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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희(朱熹) - 한어병음 표기 : Zhu xi/웨이드 식 표기 : Chu Hsi * 신안 - 주자의 조상이 살던 무원(婺源 : 지금의 안휘성)의 옛 지명 * 한국의 신안 주씨 - 주자의 증손 잠(潛)이 고려 때 와서 성씨를 이룬 것 |
- 주자의 학문 네트워크
① 사(師) : 이정(二程) - 정호(程顥), 정이(程頤)
⌙ 양시(楊時)
⌙ 나종언(羅從彦)
⌙ 이통(李侗)
⌙ 주희
② 우(友) : 장식(張栻), 여조겸(呂祖謙)
③ 논적(論敵) : 육구연(陸九淵) -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공부론논쟁(工夫論 論爭)>, 진량(陳亮) - <의리왕패논쟁(義利王覇論爭)>
- 주자의 사상
① 이기론(理氣論)
- 주자의 이기론은 장재의 기일원론과 주렴계의 태극설, 그리고 정이의 이기이원론 의 입장을 종합한 것이다.
- 주자에게 있어서 기는 현상적 존재의 근원으로서 모든 유형적인 것과 관계가 있 으며, 이는 사물의 상태를 규정하는 원리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 이다. 요컨대 이와 기는 사물이 존재하기 위한 서로 다른 두 개의 근원이다. “理 與氣, 此決是二物.”(朱子文集 卷46, 「答劉叔文」)
- 그러므로 이러한 두 범주를 토대로 하는 주자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이기이원론 (理氣二元論)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이원론이라고 말하더라도 이와 기가 평등하지는 않아서 기보다는 이가 근 원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 이본기말(理本氣末)의 입장
- 즉 현상적으로는 이와 기가 동시에 존재함을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가 기 를 떠나서 먼저 존재한다고 말한다. “在物上看, 叫二物渾淪, 不可分開 / 在理上看 了, 則雖未有物, 而已有物之理.”(朱子文集 卷46, 「答劉叔文」) - 이선기후(理先氣 後)의 입장
- 결과적으로 이와 기의 관계에 대한 주자의 논증은 이와 기가 주종 관계여서 이가 기를 지배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주자의 철학은 굳이 명칭을 붙인 다면 ‘주리적 이기이원론(主理的理氣二元論)’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렇다고 기의 역할이 미미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가 없으면 이는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이다. “無是氣, 則是理亦無掛搭處.”(朱子語類 卷1)
- 주자에 따르면, 기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하여 작용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 문에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모두 이 기의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나아가서 인간의 정신 작용까지도 이 기의 작용에 속하는 것이다.
- 주자는 이(理)를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와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으로 표현하 기도 하였다. ‘소이연지고’로서의 이를 달리 표현하면 ‘태극(太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당연지칙’은 특히 인간에 대해서 말한다면 인간의 행위에 관한 도덕법 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주희의 이기이원론의 기본 구도는 심성론이나 수 양론에도 적용된다.
- ‘理有動靜’ 또는 ‘太極有動靜’이란 문구(文句)가 주자대전(朱子大全) 안에 산재 함으로 후세에 있어 이(理) 자체(自體)가 동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나오 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자의 관점은 이러한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즉 태극 은 직접적으로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의 원인, 동정의 주재(主宰)로 세계 속 에 존재하며 또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자는 심성론의 영역에서 성정(性情)의 문제를 논하면서 다시 ‘理之發’, ‘性之動’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후세 조선성 리학에서 퇴계 이황의 경우처럼 이(理) 즉 태극(太極) 자체의 동정을 주장하는 단 초를 제공하였다.
② 심성론(心性論)
- 주자는 심성론의 영역에 있어서도 장재와 정이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 주자는 인간의 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구분하였다. 본연지성이 하늘로부터 품수 받은 그대로의 인간의 본래의 성을 의미한다면, 기 질지성은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氣)와 질(質)의 영향을 받은 성을 말한 다. 여기에서 기질지성을 현실로 드러난 성, 그러나 부차적인 성으로 간주하고, 이(理) 그 자체인 측면을 본연지성으로 내세울 때 ‘성즉리(性卽理)’의 명제가 성립 한다.
