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의 공식적인 거리는 서쪽 노고단고개에서 동쪽 끝인 천왕봉까지 25.5km이다. 그리고 화엄사에서 무넹기를 거쳐 노고단까지 7km, 천왕봉에서 새재를 거쳐 대원사골의 유평리까지 14.8km, 성삼재에서 노고단고개까지 2.9km, 천왕봉에서 중산리 주차장까지 7km이다.
그래서 가장 짧은 성삼재-천왕봉-중산리 코스만 하여도 도상거리 34.4km로서 실제 거리는 50km 이상이고, 가장 긴 화엄사-노고단-천왕봉-대원사-유평리 코스의 경우는 도상거리 47.3km, 실제 거리 60km 이상이다. 이러하므로 지리산 주능선은 단일 능선으로는 남한 최장이며, 해발 1,300-1,900m의 고봉준령을 넘나드는 장쾌한 코스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고 최장의 100리 산길이므로 힘든 것은 사실이나 장대한 능선에 배여 있는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가면서 산행을 하노라면 가슴 치는 감회가 이는가 하면, 신선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 도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너무 힘들다고 과장되게 알려져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주능선의 거리가 길기는 하나 심한 오르막내리막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위험한 곳도 없으므로 웬만한 체력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곳곳에 표지판이 잘 설치돼 있고, 등산로도 선명하여 초행자라도 길 잃을 염려가 없다. 실제로 초등학교 상급반 학생들이나 60-70대의 노년층도 거뜬히 종주를 하고 있으니 중간에 1박을 한다고 하면, 병약하지 않은 정상 체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하겠다.
산행은 천왕봉 쪽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노고단 쪽에서 시작할 수도 있으나 노고단 아래의 성삼재까지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으므로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수월하다. 더구나 천왕봉을 산행의 마지막 목표로 정하여 전진하는 것이므로 확실한 목표가 있고, 정상에 오른다는 성취감을 기대할 수 있어서 산행의 행정이 자연스럽다.
(2)산행의 준비
-대피소 예약--중간에 1박이나 2박을 할 경우 반드시 대피소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대피소 예약이 되었더라도 당일 오후 6시 이전에는 예약된 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 예약을 하지 못했다면 오후 6시를 기해 예약자의 침상 배치가 끝난 후 빈자리에 배치를 받는다. 대기자의 순서는 도착순이 아니고, 노약자 순이다(여름방학 등 성수기엔 이런 빈 자리가 없음을 유의할 것).
대피소 내부 홀
-대피소는 군대 막사처럼 생겼고, 1박에 7,000원, 담요를 빌리는데 1장에 1,000원이다. 그리하여 두 장을 빌려 1장은 깔고, 1장은 덮는데, 아무래도 잠자리가 불편하여 잠을 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준비물
?1.8L짜리 팻트병 하나를 가지고 가는 것이 편리하다. 가는 도중 음료수병으로 이용하다가 밤에 미리 물 한 병을 받아두면 아침 식사준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아침엔 샘터가 붐비기 때문이다.
?여벌옷--대피소의 위치가 대개 해발 1,300m 이상이므로 밤에 찬 기운을 막을 여벌옷을 가져가야 한다.
?휴지와 비닐봉지--식사 후 물로 설거지를 못하게 하므로 그릇을 닦을 두루마리 휴지와 쓰레기를 넣을 비닐봉지를 가져가야 한다.
?대피소에서 밤에 사용하거나 새벽 산행 길에 쓸 전등을 준비해야 한다.
?음식물과 취사도구--음식물의 경우, 대피소에서 비치해서 파는 것도 있으나 2끼분 정도는 준비해서 올라가는 것이 맘 편하다. 대피소에는 품절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사도구를 각자 준비해 가야 한다.
?기타--응급약품과 간식 그리고 산행에 필요한 지도 등도 준비해야 한다.
대피소 매점
(3)성삼재까지 가기
-서울을 기점으로 할 경우, 구례구로 가는 열차는 용산역이 시발역이다.
밤기차를 이용하려면 밤 10시 50분 용산역 발 무궁화호를 타면 새벽 3시 20분 경 구례구역에 도착한다. 구례구역에 도착하면 시내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구례 버스 터미널로 가면 그 시간에도 터미널 구내식당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므로 아침 식사가 가능하고, 구례에서 성삼재로 가는 첫차가 새벽 4시에 있다.
낮 기차의 편리한 시간대는 12시 30분으로 용산역 발 무궁화호를 타면 구례구까지 5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이럴 경우 구례에서 1박하거나 바로 성삼재로 올라가서 노고단대피소에서 잘 수도 있다. 구례에서 1박할 경우 대개 새벽 6시 버스로 성삼재로 향한다.
※구례의 기차역을 구례구(求禮口)역이라 한다. 그것은 이 역의 위치가 구례군이 아니라 구례읍에서 6km 정도 떨어진 순천시 황정면 선변리에 있어서 궁여지책으로 구례 입구라 해서 구례구역이라는 역명을 쓴다고 한다.
(4)산행의 실제
성삼재(姓三峙)---산행이 시작되는 성삼재(1,090m)는 구례에서 남원 혹은 산내면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성삼재는 노고단 입구라 할 수 있으며, 주차장과 휴게소가 있어서 항시 등산객, 관광객으로 붐빈다. 삼한시대에 한 부족이 성삼재 아래 달궁골에 터를 잡고, 각기 성(姓)이 다른 세 장군으로 하여금 이 고개를 지키게 했다는 데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차도 수준의 완만한 길이 이어져 있으므로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는 도중 동쪽을 향해 올라가던 길이 오른편(서쪽)으로 크게 휘었다가 다시 동쪽으로 휘어지는 지점, 그러니까 성삼재에서 1.5km, 30분 정도 올라간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서남쪽으로 광주 무등산(1,187m)이 아련하고, 남쪽으로 화엄사 지역과 구례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그 바로 위가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무넹기란 곳이다.
노고단대피소---이어 전망대에서 1km, 15분 정도 올라가면 노고단대피소(1,422m)에 닿는다. 성삼재에서 2.5km, 50분 정도 걸린다. 노고단대피소 앞 이정표에 ‘천왕봉 25.9km, 반야봉 5.9km’라 적혀 있다. 노고단대피소는 수용인원 270명이며, 물이 풍부하다. 이래서 노고단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새벽 일찍 산행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노고단고개---노고단대피소에서 지름길로 360m, 10분이면 노고단고개에 올라서고, KBS송신소 쪽으로 해서 올라가는 차도로 가면 1.2km, 20여분이면 노고단고개에 닿는다. 대개 이곳이 노고단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노고단(1,507m)은 노고단고개에서 서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곳으로 출입을 못하게 입구를 막아놓았다.
