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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號 습격일 당직기
서 성 옥
당직실 괘종시계 시침이 오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홍종호는 눈으로 T.V의 국가 재난방송을 보고 있지만, 귀를 쫑긋하고 K시 지방방송 라디오 속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30분 전, 오봉댐의 만수위가 육박하고 있다는 다급한 보도가 있었던 터이다. 실시간으로 K시의 수해 현황을 보도하는 젊은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나더니 오후 10시 이후 오늘 하루 K시 강수량 750㎜를 보도하고부터는, 그의 목소리는 혁명 전야 상황을 알리 듯 떨리고 있었다.
오후 11시 20분 아나운서는 K시 강수량이 800㎜를 넘어섰다고 보도하면서, 오봉댐 붕괴 가능성을 타전하였다.
“오봉댐이 터진다면...”
아나운서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 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미명(今朝未明)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 박정희 소장이 써 준 혁명 포고문을 읽던 박종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저렇게 떨렸을까, 방송사고처럼 라디오에서 몇 초 정적이 이어졌다.
“200억톤에 달하는 물이 엄청난 폭류로 돌변하여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으로 한강을 휩쓸고...” 정권 말기 전두환 군부 정권은 성난 민심을 호도하기 위하여 북한의 금강산댐이 붕괴되면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면서 국민들을 겁박하였다. 그것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붓고 나서 바로 무용지물이 된 평화의 댐이다. 그러나 당시 이 가상 시나리오를 보도하던 리포터가 실제 공포에 질려 있었던 표정을 홍종호는 잊지 않고 있다.
오봉댐이 터지면 K시 절반 이상이 수몰될 것이다. 저 아나운서가 지금 방송을 하고 있는 남문동 3층 건물도 물속으로 잠길 것이다. 최악의 상태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홍종호는 애써 이를 부인 하였다. 금강산댐이야 전두환 무뢰배 일당이 정권 연장을 위해 쓴 각본이고, 만에 하나 각본이 사실이라고 하더라고 북(北)의 인위적 폭파라는 ‘능동’이 따라야 한다. 사력댐은 만수위가 되면 붕괴 될 수 있지만, 콘크리트댐은 월류(越流)해도 댐이 터지지는 않는다. 사력댐인 소양강댐이 만수위에 치다르자 물을 일제히 방류하는 진풍경을 본적이 있다. 사람들이 댐 아래 폭포수 물가에서 튀어 오르는 잉어를 차지하려고 줄을 섰다. 세상에 구경 중에 구경이 물 구경이라지만 목숨을 담보하고 몇 마리 물고기를 얻으려는 인간의 손톱만한 이기심을 홍종호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오봉댐이 터진다면...”
과학적으로 그럴 일은 없다. 지방방송의 PD의 걱정은, ‘걱정도 팔자’일 것이다. 제발 그렇게 되어야 한다. 홍종호는 그렇게 위안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댐 수위를 넘어 월류(越流)가 시작되면 이미 침수가 시작된 저지대 주택가의 피해는 극심할 것이다. 홍종호는 잠시 현관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았지만 세찬 빗줄기는 좀처럼 잦아 들 줄 몰랐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K시 하늘에는 먹구름만 잔뜩 낀 상태였다. 괌(Guam) 동북동쪽 약 1,800km 부근해상에서 발생한 중급 태풍이 일본 가고시마 남서쪽 300km 해상에서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어 한반도로 북상하기 시작한다는 이틀 전 기상청의 통보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처럼 무심했다. 루사는 평균 태풍 이동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10 ∼ 20 km/h 풍속으로 느적느적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평온한 밤이 지나고, 새벽부터 세찬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홍종호는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T.V 속보를 언뜻 보았다.
“태풍 루사가 현재 제주도 남동쪽 해상 100km까지 진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걸쳐 태풍 수렴대가 형성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방송 보도는 여느 여름 장마철과 다름없이 평이했다. 노오란 비옷을 걸치고 빗줄기가 흩뿌리는 제주 성산포 방파제 앞에서 생방송을 하는 여자 기상캐스터의 얼굴은 진지하였지만 별 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홍종호가 살고 있는 K시 남동쪽 저동의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이른 아침부터 창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로 시계(視界)가 흐렸다. 그런데, 출근 무렵부터는 폭포수로 변해 있었다.
