인 들을 열광시키면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페트릭 화이트. 호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며 세계에 영국의 2류 문화로 취급되왔던 호주 문학을 알리며 197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치며 세계에 호주의 국가 이미지를 가장 널리 알린 패트릭 화이트.
“호주의 느슨함과 좌우를 살피지 않는 우직함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모든 것이 수용되는
호주가 됐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낸 그의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내면에는 평생을 동성애자로 살아가면서 멸시받았던 그의 서글픔이 담겨있다. 하여,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본격적인 작품할동 보다는 자전적 소설 등을 통해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인권을 주장했다. 후천적인 것이기보다는 타고난 형극의 길을 동정은 못해줄 망정 멸시하면서 탄압하는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라는 게 그의 소견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호주는 현재 세계에서 동성연애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하나고, 그들의 권리 또한 보통 가정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유산상속은 물론 가족수당까지 지급하고 잇다. 한편 페트릭 화이트가 죽을 때까지 살았고, 지금도 그와 함께 살았던 멜로니가 살고있는 시드니 시내의
센테니얼 파크 주변은 동성애자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곳에서는 매년 2월 호주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50여만 명의 관광객들 앞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게이와 레즈비언을 위한 ‘마르디그라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500 ~ 700여만명을 넘는 관광객이 마르디그라 축제를 보러 시드니를 방문한다.)
페트릭 화이트는 191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가 영국인이어서가 아니라 결혼 2주년 기념여행중에
그가 태어나 뜻하지 않게 영국태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영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일생에서
많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일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후 6개월만에 호주로 와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페트릭 화이트는 중등교육을 영국의 챌튼햄에서 받은 다음, 캠브리지大 킹스 칼리지에서 고대 희랍어, 독일어, 불어 등을 전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국에서 데뷰했고, 대부분의 저서들도 영국에서 출간했다. 군복무도 영국 공군에 입대해서 2차대전을 치렀고, 그의 문학세계마저
영국의 대문호들인 제임스 조이스, D.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바로 이런 점들이 그와 호주인들 간에 생긴 애증관계의 원인이 된다.
페트릭이 13세 되던 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국에 있는 동안은 뭔지 모를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식민지 국가의 신민(臣民)이 될 수밖에 없었고, 호주에 돌아왔을 때는 ‘영국종자의 강아지’라는 놀림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1929년, 호주로 다시 돌아온 페트릭 화이트는 가족들이 살고있는 카슬힐 지역의 농장에서 호주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한 번쯤 겪는 잭커루(Jackaroo : 호주 방언으로 농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를 가리킴)가 된다. 춤추는 마틸다 란 시를 쓴 밴조 패터슨이 잭커루를 하면서 춤추는 마틸다를 완성 했듯이 잭커루 페트릭은 낮 시간에는 가축들을 돌보면서 땀을 흘렸고, 밤에는 별빛 아래 홀로 앉아 깊은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또한 수많은 밤들을 석유등불 아래 앉아 생각나는 모든 것을 글로 옮겨 적기도 했다.
페트릭 화이트는 정치, 사회적인 일에 대체로 초연한 사람이었다.
단지 베트남 전쟁, 환경문제, 호주원주민 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을 뿐이었다.
특히 원주민 인권문제와 소외된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서 1972년 노동당에 가입해서 선거캠페인 등에 참여했으나 그것도 조용한 지원활동으로 국한시켰다. 그러나 페트릭 화이트는 많은 문학기행을 하면서 직접 목격한 호주원주민들의 참상에 깊은 충격을 받고
죽을 때까지 그들을 도우면서 살았다. 또한 많은 재산을 NSW미술관에 헌납해서 개척시대의 민화(民畵)들을 수집하도록 했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중 ‘페트릭 화이트 문학상’기금을 제외한 전액을
사회봉사단체에 기부했다.