그리고 노고단고개에서 북쪽을 쳐다보면 가까이 돌탑이 있는 노고단을 닮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다. 그 봉우리가 ‘작은 노고단’이다. 그러므로 노고단과 작은 노고단 안부가 노고단고개인 셈이다. 노고단고개 이정표엔 ‘천왕봉 25.5km, 반야봉 5.5km’라 적혀 있다.
노고단 운해
고단(老姑壇)---노고단은 예전에 길상봉(吉祥峰)이라고도 했으며,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로서 정상의 서남 방향으로 35만평의 넓은 고원이 형성돼 있으며, 현재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피아골 3거리---노고단고개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처음 동쪽을 향해 내려서면서 산허리 길로 아주 평이하게 전개된다. 그리하여 20~25분 정도 전진하면 전망이 트이면서 주능선 상의 돼지평전에 닿는다. 예전에 멧돼지들이 그 일대 군락을 이룬 원추리 뿌리를 캐먹기 위해 많이 몰려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2분 후 헬기장을 하나 지나고, 이어서 8분 정도 전진하여 다른 헬기장을 지난 후, 10여분 전진하면 또 하나의 헬기장에 닿는데, 거기 이정표에 ‘임걸령 1.1km, 노고단 2.1km’라 적혀 있다. 그런 후 노고단고개에서 40~50분 경과한 시점에 ‘피아골 3거리’에 닿는다. 피아골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거기 이정표에 ‘피아골대피소 2km, 노고단 2.7km, 천왕봉 22.3km’라 적혀 있다.
임걸령(林傑嶺)---그리고 피아골 3거리에서 10여분, 성삼재에서 2시간, 노고단고개에서 1시간 10분 정도 가면 임걸령(1,320m)에 닿는다. 임걸령은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걸년(林傑年)이 본거지로 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등산로 바로 서쪽 아래에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 좋기로 이름난 임걸령샘이 있다.
노루목 3거리---임걸령에서 2km, 30여분 전진하면 반야봉 길이 갈라지는 노루목 3거리에 닿는다. 거기서 반야봉이 1km이고, 노고단에서 4.5km 전진한 곳이다.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般若峰;1,732m)에 다녀오려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나 실제 산행을 해 보면, 올라가는데 40분, 내려오는데 30분, 하여 1시간 1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반야봉은 지리산 어느 쪽에서도 보일만큼 두드러진데 마치 여인의 둔부처럼 생겼다. 중봉, 하봉, 제석봉보다는 낮으나 이들 세 봉우리는 천왕봉에 인접해 있어서 독립봉이라 일컬을 수 없는데 비하여 반야봉은 서부 제일봉으로 독립돼 있어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어 제2봉이라 한다. 반야봉 정상은 천왕봉처럼 암릉으로 덮여 있고, 표지석이 둘 있으며, 이정표가 있다.
반야봉의 낙조(落照)가 지리산 10경에 들어간다. 전망도 사방으로 시원히 열려 있어서 동쪽으로 지리산 주능선 끝에 천왕봉이 보이고, 서쪽으로 만복대(1,433.4m)가 가까이 건너다보이며, 그 오른편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물결처럼 흘러가는데, 남쪽으로 노고단 너머 왕시루봉(1,245m)과 광양의 백운산(1,217.8m)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삼도봉(三道峰)---노루목 3거리에서 15분 정도 전진하면 또 하나의 3거리에 닿는다. 이 3거리는 노루목 3거리에서 반야봉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이쪽으로 내려오게 되는 곳이다. 거기서 7-8분이면 삼도봉(1,499m)에 닿는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3개 도 경계지점으로 전망이 시원하고 아담한 청동 표지물이 서 있다. 삼도봉에서 남쪽 황장산(942.1m)으로 뻗어가는 불무장등 능선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화개재(花開峙)---삼도봉에서 0.8km, 15분 정도, 550계단의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화개재(1.360m)에 내려선다. 거기 이정표에 ‘노고단 6.3km, 천왕봉 19.2km’라 적혀 있으며, 반야봉을 들리지 않는다면 성삼재에서 화개재까지 3시간 40~50분 걸린다. 화개재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으며, 헬기장이 있다. 화개재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200m 거리에 수용인원 100명의 뱀사골대피소가 있다. 뱀사골대피소 앞을 지나 계속 그 길로 내려가면 반선마을에 이른다. 화개재에서 반선마을까지 9.2km이다.
지금은 공식적인 등산로가 아니나 화개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목동골(일명 연동골)로 해서 화개로 내려가는 최단 코스가 있다. 이 길이 옛날 화개장터에서 생선, 소금 등 해산물을 지고 화개재로 올라가서 지리산 북쪽의 운봉, 산내, 마천 등지에 공급을 하고, 그 대신 북쪽의 곡식, 산채, 약초 등을 짊어지고 화개, 하동 지방으로 넘어가던 옛길이다.
토끼봉(卯峰)---화개재에서 1.2km, 40분 정도 힘들게 올라가면 철쭉이 많기로 이름난 토끼봉(1,533.7m)에 닿는다. 노고단에서 7.5km 지점이고, 연하천대피소가 3km 남은 지점이며, 헬기장이 있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을 올라가는 길은 심한 오르막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쯤에 오면 벌써 기운이 많이 빠져 올라가는데 힘이 든다.
토끼봉은 토끼처럼 생겨서 토끼봉이라 한 것이 아니라 반야봉을 기점으로 할 경우 정동(正東), 즉 묘방(卯方)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토끼봉 부근에 오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100리 산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혼자 이 긴 능선 길을 걸어가노라면 자신이 살아온 생애의 온갖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오는가 하면, 지리산이 품고 있는 갖가지 상념들이 가슴을 적신다. 장대한 지리산 능선을 혼자 걸으며 느끼는 감회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졸시 ‘지리산’에 담아 보았다.
백두대간 끝자락
꿈꾸듯 찾아든 지리산!
면면이 이어온 역사가 있고
켜켜이 쌓인 사연들이 있으며
아픈 상처들이 배여 있는 곳
그 장대한 능선에 서서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저 민초들이 숨 쉬는 들판을 보면서
한 굽이 돌 때마다
긴 한숨을 몰아 쉰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추기고
떡 한 조각에 허기를 면하면서
걷고 또 걸으며
원통하게 숨져간
젊은이들의 영혼을 달랜다
그리고 내일은 밝으리라는
여명을 기대하며 걷는다
천왕봉을 향해 걷는다
지리산의 의미를
오늘에 사는 의미를
새김질하며 걷는다
이제 상처를 씻고
내 안의 아픔을 훑고
어리석음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빌고 다짐하며 걷는다
오늘 우리가 걷듯
내일은 또 다른 젊은이가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그러하기에
늘 그래 왔듯이
내일도 모래도
지리산은 영원하리라
명선봉(明仙峰)---토끼봉에서 한차례 내려갔다가 완만하고 긴 오르막을 올라가면 명선봉(1,586.3m)을 지나게 된다. 명선봉은 정상을 거치지 않고 왼편 산허리를 길게 돌아가는데, 이 명선봉을 우회하는 길이 매우 까다로운 돌 덜겅 길이어서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다. 지친 상태에서 토끼봉에서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대피소에 이르는 1시간 30분 구간이 상당히 힘들다.
