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즐거움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돌멩이와 나무토막 - 시골에서 가장 필요한 것
나는 시골에서 생활하려면 부족한 게 많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부족한 것보다는 버려야 할 것이 훨씬 많다. 불필요한 것들만 잔뜩 지고 온 셈이다. 시골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마당에 자란 풀을 베어낼 낫이나 장맛비에 물길을 잡아줄 곡괭이, 눈만 뜨면 마당에 수북하게 쌓이는 낙엽들을 쓸어낼 대빗자루며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을 밀어낼 넉가래, 지붕 위로 날아간 빨래를 걷어 내릴 사다리 같은 것들이다.
시골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몇 자루의 튼튼한 연장들 그리고 돌멩이와 나무다. 가장 흔하지만 이것이 시골 생활에 가장 필요하다. 돌은 계단을 쌓거나 담장을 쌓을 때, 하다 못해 추녀 밑의 낙숫돌로도 요긴하다. 나무토막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시골 사람들은 나무토막이나 돌맹이가 눈에 띄기만 하면 습관처럼 주워다가 집 구석에 쟁여두곤 한다. 요즘엔 나 역시 그것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못 하나 노끈 한 도막이라도 요긴히 쓰일 데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읍내에 누가 이사를 와서 집들이를 가면 그 집 앞에 내다버린 물건들을 기웃거리다가 개집 만들어줄 만한 낡은 책상도 얻고, 고추 말릴 때 깔개로 쓸 만한 비닐 장판도 찾아낸다. 이처럼 시골 생활에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더 귀하고 소중하다. 시골에서는 읽지 않고 쌓아두는 책 한 권보다 길이 잘 든 망치 한 자루가 더 절실한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애지중지하며 끌고 다니던 책들을 불쏘시개로 던져 넣을 때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시골에서 살려면 적어도 바람에 떨어진 문짝이나 비가 새는 지붕 정도는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하고, 고무래도 직접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손재주가 없다고 해서 매번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지만 이런 일들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집 뒤꼍이나 한 귀퉁이에 널빤지로 직접 만든 광에 가지런히 걸린 연장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 비로소 시골 생활을 할 자격이 있다고나 할까.
시골 생활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본다. 아마도 뒷산에서 옹이 박힌 소나무 등걸을 찾아내어 현관문 손잡이라도 손수 깎아 만들 줄 아는 마음, 그것을 아끼고 소중히 할 줄 아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시골 살이는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 마음보다 가진 것을 덜어낼 줄 아는 겸손한 마음, 그리고 천천히 살아가는 여유를 일깨워 준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짓고 살까 - 시골로 이사 오려는 사람들에게
도시에 생업을 두고 시골에 산다는 것은 꽤 고달프고 성에 안 차는 일이다.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가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텃밭에 앉아 풀 뽑는 일조차 벅차다. 사소한 듯하지만 하나같이 때를 놓쳐선 안 되는 일이고, 다른 사람이 해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농사짓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팔자 좋은 소리일 테지만, 도시 생활과 시골 생활 양쪽을 균형 있게 해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사실 좀 덜 먹고 덜 쓰더라도 직장 그만두고 농사를 짓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릴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답답할 때 흔히 “시골 가서 농사나 짓고 살까?” 하고 말하는 소리는 철없이 들린다. 농사가 어디 만만한 일인가.
시골에 정착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요즘 시골에는 노인과 개만 남은 듯하지만 더러 씩씩하게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토종닭에 유정란, 천연염색, 유기농사, 숯가마 등 나름대로 전망 있는 생계 대책을 짜서 들어온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나선 사람들은 대체로 확고한 뜻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본인은 시골 생활의 초보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많은 귀농?영농 서적을 읽었다 해도 땡볕에 호미 들고 온종일 김을 매어보지 않고서는 시골 살이의 현실을 깨달을 수 없다. 농사체험을 쌓기도 전에 지식적인 농사 계획을 고집한다면 호된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귀농지를 선택할 때는 집과 농지 구입에 집착하기보다는 시골에 정착할 수 있을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두 해쯤 농지와 집을 임대하여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다. 마을의 작목반이나 농촌지도소의 영농반에 들어가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그리고 지역별 특화 농작물을 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전업농이 되고자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시골에서 도시의 편리한 생활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단기간에 큰 소득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농사 경험도 없는 입장에서 가진 돈을 농사 자금으로 다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적어도 3년간은 소득 없이 지낼 수 있는 여유 자금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업 귀농을 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유기농을 중심으로 하여 귀농 단기교육을 주선하고 농촌주택 지원사업을 하는 곳도 있으니 알아보면 좋을 것이다. 귀농을 도와주는 단체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 시골 가는 길
시골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 시골 살이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나는 내 손에 쥔 돈으로만 땅을 사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몇 년간 열심히 돈을 모아서 시골에 가 보면 땅값은 훌쩍 뛰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푼 두 푼 모아서는 도저히 달아나는 땅값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때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 맞는 융자 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가개량자금’이라는 이 상품은 헌 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농협에서 장기 저리로 2000만 원을 빌려주는 것인데,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큰 땅을 쪼개 팔려고 하지 않는 땅 주인들이 많아 결국 무리하여 400평 규모의 땅을 사고 났더니 집 지을 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농가를 얻어 700만 원짜리 전세 살이를 하면서 집 지을 돈을 열심히 모았다.