홍종호가 시내버스를 타고 성남동 4거리 쯤 왔을 때, 이미 저지대의 침수가 시작되었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잠기는 곳이지만 아침 두어 시간 폭우에 이렇게 쉽사리 침수된 것은 처음 보는 일이였다. 소형 승용차들은 4거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우회를 시작하였다.
“돌아 올 때는 어떨지 모르겠군...”
시내버스 기사는 혼자 말을 하고는 성남동 4거리를 직진 하였다. 시내버스 바퀴가 2/3 가량 물에 잠긴 채 툴툴 회전하였다.
홍종호가 교동 언덕 위에 있는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 청사에 도착하였을 때 시각이 오전 9시 출근 시간에 다다랐지만 출근한 직원들은 몇몇에 불과하였다. 2층 조사지원과 총원은 계약직 조사원을 포함 모두 7명이었지만 조사2계장 류영진만 출근하여 컴퓨터 부팅만 해 놓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시 출근입니다, 홍계장님”
홍종호의 옴팡 젖은 머리와 옷매무새가 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다. 그는 언제나 저 말투였다. 말에 장식을 달 줄 모르는 사람, 차갑다기보다는 무미건조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홍종호는 입사 몇 해 후배인 류영진 계장에게 존대어를 썼다.
“이대로라면 월요일 왕산. 임계 지역 고랭지 작물 생산조사 임시조사원 면접을 예정대로 못 할 것 같은데요, 현장 조사원 지원자 몇몇이 삽답령 너머 현장 쪽 사람들 아니던가요 ?”
홍종호도 폭풍우에 직접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가 챙겨야 할 업무에 사무적인 조언을 해 주면서 아침 인사를 대신 하였다.
동북지방통계청 본청이 주관하는 고랭지 여름 배추. 무 생산조사 통계 업무에 K시사무소 관할 4개 시. 군 현장 임시조사원 선발의 서류 전형부터 면접 후 최종 선발까지 조사지원과에서 그 일을 수행하고, 실무 책임자는 조사2계장 류영진이었다.
“이대로라면 삽답령이 통제 되겠지요 ?”
그가 조바심을 드러냈다.
“현재 시간, 여기 강수량이 얼마지요 ?”
이 사람아, 거기는 여름 큰 장마마다 도로가 끊기는 곳이야... 홍종호는 내색을 하지 않고 되물었다. 하긴 류영진은 동북지방통계청 본청에 근무하다 K시사무소 전임해 온 것은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10분전 당직실 티비에서는 8시 현재 150㎜라고 했습니다.”
“재작년 집중호우 때도 삽당령 낙석으로 도로가 끊겼지요, 기억 안 나요 ?”
“그랬나요 ?”
홍종호의 질문이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 왔다.
“과장님 출근하면 바로 보고하고, 면접 연기 등 대책을 세웁시다.”
그는 이 정도 선에서 상황을 정리하였다.
9시 30분 즈음되어서야 지변동 쪽으로 차량을 우회한 직원들이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소장 김종득 서기관도 그 무렵 청사에 도착했다. K시에서 40㎞ 남쪽에 있는 D시에서 출퇴근하는 황영철 조사지원과장은 아직 출근 전이다. 조사2계장 책상 위 전화벨이 울렸다. 류영진 계장이 전화를 받았다. 예. 예. 몇 마디 송신자의 말을 들은 류영진의 답변은 예, 예, 뿐이었다.
“과장님 출근 못하실 것 같습니다.”
“ ...? ”
“화비령 터널 입구가 무너져 교통이 통제 되었답니다.”
류영진 말의 행간을 읽어보면, D시에서 출퇴근하는 황영철 사무관의 승용차가 국도 7호선 구간 화비령 터널이 막히는 사고로 오도 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출근 길 황영철 조사지원과장에게 닥친 일을 류영진이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오전 10시, 빗발은 점점 더 거세게 몰아쳐 왔다.
김종득 소장이 긴급회의를 소집 하였다. 화비령 터널 사고로 황영철 조사지원과장이 출근을 못하고 있는 것은 이미 보고되었고, 다른 사고가 또 있는가 ? 홍종호가 머리를 갸웃하고 류영진과 함께 소장실에 들어서니 이미 임현식 총무과장과 이철희 서무계장, 전진만 회계.용도계장이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소장실 T.V.에서는 루사 태풍 상황 긴급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삽당령 낙석 사고로 왕산농협 직원 2명이 깔렸는데, 아마 즉사한 모양이야...”