연하천대피소---연하천대피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수용인원 50명의 아담한 산장이다. 노고단에서 10.5km, 5시간-5시간 30분 정도 전진한 곳이고, 천왕봉이 15km 남은 지점이다. 연하천(烟霞泉)이란 이 산장 부근에 솟는 샘물이 마치 구름 속에 흐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하천대피소의 샘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다. 뿐만 아니라 비가 올 때는 수십 가닥의 물길이 연하천의 작은 분지에 몰려 들어와서 사방이 물이 질척거리고, 거기에 안개마저 끼이면 그야말로 연하천이 된다. 성삼재를 아침에 출발한 등산객이라면 대개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게 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남쪽 빗점골로 내려갈 수도 있으나 아랫동네 의신마을 사람들이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기나 할 뿐 정식 등산로는 아니다.
빗점골은 저 유명한 지리산 빨치산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李鉉相)이 최후를 마쳤다는 곳이다. 그 당시 빨치산들이 명선봉에서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 덕평봉에 이르는 일대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하여 이 일대를 ‘피의 능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각봉(삼각고지)---연하천대피소에서 0.7km, 15분 정도 전진하면 음정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3거리에 닿는다. 거기 이정표에 ‘음정(마천) 6.6km, 벽소령 2.9km, 천왕봉 14.3km'라 적혀 있다. 거기서 5~6분이면 전망이 좋은 삼각봉(1,482m)에 올라선다. 별다른 정상 표지석은 없으나 119 표지목(지리 01-24)이 있고, 돌출봉이어서 전망이 열려 백무동골과 화개골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형제봉---삼각봉에서 한차례 내려갔다가 가파르게 올라가면 형제봉(1,433m)에 닿는다. 연하천대피소에서 2.1km, 1시간 정도 걸린다. 형제봉 동편 아래에 10m 크기의 입석이 두 개 등을 맞대고 서 있다. 이 바위를 일러 ‘형제바위’라 하고, 그래서 봉우리 이름도 형제봉이 된 것이다. 형제봉 바위 아래에 이정표가 있어서 '노고단 12.6km, 벽소령대피소 1.5km, 정터목대피소 11.2km'라 적혀 있다.
형제바위
벽소령대피소---형제봉에서 1.5km, 1시간 정도 가면 벽소령대피소에 이른다. 연하천대피소에서는 3.6km 거리인데, 큰 굴곡은 없으나 점심 식사 후의 식곤증에다가 체력도 많이 소진된 지친 상태이고, 돌밭 길이어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성삼재에서는 7-9시간 걸린다.
벽소령(1,350m)은 지리산 중심부에 고도가 낮은 잘록한 허리와 같은 고개로서 북쪽 마천(馬川)과 남쪽 화개골을 연결하던 애환 어린 영마루이다. 그래서 지금도 북쪽으로 마천(음정)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고, 남쪽으로는 그 유명한 빗점골을 지나 대성리(의신마을)로 해서 화개(花開)로 내려갈 수도 있다.
푸른 숲 위에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 맑아서 오히려 푸른빛이 돈다고 하여 푸른 벽(碧), 밤 소(宵)를 써서 벽소령이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벽소령의 달밤(碧宵明月 혹은 碧宵夜月)이 유난히 아름다워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벽소령대피소는 대체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 상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주능선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대개 세석대피소가 아니면 여기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을 한다. 수용인원이 160명의 규모가 꽤 큰 대피소이나 물이 넉넉하지 않은 것이 흠이다.
구벽소령---벽소령대피소에서 1.1km, 20여분 거리에 왼편 마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공터가 있고, 거기 이정표에 ‘음정(마천) 8.4km, 벽소령 1.1km, 세석대피소 5.2km’라 적혀 있다. 대피소가 있는 벽소령이 신벽소령, 여기가 구벽소령이다
과거 빨치산을 토벌할 당시 건설한 군사작전도로가 지금은 임도가 돼 이곳에서 마천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천까지는 8.4km이나 주능선에서 평지로 내려가는 최단 거리의 하나로서 산기슭 마을이 빤히 보인다.
선비샘---구벽소령부터는 긴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덕평봉(1,521.9m)으로 올라간다. 덕평봉(德坪峰)은 정상을 피해서 등산로가 오른편으로 우회를 하는데, 정상부 남쪽 사면에 과거 야영장이었다고 하는 제법 ?은 공터가 있고, 공터의 야트막한 축대 아래에 가느다란 파이프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2.4km, 1시간 거리인 이 샘물을 일러 ‘선비샘’이라 한다. 선비샘은 신분 갈등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선비들도 이곳에서 물을 마시려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서 천민 앞에 선비가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선비샘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비샘 설명판에는 「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끔 하였다고 한다」라고 적혀 있다.
망바위---선비샘에서 30~40분 전진하면 망바위에 닿는다. 망바위에서는 천왕봉과 장터목대피소, 영신봉, 촛대봉 등이 보이며, 날씨가 청명할 때는 아득히 남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 광양만이 보인다. 망바위에는 조망판이 설치돼 있다.
칠선봉(七仙峰)---망바위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칠선봉(1,588m)에 당도한다. 칠선봉은 7개의 바위가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선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바위들이 모두 험상궂게 생겼다. 칠선봉의 이정표에는 ‘벽소령대피소 4.3km, 세석대피소 2.1km, 천왕봉 7.2km’라 적혀 있다.
영신봉(靈神峰)---칠선봉을 출발하여 능선 왼편을 우회해서 전진하면 철 계단을 두 번 지나고, 긴 나무다리를 지난 후 오른편으로 휘돌아나가 칠선봉에서 1시간 정도 가면 영신봉(1,651.9m) 아래에 닿는다. 영신봉은 정상을 비켜서 오른편(남쪽) 허리 길로 우회하며, 영신봉 이정표에는 ‘벽소령대피소 5.7km, 세석대피소 0.6km’라 적혀 있고, 남으로 광양만을 비롯한 다도해가 보인다.
영신봉에서 남쪽 삼신봉(1,284m) 쪽으로 뻗어 내린 큰 능선이 낙남정맥(洛南正脈)이다. 영신봉에서 분기한 낙남정맥은 삼신봉을 지나 마산 지역을 거쳐 김해의 신어산(神魚山)까지 이어진다.
