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내 집이 어덴가하믄 지금으는 구룡포2리 창주리인기라. 조부모님 때부터 구룡포에 살았다. 창주리 당산나무도 조부모님이 심은 기지. 그때는 대밭이 말이지 이파리 졸졸한 대 말고 넙덕넙덕한 대가 많았다. 거랑이 있았는데 깔고 놀 자리가 읎아가 보릿짚을 엮어 자리로 만들아가 당산나무 밑에 깔고 놀았는기라. 손 붙잡고 올라가가 요래 갈라진데 앉아가 말 탠다고 떠그럭거리고 말이재. 참 좋았다. 그때가 내 나이 일곱 여덟 살쯤 됐는기라. 결국 이래저래 망해가 이짝으로 내려왔지마는 참말로 그때가 좋았는기라. 그 당시 동네 이름으로 염창골이라 했다. 와 염창골이고 물으니까네 조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거서 소금을 고았다 하드라. 옛날에는 거까정 바닷물이 차 있았던기라. 당산나무에서 이래 보믄 방구가 하나 있어. 지금도 있을기라. 거거 가믄 방구 우에 이래 우물이 하나 있는데 비가 오믄 거 물이 개기는기라. 뭐가 있노 올라가 보믄 바닥에 꿀 아나? 꿀, 짐치 당굴 때 옇는 꿀 말이다. 허연 조개 안에 들아있는 기 모리나? 그 왜 이리 파개주고 서울 사람들으는 짐치 당굴 때 옇찮아. 그 껍질이 거 방우에 붙아 있거던. 그기 바로 예전에 거가 바다라 말해주는기라. 또 뭐시 박방우에 가믄 전에 용도 있았으이 용발자욱도 있는기라. 그 눔이 울매나 심이 좋았는고 하믄 솟구쳐 오를 직에 딛은 발자욱이 이래 푹 패이 있는 것만 봐도 알재. 인자 아 들이 올라오믄 거가 노는기라. 차츰차츰 세월이 가이까네 물이 줄아지고 인자는 흔적도 없는 기재. 아고 야 우옛는지 아나. 우리가 한 열한 살이나 묵었을 적에 해수욕한다고 저 만치 방우가 있으믄 방우 한테꺼정 냅다 튀가는기라. 가믄 꿀도 붙고 조개도 이래 있아가 마 잡아 뜯고 이랬는데 그때 그 방우가 지금은 어데 있는고 하믄 심인당이라고 요 시장안 고기전에 이래 큰 질로 차가 댕기는 고짝에 있는기라. 그마이 물이 줄었는기재. 그때는 진저리라 카는 기 있았다. 거 가믄 손으로 이래 여가 흔들거든. 그라믄 마 꽁치가 손가락 새로 쑥쑥 기 올라왔다. 그때는 그거 묵지도 안했다. 지금으는 잡아다가 말이지 과메기도 해묵고 하지마는 그때는 그기 괴기도 아이였는기라.
내가 아 적에 염창골 살적에 한 분은 이란 일이 있았다. 그때 지금 구룡포 입구쯤 되는데다가 참외를 심아가 원두막이라카는 거로 지아놓고 누가 도둑 하러 오는가 싶아가 아부지가 거서 이래 자고 했는데, 한 날은 비가 막 쏟아지는기라. 샛바람은 불재. 비는 장대맨쿠로 오재. 이란데 누가 참외 따 묵으러 오겠나 싶아가 집으로 가야겠다하고 오는데, 그때 무신 우산이 있나, 짚으로가 이래 두잡아 쓰는 거로 씨고 돌다리를 건너 안 왔나. 그때 우리 집이 당산나무 바로 잩에 있었는데 일로도 절로도 집이라고는 읎았는기라. 그때가 마 밤 열두 시쯤 됐는데 아부지가 막 오다보이 무신 사람 하나 터억 서가 씨름 한판 붙자 하는기라. 울 아부지가 힘이 장사라 씨름을 해가 이놈을 화딱 구부러 놓은기라. 그라이 마 퍼덕 일나 또 하자고 붙잡아드이 비가 오는데 우야노 또 했재. 자빠뜨리믄 일나고 또 자빠뜨리믄 일나고 환장 하는기라. 그래 마 이놈이 사람이 아이구나 했는기라. 옛날에는 칼로 요마한 거로 갖고 댕겼다. 아부지도 칼집꺼정 있는 칼로 차고 댕겼는데 그 눔을 빼가 마 눕히놓고 푹 찔라뿌린기라. 그래 찔라뿌이 그자사 일나지 않는기라. 그래마 후닥닥 집에 왔는데 어무이하고 할무이하고 마캐보이 옷이고 뭐시고 사람이 마 엉망인기라. 우옛노 물으니 마 이래저래 그랬다카이. 동네 저짝 우에 집이 하나 있았는데 다 모다가 우~ 하고 가본기라. 가보이 말이지 예전에는 방아 찧는 괴가 있았어. 발로가 밟아 찧기도하고 하는 기 있는데 거가 마 칼이 터억 꼽히 있는기라. 그란일 있고 아부지는 몇 년 사두고 세상을 버렸는데 그기 마 그때 혼을 쪼매 놓찼지 싶다.