임현식 총무과장이 홍종호와 류영진이 자리에 앉자 웅얼거리듯 침울하게 말했다. 왕산농협은 K시 농업협동조합 관할 내 가장 오지 농협이다. K시 농협 직원들이 1년 씩 순환근무를 하는데 교통이 안 좋던 십 수 년 전만해도 그 면 소재지에서 살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거나 하였지만 삽당령 고갯길이 콘크리트 포장길로 바뀌면서 직원들이 K시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새벽길 근무지로 출근하던 왕산농협 직원 2명이 타고 가던 승용차에 수 톤의 낙석더미가 덮쳤다는 것이다. 삽당령은 바로 통제되었고, 태풍 루사호에 의한 첫 인명 피해가 일어 난 K시는 긴급 재난상황실을 가동하고 비상체제로 돌입하였다.
“당연한 말을... 그 문제는 황과장도 출근을 못하는 형편이니 류계장이 알아서 정리하고, 임 총무과장이 확인 후 대결(代決) 하세요.”
류영진이 임시조사원 면접 일정에 대하여 장황하게 보고를 하자 소장은 짜증 섞인 말투로 보고자의 말을 끊었다. 2년 전 봄 대형 산불이 청사 언덕 뒤편까지 내려 왔을 때 소화전 소방 호스를 빼들고 옥상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김종득 소장은 이제 이빨 빠진 늙은이 모습이었다. 행시 출신들이 장악한 국장 자리는 그가 아무리 용을 써도 결코 오를 수 없는 저 먼 밤하늘의 별자리라는 것을 그가 너무 늦게 까닭은 것일까, 연말 쯤 그가 명퇴를 신청할 것이라는 풍문을 이제는 믿어도 될 것 같다고 홍종호는 생각했다. 긴급회의는 폭우로 인한 청사 내 누수 문제 대비와 갑작스러운 정전을 대비하여 업무처리 공백이 없게 할 것과,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비상연락망 가동에 문제없을 것 등 등 의례적인 것으로 맥없이 끝났다.
장대비는 거칠 것 없이 동북지방통계청K시사무소에 몰아쳤다. 틈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물 폭탄을 퍼부었다.
할 일없이 시간만 흘러 시간이 정오에 다다르고 있었다.
당직 신고를 할 시간이었다. 홍종호는 부 당직인 총무과 전산직 김민호 주임과 함께 소장실로 가 당직신고를 했다.
“홍계장이 당직이라 안심이네, 회의 때 말했지만 별 일이야 있겠어요. 일일 300미리 태풍이야 가끔 있지 않았나, 남문동이 침수된다고 해도 우리 청은 고지대에 있으니 나 큰 걱정은 안해요.”
“예”
“그래도 비상연락망에 따라 스탠바이 했다가 비상사태가 생기면 바로 단계별 조치를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솔직히 홍종호도 그랬다. 난생 처음 보는 큰 폭우지만 태풍 사라호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고, 그나마 큰 수해라고 기억하는 것은 김일성의 정치쇼라는 말을 낳은 1984년 태풍 ‘준’으로 북한이 남한에 시멘트, 쌀을 원조한 것이다. 몇해 후 1987년 태풍 셀마도 한반도에 큰 피해를 주었지만 홍종호가 목전의 위기를 본 기억은 없었다. 홍종호는 아직 이 태풍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55분, 오늘은 토요일이라 무람없이 오전 근무 시간을 버틴 직원들이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홍종호가 부 당직 김민석과 함께 1층 당직실로 내려 가 당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각 부서 직원들이 한두 명씩 귀가를 시작 하였다. 김종득 소장은 1시간 전 당직 신고를 받자마자 서울로 올라갔다. 다른 상황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속도로에는 아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임현식 총무과장이 당직실로 들어오면서 홍종호에게 부탁의 말을 남겼다.
“소장님도 주말이라 일찍 올라가시고... 나도 일단 퇴근 할 테니 상황 체크 잘 부탁 합니다. 참, 아까 본청 최진혁 과장에게 전화가 왔어요. 축대에 별 문제 없느냐고.”
사실 이 문제를 오전 회의 때 임과장은 총무과장으로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임과장은 너무 안일하게, 아니 성격 상 긁어 부스럼이라는 생각으로 문제 제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 이주사보고 축대 밑으로 한 바퀴 점검 해 보고 오라고 지시를 했는데, 별 이상 징후는 없다고 하더군. 예보 상 이 비가 언제 그칠 지 모르니 축대 점검하다가 이상이 감지되면 즉시 비상을 때려야 합니다.”
