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제45 (열전 제5) 김후직
김후직(金后稷)은 지증왕의 증손(曾孫)으로, 진평대왕을 섬겨 이찬이 되고 병부령(兵部令)에 전임되었다. 대왕이 자못 사냥을 좋아하므로 [김]후직이 간하였다.
ꡒ옛날의 임금은 반드시 하루에도 만 가지 정사를 보살피되 깊고 멀리 생각하고, 좌우에 있는 바른 선비들의 직간(直諫)을 받아들이면서, 부지런하여 감히 편안하게 놀기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에야 덕스러운 정치가 깨끗하고 아름다워져 국가를 보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미친 사냥꾼과 더불어 매와 개를 풀어 꿩과 토끼들을 쫓아 산과 들을 달리어 스스로 그치시지 못합니다. 노자(老子)는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하였고, 서경(書經)에는 「안으로 여색에 빠지고 밖으로 사냥을 일삼으면, 그 중의 하나가 있어도 혹 망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안으로 마음을 방탕히 하면 밖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니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십시오.ꡓ
왕이 따르지 않았으므로, 또 간절히 간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후에 [김]후직이 병들어 죽을 즈음에, 그 세 아들에게 말하였다.
ꡒ내가 남의 신하가 되어 능히 임금의 나쁜 행동을 바로잡아 구하지 못하였다. 아마 대왕이 놀이를 그치지 아니하면 패망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내가 근심하는 바이다. 내가 비록 죽더라도 반드시 임금을 깨우쳐 주려 생각하니 모름지기 내 뼈를 대왕이 사냥 다니는 길 가에 묻으라!ꡓ
아들들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후일에 왕이 출행하여 반쯤 갔을 때 소리가 먼 데서 나는데 ꡒ가지 마시오!ꡓ 하는 것 같았다. 왕이 돌아보며 ꡒ소리가 어디서 나는가?ꡓ 물으니, 시종하던 사람이 고하기를 ꡒ저 것이 이찬 [김]후직의 무덤입니다.ꡓ 하고, [김]후직이 죽을 때 한 말을 얘기했다. 대왕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기를 ꡒ그대의 충성스러운 간함은 죽은 후에도 잊지 않았으니, 나를 사랑함이 깊도다. 만일 [내가] 끝내 고치지 아니하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무슨 낯을 들겠는가?ꡓ 하고, 마침내 종신토록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金后稷 智證王之曾孫 事眞平大王爲伊 轉兵部令 大王頗好田獵 后稷諫曰 ꡒ古之王者 必一日萬機 深思遠慮 左右正士 容受直諫 不敢逸豫然後 德政醇美 國家可保 今 殿下日與狂夫獵士 放鷹犬 逐雉兎 奔馳山野 不能自止 老子曰 「馳騁田獵 令人心狂」 書曰 「內作色荒 外作禽荒 有一于此 未或不亡」 由是觀之 內則蕩心 外則亡國 不可不省也 殿下其念之ꡓ 王不從 又切諫 不見聽 後后稷疾病 將死 謂其三子曰 ꡒ吾爲人臣 不能匡救君惡 恐大王遊娛不已 以至於亡敗 是吾所憂也 雖死 必思有以悟君 須吾骨於大王遊之路側ꡓ 子等皆從之 他日 王出行 半路有遠聲 若曰 ꡒ莫去ꡓ 王顧問 ꡒ聲何從來ꡓ 從者告云 ꡒ彼后稷伊之墓也ꡓ 遂陳后稷臨死之言 大王然流涕曰 ꡒ夫子忠諫 死而不忘 其愛我也深矣 若終不改 其何顔於幽明之間耶ꡓ 遂終身不復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