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요
이성봉(목포 북교동 성결교회-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증도로 들어가려는 문준경을 붙들고 목포에서 잠시만 더 기다리자며 했던 말씀입니다.
“전도사님, 지금 가면 죽어요.”
문준경 전도사는
“목사님, 죽어도 좋아요.”
내가 안가면 교인들(증동리교회) 다 죽을 것이라며 서둘러 들어갔습니다.
1950. 6․25. 증도(신안군)까지 밀려온 공산군에 붙들린 문준경과 몇 사람은 목포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런데 목포에 가보니 국군이 곧 들어온다며 공산군이 물러갔습니다.
그들을 압송했던 자들도 도망치고 문준경이 풀렸습니다.
문준경은 아직도 공산군과 좌익이 남아서 주민들을 끌어가고 죽이는 증도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발악하는 공산당에게 붙들려 동네 앞 바닷가 모래밭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알을 많이 깐 씨암탉이라며...“ 많은 사람을 예수 믿게 했다는 것이지요.
1950년 10월 5일이었습니다.
“백 전도사를 살려주시오. 우리 교인을 죽이지 마시오. 당신들도 예수 믿으시오...”
마지막 부탁이고 유언이었답니다.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사람.
그가 섬마을 사람들에게 외쳤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주민들을 섬겼던 사랑의 발자취.
그 섬(증도)에 90% 기독교인 열매를 맺고
점점이 박힌 도서지역에 100여개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곳에 갈 때 마다 ‘순교 신앙, 예수 사랑’을 배우며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웁니다.
증도는 한국의 기독교 성지입니다.
이 시대에 잠들어 있는 한국 교회를 흔들어 깨우는 순교자의 외침이 들리는 곳입니다.
여기(버스 옆),
이 자리에서(여 집사님이 무릎 꿇은 자리) 문준경 전도사님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났지만 모래밭이었고, 죽은지 8일 만에서 시신을 수습했었습니다.
우리는 전도사님을 생각하며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김상원 목사님(증동리교회 담임)의 감동적인 안내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