임현식 총무과장은 당직 인수인계 후에는 청사에 일어나는 문제는 오로지 당직자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애매한 지시를 하고는 쭈뼛쭈뼛 뒷걸음치듯 당직실을 나갔다.
“예,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보고 하겠습니다.”
홍종호가 임과장의 뒷모습에다 큰 소리로 대꾸를 하였다.
거의 마지막 퇴근자로, 김기하 지역통계계장이 현관으로 내려왔다. 출근 때 모습 그대로 바지를 양말 안으로 말아 넣고 젖은 운동화를 신은 차림이었다. 그는 청사에서 가까운 아랫동네에 거주하기 때문에 걸어서 비를 뚫고 출근을 하였고 퇴근할 때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에이씨, 거 비 조카치 오네 ∼ ∼ 어이 홍계장 뺑이를 쳐야 겠구먼, 어이구 밥 배달도 안 될 텐데 어쩔랑가 ? 하여튼 고생 좀하시고 뭔 일 있으면 전화 하소 !”
해병대 출신인 김기하는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홍종호보다도 입사가 늦지만 나이가 같아 서로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였다. 말만 거침없었지 실상은 업무에 대하여는 까탈스럽고 소심한 성격으로 후배들은 그를 ‘뻥계장’으로 불렀다. 해병대도 아마 ‘짬장’ 출신일 것이라고 했다. 지옥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여 취사병을 하였다는 말이었다. 홍종호는 손을 흔들며 걱정하지 말라고 답을 대신 하였다.
빗줄기가 좀 잦는가 싶더니 다시 거칠게 휘 몰아쳤다.
오후 1시 속보에 의하면 K시 일원의 강수량은 300㎜에 근접하고 있었다.
“계장님, 점심 식사 어떻게 하죠 ? ”
부 당직 김민석 주임이 물색없는 질문을 하였다. 꼼짝없이 여기에 갇혀 밤을 꼬박 세야 한다는 생각에 홍종호는 잠시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여름의 기운이 아직 한창인 때지만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 당직실에는 서늘한 기운이 드리웠다.
“배달은 글렀고, 각자도생 김주임이라도 빗속을 다녀오던지...”
“......”
너무 야박하게 답했다고 홍종호가 후회를 했을 때, 김민석 주임이 슬그머니 당직실을 빠져 나가더니 사발면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야근할 때 가끔 먹던 건데 딱 두 개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뱉은 말 때문에 언제나 후회를 한다. 홍종호는 무안함을 시치미 떼고 당직일지를 점검하는 척하였다.
오후 6시, 아직 여름의 끝자락이라 어두워질 때는 아닌데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 장막을 친 것 같았고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로 벌써 사위는 어둑어둑, 밤이 찾아 온 것 같았다. 동북지방통계청 본청 당직 사령인 최진혁 서기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홍계장, 벌써 어두워지고 있지요 ? 거기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최진혁 과장이 흡사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는 2년 전 사무관으로 여기 K시사무소 총무과장을 하였다. 홍종호가 기억하는 최진혁은 야심만만한 전략가였다. 업무에 빈틈이 없었고 철두철미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아래 직원들에게는 깐깐하고 원칙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의전에도 밝아 청장 지도 방문 순시 때 완벽한 브리핑과 K시 일원 문화유적지, 관광 명소 안내에 살뜰함이 넘쳐 청장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청장을 수행한 본청 국장이 ‘엑셀런트’라며 엄지를 세워보였다. 최진혁은 작년에 서기관으로 승진하면서 동북지방통계청 총무과장으로 영전하였다.
“예, 별 이상 상황은 없습니다. 세찬 강수 현상은 그대롭니다.”
홍종호는 또박또박 끊어 말하면서 문자를 썼다. 그 편이 최과장에게 잘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간 거기 강수량은 얼마죠 ?”
“17시 현재 470㎜ 였습니다. 18시 현재 정확한 강수량은 19시가 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19시 이후 따로 보고를 드릴까요?”
그는 이미 방송을 통하여 동북지방통계청 산하 각 분사무소 지방 별 강수량을 체크하였을 것이다.
“됐고, 축대 아래 상황 다시 체크 하였소 ?”
