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설원에서 펼쳐지는 순애보
캐나다 찰스 마틴 스미스감독의 『스노우 워커』
새벽을 여는 닭들의 울음에 귀기우리는 자는 몇이나 될까? 대자연의 흐름을 주도하는 그들의 사랑은 작지만 엄청난 것이다. 캐나다 영화의 진정성을 견지하고 있는 『스노우 워커』는 소시민이 성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 같다. 그 출발점은 비행기 추락에서 시작한다.
북극 경비행기 조종사 찰리(배리 페퍼)와 에스키모 소녀 카나라크(아나벨라 피가턱)가 보여주는 문명과 문명을 초월한 사랑과 우정은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자 느림의 미학의 정수이다. 문명을 상징하는 비행기와 총은 대자연과 느린 시간의 흐름 앞에 존재가치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스무살 에스키모 처녀는 죽어 찰리의 북극 눈길을 이끄는 수호신이 되었다.
『북극의 나누크』를 연출한 플래허티적 다큐멘터리 전통과 현대 드라마 공식을 적절히 엮은 『스노우 워커』는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 자신을 성찰케 하는 경고장이다. 민족지 영화의 일면을 읽게 해주는 『스노우 워커』는 『블랙 크로우』류의 영화전통을 우회한 북극동화이다.
백인 비행사가 우연히 병든 에스키모 소녀의 후송을 위한 비행에 나섰다가 추락해 험난한 생존 여정을 겪고 자연과 인간, 문명인과 비문명인, 인간적인 교감을 느끼는 휴먼 드라마인 이 작품에 실제로 에스키모 출신인 아나벨라 피가턱이 소녀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는 겸허를 가르치며 틱낫한 스님처럼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문명의 껍떼기를 헤치고 나오면 그 구원자가 원시인을 총칭하는 에스키모인들이다.
북극에서 행방불명 된지 3년 만에 귀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지금 이 어려운 총체적 절망의 시절에 밝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좌표 같은 영화이다.
부탄 감독의 <컵>이나 몽고 감독의 <징기스칸>처럼 그들의 관습과 풍습을 자국감독의 시각으로 보여준 『스노우 워커』는 모험과 사랑을 순백으로 섞은 대 서정시이다.
깊어가는 겨울, 인간과 종교를 초월한 영화이기에 깊은 산사에서 생각해보면 그 진가가 더욱 빛나고, 바삭되는 눈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