이렇듯 페트릭 화이트가 호주라는 모국에 많은 애정을 가졌음에도 그의 호주생활은 대체로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지적이고 조용한 성품 탓도 있었지만, 그를 서구 지향적인 모더니스트라고 몰아붙이면서 냉랭하게 반응한
호주문학계와 동성애자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 공인으로서 늘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가 살았던 센테니얼 파크 주변에 있는 옥스포드 스트리트가 호주 문학인들의 집단거주지역이 됐고, 그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고무된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센테니얼 파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종사하는 많은 예술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70-90년대의 호주문화를 이끌어가기도 했다.
그가 아니였다면 원주민인 에보리진의 문화 예술이 호주및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고, 권리를 찾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애보리진의 미술품만이 아니라, 호주 이주민의 슬픈 애환사로만 알려지고 사랑받는 왈칭 마틸다를 애보리진들에게 돌려주는 음악 작업을 후원하게 된다.
대부분의 신대륙 개척사가 그러하듯이 호주개척사에도 어느 날 갑자기 안개처럼 흩어져간 사람들이 있었다. 4만년 이상 이 땅을 지켜왔던 호주원주민, 애보리지니가 바로 그들이다. 역사학자나 인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애보리지니들이야말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화’ 그 자체였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50세도 채 안되고 오랫동안 인구센서스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사람들, 엄연한 주인이면서도 미개인이라고 멸시 당하면서 백인들의 뒷전에서 알코올과 마약에 취해서 비틀거리던 사람들이 호주 원주민들이었다. 그런데, 호주이주민들의 주 구성이었던 앵글로 - 켈트 족과 스코틀랜드 인들의 애환으로만 알려진 Waltzing Matilda 의 원전인 냔피(Nyanpi)가를 패트릭의 후원아래 호주 포크가수이자 애보리진 후손인 트레버 아담슨( Trevor Adamson)에 의해 90년대 초반 Nyanpi Matilda 로 재탄생하게 된다. 트레버 아담슨은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애보리진의 존재를 알리고 후원해준 패트릭 화이트와 애보리진들에게
Nyanpi Matilda 를 바친다고 하였다. 다시금, 1999년 푸투마요 레이블의 시리즈인 월드 플레이 그라운드 (세계 어린이 노래 2 탄)에 실리면서
그동안, 호주 원주민의 애환을 담은 A.S Banjo Paterson 의 시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류 음악가인 Chtistina Macpherson 이 작곡한 걸로만 알려지고 불려져 왔던 Waltzing Matilda 는 애보리진들의 오랜 세월 불러왔던 노래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동안 호주 대륙의 원래 주인인 애버리진은 영국에서 이주해온 호주 이주민들에 의해영토와 주권을 빼앗긴 것만이 아니라 그들 조상대대로 대물림 되었던 문화마저도 호주 이주민의 창작물로 강탈당했던 것이다
--- 1991년 호주 동아일보에 연재된 윤 필립 시인의 글과 --- --- 마르디그라스 진행위원회 문학담당자 께서 보내주신 메일 자료글 참조 ---
아래글 내용에서도 등장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답다는 영국발 아웃사이더들(호주 이주민)의 노래인 왈칭마틸다를 들었을때보다도 그들의 원전노래인 애보리진의 노래인 Nyanpi Matilda 가 내게는 더 애절하고 아름답고 진취적이게 들린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말하자면, 트레버 아담슨의 Nyanpi Matilda 란 노래는 1999년,푸투마요 세계어린이 노래 특선 2집에 실리면서 처음 듣게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답다는 평가글들은 이 글을 작성하면서 알게 되었다.
2, Waltzing Matilda 의 탄생.
--- 브리스베인에 사는 Banjo Paterson (1864~1941)이라는 시인이 잭커루 시절 호주 원주민 떠돌이가 닭을 훔치다 닭주인에게 걸리는 장면을 목격하였던 것을 1895년, 그들 원주민이나 영국에서 방출되었던 유형수 출신의 호주 이주민 초창기 시절이나 다를 바 없음에 Waltzing Matilda’라는 시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2년후인 1897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류 음악가인 Chtistina Macpherson 이 애보리진 대대로 내려온 Nyanpi 노래에 스코틀랜드 대중음악 기법을 덧 입혀 'Waltzing Matilda' 라는 노래를 스코틀랜드 대중 음악지에 발표하게 됩니다. 그 후 왈칭 마틸다는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의 전통 노래인 Nyanpi 와는 상관없이 호주 이주민들의 애환을 표현한 새로운 창작물로 둔갑하여 알려져오게 됩니다.