세석대피소---영신봉에서 완만한 내리막을 10분 정도 내려가면 세석대피소에 이른다. 벽소령대피소에서 6.3km, 2시간 정도 걸리고, 성삼재에서 23.6km, 10-11시간 걸린다.
그런데 영신봉을 내려서면서 세석평전(細石平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 드넓은 산상고원의 색다른 모습을 접하게 되고, 깊은 감회에 젖게 된다. 우리의 5,000년 역사에는 기쁘고 즐거웠던 일보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더 많았다.
특히 민초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지리산은 이런 상처 입은 민초들과 지식인들의 아픔과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나 세석평전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지리산엔 신음소리만 들리는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높은 곳에 저렇게도 드넓은 광야가 있어서 산상 초원을 이루고, 산상 화원을 연출하여 손님을 맞아하고 있으니 오히려 황홀한 감격을 느끼게 된다.
세석평전 습지
잔돌이 많은 평평한 곳(잔돌배기)이라 하여 세석평전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촛대봉의 서남 사면과 영신봉 사이에 완만한 경사를 이룬 고원의 둘레가 12km에 달한다. 아고산지대에 속하면서 비와 안개가 잦으며, 바람이 세게 불고, 짙은 일사량과 강한 자외선에다가 심한 일교차를 나타내는 독특한 기후 조건으로 인하여 희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서 생태계의 가치가 높으며, 봄이면 과거 세석철쭉축제가 열릴 정도로 철쭉이 많고 아름답다.
지리산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세석대피소는 단순한 산장이기 이전에 지리산의 명소이기도 하다. 수용인원 240명으로 시설규모가 지리산 대피소 중에서는 가장 크고 물도 풍부하다. 샘터 위쪽에 고산습지가 발달해 있어서 수량이 풍부한 것이다. 세석대피소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 3.4km, 벽소령대피소 6.3km, 거림골 6.0km, 백무동 6.5km, 천왕봉 4.1km’라 적혀 있다.
세석평전 북쪽 사면에는 소와 폭포가 연이어진 아름다운 한신계곡이 백무동으로 이어져 가고, 남쪽 사면으로는 거림골로 내려가는 최단 코스가 있다. 그리고 이 남쪽 길은 중간에 대성리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어진다.
그런데 이 남쪽 거림골과 대성리는 해방이후 이념 갈등에 휩싸여 빨치산 활동을 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어서 아직 그들의 원혼이 떠도는 듯하다. 빨치산 활동을 잘 한 일이라 할 수는 없으나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민초들이 친일파들의 핍박에 못 이겨 산으로 숨어든 것이 결국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빨치산이 됐고, 원통하게 희생된 것이니 그들의 진실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연하봉 쪽에서 바라본 촛대봉
촛대봉---세석평전에서 천왕봉으로 가자면 동쪽 능선의 올망졸망한 바위가 많은 촛대봉(1,703m)으로 20여분 올라가야 한다. 촛대봉은 바위들이 마치 촛농이 녹아내린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촛대봉 안부의 이정표에는 ‘세석대피소 0.7km, 장터목대피소 2.7km’라 적혀 있다.
연하봉(煙霞峰)---촛대봉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40여분 전진하면 조그만 암봉이 있는 연하봉(1.730m)에 닿는다. 거기 이정표엔 ‘세석대피소 2.6km, 장터목대피소 0.8km’라 적혀 있다. 연하봉엔 유별나게 얼레지가 많아 초여름엔 보라색 꽃밭이 기암괴석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리하여 연하봉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연하선경(煙霞仙境)이라 하여 지리산 10경에 포함시킨다.
장터목대피소---연하봉에서 20여분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에 이른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2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실제 3.4km, 1시간 20-30분 정도 걸린다. 해발 1,653m에 위치한 장터목대피소는 수용인원 140명으로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산장이어서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이 지리산 10경에 든다.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북쪽 기슭의 주민과 남쪽 기슭의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장터목에서 장을 열어 서로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즉 남쪽 산청 사람들이 생선, 소금 등 해산물 따위를 지고 법천골로 해서 장터목으로 올라오고, 북쪽 남원, 함양 쪽 사람들은 곡식, 직물, 약초 등을 짊어지고 백무동으로 해서 올라와서 물물교환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터목은 지금도 법천골 코스와 백무동 코스가 만나는 4거리가 돼 있다.
제석봉(帝釋峰)---장터목대피소에서 곧바로 동쪽 비탈길을 0.6km, 20분 정도 올라가면 제석봉(1,806m)에 닿는다. 옛날 민간신앙으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제석봉이라 한다.
그런데 소문대로 제석봉엔 하얀 고사목들이 처연하고 봉우리 일대가 황량하다. 이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 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인재에 의한 고사목이라고 한다.
즉 자유당 말기에 당시 농림부장관이던 사람의 삼촌이란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봉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말썽이 날 것 같으니까 흔적을 없애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렀단다. 그 때 불탄 나무들의 잔해가 지금의 고사목이다.
천왕봉(天王峰)---도벌꾼들이 불을 질러 고사목이 즐비한 제석봉에서 작은 봉우리 두 개를 오르내리며 30분 정도 전진하여 천왕봉 턱밑에 다다르면, 이어서 통천문(1,811m)을 빠져나가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철 계단을 여러 번 오르고, 통천문에서 0.5km, 15분 정도 올라가면 드디어 천왕봉에 올라선다. 장터목대피소에서 1.7km, 1시간-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벽소령대피소에서는 11.4km, 4시간 40분-5시간, 세석대피소에서는 5.1km, 2시간 40분-3시간 걸린다. 물론 이것은 쉬는 시간을 제외한 순수한 산행시간만을 계산한 것이다.
천왕봉엔 타원형 자연석의 정상 표지석 한 면에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라 새겨져 있다. 육지에서 제일 높은 정상답게 사방이 활짝 열려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채근담(菜根譚)에는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진다(登高 使人心曠)’라고 했으며,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는 다도해와 진주 시가지, 덕유산, 가야산, 광주 무등산 등이 보이고, 온 천지가 발아래 있다.
법계사
하산---천왕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다. 장터목대피소로 되돌아 내려가서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내려갈 수도 있고, 중봉(1,875m), 써리봉(1,642m)을 거쳐 대원사 아래 유평리로 내려갈 수도 있으며, 중봉, 하봉(1,781m)을 거쳐 벽송사 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종주 마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산 코스로 가장 짧은 중산리 쪽을 택한다. 천왕봉에서 동쪽 가파른 길로 내려가면 천왕샘을 지나 법계사, 로타리대피소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간다.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하산하는 데에 5.4km, 3시간 정도 걸린다. 주차장까지는 7km, 3시간 20-30분 걸린다.