“예, 별 다른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홍종호는 거짓말을 하였다. 오후 3시 경 최진혁 당직 사령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축대 문제를 확인하고 보고를 한 후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 가 보지 않았다. 그때 우산을 쓰고 축대 아래를 둘러보았는데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홍종호가 언덕을 한번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루사라는 사슴이 발길질을 해대며 사람의 발목을 부여잡아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옴팡 물 폭탄을 맞고는 다시 밖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이후 잠깐씩 현관 밖으로 나가 전나무가 서 있는 축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뿐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관찰하시오. 다시 보자 불조심이 아니고 다시보자 물조심. 여기저기 산사태로 생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잖소!”
“예, 알겠습니다.”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 청사 현관 머릿돌에는 이 청사 건물 건립 연도가 새겨져 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이다. 가파른 언덕 위에 건물을 세우면서 당시 공법대로 전석을 차곡이 쌓고, 쌓은 전석 사이를 콘크리트 크라우팅 하여 거대한 성벽처럼 축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30년 세월에 전석 돌더미 사이에 쏜 시멘트는 갈라지고 콘크리트 자갈이 떨어져 나가 돌덩이가 밖으로 돌출된 곳이 여러 군데 드러났다.
당시 K시사무소 최진혁 총무과장은 이 문제를 소장에게 보고하고 안전 진단과 대책을 수립하지고 건의를 하였지만, 예산 확보 문제로 안전진단만 받고 이후 유야무야되었다. 당시 안전진단은 C등급이 나왔지만 ‘조속한 보강공사 요망’이라는 내용의 D등급이나 다름없는 진단이었다. 홍종호도 당시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홍종호는 믹스커피 두 봉지를 머그잔에다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타 진한 커피를 한잔 마셨다. 허기 진 빈속에 카페인 덩어리, 설탕, 포화지방 프림이 섞여 들어가자 순식간에 혈당이 상승하면서 머리를 짓누르는 긴장의 끈이 더 팽팽히 당겨졌다.
“그래,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서 민가에 인접한 축대 아래 부분을 한 번 더 살피자 !”
홍종호는 무슨 구호를 외치듯 속으로 자신을 응원하면서 우비를 챙겼다.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가 자리 잡은 언덕은 상당한 비탈길이다. 겨울은 물론이고 철지난 봄 눈길에도 방심하고 올라오던 차들이 헛바퀴 질을 할 만큼 가팔랐다. 낙숫물이 내려오는 좁은 수로는 청사 담벼락 아래로 자연스럽게 나 있었지만 언덕을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길 전체가 이미 거대한 수로로 변해 있었다.
언덕 길 중간 쯤 인도와 차도 경계에 늙은 밤나무 한그루가 유령처럼 서 있다. 그 밤나무 뿌리가 시멘트 포장을 뚫고 올라와 구렁이가 똬리를 튼 형상으로 배를 뒤집고 있어서 홍종호는 늘 탐탁지 않았다. 실한 밤이 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조경수 역할도 못하는 이 귀신같은 나무를 왜 베버리지 않을까, 홍종호가 20년 동안 K시 통계청 청사와 이 언덕길을 지켜온 방호원 이주사에게 언젠가 이 의미 없는 밤나무를 왜 안 베냐고 물었을 때, 50대 후반인 이주사는 “원래 거기에 있었던 나무 아니요 ?”, 라며 아무 ‘의미 없는’ 답을 하였다.
시멘트 바닥을 뚫고 올라온 밤나무뿌리가 균열을 낸 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이상한 생각에 홍종호는 한동안 그곳을 집중하여 관찰해 보았다. 물길은 파여진 그곳으로 집중적으로 몰려와 굽이치면서 엉성한 포장도로를 조금씩 깎아 내리고 있었다.
일단 홍종호는 당직실로 올라와 한숨을 골랐다. 머릿속이 뒤엉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계장님, 언덕 아래 축대에 문제가 있는 가요 ?”
김민석 주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홍종호는 김민석에게 청사 내부에 누수 등 문제가 있는지만 확인하라는 내부 순찰업무만 맡겼다. 2년 전 홍종호가 용도계장일 때, 주무 담당관으로 청사 옥상 방수공사를 시행하였기에 이 폭우 속에서도 청사 내부 누수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홍종호가 우비를 쓰고 밖을 나갈 때 마다 김민석 주임은 자신이 외부 순찰을 하겠다고 자청했지만, 그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당직실 상황 대기만 확실히 하라고 일렀다. 그 스스로 어려운 일에 앞장 서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아직 신참인 김민석에게 그런 일을 맡긴다는 것이 내심 마뜩하지 않았다. 방금 전 본청 당직 사령과 상황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김민석으로서는 이래저래 좌불안석일 것이다. 홍종호는 언덕 길 밤나무뿌리 쪽이 물 소용돌이로 파헤쳐져 조금 걱정이지만 아직 별반 큰 문제는 없다며 그의 근심을 덜어 주었다.
