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빚기가 세 번에 걸쳐 이뤄지는 삼양주, ‘춘주(春酒)’
흔히 좋은 술을 가리켜 ‘명주(銘酒)’라고 하고, 맛과 향취가 특히 좋은 고급술을 가리켜 ‘춘주(春酒)’라고 한다. 따라서 명주는 춘주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춘주(春酒)는 술빚기가 세 번에 걸쳐 이뤄지는, 이른 바 삼양주(三釀酒)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적으로 두 번 빚는 이양주(二釀酒)에 비해 술맛이 뛰어나고 향도 기특하며, 술 빛깔도 더 맑은 것이 특징이다. 술 이름에 춘(春)자를 붙이게 된 것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생겨난 풍습이다. 이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고려시대 때부터 춘주가 등장했음을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중엽에는 지방의 특산주들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맛과 향을 다투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의 삼해주를 비롯하여 평양의 벽향주, 충청도의 청명주와 노산춘,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 진도의 홍주, 김제의 송순주, 여산의 호산춘, 김천의 과하주 등이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호산춘은 춘주라고 하는 술빚기 과정의 전형적인 특징과 함께 특정한 지명(地名)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소재한 주산(主山)을 ‘호산(壺山)’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방에서 빚은 술이 특주로 명성이 높았으므로, 주산의 옛 이름을 따서 호산춘(壺山春)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여산춘(麗山春)’이라고 하는 춘주가 있는데, 이 술도 삼양주(三讓酒)로서, 다른 호산춘과 비교하여 술 빚는 방법이나 과정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여산지방의 술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붙이게 된 이름으로, 호산춘의 별칭이 아닐까 생각된다.
호산춘은 조선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삼양주가 아닌 이양주로 간소화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조선 중엽 이후의 문헌인 [산림경제보]와 [임원십육지] 등의 기록을 보면 삼양주로써의 호산춘이 등장하고, [양주방]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헌에 수록된 호산춘은 이양주(二釀酒)법이다. 또한 현재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인 문경지방의 호산춘(湖山春) 역시도 이양주라는 사실에서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가정마다의 술 빚기가 보다 간소화 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반생반숙법의 특징과 호산춘의 매력
보통 밑술을 범벅이나 죽, 설기떡 형태로 빚고, 밑술 양의 2~10배가 되는 쌀 양을 고두밥의 덧술로 하는데 그 맛과 향은 밑술의 재료처리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양주방]의 호산춘과 같이 밑술을 소위 ‘반생반숙법(半生半熟法)’이라 하는 범벅으로 할 경우 달고 부드럽지만 쏘는 듯한 강한 맛과 높은 알코올도수를 나타내고 포도를 비롯한 사과, 자두, 복숭아와 같이 향이 진하면서 복잡한 과실향을 띠게 되어 죽이나 구멍떡과 같은 떡류, 고두밥으로 밑술을 빚는 방법의 일반 전통주와는 다른 맛과 향기를 자랑한다. 이러한 반생반숙법의 양조패턴은 1450년대의 기록으로 알려진 [산가요록]을 비롯하여 [산림경제],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널리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주막에서까지 양조되어 판매되었을 만큼 널리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진 백하주(白霞酒)나 방문주(方文酒), 도화주(桃花酒)와 같은 주품의 제조법이 호산춘과 같은 반생반숙법을 취하고 있다.
쌀가루를 끓는 물에 개어 살짝 설익히는 호산춘의 반생반숙법은 얼핏 보면 간편하고 쉬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다른 주류들이 원활한 발효와 실패를 줄이기 위해 원료인 전분을 보다 많이 또는 완전 호화상태에서 발효제를 투입하여 발효시키는데 반하여, 호산춘은 쌀을 끓는 물로 데치는 정도의 설익은 상태로 술을 빚기 때문에 여느 방문에 비해 당화가 어렵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발효도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호산춘과 같은 반생반숙법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향과 고른 맛,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할 수 있다.
특히 조선초기에 등장하는 삼양주법의 호산춘과 여산지방의 전승주 호산춘은,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하는 이양주 호산춘과 비교했을 때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밑술과 덧술, 덧술과 2차덧술을 섞지 않고 위에 덮는 방법으로 술밑을 빚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밑술은 죽을, 덧술은 쌀가루에 팔팔 끓는 물을 부어 익히는 방법의 범벅(죽)으로 하며, 2차덧술은 고두밥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서는 설기를 만들고, 여기에 다시 끓는 물을 부어 한 번 더 익히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덧술의 발효가 빨리 일어나게 하기 위한 방법이긴 하지만 술독을 따뜻한 곳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셋째는 이양주 호산춘이 밑술을 죽이나 범벅으로 하고 덧술은 5배의 찹쌀고두밥인데 반하여 삼양주 호산춘은 3차례에 걸쳐 멥쌀만으로 술을 빚는 데다, 덧술은 밑술 양의 2배, 2차덧술은 밑술 양의 3배로서 단계별로 쌀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호산춘과 같이 삼양주에서 쌀의 양이 밑술의 2배, 3배로 사용되는 예는 극히 드물기도 하거니와 그 양이 매우 적다는 점에서, 아주 경제적인 방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더 좋은 술을 빚고자 한다면 2차덧술의 쌀 양을 4배나 5배로 늘리는 것을 권하고 싶다.
넷째는 3차례에 걸쳐 누룩을 넣고, 또한 밑술과 2차덧술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예는 보기 드문 방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차덧술의 누룩은 넣지 않는 것이 술의 향기를 좋게 하는 비결이다. 명주를 비롯하여 춘주류의 공통점이자 통상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양조 경향은, 가능한 누룩을 적게 사용하고 덧술이나 2차덧술에는 누룩을 넣지 않음으로써 술의 향기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강구하기 때문인데, 예의 호산춘은 3차례에 걸쳐 누룩을 넣는다는 점과 함께 그 양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해주의 경우 술 빚는 간격이 12일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산춘의 덧술 간격이 13일이라는 사실은 눈여겨 볼 일이다. 또한 호산춘의 경우, 밑술과 덧술은 서늘한 곳에서 천천히 발효시켜야 제맛을 낼 수 있으며, 2차덧술의 발효기간도 21일 정도는 되게 가능한 낮은 온도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좋은 향기와 맛을 낼 수 있는 비결임을 기억할 일이다.
여산지방에 전승되어왔던 호산춘이나 문헌에 수록된 채 단절되어버린 삼양주법의 호산춘을 비롯하여 소곡주, 백일주 등이 조선 중기로 접어들면서 이양주법으로 간소화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어떤 기록에서도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조선시대 기록 중 누룩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누룩의 제조법이 갈수록 과학화, 체계화되는 경향을 발견하였다. 즉 각각의 주품마다 전용누룩이 갖춰지기 시작하고, 특히 위생적인 제조법과 각종 다양한 부재료를 이용하여 우수한 미생물(누룩곰팡이, 효모)의 배양과 증식을 도모함으로써, 전에 비해 발효제인 누룩의 품질이 좋아져 술의 발효상태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향기가 좋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술의 발효상태가 안정적이고 향기가 좋아졌다는 것은, 발효가 활발해져 알코올도수가 높으면서도 맛이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것으로 후숙이나 숙성과정을 거쳐도 맛이 변하지 않는 양조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발효기술의 발달로 이양주법만으로 충분히 좋은 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의미가 된다. 조선 중기 이후 전통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지방마다의 다양한 토속주들이 등장, 전통주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배경 또한 아마도 이러한 누륵 제조법의 발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호산춘 빚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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