- 주자에 따르면 본연지성은 만인에 동일하며, 완전히 선이어서 악의 요소는 전혀 없다. 그러나 기질의 영향을 받은 기질지성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또한 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 그러므로 주자는 선 그 자체인 이가 사물의 근원적 동일성의 원리라면 악의 가능 성을 내포한 기는 사물의 차별성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 현실 속에서 악을 발생시키는 것은 인간의 ‘정(情)’과 ‘욕(欲)’이다. 주자는 ‘심통 성정(心統性情)’이라 하여 마음은 이와 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는 ‘성’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기능인 ‘정’이나 ‘욕’의 작용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즉 ‘정’이나 ‘욕’은 기에서 발한 작용이므로 역시 악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이다. 따라서 주희 역시도 정욕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③ 수양론(修養論) Ⅰ
- 주자에 따르면, 마음은 단 하나이지만, 그것을 둘로 나누어 설명할 수가 있다. 인 심(人心)과 도심(道心)이 그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이지만, 다만 도리를 지각 하는 것이 도심이며, 소리나 색깔, 냄새나 맛을 지각하는 것이 인심이다.” 인간의 감각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인심이라면, 도덕적 자각에서 비롯되는 마음이 도심이다.
- 인간은 모두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인심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 인간은 모두 성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윤리를 지향하는 인간성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는 어떤 경우라고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주자의 성선설적인 입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심은 기질 과 관련된 마음이기 때문에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심에 대하여 ‘위태롭다’, 즉 ‘악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도심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것은 마음이 비록 육체에 내재하고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지만, 마음의 작 용은 대상에 이끌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그 도덕적 주체성을 유 지하라는 의미이다. - ‘存天理去人欲’/‘變化氣質’ ⇒ ‘聖人’
④ 수양론(修養論) Ⅱ : 공부론(工夫論)
▶ 거경(居敬) : 덕성의 함양
- 경(敬)은 주자 수양론의 중심 이론이다. 주자는 이러한 경의 의미를 네 가지로 나 누어서 설명하였다.
- “경의 상태가 유지되면 저절로 ‘하나에 집중되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저 절로 ‘가지런하여 엄숙해지고’, 저절로 ‘언제나 정신이 맑고 또렷해져서’, ‘그 마음 이 잘 수렴되어 어떠한 잡념도 용납하지 않는다.’”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 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朱子語類 卷17)
- ‘주일무적(主一無適)’ 및 ‘정제엄숙(整齊嚴肅)’의 학설은 정이(程頤, 伊川)로부터, ‘상성성(常惺惺)’의 학설은 사량좌(謝良佐, 上蔡)로부터, 그리고 ‘기심수렴불용일물 (其心收斂不容一物)’의 학설은 윤돈(尹焞, 彦明)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
- 경의 의미는 내적 방면과 외적 방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일무적’ 및 ‘상성성’ 그리고 ‘기심수렴불용일물’의 학설이 내면의 마음에 관련된 것이라면, ‘정제엄숙’ 은 외면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 궁리(窮理) 즉 격물치지(格物致知) : 학문의 연구/독서법(讀書法)
⑤ 주자학의 개념들
┎本然之性(天理)
體-理-形而上-道-未發-中-靜-性(仁ㆍ義ㆍ禮ㆍ智ㆍ信)
║ ┖氣質之性
心
║ ┎情
用-氣-形而下-器-已發-和-動-情(惻隱ㆍ羞惡ㆍ辭讓ㆍ是非, 七情)
┕欲(人欲)
- 주자학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
중국 : 19세기말 까지 관학의 지위 고수(사서집주 등은 과거시험 필독서)
한국 : 조선(朝鮮) - 주자학의 나라(반주자학 - 실학, 양명학)
일본 : 막부(幕府) 체제의 주자학 수용
(6) 육구연(陸九淵, 1139-1193) : 字 子靜, 象山先生
- 개요 : 송대 신유학운동 과정에서 주희의 이학과 동시대의 학파로는 섭적(葉適: 1150- 1223)의 영가학파(永嘉學派-유물론적 경향의 공리주의 학파, 영강학파와 함께 事功學派로도 불린다)와 육구연의 심학이 있다. 육구연의 학문적 계보는 주 희와는 차이가 있다. 그는 주렴계와 정이천의 학설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는 맹자 를 직접 계승하였다는 입장이며, 정명도의 학설을 수용하는 입장이다. 육상산은 맹자, 정명도와 자신이 마음의 자각적·주체적 능력을 강조하는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육상산은 주희의 최대의 논적이었다.