저녁 6시 50분, 사방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홍종호는 1층 현관, 1층 종합민원실, 사회.경제조사과 전체에 불을 밝혔다. 청사 1층 전체에 밝은 불이 들어오자 습기와 어둠에 웅크리고 있던 음산한 기운이 시나브로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퍼붓던 빗줄기도 직구로 내리뻗다가 잠시 알레그로 모데라토 곡조로 조금 잦아든 듯하였다.
홍종호는 급히 우비를 걸쳐 입고 다시 늙은 밤나무 근처로 가 보았다. 희미한 가로등 빛 아래 뿌연 빗줄기로 언덕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크르렁, 크르릉 세차게 흐르는 낙숫물 소리뿐이었다. 홍종호는 휴대용 후레쉬로 물길에 파여진 포장길 부분을 자세히 비추어 보았다. 한 시간 전 보다 포장길이 더 많이 파여져 나가 있었고, 아예 길 중간까지 침범하여 쩍 벌여져 있었다. 홍종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대로 방치하였다가는 몇 시간 내 이 엉성한 포장도로는 다 파헤쳐 질 것이고 거대한 물줄기가 축대 밑을 계속 공격하면 축대 붕괴가 우려된다. 물길을 담벼락 아래 한쪽으로 돌려야만 할 것이다.
몸을 추스르고 당직실로 올라 온 홍종호는 우선 임현식 총무과장에게 급한 상황을 보고 하였다. 임과장은 송신음이 세 번째 울릴 때 전화를 받았다.
“우선 과장님께서 오셔서 현장 상황을 체크하고 지시를 내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큰일이네... 남천교가 통제 되었어요. 아까 저녁 6시에 이미 교량 아래까지 물이 차올라 전면 통제 되었어요. 해안도로를 따라 사근진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요. 거기라고 도로상태가 좋으라는 법도 없고, 우선 제일 가까운 데 있는 직원들에게 비상연락을 취해 어떻게든 물길이 더 터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예, 길이 끊겼다니 방법이 없지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조치를 취해 보겠습니다.”
사실 홍종호도 남천교 통제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당장 총무과장이 여기로 달려 올 수 없는 것도 미루어 짐작을 하였다. 그러나 청사 관리에 총괄적인 책임자 위치에 있는 총무과장에게 현재의 상황을 계통 보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만만디 임과장이 끝내 못 오더라도 보고체계에 따른 명토박이는 해 두어야 한다.
“현 상황을 소장님이나 본청 최진혁 과장에게도 보고 하였나요 ?”
“아닙니다. 아직 아주 심각한 사태까지는 아니라는 판단으로 우선 과장님께만 알려 드렸습니다.”
“...음, 그 편이 나을 지도, 여기 문제는 여기서 해결해야 마땅하지요. 당장 나부터도 물 건너 못가는 판에 본청에서 지금 무얼 해 줄 수 있겠나요?”
서울로 올라 간 소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본청 당직 사령에게 이 상황을 보고한다면 최진혁 과장은 불원천리 달려 올 기색으로 직원 총동원령을 내리고 이에 대한 전말을 보고하라고 것이다. “홍계장이 당직이라 안심이네, 나는 큰 걱정 안 해요.” 당직신고 때 소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별 다른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최진혁 본청 당직 사령에게 보고한 말도 생각났다. 서둘러야 했다.
홍종호는 부 당직 김민석 주임에게 남천교 강북 동네에 살고 있는 계장 이하 전직원에게 비상동원령 전화를 할 것을 지시 하였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김기하 지역통계계장에게는 직접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였다.
“식사도 못 챙겨 먹고 고생이 많수다. 네 후딱 올라가 보리다.”
김기하가 선선하게 대답하였다.
10분 후 김기하 계장이 멜빵 짐 하나를 메고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 현관 로비로 들어섰다. 발목이 덮이는 샌들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장우산을 쓰고 왔지만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홍계장 말대로 쩍 갈라졌더구만, 빨리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네.”
두 사람을 일별하던 김기하가 어깨 짐을 내려놓으면서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김민석 주임이 꾸우벅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김주임이 날 이래 존경하는지 미처 몰랐네.”
