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신, 영등 할망과의 대화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났지만 시샘하듯 아직 찬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는 음력 2월 초. 제주시 사라봉에 위치한 칠머리당에서는 바다를 다스리는 신인 영등신, 즉 영등 할망을 위해 베푸는 굿인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장장 8시간에 걸쳐 한판 거하게 펼쳐진다.
영등굿이 펼쳐지는 제주시 건입동은 원래 제주도 읍성 밖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어업과 해녀작업이 주 생계 수단이었고, 바다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이들은 마을의 칠머리당에서 생산활동과 어부와 해녀의 생업을 보살핀다는 부부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 부부신과 함께 음력 2월초 서북풍을 몰고 온다는 바람 신 영등 할망을 함께 모셨다. ‘영등 할망’, ‘영등신’은 외눈백이섬 또는 강남천자국에서 음력 2월 1일에 제주도에 들어와서 어부와 해녀들에게 풍요를 주고 2월 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이다.
과거 제주에서는 당나라 상인의 배가 제주에서 난파된 적이 있었다. 이 사고로 죽은 시신은 네 토막으로 흩어져 두개골은 어등개에 떠오르고, 손과 발은 고내, 애월, 명월의 포구에 떠올랐고, 이때부터 해마다 정월 그맘에 온갖 바람이 서해로부터 불어오면, 이는 영등신이 오시는 것이라 하여 어촌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 들에서 굿을 했다. 찾아온 영등신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만한 모든 것들을 갖고 떠나도록 하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굿이었다. 굿날이 되면 건입동 주민 뿐 아니라 제주시내의 어부와 해녀들도 각 가정에서 제사에 쓰일 음식을 차려 당으로 가져와 굿에 참가했다.

밤에 시작하여 낮이 되서야 끝이 나는 이 굿은 2월 초하루에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 환영제’를 시작으로 열흘이 지나 보름이 될 때까지 순망(旬望) 사이에 영등신을 떠나 보내는 ‘영등 송별제’를 한다. ‘영등 환영제’는 신앙민만 모여 행해져 굿이 간소하고, ‘영등 송별제’는 신앙민과 함께 외부인들도 모여 성대하게 펼쳐졌다. 영등굿이 시작되면 떼배에 말머리 같은 것을 만들어 삼색 비단으로 장식하고, 음력 2월 10일부터 보름까지 떼말놀이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하며, 돛과 키를 갖춘 배 모형을 만들어 포구에 띄우는데 이를 ‘배방선’이라고 한다. 이때 북동풍이 불면 영등신이 떠난다고 생각한다.
영등굿은 모든 신을 불러 굿에 참가한 집안의 행운을 비는 ‘초감제’, 본향당신인 부부신을 불러 마을의 평안을 비는 ‘본향듦’, 용왕신과 영등신이 오시는 길을 닦아 맞이하고 어부와 해녀의 안전을 비는 ‘요왕맞이’, 마을전체의 액을 막는 도액막음, 해녀가 바다에서 잡은 것들의 씨를 다시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 영등신을 배에 태워 본국으로 보내는 ‘배방송’, 처음 불러들인 모든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의 순으로 진행되며, 심방이 징, 북, 설쇠 등의 악기 장단에 맞춰 노래와 춤으로 굿을 진행한다.
주로 해녀, 어업을 생계로 하는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연행된 영등굿은 봄의 문턱에서 행해지는 계절제로서 의미가 크다. 과거 제주도에서는 중산간을 포함해 해안가 마을에서 행해졌다고 하나 현재는 주로 해안가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과거 민속신앙 박해로 이 굿이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명맥을 유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