- 심(心)과 이(理)는 육구연철학의 주요한 범주이다. 그러면 ‘마음’과 ‘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되는가? 육구연은 “사람은 모두 이러한 마음(맹자가 말한 하늘이 나 에게 부여해 준 마음, 즉 사단)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은 모두 이러한 이를 갖추 고 있다. 마음은 곧 이이다.” 人皆有是心, 心皆具是理, 心卽理也.(陸九淵集 卷11 「與李宰」)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心卽理’의 학설은 계보상으로는 정명도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육구연은 마음을 분석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그것이 그대로 하나인 理라고 말한다. 다만 마음과 이는 동등해 보이지만 또한 차별이 있다. 왜냐하면 육구연은 이가 본디 마음 ‘속’에 있다[理在心中]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구연은 ‘우주가 곧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곧 우주’ 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입장은 마음 밖의 이[心外之理]를 말하는 주희와 는 대립되는 것이다.
- ‘마음이 곧 이이다’라는 육구연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특별한 수양론을 필요로 하 지 않는다. 내 마음이 곧 천리이며 성현의 마음이므로, 오직 내 마음을 잘 보존하 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구연의 입장은 중용의 ‘尊德性’만으로 충분하며, ‘道問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육구연의 학문적 특징에 대하여 주희 는 ‘선학의 경향이 농후하다[狂禪]’라고 비난하였는데, 그러한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7) 왕수인(王守仁, 1472-1529) : 字 伯安, 陽明先生
- 개요 : 송명유학은 명대 중기에 이르러 왕수인의 心學으로 전개되었다. 官學의 지위를 가진 정주이학은 이미 이론의 경직화 현상으로 인한 학술의 쇠퇴 및 현실 과 유리된 공리공담의 만연이라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여 점차 사회를 지탱하는 이념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정주이학이 사상의 주도권 을 가지면서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걸어오던 육구연의 심학이 새로이 주목을 받 으면서 왕양명에 의해 더욱 치밀하고 체계화된 심학으로 발전하였다.
- 주요 저술 : 傳習錄, 「大學問」, 「大學古本序」
- 사상의 구성
① 心卽理說
② 知行合一說
③ 致良知說
④ 萬物一體說
⑤ 事上磨鍊說
⑥ 兒童敎育說 : 자율성, 자발성, 능동성의 강조
⑦ 親民說
⑧ 四民平等說
⑨ 滿街聖人說
⑩ 三敎一致說 : 유불도는 그 본질적인 내용이 일치함
⑪ 六經皆史說
⑫ 拔本塞源說 : 올바른 정치와 교육을 해치는 사욕과 욕망과 같은 폐해, 악의 근원 을 뿌리째 뽑아버림
6. 송명유학에 대한 평가와 청대유학(淸代儒學)과의 관계
- 선진제자백가사상, 양한경학, 위진현학, 수당불교에서 송명유학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중국철학 사상은 철학적 사유의 발전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중국철학이 다양한 철학사상의 발아기에서 출발해서 심화된 문헌적 연구와 관념적 자유의 시기를 거쳐, 외래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송명유학이다. 이러한 송명유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송명유학은 단지 하나의 학문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현상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송명유학이 가지는 이념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송명유학은 명실공히 ‘존덕성(尊德性)[수양적 학문]’과 ‘도문학(道問學)[이론적 학문]’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실천을 그 목표로 하는 정통의 학문으로 자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동력을 내부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이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현실적 필요성과 결합되면서 송명유학, 그 중에서도 특히 정주이학은 이후 6, 7백년 동안 중국사회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였다. 사회의 풍속을 유지하는 윤리적 준거로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제도와 법령의 제정, 정책의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철학ㆍ역사ㆍ문학ㆍ예술 등의 학술적인 방면도 송명유학의 기본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그 주된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주이학의 사회적 지배력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주이학은 그 자신이 가지는 이러한 강력한 힘이 외부적으로는 유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이단시함으로 해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의 발전과 수용을 억압하는 사상적 통제력으로 작용하였으며, 내부적으로는 스스로의 학문적 발전을 가로막는 지적 구속력으로 작용하였다.
- 양명학 계열의 황종희(黃宗羲 : 1609-1695)와 주자학 계열의 고염무(顧炎武 : 1613-1682), 그리고 송명유학을 재검토하면서 특히 장재의 기철학을 계승한 왕부지(王夫之 : 1619-1692), 실용주의적 입장의 안원(顔元 : 1635-1704), 고증학의 대진(戴震 : 1723-1777) 등으로 대표되는 청대유학은 이러한 송명유학에 대한 각기 다른 각도에서의 비판과 수용에서 출발하였다.
- 송명유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역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강조하고 있는 몇 가지 입장, 예컨대 호학정신, 교육에 대한 적극적 평가, 인격 도야 및 도덕 가치의 존중, 사회 규율의 강조 등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현대 사회에서 유학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는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