오후 내내 불안한 심정을 감추고 있었던 김민석이 반색을 하자 김기하가 어깃장 놓듯 농담을 건넸다.
또 다시 10분 간격을 두고 이철희 서무계장, 전진만 용도계장, 김형도 조사원 3명이 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이철희 서무계장은 총무과 스텝 1.이기 때문에 아마 임현식 총무과장으로부터 별도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의 표정에서 남다른 긴장감이 드러났다. 얼마 후 조사2계장 류영진이 들어서자, 7명이 집결한 당직실 안이 꽉 찼다.
6명이면 작업조로 일단 알맞다. 일각을 다투는 시간, 더 이상 시간을 늦출 수가 없었다. 현장 사정을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는 홍종호지만 일단 작업 방법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았다.
“누구 공병대 출신 있나 ?”
김기하가 희떠운 소리를 했다.
“김계장님, 해병대 출신이니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전진만 용도계장이 튕기듯 말을 받아쳤다.
“우리 해병이야, 육해상 침투 작전, 폭파, 특무 수행만 하지만... 이 폭우 상황에서는 모래주머니를 쌓아서 내려오는 물줄기 방향을 틀어야지 !”
김기하가 홍종호가 생각했던 정답을 말했다.
“맞습니다. 임시방편으로 모래주머니라도 쌓아 그쪽으로 가는 빗물을 막아 패인 구덩이와 깎여 나가는 곳에 더 이상 유실이 계속되지 않게 단도리 하는 일 외 별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홍종호가 정 당직자로서 상황을 정리 하였다.
청사 1층 창고에 제설 작업용 삽 몇 자루가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청사 뒤 비문소각장 옆에 엉성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제설용 모래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모래주머니가 없는 것이다. 창고에는 큰 마대자루만 열댓장 남아 있었다. 일단 마대자루에 모래를 담았다. 자루 하부에서 30센티미터 정도만 모래가 차게 담았다. 정확히 열다섯 부대가 담겼다.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전진만이 용도실에서 다용도로 쓰는 검은 비닐 다발을 가지고 왔다. 사무용 각종 비품을 보관하는 용도실 키는 용도계장만 관리한다. 검은 비닐봉지를 세 겹 겹쳐 모래를 담자 그럴싸한 모래주머니가 되었다.
김기하는 우비를 벗어 류영진에게 주었다. 6명이 폭우 속으로 나섰지만 우비는 5개 밖에 없었다. 우산을 쓰고 작업을 지켜보던 류영진이 뻘쭘해 하면서 우비를 받아 들었다. 그렇다고 우산을 쓰고 작업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6명이 묵직한 모래자루를 메고 폭우가 퍼붓는 언덕길로 내려섰다. 러닝셔츠에 반바지만 입고 선두에 선 김기하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6명의 전사가 빗속 어둠의 길을 내려갔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가 몰아쳤다. 홍종호가 고개를 숙이는데 한줄기 빗물이 벌어진 우비 속을 타고 들어 와 속옷을 몽땅 적시고 가랑이 사이로 빠져 나갔다. 15개의 마대자루가 터진 시멘트 길에 작은 제방을 만들자 빗물의 틈입이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6명의 전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작은 비닐 모래주머니를 모두 옮겨와 제방을 완성 하였다. 밤나무뿌리 주위에서 파여 나간 시멘트길 둘레에 작은 제방이 쌓이자 물줄기는 정돈된 담벼락 밑으로만 쏴아 몰려 나갔다. 홍종호는 긴 한숨을 내 쉬었다.
당직실로 올라 온 김기하가 멜빵 짐에서 소주와 초코파이, 컵라면을 꺼냈다. 그리고 보니 홍종호와 김민석은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홍종호는 그제야 맹렬한 허기를 느꼈다.
2002년 8월 31일 하오 11시 30분.
K시 재난대책본부 상황실은 드디어 K시 전역 저지대 주민들의 긴급 대피령을 공식 발하였다. 오후 11시30분 현재 K시의 강수량은 800㎜를 넘어섰다. 결국 오봉댐 수위가 만수위에 차올랐고, 이대로 70㎜ 이상만 더 내린다면 월류가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고 K시 재난대책본부는 밝혔다.
