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던 새가 있었다. 날개를 접고 쉴 곳을 찾지 못한 새는 하늘과 바다를 싸움붙일 계략을 세운다. 새는 하늘에게 가서 바다가 너를 올렸다 내렸다 할 계획을 품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늘은 바위와 섬을 아래로 내던져 바다를 꼼짝 못하게 만들겠노라고 응수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바다는 격분해서 하늘을 향해 거친 파도를 일으켜 위협했고, 하늘은 바다가 더 이상 위협할 수 없도록 섬과 바위를 계속하여 바다에 내던졌다. 마침내 바다 위에 바위가 솟아올랐고 새는 그곳에 앉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새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대나무 줄기 하나가 파도에 쓸려오더니 새의 발을 찔러댔다. 새는 대나무를 피해 약간 옆으로 옮겨 앉았으나 그래도 대나무가 다가와 발을 또 찔러댔다. 이러기를 수차례, 화가 난 새는 대나무를 마구 쪼아 구멍을 내버렸다. 그러자 그 대나무 첫 번째 마디 속에서 인류 최초의 남자가 빠져나왔고 두 번째 마디에선 여자가 나왔다.
그들은 결혼을 하여 많은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자식들은 빈둥거리기만 할 뿐 부모를 도와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자식들을 혼내주려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자 자식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달아났다. 누구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누구는 침실로 뛰어들거나 거실 한구석에서도 숨고, 몇몇은 부엌으로 피신하였고, 그을음투성이의 큰 냄비들 사이에 몸을 숨기기도 했다. 이때 침실로 들어간 이들은 족장인 다토를 낳았고, 거실에 있던 자식은 부족민이 되었으며, 부엌에 숨은 자식들은 노예가 되었고, 냄비 그을음에 시커멓게 된 자식들은 아에타(Aeta)족의 선조가 되었다. 한편, 집 밖으로 도망 나간 자식들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채 세계 각지에 후손을 퍼뜨렸다.
필리핀의 창조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대나무 종족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예부터 필리핀 사람들은 인류가 대나무에서 탄생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번 2015년 5월 연휴(5.22~5.25)에 천주교 평택대리구 오산루카회(회장 최현철 미카엘)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북서부에 위치한 바타안(bataan) 반도의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원주민 마을(sitio matalangaw barangay banawang bagac bataan)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필리핀 창조신화에 나오는 원주민 아에타(Aeta) 부족민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게 된 인연은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예수성심의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 소속의 윤종두 요한 신부를 통해서다.
윤신부는 5년 전부터 마딸랑아우(matalangaw) 지역 원주민 마을에서 아에타(Aeta)족과 함께 살고 있다. 신부가 되기 전 신학교 양성기간 중 본당 사목실습 때 아에타(Aeta)족 원주민 마을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얼마간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나중에 신부가 되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들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신부가 된 윤신부는 수도회에 간청하여 지금의 원주민 마을에서 사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윤신부는 아에타(Aeta)족 마을에서 첫 미사를 했다. 어설픈 현지어로 미사를 드리고 땀에 흠뻑 젖은 그를 한 집에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다는데 그때 집에 가진 것이 계란 한 개뿐이었는지 부실한 반찬에 계란프라이 하나를 만들어 자신의 식탁에 올렸다고 한다. 그 집 식구는 7명, 윤신부는 계란프라이를 8조각으로 만들어 그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 움막을 짓고 원주민들과 고구마 농사도 짓고, 수확한 과일 망고와 산에서 딴 꿀을 내다 팔며 공동체생활을 시작한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관심을 쏟아 몇몇 학생은 대학교 학비를 지원해줘 학교에 다니고 있고, 이미 한 명은 졸업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임용되어 아에타(Aeta)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13년 그곳에 불어 닥친 강력한 태풍으로 움막 사제관은 부서지고 마을 전체가 많은 피해를 당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마딸랑아우(matalangaw) 지역에서 2시간 거리인 클락(clark)에 이민을 가서 살던 윤문희 수산나 자매는 윤신부가 계신 그곳을 가끔 방문하며 자원봉사를 했다. 