그래그래 살다가 국민핵교를 열네 살에 졸업해가 열여섯에 장개를 들았다. 내 키가 요즈므는 많이 컷재 그때는 하마 즉았다. 장개들고나가 이상곤이라카는 분이 읍사무소 있을 적에 날로 읍사무소에 들라캐가 열일곱에 읍사무소로 댕기게 된기라. 제법 오래 댕겼재. 그란데 읍사무소 한 달 월급가주고는 양복 한 벌도 옳게 몬해 입는기라. 그래 하루는 어무이가 야야 니 살장사 한 분 해 볼라나 하시데. 그래 어불퉁 장사를 시작해보이 하루 만에 이기는 뭐시라 한 달 월급이 나오는기라. 그래가 마 좋다 때라치아뿌고 살장사를 완전히 시작했다. 그란데 살장사를 해보이 돈은 버이 재미는 있는데 이기 딘기라. 그라도 우야노 해야재. 그래가 고놈을 자꾸 연구를 해가 도매상을 하게 됐는기라. 여서 살을 어데가 받아 오는가 하믄 안강, 영천이다. 이래 받아와가 요새 같으믄 한 삼천 원 읃아 묵고 되파는기지. 5일마다 장이 서이 한 분에 칠십 가마이씩 싣고 왔다. 그때사 내 나이 한 사십 됐나부다. 그란데 열마짜리 같으믄 괘않은데 그기 열한 말짜리라. 한 가마에 열한 말짜리란 말이다. 그기를 장대로 이래 짚아가 짊아지고는 부뚝 일아선다. 내가 그때 심이 참 씻는기라. 빡빡했다. 그리이 칠십 가마이 싣고 오믄 내가 다 풀아가 창고에 잡아넣고 그 자튼 날에 또 창고서 끄잡아내고 을매나 디겠노. 그때 우리 아 들이 핵교 댕겨오믄 가마이도 붙잡아주고 거들아주고 해야 했는기라. 힘들재. 힘들어도 우야겠노. 돈이 되이. 그래 마 장사해가주고 아 들 핵교도 보내고 묵고 살았다. 첨에는 우리보다 열 살썩 더 묵은 사람들이 살장사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 일이 무시 디니까 삼천 원씩 묵고는 일을 안 할라 했는기라. 내는 그래도 열 가마믄 삼만 원 먹는 긴데 싶아가 다부 맘묵고 했재. 5일 장날 떠억 팔고 나믄 저녁답에 수금으로 하는기라. 그래그래 돈을 벌아가 인자는 보살을 사다가 창고에 옇는기라. 여놓으믄 인자 살 귀하고 보리때가 되믄 말이지 이기 한 오분지 일은 오리는기라. 그때 쪼매 돈을 벌았다. 그 당사 무신 일이 있았는줄로 아나? 우리가 마 염창골 밭에다가 집을 지아가 사이까네 누가 마 돈 많다 캤는기라. 하루는 저녁답에 변소를 갈라고 나서이 화-악하고 바람이 디게 부는기라. 이래 보이 변소 잩에 감나무가 하나 있았는데 감나무 이파리는 한 개도 까딱거리지 않는데 무시 태풍이 오노. 그래가 이상하다 싶아가 있으이 또 바람이 마 샤-아 하고 지나가고 그래도 마 변소는 갔다왔재. 그 당시 장사를 마치고 나믄 보에다 이래 돈으로 싸가 자는 발 잩에 두고 고 잩에 살 찌르는 침 그거 놓고, 그 잩에 담배 놓고 잔기라. 그래마 변소 갔다 와가 눕어가 잘라카는데 뭐시 누가 후라시를 대놓고 정지칼로 내 얼굴에 터억 대는기라. 저 짝 방에는 어무이가 잤는데 기척으로 듣고는 누가 왔나? 이라데. 그래가 안강 살 받으로 가는데 같이 가자고 왔니더 그랬지. 안 그라믄 푹 지르믄 우야노. 잩에는 마누래가 아들 안고 자고 있았다. 그눔이 내 쪽으로 후라시를 대놓으이 얼굴이 보이나 앤 보이재. 그래 내가 다부 엎디 담배를 하나 푸울라 하다보이 이거 마 우예 한번 해보까 싶더라고. 이 발만 하나 오그리믄, 퍼뜩 일라기만 하믄 마 저거 팍 밀아뿌까 하는데 이눔 마 저 문이 고리가 걸리 있으이 앤 넘어가지 싶은기라. 가마보이 잩에 늦까 돈을 가주고 온거로 따로 나둔 것이 있았는기라. 그래 내가 여 돈이 있으이 가주고 가라카며 돈을 시알라 주이 도둑눔이 앤 받는기라. 내가 장보고 포항사람이 저녁답에 와가 다 가주고가고 이것뿐이라꼬 이기 다 가가라고 사정을 했는기라. 내 더 있으믄 더 주이 다 가가라고 말이다. 사실로는 큰 돈은 보따리에 싸가 발로 얹아놓고 잤는기라. 누가 아나. 모르재. 그라니 마 그 도둑눔들이 거울 달린 농이 있았는데 그기를 열고 막 뒤지는기라. 뒤지믄 뭐하노. 돈은 발 밑 잩에 있는데. 그래가 마 없으이 다부 먼저 주던 돈 받아가므 뭐라카나카믄 고발하믄 좋찮다 하는기라. 그라고 대문을 터억 열어가믄서 가는데 마 화가 나가 잩에 마누라 보고 니 와 꿈쩍도 안했노하이 돌아눕는데 보이 끈 많이 있는 운동화가 보였는데 이짝에는 구두로 하나 신은 기 보였다카데. 두 놈이였던기라. 한 눔은 마누라한테 칼로 푹 대고 있았으이 우예 무신 말로 했겠노. 도둑눔 간 뒤에 불로 인자 안쓰고 옷을 줏아입고 나가이 그때 한 세시나 됐는고. 비가 오이 비설거지 한다고 아주무이들이 나와 있았는기라. 그래 물으이 사람이 둘이가 지나가드라 하는기라. 거서 쪽 내리가믄 이짜 핵교도 있고 저짜에도 질이 있으이 무시 어데로 갔는지 알 수가 있나. 경찰에 신고를 해도 자죽을 보나 뭐 우야노 치아 뿌랐재. 고 다음날로 점바치한테 가 물으이 우리 맏딸이 하나 죽았는데 아이고 아부지요 내 그만치 말로해도 그마이 모르요. 아부지 바보 아인교 하데. 변소 갈 때 그 바람소리 씨게 났던 기 울 큰딸 신호였는기라. 마 그기를 알아듣고 불로 써놓고 주깨고 있았으믄 도둑놈이 안 왔재. 마 그래도 그마하길 다행이다 싶아가 잊아뿌고 살았다.
- 우연찮게 고랫배와 인연이 닿았다.
