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봉 등반기 [Ⅰ] (김영주)
ㅇ 등반일 : 2001. 4.29(일)
ㅇ 높 이 : 810m
ㅇ 위 치 : 서울시, 고양시
ㅇ 등반자 : KT서울연합산악회 제2기 클라이밍 스쿨 강사진과 교육생, KT연합 산악회 회장과 임원진, 1기 수료생(총18명)
☞ 등반기
오늘은 KT서울연합산악회에서 매년 시행하는 클라이밍 스쿨(제2기)을 수료하는 날이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인수봉을 올라 간다니 꿈만 같다. 백운대에서 인수봉의 클라이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언제 저 곳에 올라보나 하는 부러움이 이제는 부러움의 대상 으로 바뀐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기분 좋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우이동에서 점심용 김밥을 준비하여 6시40분경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석가탄신일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도선사 주차장이 매우 복잡하다. 아직 시간이 일러 매표소를 무료로 통과하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속 좁은 걱정을 하면서 하루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인수봉을 오르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비가 많이 와서 가뭄을 해소해야 할텐데....
하루재를 지나면 인수산장까지는 내리막이다. 이곳부터는 휴대폰이 안된다. 7시20분경 인수산장옆 야영장에 도착 하니 아침식사를 막 끝내고 있었다. 아침에 들어오기로 한 회장님과 김서원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잠시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나를 포함 교육생 다섯 명과 연합산악회 임원진, 1기 수료생, 강사진 등 모두 16명을 4개조로 나누었다.
회장님과 김서원씨는 도착하는 대로 다른 조에 합류하기로 하고 황영순(한국산악회) 강사님과 나, 임연춘(번호 안내국), 윤성원(동작전화국)씨등 4명으로 구성된 우리조가 먼저 인수봉으로 출발하였다. 인수봉을 왼쪽으로 돌아 뒤쪽에서 오르는 코스를 택하였다. 이 코스는 인수봉에서 비교적 쉬운 코스로 만약 비가 올 경우 바로 하산을 할 수 있다고 하며, 우리조는 자일 1동(최소한 조당 2동의 자일이 필요하나 4개조로 나누다 보니 자일이 부족하였음)만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에 피치가 짧은 코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우리가 처음이다.
8시가 조금 넘어 등반을 시작할 지점에 도착하였다. 약 40여분을 올라 왔기 때문에 적당히 땀이 흘러 몸이 가뿐하다. 저 멀리 예비군 교육장이 한 눈에 들어오고, 싹이 돋지 않은 정상부근의 나무와 산허리의 연두색 새싹, 산 아래 짙은 녹색의 숲이 확연히 구분된다. 너무나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찰칵 하고 장비를 착용하였다.
처음부터 직벽 크랙이다. 황강사님이 선두로 크랙을 지나 첫 피치를 간단히 마쳤다. 두번째로 내가 등반을 시작 하여 첫번째 크랙을 힘겹게 통과. 엉겁결에 첫 피치를 마쳤다. 인수봉을 오르기 위한 첫 피치라는 점이 내게는 엄청난 의미로 다가와 어떻게 올랐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확보 줄을 걸고 나서 세번째로 오르는 임연춘씨의 등반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위에서 볼 때 첫번째 크랙을 지나야만 등반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첫 피치를 끊었다.
다음 윤성원씨까지 사진을 찍어주고는 황강사님이 두번째 피치를 시작하면서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 넣고 내가 확보를 보았다. 황강사님이 선두 내가 두번째, 임연춘씨가 세번째로 올라 확보를 하면 황강사님이 다음 피치로 출발하면서 내가 아래에서 확보를 봐주고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윤성원씨는 임연춘씨가 위에서 확보를 보는 순으로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등반을 해 나갔다. 피치마다 내가 사진을 찍어주는 바람에 나의 등반사진은 하나도 없다.
두번째 피치부터 그 동안 배운 기술로 침착히 오르다 보니 한결 수월하고 정말 재미있었다. 절벽의 가운데서 확보 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저 아래 아득히 펼쳐진 능선과 숲들을 바라보니 무서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경치만 눈에 들어 온다. 바로 이 맛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암벽을 오르는가 보다. 황강사님이 갑자기 멈춘다. 아직 정상이 남아 의아해 했는데 이제부터는 그냥 걸어 올라가면 된단다. 사실 다 올라온 셈이다.
도봉산 오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열심히 하고는 인수봉 정상으로 올라 갔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온다. 우리가 올라온 코스가 바람의 반대방향이라서 바람이 없었는데 정상은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벌써 많은 클러이머들이 올라와 있다. 지금시간이 10시를 조금 지났으니까 약 두시간이 걸린 셈이다.
황강사님이 샴페인 대신 준비한 맥주로 인수봉 초등을 자축하며, 김밥과 행동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 임연춘씨가 준비해온 매실주의 도수가 높아 한잔만 마셨는데도 얼굴의 색상이 순식간에 변한다. 인수봉 위에 덩그러이 놓인 바위(사실상 인수봉에 가장 높은 부분) 위에 올라 백운대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는 인수봉 초등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내 꿈 하나가 드디어 이루워진 셈이다.
