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벩송: 의식, 기억, 생명, 동지애.
2022 12 17(토), 오후 3시-5시 30분. 철학아카데미 4층, 줌 온-오프 강의.
줌 ID: 831 2983 9916, 암호 202202
00 이항 대립은 계속될 것인가?
우리가 서양 철학사를 따라가면서 전개해온 하늘과 땅(천지)의 연대성, 정신과 물질(영육)의 이원성 또는 평행론 등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여전히 사람들은 천지 둘 사이의 거울의 비유에 대한 의미를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 변형된 방식으로 대우주와 소우주로 대비하는 방식이 습관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왜 이런 관점이 약간의 변형과 재구성으로 계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을까? 벩송은 고대의 상식과 근대의 양식, 이 양자는 지성이 우주와 세계를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도구처럼 여겼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반성하는 의식은 우주에 대한 관점이 있었고, 그 관점의 대상도 또한 우주의 기원에 두고 있다고 여긴다. 이 우주의 순환운동과 동일 반복하는 대상을 의식이 투사하는 방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 철학을 이데아의 실재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원론, 이데아의 인식과 존재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페라스와 아페이론이라는 이원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경계를 갖는 의미에서 페라스라 여기는 이데아의 실재성이 있고, 에 비해 거짓이거나 가치 없는 속견(doxa)으로 취급하여 무화될 수 있는 아페이론도 있다. 그럼에도 이데아 세계와 독사 세계 사이에 데미우르고스를 설정하여, 이데아를 모방하는 독사 세계를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 서양 사상가들은 데미우르고스를 – 데미우르고스의 본래 의미는 제작자인데 - 지상 세계를 만드는 창조라 해석하기도 한다. 또는 종교적으로 하늘나라의 완전함과 절대성을 인간이 사는 변질하는 가상세계에 전달하는 중간 매개처럼 여겨서 성직자의 역할처럼 해석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완전과 절대를 인식하는 능력으로 세상의 불완전과 과오를 수정할 수 있는 인간의 조작 능력으로 생각하여, 도구적 인식능력이라고 여긴다. 즉 이런 관점들은 완전과 불완전, 부동과 운동, 실재와 현상 사이의 매개적 역할로서 어떤 것을 마치 현존하는 인식과 실천의 능력으로 여기면서,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서 지성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매개로서 데미우르고스는 외부적으로 둘 사이를 연결하는 어떤 기능 또는 능력처럼 보인다. 왜 인간은 양자 사이에 매개를 필요로 했을까? 아니면 인간의 현존이 그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천지의 분할을 이분법을 확장하여 사분법으로 진행해보아야, 그리고 분할을 계속해보아야 마찬가지로 그 연결들에는 매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매개로부터 철학적 사유는 양자의 관계 또는 연관만을 설명하는 외적 인식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기로 벩송은 이런 매개자의 지위에 대해 플라톤 이래로 진솔하게 고민한 첫째 철학자일 것이다. 요즘말로 인간의 실존이라고 하는데, 독일 쪽의 실존은 지성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 대상을 다루거나 또는 인간의 조직화된 세계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가에 있다. 즉 인간은 자연이든 우주이든 주체로서 대상과 구별된 실재로서 주체인 것이다.
그러나 벩송의 현존은 고대의 데미우고스라는 설정을 달리 한다. 이 인식능력과 주체가 둘다 자연자체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에는 천지도 자연의 발생과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지위를 차지할 뿐이지, 서로 대립되거나 환원 불가능의 양자로서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자연의 발생과 과정에서 인간의 현존도 마찬가지이며, 영육과 지성과 직관 등의 분열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위를 생성하고 생장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제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가 선전제로서 형성된 능력과 주체가 아니라, 자연자체의 자기 생성에서 형성된 것으로 사유해 보자. 그러면 데미우르고스는 현존이 되고, 그 현존의 생성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자아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하늘을 천국으로, 지상을이 무화(가상)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인식적이고 존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우주는 기나긴 과정에서, 지구도 은하계도, 생성 변화를 겪는 한 과정의 모습이 되고, 그 속에서 생명체도 인간도 과정을 겪게 되는 한 현존(존재자)이 된다.