살장사해가 집도 사고 뭐시 돈도 많이 불긴 불었다. 그라다 우연찮게 화물로 하게 됐는데 화물은 쉽나. 해보이 짐 실어야 되재 날라야 되재 세상에 숩은 일이 어데 있겠노. 그래도 마 열심히 하던 중에 우연찮게 내가 고랫배와 인연이 닿았다. ‘흥안호’라꼬 한 25톤짜리인데 배도 목선이고 크기도 젤로 적은기라. 지럭지도 우리 요 방보담 쪼매 더 질았다. 그기로 첨에는 울산사람이 갖고 있았는데 고래가 어데서 많이 잡고 팔리고 하나 하믄 동해바다인기라. 그래 그 사람이 여 와가 배를 하고 있았는데 남덜 배는 고래로 턱턱 잡아오는데 지 배는 몬 잡아오고 이라이 뱃사람들으는 묵여야되재 식량은 없고 하이 돈으로 자꾸 외상을 하이 누가 한 분은 줘도 두 분은 줄라카나. 앤주지. 그리이까네 도저히 몬하고 내한테 와가 하소연으로 하곤 했다. 그때 내캉 쪼매 친했지. 내 살장사 할 때 살도 우리 집에 읃아러오고 하이 내 살도 주고 이래 이래 알았는기라. 그래 마 자꾸 객지사람이 외상 줄라카이 앤주고 그라이 뱃사람들도 뭣이든 묵어야 작업을 나가재 배도 쬐매한긴데. 그래가 어불러 한 분 해보자고 날로 권하는기라. 가마이 생각해보이 마 한 분 해봤으믄 싶은 맴이 들아가 그라믄 좋다 하자 그랬재. 그래가 다부 지 명의로 해놓으이 이기 또 앤 잡히는기라. 지도 또 미신을 믿았던고 김사장 한 분 해보이소 하매 허가는 울산 허간데 명의를 내 앞으로 해뿌린기지. 아 또 그래 놓으이 마 쪼매썩 고래가 잡히는기라. 희안채. 그래 마 잡고 이래 하는데 작아도 벌긴 버이까네 날로 보고 흥안호 이기로 사라 하는기라. 지는 울산서 배가 철선이 하나 났는데 어데서 빚을 내가라도 울산서 난 배로 사야겠다고, 그때가 73년이라 고때만해도 여가 살장사 해가 번 돈이 있으이 숩게 흥안호를 살 수 있았재. 그래가 그 고랫배를 본격적으로 내가 맡아가 하게 됐다. 하이 마 고래를 잘 잡는기라. 항구다방에 앉아가 내다보믄 뚜-우하고 배가 들아오고 뛰 나가믄 고래를 잡아오재. 사우고 뭐고 수협에 있으이 즈들 다 알아가 팔아주고 일이 숩은기라. 참 재미있았다. 내 무신 뱃일을 알겠노. 한 개도 몰랐다. 그란데도 나가 노이 재밌고 해서 슬슬 배 나갈 때 따라붙았다. 그란데 내는 구경삼아 가는데 포장들은 내 가는 기를 싫어하는기라. 고래 오는데 헛빵 놔뿌리믄 미안커든. 몬 잡으믄 돈 한 200만원 날리는 거 아이가. 그래가 포장들으는 말 날까 싶아가 밑에 부하들을 즈그 친척들로 두었는기라. 누가 저 포장 오늘 고래 보고 마 헛빵 질렀다카문 안되잖아. 고래 한방 쏘는데 을매나 돈이 많이 드노. 200만원짜리 잡으믄 읃아 묵을 기로 몬 잡으믄 몬 읃아 묵을게 아닌가베. 말도 자꾸 새가지고 결국은 내한테꺼정 오는기라. 그라이 즈그 친척을 태우지 남은 잘 앤 태우는기재.
이래 보므는 울산 철선들은 2월 초순부터 조업을 시작해가주고 장생포를 출발하므는 젤로 먼저 어청도로 간다. 그라니까 경기도 저짝 서해안으로 올라가가 한 달 정도 조업하다가 쪼옥 내리와가 고래들이 동해안 울릉도 쪽으로 싸악 빠져가주고 다시 북상하므는 한 철 조업이 끝났다. 그라지만 우리 목선들으는 멀리 몬갔다. 근방에서 조업으로 했는데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쯤 되므는 대보 저 짝 바다로 고래 떼가 마 풀쩍풀쩍 솟으며 왔다. 보믄 마 멋졌는기라. 철선에는 보통 해부장꺼정 데불고 댕겼으이 한 12~13명이 탔지마는 목선에는 인자 보통 7명 태운 배가 있았고 많아봤자 9명인기라. 선장 있고 기관장 있고 젤로 으른인 포장이 있았다. 법적으로는 선장이 으른이지마는 실제로는 포쏘는 사람 포장이 젤로 으른인기라. 또 밥하는 화장이 있고 2등 세라, 1등 세라 그라고 숩게 말하믄 밤으로 경비서는 도방새가 있았다. 도난사고라든가 화재예방 무시 그란 기를 책임지는 사람이재. 또 갑판장도 있았고 조기장 있았고 보조역활으로 하는 남부두도 있았다. 새북 4시쯤 되믄 인검소에서 출항증 받는다. 날이 나빠가 폭풍 내리뿌믄 앤주지. 그길 받아가 이래 바다로 간다. 목선은 먼데로 몬가이 하룻만에 다부 돌아오는데 그때만 해도 김신조니 뭐시 넘어오고부터는 해빠지고나믄 몬하게 했으이 다부 돌아왔지. 고랫배 타는 사람들으는 뭐시 눈이 좋아야 하는기라. 그때도 마 쌍안경이 있기는 있았어도 그기 고래에 대해가는 잘 몬 보는기라. 고래가 부-우 올라오는데 워나기 겉에 나와있는 시간이 즉으니까네 쌍안경으로는 그 고래가 잩에 딴 배로 붙이고 있는가 항해만 하고 있는가 그기 볼라꼬 있았는기지. 그라고 고랫배에는 지다란 망루라카는 기 있고 그 우에 망통이 있았는기라. 거는 화장도 올라가고 포수도 올라가고 날씨가 춥으므는 교대로 둘이 서이 내 오리락거렸다. 