다른 조가 올라 오려면 두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며, 황강사님이 다시 내려 갔다가 올라 오잔다. 아이고 죽었구나 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귀바위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첫번째 짧은 슬랩은 다른 팀에서 설치해 놓은 자일을 잡고 내려 섰다. 잡목지대를 지나 두번째는 하강기를 이용 내려선 다음 바로 귀바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황강사님은 보이지 않고 위에서 올라 오라는 목소리만 들린다.
자일의 중간을 매듭지어 내 몸에 고정하고 출발 소리와 함께 귀바위로 올랐다. 생각보다는 잡을 곳이 많아 쉬웠다. 귀바위에 오르니 바람이 엄청나다. 만약을 대비 확보 줄을 걸고는 나머지 두사람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귀바위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바람에 몸이 휘청거린다. 저쪽 절벽에 우리 팀의 등반 모습이 보인다. 어찌 된 일인지 사람이 많아 보인다. 서로가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귀바위 아래로 하강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바지와 남방이 몸에 착 달라 붙는다.
귀바위 아래에 도착하니 다른 팀에서 사과 한쪽을 나눠 준다.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산꾼들의 따뜻한 인심이 느껴진다. 우리가 하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하강을 완료하자 바로 올라 간다. 다시 한 피치를 하강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오버행이 있다고 하면서 황강사님이 먼저 내려 갔다. 오버행에서 잠시 대롱대롱 매달린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아직 더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오는 팀들이 많아서 황강사님이 귀바위 옆으로 올라 가 잔다.
이때 저 아래서 헬기 소리가 요란하여 내려다 보니 누가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구조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우리도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이기 때문에 안전에 더욱 주의를 하면서 두번째 등반의 첫 피치를 올라서니 아까 귀바위로 오른 지점이다.
귀바위를 뒤로 하고 정상쪽으로 올라야 하는데 약 3미터 정도가 일직선으로 바위에 손가락 두개정도의 좁다란 홈만 파여 있다. 쉬울 것 같았는데 발과 손이 일직선으로 위치하다 보니 중심이 조금만 흔들려도 미끄러지고 만다. 다들 잘 올라가는데 나만 두번이나 몸이 돌면서 미끄러 졌다. 세번만에 간신히 올라서 홀더를 잡은 다음 크랙이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손이 잘 잡혀 쉽게 올라 갔다. 아까 내려온 잡목지대와 슬랩을 지나 다시 정상에 도착하였지만 아직도 우리팀외에는 아무도 없다. (나중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다시 내려간 사이 전상일씨조가 올라 왔다가 하산 하였음)
다시 한참을 기다리니 유형근씨가 올라오고 뒤이어 임송열, 이두영씨가 올라 왔다. 두개조가 합친데다 회장님과 김서원씨까지 가세하여 열명이 등반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전상일씨 조를 제외하고 14명이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정상주를 한잔씩 돌려 마셨다. 기념촬영을 하고 하강코스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하강코스에서 대기하고있었다. 차례대로 자일을 걸고 하강을 시작했다.
우리는 인원이 많아 두군데에 자일을 걸었고, 한번에 하강을 완료하기 위하여 60m 자일 두개를 연결하였다. 8자 하강기에 자일을 건 다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처음 출발은 자일의 무게 때문에 오른손으로 자일을 풀어줘야 내려 갈 정도다. 잠시 후 오버행 구간에서 몸이 허공에 매달리면서 내려갔다. 절반 정도 내려오니까 자일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손바닥이 뜨끈뜨끈 해지면서 땀이 베어 나온다.
잠시 후 드디어 평지에 도착하면서 스릴 있는 하강을 완료함과 동시에 나의 인수봉 초등도 끝났다. 많은 팀들이 모두 이곳으로 하강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바람 때문에 자일이 엉키기도 하였지만 전원이 무사히 하강을 완료하고 장비를 정리한 다음 야영장으로 내려 왔다. 야영장에 도착하니 4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이어서 박종수(가락), 계원의(중랑), 반정숙(고객센터)씨가 축하차 방문한 가운데 수료식과 기념촬영을 하고는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였다. 차량이 없어 모두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우이동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우이동 계곡 어느 음식점에서 막걸리로 간단히 자축행사를 하고 6시40분경 다음을 기약하면서 헤어 졌다.
☞ 후기
난생 처음 인수봉을 등반한 초보자로서 인수봉을 수시로 오르시는 분들에게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언제나 저 곳에 한번 올라 보나 하는 내 꿈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무지하게 뜻 깊은 날이다. 아직 초보자로서 인수봉의 코스라든가 암벽등반에 대한 이론, 장비명과 사용법, 용어 등이 생소하지만 자꾸 오르다 보면 익숙해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암벽등반에 뜻이 있으신 분들은 내년 3기 클라이밍 스쿨을 기다려 주시기 바라며, 지난 5주간 우리를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성원해 주신 황영순, 조유동, 차성재 강사님과 KT연합산악회 회장님과 임원진, 1기 수료생, 정회원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