지리산 주능선의 공식적인 거리는 서쪽 노고단고개에서 동쪽 끝인 천왕봉까지 25.5km이다. 그리고 화엄사에서 무넹기를 거쳐 노고단까지 7km, 천왕봉에서 새재를 거쳐 대원사골의 유평리까지 14.8km, 성삼재에서 노고단고개까지 2.9km, 천왕봉에서 중산리 주차장까지 7km이다.
그래서 가장 짧은 성삼재-천왕봉-중산리 코스만 하여도 도상거리 34.4km로서 실제 거리는 50km 이상이고, 가장 긴 화엄사-노고단-천왕봉-대원사-유평리 코스의 경우는 도상거리 47.3km, 실제 거리 60km 이상이다. 이러하므로 지리산 주능선은 단일 능선으로는 남한 최장이며, 해발 1,300-1,900m의 고봉준령을 넘나드는 장쾌한 코스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고 최장의 100리 산길이므로 힘든 것은 사실이나 장대한 능선에 배여 있는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가면서 산행을 하노라면 가슴 치는 감회가 이는가 하면, 신선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 도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너무 힘들다고 과장되게 알려져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주능선의 거리가 길기는 하나 심한 오르막내리막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위험한 곳도 없으므로 웬만한 체력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곳곳에 표지판이 잘 설치돼 있고, 등산로도 선명하여 초행자라도 길 잃을 염려가 없다. 실제로 초등학교 상급반 학생들이나 60-70대의 노년층도 거뜬히 종주를 하고 있으니 중간에 1박을 한다고 하면, 병약하지 않은 정상 체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하겠다.
산행은 천왕봉 쪽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노고단 쪽에서 시작할 수도 있으나 노고단 아래의 성삼재까지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으므로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수월하다. 더구나 천왕봉을 산행의 마지막 목표로 정하여 전진하는 것이므로 확실한 목표가 있고, 정상에 오른다는 성취감을 기대할 수 있어서 산행의 행정이 자연스럽다.
(2)산행의 준비
-대피소 예약--중간에 1박이나 2박을 할 경우 반드시 대피소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대피소 예약이 되었더라도 당일 오후 6시 이전에는 예약된 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 예약을 하지 못했다면 오후 6시를 기해 예약자의 침상 배치가 끝난 후 빈자리에 배치를 받는다. 대기자의 순서는 도착순이 아니고, 노약자 순이다(여름방학 등 성수기엔 이런 빈 자리가 없음을 유의할 것).
대피소 내부 홀
-대피소는 군대 막사처럼 생겼고, 1박에 7,000원, 담요를 빌리는데 1장에 1,000원이다. 그리하여 두 장을 빌려 1장은 깔고, 1장은 덮는데, 아무래도 잠자리가 불편하여 잠을 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준비물
?1.8L짜리 팻트병 하나를 가지고 가는 것이 편리하다. 가는 도중 음료수병으로 이용하다가 밤에 미리 물 한 병을 받아두면 아침 식사준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아침엔 샘터가 붐비기 때문이다.
?여벌옷--대피소의 위치가 대개 해발 1,300m 이상이므로 밤에 찬 기운을 막을 여벌옷을 가져가야 한다.
?휴지와 비닐봉지--식사 후 물로 설거지를 못하게 하므로 그릇을 닦을 두루마리 휴지와 쓰레기를 넣을 비닐봉지를 가져가야 한다.
?대피소에서 밤에 사용하거나 새벽 산행 길에 쓸 전등을 준비해야 한다.
?음식물과 취사도구--음식물의 경우, 대피소에서 비치해서 파는 것도 있으나 2끼분 정도는 준비해서 올라가는 것이 맘 편하다. 대피소에는 품절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사도구를 각자 준비해 가야 한다.
?기타--응급약품과 간식 그리고 산행에 필요한 지도 등도 준비해야 한다.
대피소 매점
(3)성삼재까지 가기
-서울을 기점으로 할 경우, 구례구로 가는 열차는 용산역이 시발역이다.
밤기차를 이용하려면 밤 10시 50분 용산역 발 무궁화호를 타면 새벽 3시 20분 경 구례구역에 도착한다. 구례구역에 도착하면 시내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구례 버스 터미널로 가면 그 시간에도 터미널 구내식당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므로 아침 식사가 가능하고, 구례에서 성삼재로 가는 첫차가 새벽 4시에 있다.
낮 기차의 편리한 시간대는 12시 30분으로 용산역 발 무궁화호를 타면 구례구까지 5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이럴 경우 구례에서 1박하거나 바로 성삼재로 올라가서 노고단대피소에서 잘 수도 있다. 구례에서 1박할 경우 대개 새벽 6시 버스로 성삼재로 향한다.
※구례의 기차역을 구례구(求禮口)역이라 한다. 그것은 이 역의 위치가 구례군이 아니라 구례읍에서 6km 정도 떨어진 순천시 황정면 선변리에 있어서 궁여지책으로 구례 입구라 해서 구례구역이라는 역명을 쓴다고 한다.
(4)산행의 실제
성삼재(姓三峙)---산행이 시작되는 성삼재(1,090m)는 구례에서 남원 혹은 산내면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성삼재는 노고단 입구라 할 수 있으며, 주차장과 휴게소가 있어서 항시 등산객, 관광객으로 붐빈다. 삼한시대에 한 부족이 성삼재 아래 달궁골에 터를 잡고, 각기 성(姓)이 다른 세 장군으로 하여금 이 고개를 지키게 했다는 데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차도 수준의 완만한 길이 이어져 있으므로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는 도중 동쪽을 향해 올라가던 길이 오른편(서쪽)으로 크게 휘었다가 다시 동쪽으로 휘어지는 지점, 그러니까 성삼재에서 1.5km, 30분 정도 올라간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서남쪽으로 광주 무등산(1,187m)이 아련하고, 남쪽으로 화엄사 지역과 구례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그 바로 위가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무넹기란 곳이다.
노고단대피소---이어 전망대에서 1km, 15분 정도 올라가면 노고단대피소(1,422m)에 닿는다. 성삼재에서 2.5km, 50분 정도 걸린다. 노고단대피소 앞 이정표에 ‘천왕봉 25.9km, 반야봉 5.9km’라 적혀 있다. 노고단대피소는 수용인원 270명이며, 물이 풍부하다. 이래서 노고단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새벽 일찍 산행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노고단고개---노고단대피소에서 지름길로 360m, 10분이면 노고단고개에 올라서고, KBS송신소 쪽으로 해서 올라가는 차도로 가면 1.2km, 20여분이면 노고단고개에 닿는다. 대개 이곳이 노고단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노고단(1,507m)은 노고단고개에서 서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곳으로 출입을 못하게 입구를 막아놓았다.