올라가믄 첨에는 쪼매 겁도 나고 했는데 이내 마 기분 좋아진다. 이래 올라앉아 고래를 발견할 때는 180°로 샐피고 인자 고래로 발견한 후에 고래가 마 물 속으로 다부 푹 드가뿌믄 그때는 360°로 살핀다. 우예그랬노카믄 고래란 놈이 콧구멍으로 숨을 수고 드가뿌믄 이눔이 뭐시 어데서 다시 튀 나올 똥 모리는기라. 그라믄 첨에는 엔진으로 팍 돌리고 시커먼 연기로 퍽퍽 내지마는 바로 속력을 낮차가 고래 가는데로 살살 따라 붙인다. 작은 배는 선장이 붙이고 쪼매 큰 배는 마 지각끔 몫이 있아가 손발로 척척 맞춰가매 가찹게 붙인다. 망망대해에서 이래 댕기다가 고래를 터억 보믄 말이지 누구라도 마 먼저 씨게 괴함을 지르는기라. 뭐라 그라나하믄 지각끔이라. 우예든동 뭐라카든지간에 남이 알아들으믄 되는기라. 높은데 망통에서로 보믄 물 속으로 이래 고래가 가는 기 보인다. 그기로 이로라카는데 이로보고 고래 머리가 가는 코스로 보고 배가 따라 붙도록 지시를 해줘야하는기라. 왼쪽으로 나오믄 보루, 정면에서 나오믄 헷또, 인자 오른쪽으로 나오믄 시라보루. 그래 고래가 다시 튀 나오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주깨는기라. 그란데 망루에서로 지껄이믄 이 아래꺼정 잘 앤 듣기재. 그래 인자 호수로까 맨든 나발문지로 생긴 거로 망통에서 말로하믄 중간에 귀로 대고 듣고 있다가 바리 기관장에 전해주는기라. 이기는 뭐시 한 치도 삐뚤믄 안된다. 그라이 경험도 있아야하고 맴도 맞아야하고 그랬다. 목선들으는 기계소리가 들나도록 적기 나도록 넓게 간다. 고래 앤 놀래라고, 철선들으는 소나로 잡으이까네 그란게 읎았지. 보믄 마 바로 쏴뿌이 고래들이 놀라고 자시고 할 틈이 읎았어. 고래한테로 가차와지믄 인자 요는 총을 쏴야 하는기라. 그 당사 총이 유효사거리가 50미리는 15경, 60미리는 17경, 보통 70미리가 많았거든. 10경 6자다. 이승만 대통령때 일본사람들이 우리 영내에서로 한다고 빼앗아온 일포라고 있았는데 그기 90미리짜리 총이라. 젤로 길았지. 옛날에는 헛빵이 많았다. 그라다 울산에 고랫배 두 척 갖고 있는 회사가 있았는데 그 집 아들이 수대 나와가 연구를 해가 이 마 창살이 가다나수라고 빼쪽했는데, 고 아래 네 가닥을 묶아 놓는 기를 맨든기라. 줄 뒤에 닝구라고 철사까 만들어가 한 방 맞으믄 가지가 벌어져가 다시는 앤 나오도록 했는기지. 우짜다 그기 고래 등가지로 빗나가믄 등가지 살이 마 다 나가 뿌리지. 그기는 헛빵해도 다시 감아가 썼다. 첨에는 총 끝이 빼쪽했다. 그기 가마이 보이 우리 와 물 우에 돌로 던지믄 앤드가고 탕탕 튀 오리는 거 맨쿠로 물살이 있으니까네 자꾸 튀 오리는기라. 그래 마 내중에는 끝으로 뭉툭하게 끊았다. 뭉툭하므는 더 안 들아갈 거로 알았는데 뭐시 잘 드가고 물 우로 튀는 게 없는기라. 그때 줄로도 로프를 썼는데 그기 물로 많이 타그든. 물 많이 타믄 무겁잖아. 그래 나중엔 나이롱을 쓰고 했지. 그라이 헛발질이 적드라고. 고래가 물 우로는 3분의 1밖에 앤 올라오고 3분의 2는 물 밑에 있으이까네 그기 맞추기가 힘들다. 물결 오리락 하재 배는 가마 있나 지도 오리락 하재 경험이 읎으믄 어렵지. 딴 배도 다 한가지지마는 고랫배는 맘이 화합이 되야 했는기라. 일로 쪼매 몬해도 되지만 화합으로 앤하믄 몬 쓴다. 이래 나가가 마 나가수 같은 거로 한 마리 잡으므는 딴 거는 앤 잡는다. 워낙 크이까네. 전에는 뭐시 나가수로 두 마리로 잡아 들룬 역사도 있다하더만 그거는 혹이고 몇 년 가가 한 분 있을까 말까고 보통 나가수라꼬 잡으믄 한 마리만 차고 들아오고 했는기라. 고래 종류가 밍크, 나가수, 인자 자또, 곱생카는 거 마 이래 많은데 진짜 우리가 돌고래라카는 거는 저 음력 한 10월 그믐쯤 되믄 북에서 가로 타악 붙아온다꼬, 겨울되믄 철새 오듯이 말이다. 그란데 그거는 희안하게 떼로 앤짓고 우예믄 부부고 아이믄 한 마리다. 그래가주고 쭉 남쪽으로 내리와가 설 시고 다부 북으로 올라간다꼬. 그 눔은 꼭 가 로만 붙어 댕기는기라. 그 전에는 더러 잡았는데 그기 귀했다꼬. 근데 고랫배 치우기 한 7,8년 전에 영 마 자취를 감춰 뿌랐다. 소련 바다서 다 잡아뿌랐는가 먼데로 갔는가 읎다. 그기 진짜 돌고래인기라. 지금 돌고래라 말하는 거로 곱생이고. 그때 진짜 돌고래 그기 맛있았지. 지름도 많았고 한 50자 되믄 지름으로 한 도라므나 짜고 했다. 맛 좋았지. 고래고기 잘 해놓으믄 소고기는 마 저리가라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 오믄 열 넉자 열 닷자짜리 고래갈비 좋아했다. 고래 한 마리에 맛이 열 두가지라. 