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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도 잘하고 그냥 한국 사람이에요. ’혼혈인’이나 ’코시안’ 등으로 부르며 달리 대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지난해 결혼한 국민 8쌍 가운데 1쌍이 국제결혼을 할 만큼 국제결혼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흔한 풍경이 됐고, 국제 결혼 이민자도 폭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21일 결혼이민자 1천177가족(여성 1천63명, 남성 114명)을 대상으로 한 ’결혼이민자가족 실태조사’와 함께 결혼이민자 2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 결과를 발표, 결혼이민자 가족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인터뷰에 응한 결혼이민자 대부분은 ’혼혈인’이라는 호칭 뿐 아니라 결혼이민자 2세를 지칭하는 ’코시안’, ’온누리안’ 등의 신조어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용어들이 결혼이민자 2세들을 나머지 아이들과 구별 지으며 오히려 ’차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인 시즈코씨는 일본에서는 ’혼혈(混血ㆍ콘케츠)’이라는 단어가 일찌감치 사어(死語)가 된 데 비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면서 국제결혼 가정 아이들을 비하, 차별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혼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코시안’이라는 말도 이해가 안된다. 한국 사람들도 아시아인인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무리 좋은 뜻이 있더라도 결혼이민자들을 구별짓는 호칭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여성 이자벨씨는 ’하프 코리안(half Korean)’이라는 말에 대해 분개했다.
“아이들은 한국말도 잘하고 그냥 한국 사람이에요. 차별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반쪽 한국인(half Korean)’이 아니라 ’온전한 한국인(whole Korean)’이지요. 반쪽인 사람은 없어요.”
베트남 출신 여성이민자 응옥 뚜엔씨는 결혼 이민자 자녀를 ’혼혈인’으로 집단화해서 부르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그냥 아이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제안했다.
이처럼 호명 문제를 비롯해 결혼이민자들의 취학 자녀 가운데 11.5%가 따돌림 등으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결혼이민자의 부부 관계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95로 비교적 높게 나타난 가운데 국제결혼 가정에서도 일반 가정처럼 고부 갈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들은 가족 가운데 가장 힘든 관계로 배우자의 어머니(9.1%)-배우자(4.0%)-배우자 형제자매(3.8%) 등의 순으로 꼽았다.
특히 필리핀(21.0%)과 한족(12.7%)의 경우 배우자 어머니와의 관계를 더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이민자들의 가족 형태 가운데 확대 가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22.3%로 조사돼 전체 확대가족 비율 5.5%(2005년 기준)를 크게 상회했다. 농촌 거주 결혼이민 여성의 37.3%는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이민자의 16.9%(남성 10.5%, 여성 17.5%)는 배우자와 그 가족들의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사에 노출되는 등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심각한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9%에 달했다.
한편 이번 조사를 이끈 설동훈 전북대학교 교수는 “결혼이민자들의 생활 패턴이 주로 농촌에 거주하며 한국어에 익숙치 않은 필리핀-베트남 출신과 한국어 구사가 비교적 자유로우면서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조선족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런 차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도 차별화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