전세 살이를 하게 된 불당골의 시골집은 언덕바지에 있어 전망이 좋고, 마당과 300여 평의 취밭이 있었다. 하지만 야트막한 산자락도 거느리지 못한 남향집인지라 여름이면 무척 더웠고, 장마철에는 지하철 모터펌프가 물에 잠겨 정전이 되었다.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 무척 추웠고, 낡은 기름보일러는 수시로 고장이 났다. 겨울에 얼어붙은 지하수는 제비가 올 때까지 녹지 않아 아내는 겨우내 물을 길어다 먹었다.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습기 찬 욕실을 온통 분홍색 페인트로 칠하여 수족관처럼 만들어놓고 회벽에는 백석의 시를 적어 놓았다. 마당에는 홍당무, 참외, 수박도 심어 먹었다. 지금은 그곳을 떠나와 새집을 지어 살고 있지만 지금도 추위와 더위로 고달팠던 그 허름한 시골집을 떠올리면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땅을 사놓고 전세 살이를 했지만 전세부터 살면서 시골 생활 경험을 하고 나서 땅을 구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열심히 땅을 구하러 다니던 무렵, 땅값이 모자라 고민하는 내게 한 노인네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모르지만 어차피 죽으면 떠날 집인데 내 집이면 어떻고 남의 집이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왜 땅을 사려고 하는지 반문했다.
실제로 시골에서는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도 많다. 어느 마을은 땅 전체를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땅에다 집을 짓고 대를 이어 잘 살고 있다. 시골에 빈집이 늘어가는 처지라 대체로 전세금 몇 백만 원만 있으면 오래도록 이사 걱정 않고 살 수 있으니 남의 집에 산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허망한 욕심에 사로잡혀 살던 도시의 삶을 버리지 못한다면 시골에 온다 한들 행복할 수 있을까.
아이는 시골에서 더 크게 자란다
시골 생활에 뜻을 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는 자녀 교육 문제다. 하지만 진실로 아이들의 교육적 성과를 원하는 부모라면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 아이들을 묶어놓고 성적 경쟁을 시키는 교육 환경에 찬성할 리가 없다. 그러나 막상 내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들면 행동 발달보다 석차부터 살피게 되지 않는가.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란다면, 남을 꺾고 이겨야만 내가 잘산다는 치열한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를 바란다면 교육 문제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시골 학교는 도시의 아이들이 받을 수 없는 교육을 제공한다. 우선 학생 수가 적어서 선생님은 아이들을 세심하게 지도할 수 있다. 또 아이들은 충분히 깊이 있게 친구들을 사귀면서 스스로 사회 생활하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같은 학년이라도 반이 다르면 얼굴조차 모르는 대도시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재정 형편이 빠듯하다 보니 교육 시설이 미흡하고, 작은 마을 안에 극장이나 전시장 같은 문화공간도 변변치 않다. 그러나 시골 학교만의 문화 공간이 있다. 학교 운동장에는 노루가 내려오기도 하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개울에서 천렵을 하고, 겨울이면 산토끼를 쫓아 뛰어다닐 수 있으니 감수성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자연보다 훌륭한 문화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더 고민해야 한다. 야간 자습과 보충, 그것도 모자라 특별 보충이라는 이름으로 밤 10시까지 딱딱한 의자에 붙잡아놓는 것,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을 과외학원에 붙잡아놓는 교육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교육자로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교육 문제가 시골에 사는 일의 걸림돌은 아니라고 믿는다.