같은 밍크라도 헤쳐보믄 윤이 반딱반딱 나고 맛좋은 기 있고 하믄 맛이 읎는 기도 있았다. 돼지괴기도 안 그라나 맛있는 기 있고 맛없는 기 있지. 맨 마찬가진기라. 고래가 참 이쁘다. 밴지르르 한 기 참 이쁘다. 우리 테레비에서 보믄 돌고래가 그기 그마이 떼로 지아가다가 젤로 앞에 선 놈이 마 방향을 바꾸므는 다 따라 댕기지. 그기로 보믄 즈들 끼리는 통하는 말이 있는기라. 우리 귀에는 앤들려도 있는기라. 그래 이래 고래를 잡아가 꿰차고 들어올 때는 말이지 그 회사마다 장.장.단, 장.단.단 이라는 지대기가 있그든. 뿌- 기계바람 가주고 질게 했다가 짧게 했다가 두 번 했다가 세 번 했다가 카는기라. 그라고 만선기도 꼽았다. 그래가 마 들아올 때는 그기로 우예 말로 다 하노. 그래 들아오믄 부두에서로 아- 고래 잡았다 카믄서 몰리든다. 기분 좋지. 좋구 말구로. 그라믄 인자. 바로 올리믄 그때부터는 어업조합에서 처리해 주는기라. 가끔 선주가 경매 입찰을 앤 시키고 고래를 깰 때가 있는데 그때는 선원들이 같이 고래를 깨고 일본 수출할 때도 경매를 앤 붙이고 바로 작업해가 보내는기지. 맨날 나갈 수 있나. 바람 불아도 앤되재. 비가와도 앤되재. 몬 나가는 날로 더 많지. 그때는 인자 고래 잡을 때 젖았던 줄로 말리고 인자 다음 작업을 위해 가주고 로프 같은 거 풀아가 다시 감고 딴거 미비한 거로 갑판장이 챙기가주고 밑에 사람들하고 배 청소도 하고 그랬는기라. 그래그래 ‘흥안호’ 하다가 ‘용운호’라는 배를 하나 더 샀다.
- 사램이 고래만같으믄 자석 놔 놓고 달라날 눔 아무도 읎재.
고래가 말이지 굉장히 영리하데이 소보담 더 영리해. 이래 보므는 우리가 고래를 발견 앤하나. 보믄 부부간에 새끼를 데불고 가는 기 보인다. 식구 세키가 이래 막 가는기라. 그라믄 철선들은 일본말로 소나라카는 걸 갖고 댕겼지. 소나는 일본 사람들이 쓰는 긴데 고래 잡는데는 왔따지만 다른 잡어들이 마 피해를 보는기라. 그래가 일본에서는 쓰지 몬하게 했지. 그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다가 썼다. 그 소나를 고래가 잠수로 몬하게끔 물 속에 잡아옇고 요래 15° 요래 15° 그라니까 30° 각도로 전파를 쏴뿌는기라. 고래도 귀가 있데이. 그래 가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카믄 미친다 아이가. 막 튀 오르지. 한 10분만 그래 튀쌌타보믄 마 퍼져뿌리지. 우리 목선들은 소나 없으이. 그저 마 대포 갖고만 잡았다. 신랑각시 요래 가다보믄 제일 뒤가 숫놈이라. 아하고 마누라하고 앞세우고 지는 뒤에서 가는기라. 암만 쫓아도 꼴찌서 간다. 희안채. 그라다 안되믄 에미가 요래 날개에 새끼를 언자가 간다. 그기로 가마이 보믄 저란 정도 같으믄 자석 놔 놓고 달라날 사람 아무도 없을기라 생각든다. 그라믄 인자 우리는 숫놈부터 잡아야 하는기라. 암놈부터 죽여뿌믄 다 달라뺀다. 숫놈부터 요래요래 순서대로 포를 놓는기라. 교미할 때는 또 우짜는 줄 아나? 희안테이. 이래이래 가다보믄 고래들이 마 우글우글 한기라. 그기 암놈 하나에 숫놈들이 예닐곱마리썩 몰려있다. 그라니까 그때도 순서대로 잡아야 하는기라. 암놈 쏴뿌렀다가는 다 놓친다. 숫놈 다 달라뿐단 말이다. 숫놈을 하나씩 하나씩 잡아야 다 잡는다. 숫놈들은 마 잩에서 죽그나 말그나 그저 암놈만 쫓는기라. 한 분은 또 이란일이 있었다. 에미고래를 잡아 데불고 왔는데 밤새도록 희안한 소리가 나는기라. 알고 보이 새끼고래 두 마리가 지 에미 잡히간거로 알고 마 방파제 너머 꺼정 와서는 울었던기라. 그리이 사람보담도 나은기지. 근방에서 고래를 잡으믄 젤로 가차운 데로 간다. 포항꺼정 갈라믄 멀그든. 항에 배들 꽉꽉 찼재 시간 오래 걸리재 대보등대 있는데서 잡으믄 구룡포꺼정 들어올라카믄 십리인데, 포항 들어갈라카믄 이 십리인기라. 거다가 또 팔고 돈 찾아와야하이 귀찮시럽고,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하이 불편코. 그래마 젤로 가차운데로 가는기라. 인자 죽변도 그게 읎았는데, 하도 고래로 잡으이 거서 끄잡고 이까지 올라카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하이 인자 거 뭐시 위판하고로 해가 허가를 받아가 겨우 생겨난기라. 그라이 고 죽변 근방에서 잡으므는 보이스로 ‘선주 올라가시오’ 이리 치는기라. 배는 거가 풀아놓고 기다리믄 내가 다부 올라가가 잡느라 욕봤다고 안주하고 정종 한 병 사가 올리주는기라. 올리주고 나가 경매하믄 10분에 3은 선원들, 그라니까 100만원 받으므는 30만원은 선원들로 주고 나무지는 내가 지름대고 했으이 갖는기지.