원주민 마을이 태풍에 많은 피해를 본 사실을 알고 다급한 마음에 한국에 살 때 다니던 팽성 성당 주임신부였던 이재웅 다미아노 신부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된 이신부는 윤신부와 메일을 교환하며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윤신부는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마을회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기가 머물 곳은 그 옆에 쪽방으로 붙이면 충분하단다. 이신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후원을 했고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
이재웅 다미아노 신부는 2014년 6월 평택대리구청 사회복음화국장 신부로 부임을 받으면서 오산루카회 지도신부가 되었다. 이렇게 인연의 끈이 한 줄 한 줄 연결되면서 나는 필리핀 창조신화에 나오는 원주민 아에타(Aeta)족 후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에타(Aeta)족 마을에 들어서자 그들은 기쁘게 우리를 맞이했다. 아이들은 다가와 나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이마에 손등을 대었다. 그들의 전통 인사인 듯 했다. 간단히 의료장비와 약품 정리를 마치고 그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이신부님의 주례였지만 기도문은 한국어로, 대영광송과 성가는 현지어로 불려졌다. 영성체를 마치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 준비한 특송을 불렀다. 미사 말미에는 족장이 나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족장은 환영사 도중 울음을 터트렸다. 우리를 진정 기쁨으로 맞이함을 알 수 있었다.
이신부의 도움으로 세워진 마을회관 안에서는 내과, 치과, 약제과가 차려져 의료봉사가 시작되고,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음악봉사는 윤신부의 어머니 도움으로 세워진 경당에서 진행되었다. 윤신부와 이신부의 인연의 끈을 엮어 준 윤문희 수산나 자매님도 함께 참여했다. 두 시간의 먼 거리를 오가며 김밥과 샌드위치를 챙겨주고 대학생 딸들(손아영, 손시영)과 고등학생 아들(손명훈)도 함께 데려와 현지어 통역과 약제과 일들을 도와주었다. 치과 진료가 생소한지 시작할 때는 등록하는 환자가 별로 없었다. 몇 명이 치료를 받은 후 아프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치과진료소 앞에도 환자의 줄이 늘어났다. 구강내 상태는 엉망이었다. 대부분 환자들이 치아를 빼달라고 했으나 치료가 가능한 것은 설득하여 보존치료를 해주었다.
진료를 마치고 우리는 원주민들이 준비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돼지도 한 마리를 통으로 잡아서 바베큐 구이를 만들어 놓았다. 차려진 음식들을 바나나 잎이 깔려 있는 대나무 접시에 담아 자유롭게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즐겼다. 식사 후에는 마을에 있는 망고나무에서 망고 과일도 따고,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 내부도 둘러보며 그들이 사는 모습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 윤신부가 만든 영상자료도 보았다. 자료에는 마을회관 준공식 행사 모습과 그때 마을 사람들이 공연했던 아에타(Aeta)족 역사에 관한 공연물이 영상으로 담아져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노래도 부르고 족장은 춤까지 추었다. 우리는 밤 10시가 돼서야 아에타(Aeta)족 마을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 봉사를 마치고 미사 중에 차례대로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딸 소담이는 이야기 중 아에타(Aeta)족과 함께 한 미사 시간을 이야기하던 중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딸에게는 잊지 못 할 감동의 시간이었나 보다. 나 역시 그동안 정리되지 못한 나의 감정을 끄집어내어 아에타(Aeta)족을 만나게 된 인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오산 루카회를 통해 이재웅 신부님을 만나고, 첫 만남이지만 윤문희 수산나 자매님과 자녀들을 만나고, 윤종두 신부님을 만나고, 그리고 필리핀 아에타(Aeta)족을 만난 것은 나에겐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그동안 개개인이 만들어 놓은 인연의 끈 들이 이제는 함께 하나로 묶여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으로 정까지 나눈 우리는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족함이 있으면 서로 채워가면서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나눔의 활동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