3. 나의 좌충우돌 시골 이야기
그 낫은 뭐 하러 들고 나왔수 - 낫 들고 부역하기
불당골 마을에서 전세 살이를 할 때였다. 이사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새벽 여섯 시쯤 누가 방문을 마구 두드리며 소리친다. 기겁을 해서 깨어보니 뒷집 아줌마였다. “부역 나와욧!” 깜짝 놀라 부역이 뭐냐고 물었더니 뒷집 아줌마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해 준다. “마을길에 풀 베는 거 말예요. 빨리 낫이나 들고 나와요.”
어쨌든 낫을 들고 허둥지둥 나가보니,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내 낫을 쳐다보고는 혀를 찬다. “아니, 그 낫은 뭐 하러 들고 나왔수?” 마을 반장님이 왜 야단치는지 몰라 멀거니 서 있자, 내가 들고 나온 낫은 나무 자를 때 쓰는 조선낫이라는 것이다. 시골 생활을 기념하는 의미로 철물점에서 산 그 낫은 날이 두툼하고 자루는 투박한 게 제법 터프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낫을 보니 맵짜고 날이 얇았다.
면박을 듣고 나서 나들처럼 앞서 검객처럼 멋지게 한 손으로만 풀들을 베어 나가는데 반장님이 또 소리를 친다. “아니, 무슨 풀을 그리 베오? 낫질 안 해봤소?” “안 해봤는데요.” “벌초도 안 해보았수?” “예초기로 했는데요.” 반장님은 혀를 차며 직접 시범을 보인다. 한 손으로 풀을 한 묶음 잡고 밑동을 싹싹 자르는데 거의 신의 경지처럼 보인다. 뒤를 돌아 내가 베어낸 곳을 보았더니 잘리다 만 풀들이 들쭉날쭉하게 남아 있어 남들이 베어놓은 자리와 너무 달랐다.
구박과 조롱을 실컷 듣고 나서도 열심히 ‘부역’을 하는데 멀리서 또 반장님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또 다른 부역 초보자를 꾸짖는 소리였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 보니 내가 보기에도 얼토당토않은 걸 들고 있었다. 나뭇가지나 향나무 다듬을 때 쓰는 커다란 전지가위였다. 부역을 끝낸 뒤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마실 때 나는 한 구석에서 그이와 통성명을 하고서 시골 생활의 설움을 토로했다. 아, 부역은 고달프다.
봄을 도둑맞다 -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
얼어붙어 있던 겨울 들판이 마술처럼 되살아나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푸른 향내가 물씬 느껴진다. 봄나물 캐는 즐거움을 알게 되자 나도 몇몇 풀들의 이름을 읊어댈 수 있게 되었다. 봄이 되면 물골안은 한바탕 나물 소동이 벌어진다. 찬바람 가시기가 무섭게 아침이면 배낭을 둘러멘 노인들이 나타나고, 조용하던 골짜기는 모처럼 사람들 말소리로 가득하다. 저녁이면 노인들은 배낭이나 자루에 나물을 가득 채워 나타난다. 때론 나물 캐는 노인들을 보면서 봄이 깊어지는 단계를 느끼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관광버스가 들어서더니 웬 젊은 사람이 노인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게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재래시장에 나물을 공급하는 업자가 노인들을 고용하여 산나물들을 뜯어가는 것이었다. 강원도 어느 곳에선가는 산채가 돈벌이가 좀 된다 싶으니까 아예 외지인들은 산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는 말도 들었다. 뒷맛이 씁쓸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삿속에 의해 봄나물 순례가 지나고 나면 들판은 비참해진다. 새순이 나기가 무섭게 두릅을 뜯어가는 바람에 두릅은 아예 구경조차 못한 적도 있다. 작년에는 웬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 옆 골짜기로 들어가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둥글레를 뜯으러 간다고 했다. 잎사귀나 좀 뜯어가겠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둥글레를 전부 뿌리채 뽑아가서 군락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났더니 외지 사람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봄나물로 봄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욕심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자루 가득 담아내는 봄이 아니라 자그마한 소쿠리에 가득한 봄으로 말이다.
4. 아름다운 나의 이웃
경적을 울리지 않는 사람들
수동은 차로 달리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고개만 넘으면 차들로 꽉 찬 경춘국도가 있는데 터널만 빠져나오면 바람 냄새가 완전히 달라지고 화창하던 날은 금세 안개나 이슬비에 덮이곤 한다. 게다가 마석에서 가곡리 고개를 넘어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 무렵으로 돌아간 듯하다. 고개 하나로 이웃해 있는 마석은 도회지가 되어 버렸지만 수동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곳 사람들의 여유로움 때문이다.