저동 일대 아파트 1. 2층 주민들은 이웃 고층 아파트로 피신할 것을 권했고, 남문동 일대 시장 상가 주민들은 성내동 10층 K시 비전센터를 피난처로 알려 주었다. 그리고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가 위치한 교동 일대 저지대 사람들은 K시사무소 옆에 있는 S상고 강당과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를 대피 장소로 지정하여 알려 주었다. 그런 매뉴얼이 K시에 진작부터 있었던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K시 재난대책본부 상황실로부터 홍종호는 이에 대한 사전 연락을 받지 못하였다.
김기하 지역통계계장이 마누라와 아이들은 대피시켜야 한다면서 부리나케 청사를 빠져 나갔다. 오후 9시 경 비가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되자 비상연락으로 올라 온 다른 직원들은 이미 귀가를 하였다. 김기하만 남아서 당직실을 함께 지켜 주었다. 김기하는 해병대 전사가 분명하였다.
얼마 후,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어린 아이를 업고 올라 온 젊은 부부, 노모를 업고 온 40대 남자, 담요를 비닐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온 아주머니... 갑자기 몰려 온 십 수 명의 사람들로 K시사무소 현관 로비는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해졌다. 홍종호는 당직실 전기온돌 패널의 온도를 올리고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에게 우선 자리를 내어 주었다. 1층 사회.경제조사과 소파에 몇 사람을 보내어 그곳에서 쉬게 하였고, 1층 자재창고 구석에서 매트리스 몇 장을 찾아 내 현관 로비 안쪽에다 깔고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김민석 주임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소장 부속실에서 가지고 온 현미녹차 티백으로 사람들에게 뜨거운 물을 제공하였다. 수런거리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 잦아들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30분이 흘렀다.
2002년 8월 31일 하오 12시, 아니 2002년 9월 1일 0시.
드디어 폭우가 멈추었다. 다만, 안개비였다. 세상천지가 봄 안개처럼 희뿌윰 해졌다.
1시간 후 K시 재난대책본부 상황실은 태풍 루사호가 K시 일대를 벗어나 동해 해상으로 물러났음을 공식 선언하였다. 오봉댐은 만수위 월류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매트리스 바닥에서 추위와 정체 모를 공포에 떨던 사람들은 이제 안도하는 얼굴로 귀가를 서둘렀다. 언제 다시 올라 왔는지 상기된 표정의 해병대 전사 김기하가 홍종호를 두 팔로 한껏 끌어안았다.
새벽 5시, 2002년 9월 1일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샌 홍종호가 동북지방통계청 K시사무소 언덕 고개에서 어스름 미명의 새벽하늘을 쳐다보았다. 생에 가장 긴 밤을 보낸 그의 가슴이 격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태풍 루사(RUSA),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서식하는 사슴무리가 한반도에 습격하여 하루 낮, 하룻밤 새 할퀸 상처는 최악의 재해로 남았다. 사망.실종 240명, 이재민 6만 3천여명, 재산 총 피해액 5조 3천억여 원의 뼈아픈 기록으로 이 나라의 재난사(災難史)를 새로 썼다. 말레이시아는 루사를 태풍 이름에서 영원히 삭제 하였다.
K시 일일 강수량 870.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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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전, 오봉댐의 만수위가 육박하고 있다는 다급한 보도가 있었던 터이다.
를
30분 전, 오봉댐이 만수위에 육박하고 있다는 다급한 보도가 있었던 터이다.
로 고쳐 주십시요, 구어체로라면 대충 그렇게 들리는데 문어체로는 엉터리 오문입니다, 죄송...
오랜 만에 서 선생이 쓴 소설을 읽었습니다. 바쁜 일정의 업무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쓰고 싶은 의욕이 있어도 시간의 제한을 받았던 제 옛날이 연상되어 안타깝습니다. 이 소설은 2002년 휘몰아간 태풍 루사의 내습 때 K재난본부 대책요원 홍종호 계장의 주인공으로 한, 그의 관점으로 시간 전개 흐름으로 구성한 상황소설입니다. 묘사문체로 차용하지 않고 상황을 좇아가는 해설문체가 이 소설의 핵심인 긴장감(tension)을 도입부부터 높여서 독자의 시선을 잡아갑니다. 이는 주제에 적합한 소설도구(문체)를 사용했다는 뜻이겠지요. 단편 형식에서 비교적 등장인물이 많은데 극한상황에서 인물간의 갈등을 더욱 부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사건의 전개가 끝까지 같은 호흡으로 관통하는데 한 번 굴절시켜 대분규 지점을 마련했더라면 보다 좋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소설을 기대하며 건필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