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계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뒤늦게 들려온 소식이건만, <내 사랑 깨몽>, <내 짝꿍 깨몽>, <키스미 깨몽>으로 이어지는 <깨몽> 시리즈를 그린 이보배 화백(본명 전경희)이 지난 22일에 지병으로 별세한 것이다. 1953년생으로 1970년에 <별의 꿈>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故 이보배 화백의 남편은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를 그린 이진주 화백이며, 이 두 화백은 1980년대 한국 순정 만화계의 주역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물으면 흔히 알려진 연예인이나 위인의 이름 보단 만화가의 이름을 말하곤 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만화'와 만화가들은 불량 정치인이나 불량 경제인 보다 못한 음지의 예술가들이란 평가를 받아 왔다. 전성기를 맞은 한국 만화시장을 토대로,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머털도사>, <날아라 슈퍼보드> 시리즈와 같은 만화책 원작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이끌었고, 이에 덩달아 문화콘텐츠 육성 분위기가 고조되었지만 만화가들에 대한 대접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무명 만화가들은 누추한 다락방에서 살면서 가스비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 실정이며, 거기에 더하여 우리가남이가 영남왕국 정권은 언론이 문화콘텐츠가 해외에서 수 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하면 부랴부랴 문화콘텐츠 육성 지원금을 편성해 놓고는 문화콘텐츠계가 지원금을 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문화콘텐츠계를 향해 몽둥이를 드는 원압양면전술을 꾸준히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저항은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만화사냥에 맞서 싸웠던 이현세, 황미나 등을 철저하게 지지 세력으로 만들었다.
<못말리는 천사하나 악마하나>, <사랑은 내멋대로>와 더불어 <보물섬>에도 연재된 이보배의 대표 작품 <내 사랑 깨몽>은 인간을 사랑한 죄로 지상 세계로 쫓겨나 청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천사가 사랑하는 남자 아이 앞에서는 먼지 인형으로 변신해 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깨몽'의 뜻은 '꿈(夢)을 깨라'는 문장을 한글과 한자를 섞어 만든 단어로, 요즘에도 종종 '깨몽'이란 단어를 쓰는 어른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인 이진주는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가 애니메이션화된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이보배는 알고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때, 많은 학생들을 울리고 웃겼던 즐거운 만화책들, 그러나 오햇동안 존중받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1, 2세대 만화가들의 가치를 지금이라도 인정해 주고 싶어도 그 시절의 자료조차 흔치 않은 게 작금의 상황이다. 연예인 인터뷰는 사이버 공간이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정작 한국 순정만화계의 전성기를 이끈 이보배 화백의 인터뷰는 찾기가 어렵다. TV 중심의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일반 서적과 만화책도 많이 화려해졌지만, 그 시대의 상상력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느낌만을 줄 뿐이다. 이진주, 이보배 화백 부부가 필명으로 삼은 '진주', '보배'는 그들의 두 딸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위한 만화를 많이 그렸던 화백답게 딸들을 아주 많이 사랑했을 것이기에 이보배 화백의 별세는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