그리고 노고단고개에서 북쪽을 쳐다보면 가까이 돌탑이 있는 노고단을 닮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다. 그 봉우리가 ‘작은 노고단’이다. 그러므로 노고단과 작은 노고단 안부가 노고단고개인 셈이다. 노고단고개 이정표엔 ‘천왕봉 25.5km, 반야봉 5.5km’라 적혀 있다.
노고단 운해
고단(老姑壇)---노고단은 예전에 길상봉(吉祥峰)이라고도 했으며,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로서 정상의 서남 방향으로 35만평의 넓은 고원이 형성돼 있으며, 현재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피아골 3거리---노고단고개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처음 동쪽을 향해 내려서면서 산허리 길로 아주 평이하게 전개된다. 그리하여 20~25분 정도 전진하면 전망이 트이면서 주능선 상의 돼지평전에 닿는다. 예전에 멧돼지들이 그 일대 군락을 이룬 원추리 뿌리를 캐먹기 위해 많이 몰려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2분 후 헬기장을 하나 지나고, 이어서 8분 정도 전진하여 다른 헬기장을 지난 후, 10여분 전진하면 또 하나의 헬기장에 닿는데, 거기 이정표에 ‘임걸령 1.1km, 노고단 2.1km’라 적혀 있다. 그런 후 노고단고개에서 40~50분 경과한 시점에 ‘피아골 3거리’에 닿는다. 피아골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거기 이정표에 ‘피아골대피소 2km, 노고단 2.7km, 천왕봉 22.3km’라 적혀 있다.
임걸령(林傑嶺)---그리고 피아골 3거리에서 10여분, 성삼재에서 2시간, 노고단고개에서 1시간 10분 정도 가면 임걸령(1,320m)에 닿는다. 임걸령은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걸년(林傑年)이 본거지로 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등산로 바로 서쪽 아래에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 좋기로 이름난 임걸령샘이 있다.
노루목 3거리---임걸령에서 2km, 30여분 전진하면 반야봉 길이 갈라지는 노루목 3거리에 닿는다. 거기서 반야봉이 1km이고, 노고단에서 4.5km 전진한 곳이다.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般若峰;1,732m)에 다녀오려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나 실제 산행을 해 보면, 올라가는데 40분, 내려오는데 30분, 하여 1시간 1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반야봉은 지리산 어느 쪽에서도 보일만큼 두드러진데 마치 여인의 둔부처럼 생겼다. 중봉, 하봉, 제석봉보다는 낮으나 이들 세 봉우리는 천왕봉에 인접해 있어서 독립봉이라 일컬을 수 없는데 비하여 반야봉은 서부 제일봉으로 독립돼 있어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어 제2봉이라 한다. 반야봉 정상은 천왕봉처럼 암릉으로 덮여 있고, 표지석이 둘 있으며, 이정표가 있다.
반야봉의 낙조(落照)가 지리산 10경에 들어간다. 전망도 사방으로 시원히 열려 있어서 동쪽으로 지리산 주능선 끝에 천왕봉이 보이고, 서쪽으로 만복대(1,433.4m)가 가까이 건너다보이며, 그 오른편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물결처럼 흘러가는데, 남쪽으로 노고단 너머 왕시루봉(1,245m)과 광양의 백운산(1,217.8m)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삼도봉(三道峰)---노루목 3거리에서 15분 정도 전진하면 또 하나의 3거리에 닿는다. 이 3거리는 노루목 3거리에서 반야봉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이쪽으로 내려오게 되는 곳이다. 거기서 7-8분이면 삼도봉(1,499m)에 닿는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3개 도 경계지점으로 전망이 시원하고 아담한 청동 표지물이 서 있다. 삼도봉에서 남쪽 황장산(942.1m)으로 뻗어가는 불무장등 능선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화개재(花開峙)---삼도봉에서 0.8km, 15분 정도, 550계단의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화개재(1.360m)에 내려선다. 거기 이정표에 ‘노고단 6.3km, 천왕봉 19.2km’라 적혀 있으며, 반야봉을 들리지 않는다면 성삼재에서 화개재까지 3시간 40~50분 걸린다. 화개재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으며, 헬기장이 있다. 화개재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200m 거리에 수용인원 100명의 뱀사골대피소가 있다. 뱀사골대피소 앞을 지나 계속 그 길로 내려가면 반선마을에 이른다. 화개재에서 반선마을까지 9.2km이다.
지금은 공식적인 등산로가 아니나 화개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목동골(일명 연동골)로 해서 화개로 내려가는 최단 코스가 있다. 이 길이 옛날 화개장터에서 생선, 소금 등 해산물을 지고 화개재로 올라가서 지리산 북쪽의 운봉, 산내, 마천 등지에 공급을 하고, 그 대신 북쪽의 곡식, 산채, 약초 등을 짊어지고 화개, 하동 지방으로 넘어가던 옛길이다.
토끼봉(卯峰)---화개재에서 1.2km, 40분 정도 힘들게 올라가면 철쭉이 많기로 이름난 토끼봉(1,533.7m)에 닿는다. 노고단에서 7.5km 지점이고, 연하천대피소가 3km 남은 지점이며, 헬기장이 있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을 올라가는 길은 심한 오르막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쯤에 오면 벌써 기운이 많이 빠져 올라가는데 힘이 든다.
토끼봉은 토끼처럼 생겨서 토끼봉이라 한 것이 아니라 반야봉을 기점으로 할 경우 정동(正東), 즉 묘방(卯方)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토끼봉 부근에 오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100리 산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혼자 이 긴 능선 길을 걸어가노라면 자신이 살아온 생애의 온갖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오는가 하면, 지리산이 품고 있는 갖가지 상념들이 가슴을 적신다. 장대한 지리산 능선을 혼자 걸으며 느끼는 감회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졸시 ‘지리산’에 담아 보았다.
백두대간 끝자락
꿈꾸듯 찾아든 지리산!
면면이 이어온 역사가 있고
켜켜이 쌓인 사연들이 있으며
아픈 상처들이 배여 있는 곳
그 장대한 능선에 서서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저 민초들이 숨 쉬는 들판을 보면서
한 굽이 돌 때마다
긴 한숨을 몰아 쉰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추기고
떡 한 조각에 허기를 면하면서
걷고 또 걸으며
원통하게 숨져간
젊은이들의 영혼을 달랜다
그리고 내일은 밝으리라는
여명을 기대하며 걷는다
천왕봉을 향해 걷는다
지리산의 의미를
오늘에 사는 의미를
새김질하며 걷는다
이제 상처를 씻고
내 안의 아픔을 훑고
어리석음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빌고 다짐하며 걷는다
오늘 우리가 걷듯
내일은 또 다른 젊은이가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그러하기에
늘 그래 왔듯이
내일도 모래도
지리산은 영원하리라
명선봉(明仙峰)---토끼봉에서 한차례 내려갔다가 완만하고 긴 오르막을 올라가면 명선봉(1,586.3m)을 지나게 된다. 명선봉은 정상을 거치지 않고 왼편 산허리를 길게 돌아가는데, 이 명선봉을 우회하는 길이 매우 까다로운 돌 덜겅 길이어서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다. 지친 상태에서 토끼봉에서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대피소에 이르는 1시간 30분 구간이 상당히 힘들다.
