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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송달송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옮기자면 미추왕이 세상을 떠난 지 495년(혜공왕 14) 4월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있었으니, 송화산(松華山)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회오리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송화산이 송두리째 하늘로 올라 갈 정도로 무섭게 불었다. 그 회오리바람 속에 금빛 갑옷을 입고, 말을 탄 늙은 장수가 동쪽을 향해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40여명의 무장한 무사들이 뒤따라 행진하는데 먼지 속에 창 끝이 번쩍번쩍 빛났다. 장수의 일행은 먼지와 함께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에 능 속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큰 소리가 나는데 “신은 평생 나라의 난국에 앞장 서왔고, 겨레의 소원이던 삼국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지금 죽어서 혼백이 되었어도 나라 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지난번 저의 후손이 아무 죄도 없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성의를 몰라주는 것이니 그럴 바에야 저는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갈까 하오니 대왕께서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억울하게 죽은 후손의 일에 격분하는 소리였다. 억울하게 죽은 후손이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으나, 487년(혜공왕 6) 김충이 반역 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일이 있는데 그 사건이 아닐까 추측되어진다. 조금 후에 미추왕의 혼백이 한숨을 지으며 “나와 유신공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을 누가 건지겠오? 공은 참으시고, 그 전처럼 나라를 지켜주기 바라오.” 하고 엄숙하게 타이르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그제야 무서운 회오리바람은 죽현릉에서 나와서 김유신 장군의 묘로 사라졌다. 미추왕은 이렇게 왕 중의 왕이었으므로 죽현릉을 ‘시조당’ 또는 ‘대묘’라 부른 것이다. 김유신 장군의 묘는 어느왕릉보다 화려 합니다. |
첫댓글 경주 대릉원 안에는 23기의 큰 묘가 있지만 13대 미추왕만 규명 되었을 뿐 나머지는 아직 미발굴로 누구의 릉인지 알 수가 없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