요사 와 고래괴기에서 냄새난다카는 그기는 곱등생이지 고래가 아이다. 혼고래 이그마. 그 비싼 거로 수입해도 팔아지는가. 못 판다. 그라이 곱등생이를 삶아가 파는기라. 그기는 삶아노믄 살키가 거멓다. 밍크란 거는 살키가 허여므리하고, 나가수는 아주 마 아주 허옇지. 절대 꺼멓고 벌겋고 한 기 읎다. 다른 고래는 색깔이 그래도 이래저래 있지마는 나가수 그놈으는 꼭 가루분매로 살키가 허연 기 참 좋다. 나가수가 뭔가카믄 책에 나오는 대왕고래인기라. 그기 책에는 질게 그려놨재. 실제는 높이가 집채만 하데이. 실지 고래는 이가 읎다. 며루치고 뭐시고 들마시고 꼭 칫솔맨쿠로 생긴 고 새로 물로 화-악 내 쏟는다.
나는 배가 나가믄 날로 좋은가 오후쯤 되믄 한 마리 잡아 올랑가 여 항구다방에 가가 내 문 열고 바다만 내다보는기라. 그기 낙인기라. 딴 배는 잡아도 그냥 뛰-이하고 오는데, 우리 배는 잡으믄 빽~빽 씨게 기적을 불어 제치는기라. 그라믄 한 마리 잡았구나하고 바리 내리온다. 하루는 인자 내 조합에 있으이 큰 기 잡았다고 배에서 포장이 보이스로가 쳐 보낸기라. 우리 용운호가 나가수 몇 자배기 잡았다코 이라믄 마 바로 판매과하고 붙아있으이까네 아구 아무것이 나가수 잡았니더하고 안 알려주나. 그 소리 들으믄 외려 맴이 덤덤하다. 그 한 마리 잡으믄 1년 쇼부는 마 나뿌는기라. 우쨌든지 마 내리온다.
- 빌기도 마이 빌었지.
해상사업을 할거 같으믄 다 미신을 많이 믿어야했다. 영감 할무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음력 초이틀 날에는 절로 하나 맞춰놓고 거 기도하러 가는기라. 그때는 절도 쪼매난 절이재. 용운호 고거 해가주고 고래를 몬잡았을땐데 인자 좋다카는 점바치는 다 찾아가는기라. 배에 고사도 많이 지냈다. 우예 지내는고카믄 잡으믄 마 기분 좋아가 배 고사 지내고, 몬잡으믄 잡아줄라고 고사 지내고, 한 달에 한 분씩은 고사를 지내야 하는기라. 그래가 안직까지도 집에 갈 것 같으믄 전에 고사 지내던 다라이가 이마이 큰기 몇 나 있다. 거 두 다라이씩 집에서 떡하고 음식하고 해가 이고 가그든. 밥으는 인자 배에서 하고 집에서는 음식을 하고, 가믄 거서로 인자 바다 저 꺼정 나가 고사를 지내고 들어온다. 몬 잡아도 고사 지내고 잡으믄 기분 좋다고 고사를 지내고 그라이 집에 있는 사람은 정말로 힘이 많이 들았다. 몬 잡을 거 같으믄 해나 부정타가 몬 잡았는가 싶아가 또 점바치한테 물으러 간다꼬, 가믄 뭐가 걸리가 옛날 선조 뭐시 할배가 읃아 잡술라고 한다카고 그라믄 또 굿을 한다꼬. 몇 십만 원씩 그때만 해도 몇 십만 원이라카믄 돈이 많이 큰기라. 그란데 그래 굿을 하믄 밉다고 또 한 마리 잡아온다. 그 재미로 또 한다꼬. 그래 인자 그 절에 가가는 죽을 판 살판 영감 할매가 비는기라. 고래 한 마리 잡아 줄라고 빌고 고맙다고 빌고 몬가도 한 달에 두 번 세 번은 빌러 갔다. 아이구 그기 참 아 들이노 많지. 핵교는 댕기지. 배 오믄 고래 잡을 때 고때만 잠깐 기분 좋지. 막상 배 내보내 놓으믄 파도칠까 싶아가 간이 다 쫄아 붙아뿐다. 남자들이사 어불려 나가노믄 잊아뿔 때가 있지마는 여자들으는 신경이 많이 씨지. 우리 할매는 별시러버가 그란가 더 했다. 사람이라는 기 오늘 한 마리 잡으믄 내일 또 잡고 싶아가 바래는기라. 그게 말하자믄 욕심인기라. 가마이 생각해보믄 그 때 마누래가 기세도 좀 있았지 싶다. 요새 같으믄 마 세상이 귀찮아가 몬하지 싶다. 음식으는 하루에 다한다. 제사 음식은 인자 온마리 고기에 삼실과 사고 떡하고 술받고 또 점바치가 용왕님 문어 좋아한다고 하믄 문어 한 마리 산다. 문어는 비싸그던 비싸이까네 한 마리로 사믄 요 갖다놓고 빌고 조 갖다놓고 빌고 그랬다. 고래 잡았다카믄 일 하던 거로 야들아 마 느들해라. 마 고래 잡았다칸다 하믄서 신이사 벗기기나 말기나 마누라가 막 쫓아내리온다. 와가 보믄 참말로 고래를 잡아가 올리그든. 그자사 내가 뭐시 일 해다 말고 와 내리왔는고 싶아가 다부 올라가곤 했는기라.
- 고래는 버릴 기 한 개도 없는기라.
