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 아파트 외 4편
이금주
버스를 타고 거리의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내 속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짧은 파마머리에 즐겨 입던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뒷모습 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어머니 앞에 서는 찰나 내 머리 속으로 환하게 뜨는 북두칠성 별자리가 보였습니다 창가에서 새를 부르는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
노을이 제 몸에 붉은 물을 듬뿍 들이고 나서야 천천히 새의 입을 열어 울음 한 점 꺼냈습니다
진달래꽃, 오롯이 내 안에 물들고 있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빼꼼이 열려 있는 현관으로 들어갔네
식구들은 액자 속 정물처럼 앉아 있네
TV 속 남자가 옷장을 열고
내일 출근할 옷을 고르네
물방울무늬 넥타이가 젖어 있네
없어진 옷의 출처를 물어도 대답이 없네
조용한 식구들 틈에 앉아 눈인사를 하네
큰애가 슬며시 일어나네
꼭 잡는 내 손
아무런 느낌도 없는지 태연하게
제 방으로 들어가네
한 사람씩
들어가 방문을 꼭꼭 닫네
문을 사이에 두고
하늘과 땅
다시는 넘을 수 없는 금을 긋네
붙박인 자리에서
손을 놓쳐버린 달
구름 속으로 꼭꼭 숨어버리네
라일락
상처 난 당신의 파란 면도 자리에
따갑다고 엄살 부리며 바르던 스킨로션의 향
절 마당 팔작지붕에 걸린 바람을 적시네
연못 속을 돌아 나와
탑돌이하는 어둠을 껴안으며 바닥을 치고 하늘까지 오르더니
달무리를 따라 돌며 화엄을 이루네
먼 사막 길을 걷고 있는
거칠어진 손금 위로
엉켜버린 묵은 길의 쳇증
환하게 뚫리네
달의 길을 즈려밟고
천천히 다가오는 얼굴
나를 에워싸며
점점 환하게 피어나네
달맞이꽃
초저녁 별들의 유랑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어둠의 깊이를 어림하고 나서야
놀이터는 그녀를 방목하네
낙타 등을 오르락내리락
마두금을 켜네
줄을 잡고
망고나무 푸른방을 기웃거리네
바람의 그네에 앉아 구름의 젖을 먹고
긴 트림을 하네
품안에서
순한 한 마리 놀이터가 꿈틀거리는 언덕
쉼 없이 달그락거리는 마음속을 응시하며
달랏마을* 찾아 가는 동안
가로수에 걸린 달은
망고처럼 노랗게 익어가네
*미안마의 지명
매미
19층 절벽
취한 별빛의 손으로 내 허리를 감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 위로 물결치는 구름의 입구는 역방향으로 지나가고
발밑의 중심축은 출렁거린다
바깥쪽과 안쪽
그 거리만큼 위태로운
등과 가슴 사이
내 침실에 산란한
간절한 울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목을 뜨겁게 달구며
은밀하게 능청스럽게
때로는 고집스럽게
애태우는
당신의 침묵
이금주_200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혹시! 거기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