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후배가 장기간 중국에 출장을 다녀온다고 해, 경기 평택 <삼창수산>에서 장어구이로 식사를 겸해 조촐한 송별연을 벌였다. 이 집은 주인장이 양만수협 중도매인이어서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장어를 구매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장어 마니아이자 대식가인 후배에겐 딱 맞는 식당이다.
국산토종 자포니카종 장어를 손질 전 기준 1kg에 3만8000원에 먹을 수 있다. 우리가 먹는 끈기 있는 차진 쌀도 자포니카종인데 뱀장어 종 명칭도 일본이란 뜻의 자포니카다. 생물분류학 연구의 주도권을 쥐었던 근대 서구학자들에게 일본은 그들이 아는 극동지역의 대표 지명이었을 것이다.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우리 토종 식재료마다 일본이란 이름이 붙은 게 썩 밥맛 좋은 일은 아니다.
<삼창수산> 배식 시스템은 다른 장어집에 비해 독특하다. 미리 잘 손질된 장어를 직판장에서 각자 먹을 만큼 구매한 뒤, 바로 옆 식당에서 구워먹는 시스템이다. 마치 정육식당 같다. 유통구조를 단순화 하고 가격 거품을 뺀 것이다. ‘민물장어 대중화’를 선언한 주인장답다.
우리는 2인 기준 적량인 약 4만3000원어치를 구매했다. 정확하게는 4만3191원 어치다. 영수증에는 1g 당 가격까지 모두 1원 단위로 표시됐다. 알고 보니 이 집은 장어를 주유소 기름처럼 정량 기준으로 판매한다. 주인장에게 계산하기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계산하기는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고 대답했다.
처음 가게를 열 때 이 문제로 고민을 했단다. 보통 1kg에 장어 두 마리씩 주는데 장어가 모두 정확하게 500g씩 나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무게를 손해 보면서 팔수도 없고, 그러자니 500g 미만짜리를 500g으로 팔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단다. 더구나 독실한 불교신자인 주인장 모친이 “저울눈금 속이면 내세에 가장 혹독한 지옥에 떨어진다”는 협박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실한 자포니카종 장어, 직화 삼겹살 느낌
이 집 옥호 ‘삼창’은 하늘 땅 생물, 이 셋이 창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의 천지인 사상과 맥이 닿았다. 살생을 터부시하는 모친에게 장어가 사람에게 생명과 건강을 준다면 결코 무의미한 살생은 아니라고 한참 설득해야 했다고. 아무튼 우리는 효자인 주인장과 그의 모친 덕분에 정당하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맛난 장어를 먹을 수 있었다.
1인당 상차림비는 3000원이다. 딱 정육식당 콘셉트다. 사람 수에 해당하는 상차림비를 내면 숯불과 기본 찬류와 소스류, 그리고 쌈채를 내준다. 부족한 찬류나 쌈채는 셀프바에서 얼마든지 더 챙겨먹을 수 있다. 허세나 체면이 아닌, 장어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기본상에 생강, 생마늘 고추, 부추겉절이와 장아찌, 물김치 외에 장어뼈 튀김도 올라왔다. 숯불은 비장탄으로 화력이 강했다.
불판에 올린 장어가 실했다. 두툼한 살집의 커다란 사이즈였다. 주인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작은 장어가 더 비싸게 팔렸는데 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사례라고 한다. 품질과 무관하게 작은 장어가 양념이 잘 스며들어 잡냄새 제거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전 양만장 시설이 열악했을 때에는 장어에서 냄새가 심했다고 한다. 냄새 제거를 위해 양념을 반복해서 했는데 살집이 두꺼운 큰 장어에는 양념 침투가 원활치 못해 이취가 남았다. 그러다 보니 작은 장어가 더 비싸졌다고. 이제 양만장 시설이 깨끗해진 요즘엔 작은 장어보다 발육 상태가 양호한 큰 장어가 맛과 영양이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2명은 4~5만 원대, 3명은 5~6만 원대, 4명은 7~8만 원대 장어로 선택하면 무난하다.
불판 위에서 장어가 금방 노릇하게 익기 시작했다. 좋은 숯에 양질의 장어를 구워 역시 향미가 좋다. 탱글탱글한 식감의 자포니카종 장어를 데리야키 소스에 찍어 먹었다. 잡내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가늘게 썬 생강을 얹어 쌈에 싸먹는다. 생강이 남았을지 모를 잡내를 막아주고 입맛도 돋운다. 어느 정도 숙성도 가미되어 씹히는 맛이 좋다. 삼겹살 직화구이 같은 느낌도 난다.
된장찌개와 장어탕도 후식메뉴로 수준급
개인적으로 데리야키 소스와 생강이 더 맞는데 이 집에서는 순수하게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을 권한다. 주인장이 24년 전, 처음 외식업을 시작했을 때 채소를 대주던 사람의 소개로 매년 신안 천일염을 100포대씩 구입했다. 좋은 소금을 확보해야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소금들이 이제 20년 된 양질의 보물 소금이 됐다.
깻잎에 싸서 먹거나 부추 겉절이를 곁들이는 것도 별미다. 차가운 성질의 장어는 특히 소양인에게 보약이다. 보통 사람은 뜨거운 성질의 생강과 부추를 곁들이면 음식 균형이 맞는다. 장어만으로도 왠지 배가 찬 느낌이다. 정량인데도 역시 적은 양이 아니었나보다.
후식으로 나는 된장찌개(4000원)를, 후배는 장어탕(4000원)으로 마무리했다. 된장찌개 맛도 양호했지만 후배는 갈아서 끓인 장어탕도 괜찮은 맛이라고 평가했다. 평소 후배는 여수식으로 덩어리째 넣는 장어탕을 더 선호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장어 중 가장 맛이 좋았다는 후배. 건강하게 중국 출장 잘 다녀오길 빈다. 나는 이번 주말 일본 후쿠오카로 출장을 가는데 140년 된 장어집 <요시츠카 우나기야>를 한 번 가봐야겠다. 히츠마부시(장어덮밥)는 나고야가 유명하다. 다만 가격이 무척 비싸다는 것을 감안하시기를... 지출(2인 기준) 장어 4만3000원+상차림비 6000원+된장찌개 4000원+장어탕 4000원 = 5만7000원 <삼창수산>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779-4, 050-7141-94988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