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음악의 現況과 音樂布敎 활성화 방안 硏究
에 관한 토론자료
서론(序論)
1.불교음악의 성격
불교음악은 불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부르거나 연주하는
불교와 관련이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 불교가 탄생 되면서 직, 간접으로
부르고 연주하는 모든 음악을 총칭하며 소위 찬불가 또는 찬송가라 말한다.
불교가 고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 되면서 시작된 찬불음악은 시대가 바뀌고
또 각 나라로 전파되면서 그 나라의 토속문화와 접속되어 각 나라만의
독특한 불교음악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불교를 떠나 민족의 음악으로
발전됨을 알 수가 있다.
2.불교음악의 이해
역사적으로 볼 때 음악이 없는 종교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이런 현상으로 볼 때 불교역시 음악이 없다면 그 영역을 키울 수도 없고
불, 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이 높다하지만 아마도 불교라는 종교는 자리매김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제1의 수단이 찬불가 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찬불가는 불법을 모토로 두고 가사가 만들어 져야하며 인간답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자비보시의 가르침에 충실하여야지 막연한 노랫말을 찬불가라 한다면
결코 찬불가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현대의 불교음악] . . . . 토론자료
발제자 곽영석 총장의 현재 만들어진 불교음악의 현황을
보면 실로 방대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보편화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짓고 쓰는 사람의 노력에 비하여 받아들이는 입장이 (수혜 층)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본다.
1)보급자의 재정상태
2)수혜자의 무관심
3)불교종단의 관심이 없는 상태
4)대중음악에 비하여 감흥이 떨어지는 것(수준미달)
보편화된 찬불가는 어느 것이 있나?
찬불가의 개화기 운문스님의 찬불가운동에 힘입어 잠잠했던 불교계에 새바람이 인다.
이는 그 동안 침묵했던 재가불자 음악인들도 찬불가 운동에 참여를 하면서
그 폭이 넓어지고 양 과 질도 수준급으로 올라선다.
특히 각 사찰에 합창단 붐이 일면서 불교 음악인에게 일자리 제공은 물론이고
찬불가도 의식 곡에서 합창곡으로 이어지는 중흥기를 맞이하고
소위 대박이라 일컬어지는 힛트곡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한편 아쉬운 점은 찬불가 운동에 참여한 젊은 음악인들이 대개는
서양음악 전공자들로 민족 음악적 성격보다는 기독교 찬송가 풍의 노래만
양산하기에 이른다.
*이는 공론이 필요하다.
1. 초기 찬불가요가 율(곡)을 중시하기보다는 문(가사)을 중시하여 일본식 창가나
어린이 동요에 맞추어 불렀다면 찬불가 중흥기를 맞아 율 과 문 이 같이
중요시 되는 상황에서 민족불교 본래의 전통음악을 가미한 국악풍의 한국적
불교음악이 자리매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개화기 작품화 되어 법회의식 곡으로 불리는 많은 곡들의 저작권 현황을 살펴보면
등록이 안 된 작품들이 많이 있다. 이는 오롯이 종단의 책임이라 할수 있다.
많은 음악인들이 불교 음악인으로 자리하지 않고 이웃종교를 드나들며 활동 하는 것은
불교가 우수한 종교임에도 소위 생활이 안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찬불가 개화기의 주요 작가들
작사가 반영규 - 반영규 는 정운문의 뒤를 잇는 재가 불자 작사가이다.
그는 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자비의소리’를 설립하고 자신의 작품을
서창업 등에게 의뢰하여 자신이 만든 자비의소리를 통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작품 - 붓다의 메아리 ,삼보님께 의지하오니 , 무상게 , 탑돌이 등)
작곡가 서창업 - 서울대 음대를 나온 서창업은 불교음악연구원을 설립하였다.
불교에 문외한 이었던 그는 반영규를 만나 작곡을 하면서 불교에 심취하였고
많은 곡을 썼지만 살림은 넉넉지 못하였다. 작곡을 위한 피아노도 광덕스님이
희사 하였다함.
그의 작품은 한국적인 음악을 채택하기 보단 찬송가풍을 채택하여 민족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불교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작품 - 홀로 피는 연꽃 , 둥글고 밝은 빛 등)
작곡가 김희조 - 김희조의 작품은 민족음악적인 요소와 서양음악기법을 적절히 섞어
곡을 썼다. 제자 정민섭의 소개로 운문을 만나고 우연히 서창업의 악보를 접한후
‘이건 찬불가가 아니다.’ 라는 혹평과 함께 자신이 곡을 썼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비록 작품 수는 적지만 김희조의 찬불가는 앞으로 찬불가가 어떻게 만들고
불러져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본다.