--- Banjo Paterson 과 그의 시집 'Waltzing Matilda' (1895년) ---
--- Chtistina Macpherson 과 'Waltzing Matilda' 악보 (1897년) ---
♬ Banjo Paterson 의 원전 가사와 Chtistina Macpherson 원곡에 맞게 재 편곡한 'Waltzing Matilda' ♬
코완과 패터슨은 밴조 패터슨의 아들과 며느리이기도 하다. 아래 가사글 중 You'll come a waltzing Matilda with me 는
Tom Traubert's의 가사를 코완 & 패터슨이 덧 붙인 것인데, 대부분의 왈칭 마틸다 노래는 이 가사가 들어간 것들이다.
Stanley Cramer 감독의 1959년 뮤지컬 영화인 On the Beach(그날이오면)에 수록된 왈칭 마틸다 노래이다. 온 더비치는 지구 핵 폭발로 인하여 지구가 멸망한다는 반핵 영화인데 그레고리 펙,에바 가드너,안소니 펍킨스 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음악을 호주 출신의 영화음악 거장인 Ernest Young 이 맡으면서
Marie Cowan"과 “Andrew Barton Patterson 이 편곡한 이 노래를 주제 음악으로 삽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와 노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개관시 기념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Words and Music by,Cowan & Paterson
Waltzing Matilda
Poet - Banjo Paterson 번역 - 윤필립 번역글 참조
Once a jolly swagman camped by a billabong 유칼립투스 나무 그늘진 샛강 언덕에서, Under the shade of a Coolibah tree 쿨리바 나무 그림자 아래 어느 속절없는 떠돌이가 야영하고 있었네.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l his billy boiled 양철 주전자의 먹거리를 익히며 노래를 부르네, You'll come a 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월칭 마틸다 왈칭 마틸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 his billy boiled 양철 주전자의 먹거리를 익히며 방랑자는 노래를 부르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도 다같이 유랑을 떠나자.
Down came a jumbuck to drink at that billabong 양 한 마리 물 마시러 강가에 내려왔네, Up jumped the swagman and grabbed him with glee 방랑자 신이 나서 뛰어가 양을 잡았네. And he sang as he shoved that jumbuck in his tuckerbag 보따리에 양을 넣으며 노래를 부르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양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월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 his billy boiled 양철 주전자안의 먹거리를 익히며 노래를 부르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양아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Up rode the squatter mounted on his thoroughbred 목동이 쫓아오네, 잘생긴 말을 타고. Down came troopers one two three 기병대도 쫓아오네, 하나, 둘, 셋.
Whose that jumbuck you've got in the tuckerbag? "네 보따리에 든 게 누구 양이냐?"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왈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 his billy boiled 떠돌이는 먹거리를 익히며 노래를 부르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양아, 너도 나도 다같이 유랑을 떠나자.
Up jumped the swagman and sprang into the billabong 떠돌이는 호수에 풍덩 뛰어들어 죽었네, You'll never catch me alive said he "산 채로는 날 잡지 못할 걸" 그가 말했네. And his ghost may be heard as you pass by that billabong 호숫가를 지날 때면 떠돌이 유령의 목소리가 들리네,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
3,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
......
그리고 1915년에 나의 조국은 나를 불렀습니다
"아들이여. 방황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해야할 일이 있다"면서
그들은 내게 철모를 주고 총을 주고 전쟁터로 내보냈습니다
군악대는 Waltzing Matilda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눈물 사이로. 깃발이 나부끼고 환호가 터졌고
우리는갈리폴리로 출발했습니다
......