연하천대피소---연하천대피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수용인원 50명의 아담한 산장이다. 노고단에서 10.5km, 5시간-5시간 30분 정도 전진한 곳이고, 천왕봉이 15km 남은 지점이다. 연하천(烟霞泉)이란 이 산장 부근에 솟는 샘물이 마치 구름 속에 흐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하천대피소의 샘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다. 뿐만 아니라 비가 올 때는 수십 가닥의 물길이 연하천의 작은 분지에 몰려 들어와서 사방이 물이 질척거리고, 거기에 안개마저 끼이면 그야말로 연하천이 된다. 성삼재를 아침에 출발한 등산객이라면 대개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게 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남쪽 빗점골로 내려갈 수도 있으나 아랫동네 의신마을 사람들이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기나 할 뿐 정식 등산로는 아니다.
빗점골은 저 유명한 지리산 빨치산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李鉉相)이 최후를 마쳤다는 곳이다. 그 당시 빨치산들이 명선봉에서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 덕평봉에 이르는 일대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하여 이 일대를 ‘피의 능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각봉(삼각고지)---연하천대피소에서 0.7km, 15분 정도 전진하면 음정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3거리에 닿는다. 거기 이정표에 ‘음정(마천) 6.6km, 벽소령 2.9km, 천왕봉 14.3km'라 적혀 있다. 거기서 5~6분이면 전망이 좋은 삼각봉(1,482m)에 올라선다. 별다른 정상 표지석은 없으나 119 표지목(지리 01-24)이 있고, 돌출봉이어서 전망이 열려 백무동골과 화개골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형제봉---삼각봉에서 한차례 내려갔다가 가파르게 올라가면 형제봉(1,433m)에 닿는다. 연하천대피소에서 2.1km, 1시간 정도 걸린다. 형제봉 동편 아래에 10m 크기의 입석이 두 개 등을 맞대고 서 있다. 이 바위를 일러 ‘형제바위’라 하고, 그래서 봉우리 이름도 형제봉이 된 것이다. 형제봉 바위 아래에 이정표가 있어서 '노고단 12.6km, 벽소령대피소 1.5km, 정터목대피소 11.2km'라 적혀 있다.
형제바위
벽소령대피소---형제봉에서 1.5km, 1시간 정도 가면 벽소령대피소에 이른다. 연하천대피소에서는 3.6km 거리인데, 큰 굴곡은 없으나 점심 식사 후의 식곤증에다가 체력도 많이 소진된 지친 상태이고, 돌밭 길이어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성삼재에서는 7-9시간 걸린다.
벽소령(1,350m)은 지리산 중심부에 고도가 낮은 잘록한 허리와 같은 고개로서 북쪽 마천(馬川)과 남쪽 화개골을 연결하던 애환 어린 영마루이다. 그래서 지금도 북쪽으로 마천(음정)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고, 남쪽으로는 그 유명한 빗점골을 지나 대성리(의신마을)로 해서 화개(花開)로 내려갈 수도 있다.
푸른 숲 위에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 맑아서 오히려 푸른빛이 돈다고 하여 푸른 벽(碧), 밤 소(宵)를 써서 벽소령이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벽소령의 달밤(碧宵明月 혹은 碧宵夜月)이 유난히 아름다워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벽소령대피소는 대체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 상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주능선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대개 세석대피소가 아니면 여기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을 한다. 수용인원이 160명의 규모가 꽤 큰 대피소이나 물이 넉넉하지 않은 것이 흠이다.
구벽소령---벽소령대피소에서 1.1km, 20여분 거리에 왼편 마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공터가 있고, 거기 이정표에 ‘음정(마천) 8.4km, 벽소령 1.1km, 세석대피소 5.2km’라 적혀 있다. 대피소가 있는 벽소령이 신벽소령, 여기가 구벽소령이다
과거 빨치산을 토벌할 당시 건설한 군사작전도로가 지금은 임도가 돼 이곳에서 마천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천까지는 8.4km이나 주능선에서 평지로 내려가는 최단 거리의 하나로서 산기슭 마을이 빤히 보인다.
선비샘---구벽소령부터는 긴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덕평봉(1,521.9m)으로 올라간다. 덕평봉(德坪峰)은 정상을 피해서 등산로가 오른편으로 우회를 하는데, 정상부 남쪽 사면에 과거 야영장이었다고 하는 제법 ?은 공터가 있고, 공터의 야트막한 축대 아래에 가느다란 파이프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2.4km, 1시간 거리인 이 샘물을 일러 ‘선비샘’이라 한다. 선비샘은 신분 갈등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선비들도 이곳에서 물을 마시려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서 천민 앞에 선비가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선비샘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비샘 설명판에는 「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끔 하였다고 한다」라고 적혀 있다.
망바위---선비샘에서 30~40분 전진하면 망바위에 닿는다. 망바위에서는 천왕봉과 장터목대피소, 영신봉, 촛대봉 등이 보이며, 날씨가 청명할 때는 아득히 남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 광양만이 보인다. 망바위에는 조망판이 설치돼 있다.
칠선봉(七仙峰)---망바위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칠선봉(1,588m)에 당도한다. 칠선봉은 7개의 바위가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선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바위들이 모두 험상궂게 생겼다. 칠선봉의 이정표에는 ‘벽소령대피소 4.3km, 세석대피소 2.1km, 천왕봉 7.2km’라 적혀 있다.
영신봉(靈神峰)---칠선봉을 출발하여 능선 왼편을 우회해서 전진하면 철 계단을 두 번 지나고, 긴 나무다리를 지난 후 오른편으로 휘돌아나가 칠선봉에서 1시간 정도 가면 영신봉(1,651.9m) 아래에 닿는다. 영신봉은 정상을 비켜서 오른편(남쪽) 허리 길로 우회하며, 영신봉 이정표에는 ‘벽소령대피소 5.7km, 세석대피소 0.6km’라 적혀 있고, 남으로 광양만을 비롯한 다도해가 보인다.
영신봉에서 남쪽 삼신봉(1,284m) 쪽으로 뻗어 내린 큰 능선이 낙남정맥(洛南正脈)이다. 영신봉에서 분기한 낙남정맥은 삼신봉을 지나 마산 지역을 거쳐 김해의 신어산(神魚山)까지 이어진다.