이곳에선 차가 새치기를 해도 불을 번쩍거리거나 경적을 울려대지 않는다. 무슨 바쁜 사정이 있나 보다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집 설계비를 깎아준 사무소 사람들,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알아봐주던 공무원, 서로 집안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철물점과 설비상회, 기름가게….
오랫동안 한집안 식구나 다름없이 지내온 이곳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상부상조하며 살아간다. 철물점은 중국집에서 자장면 사먹고, 중국집은 그 철물점에서 문고리를 사는 식이다. 고개만 넘으면 대형 할인매장도 있고 버스가 할인점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작은 가게들은 별 문제가 없다. 그리고 마을에 단 하나뿐인 목욕탕에 가면 서로 모르는 얼굴이 없다. 적어도 이 골짜기에서는 언제 다시 보겠느냐는 배짱을 부릴 수 없다.
나는 이제 절대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누군가 새치기를 해도 바쁜 일이 있나 보다, 혹시 누가 아픈 걸까 하며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
수동의 마당발과 해결사 - 수동의 지킴이들
시골에 살다 보면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 내가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수산리에서 도예원을 하는 물골안 마당발, 지곡님이다. 40평 가량의 황토집을 지을 때도 아는 사람이 산에서 벤 나무를 내어주고 여러 지인들이 집 짓는 작업을 거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손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곡님의 집에는 산업용 보일러 기름통을 개조하여 만든 커다란 화목난로가 있다. 그 숯불에 구워 먹는 돼지고기는 별미 중 별미다. 낮이 궂어서, 철이 바뀌어서 등등의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소박한 잔치를 벌이곤 하는 지곡님에게선 늘 구수한 장작과 흙 냄새가 난다. 몇 해째 신망애 재활원 장애아들에게 도예를 가르쳐주고 있는 지곡님은 말 한마디 못하던 자폐아가 이제는 노래도 잘하고 흰머리를 뽑아주기도 한다며 기뻐한다.
먹구름님도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무엇을 어디 가면 싸게 살 수 있는지 훤하다. 그의 넓은 정보망 덕분에 나는 빨간 벽돌을 개당 80원에 살 수 있었고, 제대로 된 화목난로를 장만할 수 있었다. 지금 먹구름님은 송천리의 농가를 수리하여 살고 있는데, 서울 명문 사립중학교의 교사인 먹구름님은 바쁜 중에도 귀농학교 교육을 받았고, 뜻 맞는 이들과 함께 물골안에 대안학교를 세울 궁리를 하고 있다.
가뭄에 논밭 갈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농부에겐 먹구름이 가슴 설레는 희망이듯이 먹구름님은 이곳에 새 희망을 가져다주는 단비 역할을 해낼 것이다.
5. 언덕 위의 해뜨는 집
집에 대한 반성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집에 대한 관심도 커졌지만 집은 집일 뿐이다. 이탈리아산 대리석이니 수입원목 싱크대니 하는 값비싼 치장에 치중하기보다는 안락한 보금자리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집을 지을 때 나도 이런저런 책을 뒤져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꼬치꼬치 물어보곤 했다. 가능하면 최상의 집을 짓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니 벽 모서리에 금이 가거나 칠이 벗겨졌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옛집들은 어떠한가.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자귀로 턱턱 찍어내어 대충 기둥을 세운 것 같지만 선조들은 그 기둥에 의지하여 몇 대를 살아왔다. 툇마루 골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락날락하고 더러 동전이 빠질 만큼 큰 옹이 구멍도 뚫려 있었지만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요즘 현대식 서양 주택은 너무 반듯하고 빈틈이 없다. 단열을 위해 납상자처럼 차단한 집을 보면 사람이 집에 갇힌 것만 같다. 집 짓는 데 정밀 나노공학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텐데 시골 살이 하는 집이 좀 촌스러운들 어떤가. 오히려 자연과 닮은 듯 여유 있어 보이지 않겠는가. 단열 좋고 방음도 완벽한 시스템 창호보다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드나들고 새소리도 흘러드는 소박한 창문이 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시골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 조금은 춥고 덥고 불편하더라도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집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집을 지키고 살기보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지켜주는 집 말이다.
저녁 내내 달이 뜨는 집
집을 짓는 전문가들 중에는 집을 설계하기 전에 집터에 가서 아예 천막을 치고 들어앉아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 달은 어디로 흐르는지, 산은 어떻게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살펴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먼저 들어가 직접 살아보면서 주변의 자연과 집이 어떻게 어우러질지를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집이 수동에도 있다. 그 집은 달이 뜨는 순간부터 질 때까지 은은한 달빛이 집 안에 깃들도록 반원형으로 창을 내었다. 밤기차 타고 갈 때 좇아오던 달을 생각나게 하는 아름다운 창이다.