큰 고래는 자주 몬 잡았다. 목선이니 큰 놈으로 만나믄 다부 달라빼야지. 꽁지로 툭 치믄 우야노. 50자 짜리는 높이가 사다리 놓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큰데 우예잡노. 새끼 서른다섯 자 짜리 만해도 이짝에 사람이 서믄 저짝 사람이 앤 보인다. 그래도 8톤 추럭에다 살키만 두차다. 그마이 크지. 일본은 화선 밑에 큰 배가 하나 따라 댕기는기라. 잡아가 일본꺼정 끄잡고 갈라카믄 다 썪어 문드러지고 말테이 잡으믄 거서 막바로 끊카가 껍데기 싸악 벗겨 뿌리고 살키만 박스에 드갈만치 딱딱 끊카가 옇고 얼음을 재가 싣고가고 지름 짤놈 짜고 그랬다. 여 고랫배는 따라 댕기고 그란게 읎어. 비용이 을매나 드는데 따라 댕기노. 그래 먼데도 몬 갔지. 수심이 깊으믄 끄잡고 올 수가 없지. 한 천 메다나 내리가쁘믄 기계 힘은 읎지를 끌고 오지 몬하지를 그래도 수심이 얕으믄 며칠이고 끌고 와가 저짝에 배 올리는데다가 떠억 올리는데, 한 이틀되믄 고기는 다 썪었지를 그기 한 스물네 시간 지나뿌믄 마 썪는기라. 그라니 사십 몇 시간 오십 시간 되믄 우야겠노. 그눔 썪어가 저 놓으이 이놈도 가져가고 저놈도 가져가고 산덩이만한 거 끄잡아 올리놔도 마 을매 받지도 몬하고 후딱 팔아삐야 하는기라. 그라이 먼데를 갈 수가 있나. 큰 기도 잡을 수 읎았지. 우짜다 큰 거로 잡으므는 기냥은 몬 데불고 온다. 작은 놈으는 이래 마 끄잡고 오믄 되지만은 큰 기는 그기 어려분기라. 그 큰 놈이 바닷물 속으로 쑤-욱 드가뿌믄 배가 우예 되겠노. 그래가 짝살로 창 같은 거로 배때기를 푹 찌르거든. 찔라뿔고는 기계로 돌리가 창에 주사기앤즈로 에어를 여야 한다. 에어를 여믄 바람이 붕-드가 고래가 안 뜨나. 그라믄 인자 끌고 오는 기 쪼매 수월해 지는기라. 수월키는 하지마는 고기는 좀 상치. 그라이 싸게 끄집고 와가 싸게 해쳐야 한다. 부두에 끄집고 올리자마자 이양 끊카야 한다. 고래가 떠억 들아오믄 경매 보는 사람들이 지다리고 있다가 하마 이기는 몇 자고 요기 살키 을마 나온다카는걸 다 알고 있다 말이지. 그래 인자 경매를 옇는데 단가가 을매다 을매다 하믄 한 분에 경매 마 딱 떨어지믄 해부하는 사람들으는 마 지다란 칼로 이 만치씩 뜯아내는기라. 고것도 인자 드갈만치 정해주고 뜯는데 나날이 해 놓으이 끊가내믄 딱딱 맞는기라. 껍데기는 발라내고 살키만 끍아내는 기 희안타. 그래가 얼음 쑤그리옇고 그라고 인자 경매보던 사람들도 집에 냉장고 채려놓고 대가리 꽁지 같은 거는 인부들로 시키가 즈들 집에도 실아다 놓는기라. 고래는 말이지 한개도 버릴 기 읎다. 아주먼네들이 뼈가치 가주고 불로 활활 때가주고 삶아가 그눔 끄잡아내가 썩썩 상그라가 파는데 경주, 포항 사람들이 사러온다. 그라믄 마 을매다 을매다 값으로 매기고 그럼 몇 관 줄라카믄 팔고 했재. 특히나 경주 사람들 그때 많이 사갔다. 돈 있는 사람들으는 살키를 사 묵지만도 읎는 사람들으는 그랄 수 있나. 그란데 희안한 거는 제각끔 입맛이 천지차인기라. 어떤 사람으는 껍디기를 참말로 잘 묵는다. 전신에 지름친데 내 아는 울산 포장 하나는 살키는 절대로 안 묵고 내 지름치만 사 묵었는기라. 하루에 한 분썩 그 지름치를 안 묵으믄 몬 산다카드라. 살키 떡떡 비가고 나믄 남는 껍질로 크다란 솥에다 옇고 불로 땔거 같으므는 지름이 둥둥 뜬다. 그라믄 그 지름을 도람에 붓는기라. 그 지름은 비누공장에서 사러오지. 지름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난 찌끄라지는 또 우야노 하믄 그 또 묵는 사람이 사러오는기라. 그기 뭔지 아나? 껍디기 고기 인자 빠싹 익아뿌믄 지름이 어느 정도 떨어져 나가고 고것만 남는데 그기 바로 고래과잔기라. 그 당사는 그 마카 읎이 살았다. 우리 클 때 저 대보 사는 사람들으는 살로 서 말을 몬 묵고 시집왔다 캤다. 살은 읎고 고작 보리뿐이었재. 논이 있는그는 골짝인데 논이 있는 사람들으는 그때만 해도 부자인기라. 전신에 밭이고 고구마 심쿠고 보리 심쿠고 살밥으는 제사 지낼 때나 구경했지. 우리 마누래가 대보 사람인데 지금도 마 누가 보리밥 묵으러 가자카믄 마 돌아앉는다. 그마이 몬 살던 시절에 지금처럼 뭐시 묵을게 뭐이 있었겠노. 눈깔사탕도 돈이 있어야 사 묵고 엿가락도 냄비나 고무신이 있어야 사 묵지. 그라이 고래과자는 최고였다. 하모 최고품이지. 그눔을 갖고 질겅질겅 씹아 묵으므는 쫄깃쫄깃한 기 고소했는기라. 누가 이웃에가 읃아오믄 인자 좋다카고 묵었던기지. 그 당사에는 일본 사람들 풍습이 쪼매씩 남아 있았다. 그 사람들이 이래 보믄 찹쌀모찌 그그를 마이 맨들그든. 집을 새로 지우든지 배로 새로 맨들므는 모찌를 큰 다라이로 한 다라이씩 맨들어가 그 속에다가 돈으로 옇는기라. 다 옇는 기 아이고 드문드문 옇지. 그래가 다라이로 이고 젤로 높은데 올라가가 이래 막 떤지는기라. 일로 내삘고 절로 내삘고 그라믄 그기를 주아 묵으믄 재수 좋타꼬 막 줏아 묵으러 가그든. 재수 좋으믄 떡 속에 돈도 들아 있고 그랬다. 인자는 누가 그란 거 하나? 저번에 우리 사우도 배 새로 한다캐서 포항 가 봤드이 안하데. 앤하고 배에서 이래 내라오는 나무를 하나 놔나놓고 거다가 음식을 잔뜩 채리더라고, 채리가지고 마 가이까네 여럿이 모여가주고 그거 묵고 뭐시 다 묵고 난 뒤에는 마 배에서 내리놓구 마 말드라.