세석대피소---영신봉에서 완만한 내리막을 10분 정도 내려가면 세석대피소에 이른다. 벽소령대피소에서 6.3km, 2시간 정도 걸리고, 성삼재에서 23.6km, 10-11시간 걸린다.
그런데 영신봉을 내려서면서 세석평전(細石平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 드넓은 산상고원의 색다른 모습을 접하게 되고, 깊은 감회에 젖게 된다. 우리의 5,000년 역사에는 기쁘고 즐거웠던 일보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더 많았다.
특히 민초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지리산은 이런 상처 입은 민초들과 지식인들의 아픔과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나 세석평전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지리산엔 신음소리만 들리는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높은 곳에 저렇게도 드넓은 광야가 있어서 산상 초원을 이루고, 산상 화원을 연출하여 손님을 맞아하고 있으니 오히려 황홀한 감격을 느끼게 된다.
세석평전 습지
잔돌이 많은 평평한 곳(잔돌배기)이라 하여 세석평전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촛대봉의 서남 사면과 영신봉 사이에 완만한 경사를 이룬 고원의 둘레가 12km에 달한다. 아고산지대에 속하면서 비와 안개가 잦으며, 바람이 세게 불고, 짙은 일사량과 강한 자외선에다가 심한 일교차를 나타내는 독특한 기후 조건으로 인하여 희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서 생태계의 가치가 높으며, 봄이면 과거 세석철쭉축제가 열릴 정도로 철쭉이 많고 아름답다.
지리산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세석대피소는 단순한 산장이기 이전에 지리산의 명소이기도 하다. 수용인원 240명으로 시설규모가 지리산 대피소 중에서는 가장 크고 물도 풍부하다. 샘터 위쪽에 고산습지가 발달해 있어서 수량이 풍부한 것이다. 세석대피소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 3.4km, 벽소령대피소 6.3km, 거림골 6.0km, 백무동 6.5km, 천왕봉 4.1km’라 적혀 있다.
세석평전 북쪽 사면에는 소와 폭포가 연이어진 아름다운 한신계곡이 백무동으로 이어져 가고, 남쪽 사면으로는 거림골로 내려가는 최단 코스가 있다. 그리고 이 남쪽 길은 중간에 대성리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어진다.
그런데 이 남쪽 거림골과 대성리는 해방이후 이념 갈등에 휩싸여 빨치산 활동을 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어서 아직 그들의 원혼이 떠도는 듯하다. 빨치산 활동을 잘 한 일이라 할 수는 없으나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민초들이 친일파들의 핍박에 못 이겨 산으로 숨어든 것이 결국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빨치산이 됐고, 원통하게 희생된 것이니 그들의 진실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연하봉 쪽에서 바라본 촛대봉
촛대봉---세석평전에서 천왕봉으로 가자면 동쪽 능선의 올망졸망한 바위가 많은 촛대봉(1,703m)으로 20여분 올라가야 한다. 촛대봉은 바위들이 마치 촛농이 녹아내린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촛대봉 안부의 이정표에는 ‘세석대피소 0.7km, 장터목대피소 2.7km’라 적혀 있다.
연하봉(煙霞峰)---촛대봉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40여분 전진하면 조그만 암봉이 있는 연하봉(1.730m)에 닿는다. 거기 이정표엔 ‘세석대피소 2.6km, 장터목대피소 0.8km’라 적혀 있다. 연하봉엔 유별나게 얼레지가 많아 초여름엔 보라색 꽃밭이 기암괴석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리하여 연하봉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연하선경(煙霞仙境)이라 하여 지리산 10경에 포함시킨다.
장터목대피소---연하봉에서 20여분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에 이른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2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실제 3.4km, 1시간 20-30분 정도 걸린다. 해발 1,653m에 위치한 장터목대피소는 수용인원 140명으로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산장이어서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이 지리산 10경에 든다.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북쪽 기슭의 주민과 남쪽 기슭의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장터목에서 장을 열어 서로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즉 남쪽 산청 사람들이 생선, 소금 등 해산물 따위를 지고 법천골로 해서 장터목으로 올라오고, 북쪽 남원, 함양 쪽 사람들은 곡식, 직물, 약초 등을 짊어지고 백무동으로 해서 올라와서 물물교환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터목은 지금도 법천골 코스와 백무동 코스가 만나는 4거리가 돼 있다.
제석봉(帝釋峰)---장터목대피소에서 곧바로 동쪽 비탈길을 0.6km, 20분 정도 올라가면 제석봉(1,806m)에 닿는다. 옛날 민간신앙으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제석봉이라 한다.
그런데 소문대로 제석봉엔 하얀 고사목들이 처연하고 봉우리 일대가 황량하다. 이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 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인재에 의한 고사목이라고 한다.
즉 자유당 말기에 당시 농림부장관이던 사람의 삼촌이란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봉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말썽이 날 것 같으니까 흔적을 없애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렀단다. 그 때 불탄 나무들의 잔해가 지금의 고사목이다.
천왕봉(天王峰)---도벌꾼들이 불을 질러 고사목이 즐비한 제석봉에서 작은 봉우리 두 개를 오르내리며 30분 정도 전진하여 천왕봉 턱밑에 다다르면, 이어서 통천문(1,811m)을 빠져나가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철 계단을 여러 번 오르고, 통천문에서 0.5km, 15분 정도 올라가면 드디어 천왕봉에 올라선다. 장터목대피소에서 1.7km, 1시간-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벽소령대피소에서는 11.4km, 4시간 40분-5시간, 세석대피소에서는 5.1km, 2시간 40분-3시간 걸린다. 물론 이것은 쉬는 시간을 제외한 순수한 산행시간만을 계산한 것이다.
천왕봉엔 타원형 자연석의 정상 표지석 한 면에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라 새겨져 있다. 육지에서 제일 높은 정상답게 사방이 활짝 열려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채근담(菜根譚)에는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진다(登高 使人心曠)’라고 했으며,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는 다도해와 진주 시가지, 덕유산, 가야산, 광주 무등산 등이 보이고, 온 천지가 발아래 있다.
법계사
하산---천왕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다. 장터목대피소로 되돌아 내려가서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내려갈 수도 있고, 중봉(1,875m), 써리봉(1,642m)을 거쳐 대원사 아래 유평리로 내려갈 수도 있으며, 중봉, 하봉(1,781m)을 거쳐 벽송사 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종주 마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산 코스로 가장 짧은 중산리 쪽을 택한다. 천왕봉에서 동쪽 가파른 길로 내려가면 천왕샘을 지나 법계사, 로타리대피소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간다.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하산하는 데에 5.4km, 3시간 정도 걸린다. 주차장까지는 7km, 3시간 20-30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