(작품 - 님의 말씀 등불삼아 , 사랑하는 우리부처님 ,만유에 두루 하심 등)
작곡가 최영철 -모든 법회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가 바로 최영철의
삼귀의 와 사홍서원이다. 최영철은 충남 및 대전지역의 종립(보문)고등학교
음악선생이다. 조계종의 찬불가요 공모에 당선이전부터 찬불가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에 작곡되어 배포된 삼귀의 와 사홍서원이 지극히 서양적인데
다가 질서가 없어 다시 작곡을 하게 된 것이다.
(작품 - 삼귀의 ,사홍서원 ,참회합니다. 진리의 빛 등)
작곡가 김용호-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오페라를 작곡했던 김용호는 대불련 회장 출신인
선진규 법사의 의뢰로 찬불가 작곡에 발을 디디게 된다.
김용호의 작품은 우리의 전통음악(범패,향가,이조시대 찬불가 등)을 기초하여
곡을 써서 새로운 찬불가의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작품 -연등 , 불교도의 노래 ,달마대사 등)
국악풍의 찬불가와 교성곡
서양음악적인 기법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
국악풍의 찬불가 음악이다. 이것에는 교성곡 , 합창곡. 무용곡 등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음악과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전통을 고수하는 찬불가이다.
국악을 전공한 작곡가들이 다수 포함되는 그 이유가 있다
1990년대 불교 방송에서는 신작 찬불가를 위촉하면서 다수의 국악전공 작곡가들을
섭외하면서 시작이 된다. 당시 불교방송에서는
귀의, 예배, 찬탄, 공양, 참회, 발원, 회향, 행사 등으로 구분을 하여
제작을 의뢰하였다.
5년간 지속된 찬불가 공모에서 총104곡의 곡이 탄생하였고 지금도 가장 많이
불러지는 것이 이달철 작곡의 ‘우리도 부처님 같이’ 이다.
작곡가 박범훈
국악 찬불가운동의 중심엔 박범훈이 있다.
박범훈은 불교합창단의 찬불가 부르는 모습이 마치 교회의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불교음악=전통음악 으 로 생각했던
그는 불교다운 찬불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서울올림픽 이차돈의 일대기를
극화한 작품의 의뢰를 받고 (하얀 초상) 그것을 불교적으로 쓴 것이 그의
최초 찬불가 작품이라 하겠다.
이후 국악 교성곡 붓다 , 보현행원송 ,용성 , 부모은중송 등 대작을 발표하였다.
교성 곡들의 진행방식을 살펴보면 선창가수(예 김성녀)가 앞부분을 부르면
후창은 합창단(예 불광사합창단)이 따라 부르는 식으로 진행이 되며 곡에 따라서는
120분 이상을 소요하는 거작으로 음악을 하는 필자로서도 공연 현장에서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그가 얼마나 불교음악에 관심이 큰지 그리고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교음악의 한 장르를 개척한 공이 크다.
(작품들 - 무상게, 탑돌이, 무상인, 찬미의 나라, 오계의 노래 ,부처님 오신 날 등)
작곡가 변규백
그는 1980년대 불교음악을 작곡한 이들 중 유일하게 국악을 전공한 사람이다.
범패를 배우고 나서 범패가락을 차용한 찬불가를 써야한다는 생각에
주로 8/6 박자의 국악풍 선율을 채택하였으나 후반에는 4/4 박자 장조로
고을 쓰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곡이 좀 더 대중음악에 친숙한 멜로디로
많은 사람이 부르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들 -청산은 나를 보고 ,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등)
작곡가 정부기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인 정부기는 찬불가의 작곡 동기가 부친의 영향이 받았다.
서울음악제 위촉 작품 조지훈의 ‘승무’작곡했고 ‘파랑새 울고’로 공식 데뷔를 한다.
이후 정부기 작곡집‘불교명상음악’을 출판하여 다수 의 곡을 발표하였다.
