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외교사는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었을까?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 굴욕적인 관계로 지내던 조선은 근대사회로 접어들어 제국주의 열강들이 문호개방 요구에 시달렸다.
그러나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등으로 서양 오랑캐를 막아냈다고 생각한 대원군의 조선은 더욱 쇄국의 길로 빠져 들었고, 우리보다 먼저 외국에 개항(開港)을 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자기들이 당한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강압으로 수교를 요구하였으니 바로 운요(雲揚)호사건이며 그로인하여 불평등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을 맺게 된다.
이후 서양 여러나라와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그 첫 국가가 미국으로 1882년에 조.미 수호 통상조약을 맺게 된다.
뒤를 이어 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 관계를 맺게 되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과 강제로 을사늑약(1905)을 맺고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니 이후 해방때까지 사실상 자주적인 외교관계는 없어진다.
주한 美 공사관
이렇게 개화기 당시의 수교국가들중 (일본을 제외하고) 첫 공관을 설치한 나라가 미국이며 당시의 美 공사관 지역은 현재 미국 대사관 관저로 쓰이고 있다. 물론 지금은 번듯한 건물을 새로 지어 사용하고 있으며 옛 공사관 건물은 대사관저의 부속건물로서 손님접대등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2006년 리모델링하여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미국 공사관은 미국의 재외공관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외국 공관이다.
또한 1884년 조선 왕실이 서양인에게 매각한 첫 부동산이자 미국 정부가 해외에 갖고 있는 공관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옛 美 공사관 건물은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된 우리의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대사관저 안에 위치한 관계로 평상시에 들어가 볼 수 없다. 필자는 근대문화유산 답사의 일환으로 방문, 답사하기를 청하는 신청서를 미 대사관에 보낸바 있으나 정중하게 거절 당한 이력도 있다.
그러던차에 2015. 5. 29~30일 양일간 서울 중구 주관으로 시행한 '정동 夜行' 행사와 관련하여 미 대사관저의 일부를 제한적으로나마 개방하는 행사가 있어 서둘러 다녀왔다. 자연스럽게 美 공사관 건물을 접하게 된 것이다.
<개방행사 덕분에 들어가 본 미 대사관저 마당의 옛 공사관 건물, 깔끔한 모습이며 손님을 맞는 곳으로 쓰는 듯 하다.>
<기역자 한옥의 꺾어진 왼쪽 부분, 창문 2개를 제외하고는 벽돌을 쌓아 막힌 구조인데 내실이거나 부속실등으로 보인다.>
<꺾어지는 중간부분에는 정자살창과 띠살창을 달았는데 여닫이 기능이 있어 보인다.>
<건물의 오른쪽, 주된 용도인 응접실등 손님 접대 공간으로 보인다.>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 본 실내,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초창기 美 공사관 모습, 현재와 달리 일자형 팔작지붕 독채건물이다.>
<1952년, 6.25전쟁 기간때의 美 공사관 모습, 왼쪽 기역자 꺾어진 부분이 증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6년 리모델링 이전의 모습, 현재 모습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혹자는 이날 미 대사관저 개방이 180년만에 처음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공개행사 덕분에 그동안 미완으로 남겨두었던 美 공사관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관람객들이 넘쳐서 오래 기다리고, 잠깐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모두 질서있게 협조하여 잘 진행되었다.
얼마전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도 있고해서 경호는 나름 삼엄하였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사관저 본관지역은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행사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 차례대로 입장하여 검색대를 통과후 돌아 볼 수 있었다.>
<옛 공사관 건물 뒤편에 새로지은 대사관저, 서울에 있는 외국 대사관저중 유일하게 한옥 형태로 지었다.
1970년대 관저 신축때 미 국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하비브 대사가 추진하여 '하비브 하우스'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해외 대사관저중 최초로 주재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라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 계 속 >
첫댓글 미대사관 내부가 궁금햇는데 잘보았습니다.
하비브 주한 미대사는 레바논계 아랍인 이민자 출신으로
한국당자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로 그는 마치 주한 미총독 처럼
군림을 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공식행사 참여할때는 박대통령이
먼저 도착한 후에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행위로 자신을 주재국 대통령보다
크게 부각을 하곤 햇습니다. 그런자가 전통한국건물 양식을 택해 대사관 건물을
지은것은 의외로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