- 살아생전에 다부 고래 잡을 날 있을라는가.
내가 이기 고랫배로 73년도에 시작해가 85년도에 마쳤으이 어불더불 십이 년이나 한기라. 그라고도 18년이 지났재. 하마 내 나이 팔십 둘이라. 이 나라 저 나라 조합맨쿠로 계가 있았는데 영국 아주머이가 대장이라. 85년도에 말하기를 딱 5년만 잡지말자 캤지. 5년 후에는 허가를 다부 해가주고 고래를 잡는다 캤는기라. 그때 전국에 고랫배가 스물 한척인데 스므 척이 경남이고 한 척이 경북인 우리 배 용운호인기라. 그 당사 우리가 중앙청에 마이 올라갔구만. 가이 첫 먼저로 느그하고 잡은 데로 뭐이 주끄나하데. 울산에 내리가이 몇은 트롤선하자하고, 새우 잡는 트롤선 말이다. 돈 있는 놈으는 트롤선 할라 이라고 우리 같이 돈 읎는 놈들은 다부 배로 팔라하고, 와 그렇노하믄 한 두 군데 같으믄 할라카지마는 죽변부터 저 속초꺼정 가믄 우리도 여서 트롤선하믄 생계를 할까말까 한데 스물 한척이나 허가 내뿌믄 우리는 다 앤 죽나. 그래 마 막 데모를 해가 트롤선 허가로 막았지. 그라이 이번에는 지각끔이라. 콜프장 허가 받는 놈, 택시 허가 받는 놈, 마캐 지 원대로 받는데, 우리는 뭐나 약하지럴 돈도 읎지럴 돈 있는 놈이사 즈들 뜻대로 하지마는 읎는 놈들은 이도 저도 숩지 않은기라. 그래마 스물한 척에 세 척일랑 수용선 하자. 고래가 올개는 어데로 가고 오는지 보는 수용선 세 척 놔두고 열여덟 척이만 허가를 바꾸차 이래 됐다. 그란데 한 사람이 두 척 세척 가진 경우에는 뭐이 아숩겠노. 아무것도 바꾸치 않고 고랫배 허가를 가주 있겠다 한기라. 그라지만 그게 어데 쉽나. 바다에 나가 고래로 잡으므는 괘않지만, 월급있재 또 묵여야 되재. 또 저눔의 영국사람 따라 댕겨야 되재. 그놈 월급꺼정 줘야돼재. 그라고 또 돌아 댕기는 장소 죄다 적아가 영국에 마캐 보고 해야 하는기라. 마 이래저래 5년이 지나이 이기 뭐 아무 소식도 읎는데 우야노.
대구 동청에 가믄 서류가 한 짐이라. 5년 후에 다부한다고 말해놨으이 고랫배 안하는 사람도 다 서류를 여가 말이지 고랫배 타던 선원들도 하고, 오징어배 타던 선원들도 하고 마 이랬는기라. 고랫배 할라고. 우리는 그때는 마 하믄 하고 말믄 말고 했는데 내사 마 전업도 아이였고 우째 마 해본 긴데 그기 할기 또 못되는기라. 좋은 일만 있나 바람만 불어도 걱정, 그라이까네 이래가 안 되겠다 싶아가 다부 치아뿐기지. 그란데 또 몇 년 지나 중간에 뭐시라 고랫배 우짜고 저짜고 말이 있는기라. 그래 내 생각했지. 고랫배가 스믈한 척에 세 척이 지금도 있으이 나무지 열 여덟개를 다부 허가로 주믄 우얄까. 하지만도 세 척을 줄똥 열 척을 줄똥 모르지. 대통령이 빽이 있다고 내 마음대로 하이. 전라도는 농사만 짓나. 전라도도 배하고 싶은 사람 있다는 말이지. 형님요 내 좀 허가주소 하믄 앤 줄 수도 읎고. 그렇다고 빽으로 주나. 빽으로 주믄 대가리 싸움나지. 그라믄 예전에 고랫배하던 사람들로 우선 시킬랑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해봤재. 그란데 요순간에 고랫배가 또 들썩들썩 하는기라. 인자 포항방송국에 고래가 이만치 있는데 잡아가 일본에 수출로 하믄 몇 십억 벌어가 오는데 이기 와 안하고 이라노 하며 앞으로 고랫배 허가를 내 줄라카믄 전에 경험있는 사람으로 주라고 했단 말이다. 그랬는데 우리 큰 아들이 아부지요. 고랫배하던 사람들이 다 살았나카믄 몇 키 안 남고 다 죽았어요. 지가 아부지 내 이 뭐시 해가 될똥 앤 될똥 그거는 모르지마는 한 분 해볼끼요. 그래 마 니 맘대로 해봐라 했더이만 차로 타고 울산으로 부산으로 어데로 앤댕긴데가 읎드라. 언젠가 서울서 대학 선생들이 여 와가 내로 찾아와서는 이래저래 묻고해가 내 잡은 나가수 고래 사진도 우예 알아가꼬 책에 얹아 놨드란 말이지. 근데 이 사람들이 보이 몇 년도에 어느 배가 몇 마리 잡고, 어느 배가 몇 마리 잡았는지 다 기록해 놓은기라. 그래 우리 아들이 그기를 가주고 참작을 해가 용운호가 언제 어느 놈 몇 마리, 흥안호가 언제 어느 놈 몇 마리 이래 서류로 꿰매가 올리 놓기는 했는데 소식도 읎다. 마 안되믄 고만이고 올리나 보자고 올리는 놨다. 모리겠다. 살아생전에 다부 고랫배 갖고 고래 잡을 수 있을라는가. 항구다방에 앉아 저거 바다로 보믄서 빽빽 기적 울며 들아오는 배 기다릴 날 있을라는가.
※ 이 글은 80년대 중반에 중단된 구룡포 고래잡이에 대해 당시 ‘용운호’선주를 지내신 김준기 할아버지의 말씀을 채록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늘 인자한 웃음으로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준기 할아버지와 도움 말씀을 주신 이영식 할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