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부에 위치한 네그로스(Negros)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시키호르’(Siquijor)에 있는 ‘맘바바랑’이라는 마법사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맘바바랑’이란 돈을 받고 저주를 내리는 전문적인 주술사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매일 자신의 명부에 올려진 사람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맘바바랑의 말에 의하면 의뢰명부에 오른 사람들은 어김없이 아프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큰 병이나 화를 막기 위해서 민간신앙에서 사용하던 ‘제웅’이 있습니다. 때로는 ‘제웅’이 상대방을 저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역사를 보면,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중전이 되었으나,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며 희빈으로 다시 강등됩니다. 장희빈은 자신의 복위를 위해 제웅을 만들어 무녀에게 인현왕후를 저주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되어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죽게 되었습니다. 맘바바랑이 하는 일은 이처럼 무녀가 사주를 받아서 저주를 했던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지막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성당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맘바바랑’이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촬영하던 취재진도 궁금했는지 그가 왜 이곳에서 기도하는 가를 묻자, ‘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능력 있는 ‘맘바바랑’이 되기 위해 성당에서 ‘성 안토니오’(Saint Anthony)에게 저주를 내리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사마리아성에 살았던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행8:9-24)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도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살아나게 됩니다. 그 생명은 일시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든지 살리는 것입니다. 신학도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신앙도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교회도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삶도 살리는 일에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람을 죽이는 어두운 역사도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 교회는 그들의 전통과 교리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고문하거나 죽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금년은 한글성경 완역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성경을 번역한 자들의 경우에는 장대에 묶거나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태워 죽였습니다.
위클리프(Wycliffe)의 경우에는 이미 매장되었던 뼈를 꺼내어 그의 저서들과 함께 불태우기까지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틴데일(Tyndale)을 비롯하여 후스(Hus), 크랜머(Cranmer), 로저스(Rogers) 등도 차례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와 같이 지울 수 없는 과오를 범한 원인은 기독교의 본질이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볼 때 무가치해 보이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살리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강단에 서는 저와 같은 목회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불신 영혼을 살리고, 잠자고 있는 성도들의 영혼을 살리고, 세상에서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통해서 주변에 소외되고, 어둠 가운데 탄식하는 사람들을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와 같이 마땅히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살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개인이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지역이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고, 세계가 살아나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