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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남 통영시 한산도 일대의 작은 섬과 잔잔한 물살 풍경이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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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日 대파한 한산대첩 무대
- 충무공 유적지, 수루, 제승당 등 이순신 숨결 살아있는 유적 즐비
- 망산 오르면 한려수도 비경 한눈에
- 고기 잡기, 조개 캐기 등 체험 행사도
- 자전거로 섬 전체 둘러볼 수도 있어
경남 통영시의 한산도는 경남도 내에 산재한 816개 섬 가운데 가장 크다. 섬 규모는 1470만 ㎡ 에 이르며 해안선은 30㎞에 달한다. 이 섬은 통영항에서 뱃길로 20여 분 거리에 있다. 한려수도 비경의 출발점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삼도수군통제영(현재의 해군작전수령부)이 있던 섬이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구국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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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등대 |
충무공의 숨결이 서려 있는 한산도는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의 무대다. 왜군의 조선 침공이 한창이던 1592년 7월 8일 조선 수군이 학익진으로 왜군을 대파한 해역이 한산도 앞 바다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남해안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왜군의 수륙병진 전략을 차단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산도로 가는 뱃길은 운치가 서려 있다. 한려수도를 이루는 크고 작은 섬들이 사방에 점점이 흩어져 있고 잔잔한 물살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유연하다. 섬으로 가다 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거북등대다. 돌로 만든 거북선이 암초 위에 앉은 모습으로, 한려수도가 충무공의 숨결이 서린 역사의 현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산도에 도착해 내리면 이내 충무공 유적지(사적 113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거진 숲과 잘 정돈된 길, 그리고 수려한 바다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해안길은 일품이다. 이곳 유적지 입구의 우물은 충무공이 통제영을 창건하고 1340일 동안 머물면서 군사들과 함께 사용한 곳이다. 우물은 바다 쪽에 가깝지만 짠맛이 전혀 없는 게 특징이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다.
■충무공 위용 서린 제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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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제승당. |
제승당은 충무공의 집무실이자 참모들과 작전을 수립하던 곳이다. 글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뜻이 장군의 위용과 어울린다. 충무공은 제승당에서 난중일기 1491일 분 중 1029일 분을 썼다. 제승당은 1975년 박정희 대통령 때 성역화로 구역을 확장하고 보수해 현재에 이른다.
제승당 왼편에는 수루가 복원돼 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충무공이 이 시를 읊었던 수루가 바로 이곳이다. 수루에 올라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볼 때 온갖 모함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고독한 영웅의 비애가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경내 활터인 한산정으로 가면 독특한 풍경을 접할 수 있다. 과녁 3개가 바다 건너 145m 맞은편 산에 놓여 있다.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것은 여기뿐이다.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거리의 적응 훈련을 시키기 위한 것이다. 제승당 뒷편 문어포마을 산 정상에는 웅장한 규모의 '한산대첩기념비'가 자리잡고 있다.
■역사 비경 어울린 탐방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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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코스로 각광받는 한산도갯벌. |
한산도에 오면 제승당을 찾아 충무공의 유적지만 둘러보고 돌아가기 일쑤다. 하지만 한산도를 제대로 알려면 충무공의 역사가 담긴 마을 곳곳을 돌아본 뒤 한려수도의 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망산(해발 294m)에 올라야 한다.
한산도는 마을 곳곳이 탐방코스다. 카페리선에 자가용을 싣고 섬 곳곳을 둘러보려면 반나절도 모자랄 정도다. 소금을 만들던 염전이 있던 염개, 숯을 만들던 숯덩이골, 왜적의 머리를 수없이 베었던 두억개, 병선을 건조 수리하던 비추리, 무기를 만들던 야소, 왜적의 동정을 살피던 망산 등등.
섬 탐방은 선착장 입구에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055-649-9207)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공원 측은 '한산도 자전거 투어'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대고포와 소고포마을 앞 염개갯벌에서는 매년 6월이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이색체험 행사와 조개캐기 등 축제도 열린다.
1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한산도는 연중 온화하고 깨끗한 바다와 굴곡이 심한 해안지형이 양식업에 적합해 굴 우렁쉥이 가두리 등 양식업 주산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낚시포인터이며 어촌체험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카페리선이 한 시간 간격으로 운항하고 있다.
# 눈이 시린 맑은 바다와 수집가도 반한 몽돌이, 방문객 반기는 추봉도
- 연도교 개통… 육로로 이동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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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봉도 몽돌해변 |
한산도를 둘러봤다면 까맣고 작은 몽돌이 탐스럽게 깔려 있는 추봉도 탐방을 놓칠 수 없다. 겨울 여행으로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림 같은 풍광을 간직한 추봉도는 눈이 시릴 정도로 맑고 차가운 바닷물과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소중한 겨울 추억을 간직하려는 연인들에게 더 한 운치를 주고 있다. 인구 40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섬은 2007년 연도교 개통으로 한산도를 오가는 마을버스가 생겨난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추봉도가 널리 알려진 것은 빼어난 절경 외에도 봉암해수욕장의 몽돌 때문. 해변가 1㎞에 걸쳐 까맣고 탐스러운 몽돌이 펼쳐져 있다. 몽돌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사그락~ 사그락~' 소리와 파도에 밀려 '촤르르~촤르르~'하는 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하모니.
이 해수욕장 내 몽돌은 수석애호가들 사이에 '봉암 수석'으로 불린다. 고가에 수집하는 애호가도 많다. 이 같은 유명세로 한 때 낚시꾼과 관광객 등으로 위장한 수집가들이 야간을 틈 타 해수욕장 내 몽돌을 밀반출하는 불법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이곳 해안가에 '몽돌을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봉도는 민족상잔의 아픔도 간직하고 있다. 예곡·추원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포로수용소 터가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 섬에는 1952년 5월 포로수용소가 설치돼 1만 명의 공산 포로가 수용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 중 일부도 이 섬에 분산 수용됐다. 민족상잔의 슬픈 흔적을 남긴 포로수용소는 지금은 터 일부만 있다. 당시 섬 주민들은 미군에 의한 포로수용소 설치로 강제로 쫓겨나는 등 삶의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