그들은 불구자와 부상자, 장애자들을 모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다시 배를 태워 돌려 보냈습니다
팔 없는 자들, 다리 없는 자들, 장님들, 미친 사람들
Suvla의 자랑스러운 부상당한 영웅들
나는 내 다리가 있었던 자리를 살펴 보았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신에 감사했습니다
비탄스러움, 한탄스러움, 애통함
악대는 Waltzing Matilda를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고 단지 거기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돌려 버렸습니다..
......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가사 일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는 ‘안작 데이’(day of Austrailia And NewZealand Army Corps)가 있다. 이 날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인 1915년 터기의 갈리폴리(Galipolli) 상륙작전에서 희생된 양국의 연합군을 추모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현충일과도 같은 날이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군의 지휘를 받은 양국의 연합군은 무모한 공격으로
5만여 명이 죽었고, 25만명 부상당했다. 패인은 영국군 지도부의 작전 실패와 양국 지휘관들의 시계가 오작동되어 정확한 공격시간을 놓친 것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안작 데이’날에는 모든 유흥이 정지되고, “누가 나와 함께 Waltzing Matilda로 갈까요.
그들이 강가 호수 옆으로 행진할 때, 죽은 병사들의 영혼은 듣게 될 것입니다. 누가 나와 함께 Waltzing Matilda로 갈까요”라는 내용의 민요<Waltzing Matilda>의 리듬에 맞춰 노병들이 거리 행진을 한다.
그런데 1972년, 여느때와 다름없는 이 행진을 지켜보던 에릭 보글(Eric Boggle)이라는 한 가수가 <Waltzing Matilda>의 선율과 가사를 재해석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평화의 노래를 만들어냈다. 바로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다.
에릭 보글은 행진곡풍으로 편곡된 아름다운 민요 <Waltzing Matilda>에 맞춰 행진하고 있는 노병들을 깊은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군악대는 <Waltzing Matilda>를 연주하고 젊은이들은 아직 그 요청에 답하고 있지만,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어 언젠가 그 어떤 누구도 행진할 수 없을것”이라고 평화를 호소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평화의 노래’라는 평가를 받는 이 노래는 존 바에즈, 프리실라 헛만를 비롯한 여러 포크가수들이 반전 시위나 콘서트 때 즐겨(?)부르는 노래 중의 하나다.
--- 유요비 <시인,문화 평론가> 님의 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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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호주에 대한 정보를 올려 보려구 베껴 왔습니다. HTML을 본지 하두 오래 되나서 버벅,버벅
이제부터는 브리즈번에 대한걸루 올려 볼랍니다.
호주에 대해 아는것이 .원주민 일본의 다윈 침약 중국 쿨리 철강 국 등등 별로 아는게 없었는데 문화나 문학쪽으로는 정말 아는게 없었어요 앞으로도 올려 주세요 공부가 되겠네요 개인적으로 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를 좋아 하는데 호주에 대해서는 무지 합니다
제게 호주 TIME지라고 역사 화보가 한권있는데 원서이구 컴맹이라서 아쉽습니다. 꽤나 두꺼운 책인데 내용이 아주 좋더군요. 세일때 구입했었는데..위의 노래는 저도 여기서 첨배운 호주 민요였답니다...
상아님..감사하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 file중에 (세계 민속 음악)중에 바로 호주민요론 오직 한곡..바로 이곡Walzing Matilda..뿐으로서 자주 듣곤 했었어요..더욱이 제가 가지고 있는 곡은 어린이 버젼으로 예쁜 어린이들의 맑은 목소리로 남자아이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곡인데..전 그동안 무지해서 이 곡이 Walz 곡으로서 단순한 리듬이라 folk dance..만들어 아이들과 추면 좋켓다고만 생각해서 춤동작 모션을 구상해 봣었는데요..이렇케 슬프고 아픈 story가 있는줄은 몰랏네요..상아님이 올려주신 악보에 맞추어 어린이들의 노래를 들으니 더욱 이야기가 맘에 다가오네요..앞으로도 좋은 내용 주시와염..^^
전주만 듣고 가장 웨스턴적인 노래를 골랐습니다... 가사가 나오지 않는 군요.. 맞는 노래인지..쓰...
숀님께서 또 신선한 버젼의 마틸다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