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의 여직원 셋으로 부터 전화가 온다.
일찍 출근해서 지금 일과 전에 커피 한 잔씩
하는 모양. 몸이 뻐근하니 어서 내려와서 안
마나 좀 해달라고 엄살을 부려본다. 이들의
안마 솜씨는 프로급이다.
아침 출근 시간 때면 여기저기서 격려의 전
화와 메시지가 도착해서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준다.
장흥대교 아래로 탐진강이 흐르고 있다. 장
흥군청이 나타나고 군청 앞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늘 하던 방식대로 1시간 걷
고 10분 휴식이다. 날씨가 약간 더워 물을
자주 마시게 된다. 철쭉으로 유명한 제암산
과 사자산을 지난다. 구름치(운치)라는 근사
한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서 쉬고 있는데 선
거운동원이 차를 세우고 다가오더니 명함을
건네려고 한다. "우린 서울 사람인데요" 했
더니 웃으면서 우리보고 성공을 빈다는 덕담
을 해준다. 시골도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인
데 차량에 달린 스피커에서 로고송을 크게
틀고 온 마을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소음공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화백 오공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금쯤 어딜 걷고 있을까? 용맹정진!!' 간단 명료한 내용이다.
나는 곧장 답신을 보냈는데, 돋보기가 없어 문자 글씨가 잘 안 보이는 C와 K는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방금 메시지를 보낸 오공에게 전화를 했는데도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해
주겠단다. 자기 용무만 끝내고 곧장 전원을 꺼버린 오공! 평소 앗쌀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12:15. 구름치 정상에 오르니 식당이 보인다.
'만남 보양탕'.
마당에 주차된 차량이 많은 걸로 봐서 맛이
괜찮은 집인가 보다. 체력 좀 보충해 볼까?
과연 방안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차있
다. 탕을 시키고 30분을 더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면서 재촉 했더
니 주인은, "탕은 팍팍 끓여야제" 하면서 여
유만만. 한참 만에 나온 탕은 기다린 수고를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계속 보성 방향으로 잘 가던 길이 2번 국도와 만나면서 저 멀리 산 밑으로 꺾어져 버린다. 돌아서 가기엔
길이 너무 멀어 보여서 우린 지름길을 택한다고 2번 국도로 올라섰다. 그런데 우린 곧 후회했다. 지름길이
란 게 장난이 아니다. 자동차 전용도로 인데다가 눈앞에 호계터널이 떡 하고 나타난다. 이제 죽었구나!
그래도 저 터널만 통과하면 장흥이 가깝겠지. 3인방은 매연을 방지하기 위해 스카프와 마스크로 복면을
단단히 하고 터널로 들어섰다. 곧 이어 귀청을 찢는 듯 한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차량들이 질주한다. 터
널 통과 10분 동안 우린 지옥을 경험한다.
터널을 빠져나와 맑은 공기를 들여마시며 '거개입구'라는 버스정류장에서 쉬고 있는데 서울의 C사장 전화
가 걸려온다.
- "거기가 어딥니까?"
- "여기가 거개요."
아침에 연락 받은 대로 주간조선 기자와 함
께 우릴 취재하러 거의 다 왔다는 전갈이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환갑이 지난 나이에 걸어
서 국토종주에 나선 세 할배들 얘기를 취재
하겠다는 것이다. 잠시 후 취재기자와 사진
기자 두 분을 대동하고 함께 내려온 C사장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C사장은 전 직
장 여직원의 남편인데 평소 산행을 함께하며
친분을 이어가는 사이이며 이번 국토종주
의 숨은 후원자다. 우리는 오늘 목표인 장동
까지 걷기를 끝내고, 이곳에서 내일 아침 다
시 시작하기로 하면서 차량 편으로 오늘 걸
어왔던 길을 되돌아가, 한적한 시골길을 3인방이 걷는 모습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이런 일을 세상에 알리
게 된다는게 약간은 쑥스럽게 생각되었다.
모두 함께 보성으로 이동했다. 내일 아침 걷
게 될 길을 미리 답사도 하고 또 숙소를 정하
고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모텔 주인이 목욕
탕을 겸하고 있어서 목욕은 공짜로 했다. 여
주인께 빨래를 부탁했더니 탈수까지 해서 방
으로 가져다준다. 우리나라 사람 인심은 어
느 지방에 가도 다 이렇게 후하다는 걸 직접
체험한다. 저녁은 C사장이 이곳에서 가장
잘 한다는 한정식 집으로 안내해서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얻어먹고 영양보충을 하게 되었
다. 이래저래 너무 신세를 진다.
▶오늘 걸은 거리 : 34.3km(8시간 30분)
▶코스: 강진-순지리-장동(북교)
<식사>
아침 : 콩나물해장국(강진)
점심 : 보신탕(구름치)
저녁 : 한정식(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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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ju42)오공이 메시질 다 보냈다구요? 조사장님이 거기까지 내려가셨다니 넘 반갑고 제가 대접 받는 기분입니다. 점수
여러 십점 올려 드려야겠습니다. 다 세분이 쌓아온 덕이 있어서 겠지만. 오늘도 많은 시간 걸으셨네요. 06.05.16 23:03
(장화백)조사장님 여러가지 하시네요. 내신점수 많이 올렸겠어요.ㅋㅋ 암튼 고마운 예쁘니(주미향 애칭)의 거시기라니까...
06.05.16 23:36
(장화백)아무래도 심상치 않어유. 이러다간 메스컴에 3인방 뜨고 말갔시오. 꼽사리로 우리 화백들의 아름다운 모임도 기대
해봐? 꿈 깨라구요?. 알갔슈. 06.05.16 23:38
(명지)저도 노노 삼인방 펜 됐시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넘치는 인정에 행복하실 것 같아요. 힘이 팍팍 오르시
죠? 전진 전진. 근데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말 그대로 노노잖아요.^*^ 06.05.17 08:21
(짬송)조사장님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맛난 진수성찬 드셨으니 기운 펄펄 나서 힘 안 드리고 걸을 수 있겠네요. 멀리
까지 달려간 예쁘니 거시기를 보면서 괜시리 미안해지는 맘, 어쩌면 좋지요. 보성차밭도 들르시고 해수탕에서 몸도 푸시고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06.05.17 09:22
(캡화백)사진촬영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지친 몸에 NG를 몇 번하니! 사진기자분이 무지 고생하셨다. 모두 고마운 분 들이
다. 06.05.19 14:24
(캡화백맏딸)아빠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요.. 혹시 압니까? 기사를 보고 잘 생긴 청년이 장인어른으로 모시고 싶다고 할
지.. ^^; 06.05.20 21:34
첫댓글 아니 터널안에 뭐 비싼 것 있어요?
남자 둘이서 복면을 쓰고 들어가셨기에 여쭙는 겁니다.
건투를 빕니다.
복면하고 권총까지 차고 들어갔는데 허탕치고 소음과 매연 땜시 죽을뻔 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