그런 반면, 주물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공장에서 집을 만들어 싣고 오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싫증이 나면 언제든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도록 혹은 제자리에서 방향을 돌릴 수 있도록 집채에 바퀴를 단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집은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진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느껴지게 하는 집. 생각해 보면 우리의 옛집이나 고찰이 바로 그런 경우인 듯하다. 산 속의 별장이라고 할 수 있는 담양의 소쇄원은 뒤쪽 울타리를 돌아 개울물이 흐르고 대나무 숲을 빠져나온 바람이 집 안으로 드나들게 되어 있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많이 바쁜 것 같다. 집 지을 때만 봐도 그렇다. 비탈진 언덕이라면 까치발을 띄우고, 움푹 파인 고이라면 돌멩이를 차곡차곡 쌓을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집을 지을 때 시공자에게 던진 첫 질문이 돈이 얼마나 드는지였고, 다음 질문이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였으니까.
바람과 달빛과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풍취는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생활의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를 먼저 갖춘 자에게만 주어지는 행복이다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근데요 멍멍탕??? 올 저녁 멍멍탕먹은것 눈치채셨나요?
깊게 되집고 곱씹고 느끼고 깨달아야할 내용입니다...저도 10년넘는 귀농병에 시달리며 이런것들과 친숙해지고 난 다음에서 실행을 할수있었습니다... 귀농을 염두해두는 솔로님들...꼭~~ 되씹어 봐야할 농촌의 현실이자 내가 찾는 이상향도 바로 이글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꼇으면합니다..
ㅋㅋㅋ---- 전 멍멍탕 아니 먹습니다.... 마니가 아니고 아니요....어서 들은 이야긴디요...불교에선가....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전단계가 개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먹는것 삼가하도록 하심이 어떠신지요....ㅎㅎㅎㅎ
글구 서울과 인근에 사시는 분들 모임 한 번 없나요...주위에 사람은 넘치지만 우찌 마음 가는 곳이 없는 스산한 12월 ...새로운 만남에 작은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허기진 가슴을 부비며 파고드는 바람으로만 체울 수 없는 까닭인가요 모임이 다 지방에서 이루어지니 그리 쉽게 나서질 못하겠군요......함튼 ...보고잡다...아님 그냥 미지의 거시기로 남겨둘까나....ㅎㅎㅎ
서울인근 추진해 보시지요...안산전국정모에서 솔로모임하면 독채하나를 내어준다고합니다.. 절호의 찬스아닌가요? 충방모임하고 서울올라가는길이라 모임있다면 참석하고는 싶은디..;;; 지방정모라도 여행삼아 댕겨온다 생각하면 나서시는데 어려울것도 없지 않나요? 저도 여그서 괴산갈라면 솔찮이 멀답니다...^^~
귀농이라는 단어풀이 같군요. 귀농자상은 여러가지 형태이겠지만...대부분이 인디언님께서 풀이하신...그런 모양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딱 꼬집어 "그래! 이모양이야!"라고 할 수 없는것이...바로 모든이들이 꿈꾸고 있는...시골이건...산골이건...아님 깊은 산골 오지이건...자연의 품속으로 돌아가고픈 그곳으로 가는것이 한마디로 귀농이라는...모두가 입버릇처럼 에이~~~! 시골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면서도 선뜻 시골로 나서지 못하는것이 바로 인디언님께서 줄줄이 암시적으로 말씀하신...정착지는 어디에...땅사기...집짓기...등에 의한 경제적 사정.. 뭘 해먹고 살것인가.. 등등으로 인하여...망설이다 해넘어가고 마는것이지요~~! ㅋㅋ
기나긴 글 잘 읽었습니다... ^^& 제 생각과 너무 비슷해서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니 내 멋대로 살수는 없지만... 남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같은 시골이라해도 내가 사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기에 시골로 가게되면 제 고집은 부려가면서 살아 볼 생각입니다.. 결과는 묻지 않구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제 글이 아니고 펀 글입니다......전 이렇게 글 잘--- 못---씁니당...ㅋㅋㅋ...^*^
안녕하십니까? 얼마전 가입하고 좋은 글 접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서울 모임 추진해 보시지요~~^^
너무 좋은 글이어서, 제 귀농 자료창고에 담아두고 싶은데 스크랩이 안되요ㅠㅠ
스크렙 열었어요 다시 해보세요
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