(작품들 - 초파일 송가 , 범종 ,방생의 노래 등)
불교 합창단의 전성시대
불교합창단의 창단은 찬불가의 발전을 몇 계단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찬불가를 아무리 많이 작곡하여도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이 없다면
속빈강정이라 할 수가 있다. (발제자의 조사보고 758개 합창단)
60년대 이후 각 사찰 및 종단 종립학교 등에서 탄생한 합창단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70년대 이후 활발한 찬불가운동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단점도 있어서 재정이 열악한
사찰의 경우 초빙된 강사의 수고비도 감당하기 어려워 합창단을 해체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런 현상으로 인해 단원들의 십시일푼 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며 해체와 발족을 반복하기도 한다.
찬불합창단이 설립된 배경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찬불가 경연대회의 정례화
2)사찰의 법회 일상화
3)부처님오신 날의 범사회적 축제
4)사찰 합창단의 정기발표회
5)종립학교의 합창단 및 어린이 합창단
누가 주체인가?
찬불가를 만들고 알리는 그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방송 -1990년대 불교방송을 통해 만들어 지고 보급된 것이 지금은
방송을 통해서만 송출을 한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찬불가가 대중의 인지도가 약해 편성에 한계가 있음을 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현재 불교방송 찬불가 편성 프로그램 :우리들의 찬불가)
(불교TV : 전무 / 불교TV앱 울림: 불교음악채널24시간 방송 )
2.종단 - 대한불교조계종 에서는 신작 찬불가 가사를 공모하여 당선된 작품을
기성 작곡가에게 의뢰하여 발표하는 행사를 수년째 어어 오고 있다.
문화포교 및 찬불가의 중요성을 알기에 해마다 하는 행사 이지만
정작 일선의 사찰에서는 산사문화행사에 찬불가 보다는 대중가요가 판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틀 린 말이 아니다.
신작찬불가를 만들고 또 기성가수들이 노래를 한다면 응당 사찰문화행사에서
소개됨이 마땅하다. (*종단의 지속적인 홍보로 변화유도)
3.음악단체 - 현재 음악단체를 통해서 발표되는 찬불가도 상당 수준에 이른다.
불교음악협회 , 대한찬불가제정위원회, 육화림, 한국불교작곡가협의회, 풍경소리
가릉빈가소리 등에서 발표되는 찬불가도 상당 수준에 이르지만 혹 잘못된 기재로
인하여 선배 작곡가의 명예에 혹 여 누가 될지 몰라 아직 활동이 미진한
글을 쓰는 본인(오해균)의 작품이며 가릉빈가 소리의 대중가수 몇 분의
찬불가를 소개한다.
*상기에 소개된 작품들은 음반이 제작되어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해마다 찬불가요콘서트 를 통해 음반을 보급하고 있다.
찬불가 및 찬불가요 음반에 공을 들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중에 필자와 교류가 있는 몇 분을 소개한다.
-자명스님 : 문화포교에 가장 적극적인 경우 이다. 스님은 자신의 앨범을 4집까지 출시하고
공연무대도 오페라를 차용한 불교악극으로 전국을 다니며 공연 중이다.
쓰고 노래를 불러 해마다 몇 회씩 자신의 사찰에서 공연 법석을 연다.
유명하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찬불가요를 노래하는 희욱스님 등 많은 분들이 음성공양으로 포교를 한다.
1)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 할 것.
2)대중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적당한 운율과 내용으로 할 것.
3)불교교리에 어긋나거나 개인의 감흥은 피한다.
4)불교교리를 쉽게 풀어서 대중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쓸 것.
5)어려운 낱말의 가사나 여러 절(節)을 하면 외우기 어려우니 단순하게 할 것.
6)타인의 작품에서 카피하는 행위를 금할 것. (상당 수준)
7)꾸준한 습작을 통하여 가사를 쓰고 자신의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감정을 받는다.
2)기독교 찬송가 풍이나 선율을 차용하지 않는다.
3)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도록 적당한 음역을 쓴다.
5)불교를 믿는 사람이 곡을 써야 오롯이 불심이 녹아든다.
현대는 말 그대로 대중가수의 르네상스시대이다.
부르고 또 현장에서 부르기를 원하며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다.
1)불교적인 내용의 가사에 대중음악을 접목할 것.
2)어느 정도 정상에 올라선 가수를 섭외할 것.
3)불교를 신행하는 가수에게 곡을 줄 것.
4)불교의 교리를 체득하고 신행하는 사람이 곡을 쓸 것.
1600년 불교 역사와 함께한 찬불가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구슬이 서 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가사를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중가수가 부르면 보고 듣는 이가 바로 이해 할 수 있는 그런 가사가 필요한 때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가사로 알려져 있다.
이글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