우주의 생성과 변화과정에서 현존인 자아 즉 인간의 지위는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그 현존의 지위와 영역을 탐구하기 위하여 우주의 과정을 탐구해야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고 이 현존의 위상이 우주의 생성론에서 자연자체의 발생에서 어떤 분화의 길을 걸었으며, 인간 현존은 어떠한 방향과 경향을 지니고 있을까?
현존에서 관습과 습관에 대한 의문이 1차적이고, 과거의 추억과 기억에 대한 의문이 2차적이고, 자연 속에서 자연에 의해 생성된 생명체의 유전과 진화는 3차적일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오랜 철학적 과제로서 자유와 평등을 인류사에서 실현할 수 있는가는 현생 인류에게 전지구적 공동체에서 다가 온 과제일 것이다. 벩송은 진정으로 인간이 동지애(인류애)를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제기를 가지고 있었을까? - 나로서는 농디(non-dit)이지만, 벩송의 중요한 과제로서 처음부터 내재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벩송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문제 설정이 제기되었다기보다, 도대체 왜 인간은 부동과 정지로부터 현상을 다루는 방식으로 2천5백년을 이어왔느냐고 문제 삼았다. 물론 부동의 이 방식이 완전하고 체계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겼는데도, 왜 현존의 문제에 부딪히어 진실한 답을 내지 못하고, 착오와 오류를 범하는가는 하는 것이다. 지성을 설정한 것과 우주의 완전성을 먼저 설정한 것이 착각이 아닐까?
벩송이 선전제로서 지성과 인식의 완전성에 의문을 파고 들어가 보니, 선전제들이 실재적이지도 않고 또한 검증된 바도 없는 상식(doxa)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이래로 진상을 에피스테메로 다루고, 독사를 가상으로 여겨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는데, 벩송이 보기에서 독사의 여러 측면 중에서 한 측면을 에피스테메의 대상(즉 이데아)으로 설정됐을 뿐 이라는 것이다.
잠시, 들뢰즈는 흥미롭게도 독사에 여러 계열들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이데아는 독사의 파라독사들 여러 갈래 중의 한 방향이며, 왜 거꾸로 이데아를 완전으로 독사를 불완전으로 삼사, 독사를 생성하는 여러 계열들이 불완전을 미끼로 거짓, 악, 허무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이는 유일신앙 종교가 독사의 한 극한으로서 파라독스임에도, 그 파라독스를 진리, 착함, 아름다움, 성스러움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물음을 묻는 지성(오성, 이성)은 도대체 제대로 묻고 답할 수 있기나 한 것인가? 그 물음을 묻는 현존의 인식 능력은 무엇인가?
여러 독사들[일반화 방식] 중의 한 길이 지성으로 여기는 인식이다. 이 인식으로부터 서양철학사가 스스로 형이상학이라고 하며 진리와 실재성을 다룬다고 하였다. 벩송은 이 형이상학이 다루는 방법과 대상,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능력으로서 의식을 다시 문제 삼았다. 답은 간단하다. 인식은 전도 되었고, 인식능력을 바깥에 두면서 대상을 조작하고 조립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런 대상에서 생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벩송은 왜 이런 인식능력과 대상에 대한 존재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를 거꾸로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즉 철학 또는 모든 학문의 기원과 각 학문들의 원인에 대해 새롭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래, 원래 인간에게 인식능력, 오성이든 지성이든 다른 능력(직관)이 있기는 한가? 그리고 이런 능력들이 대상으로 삼는 그 존재자들이 실재적이고 구체적인가 하는 것이다.
인식능력은 현존자인 인간이 아제[과거]도 이제[현재]도 사용하는데, 그 인식능력이 대상으로 삼는 존재 또는 존재자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존재자를 다루는 인식능력이 존재자를 만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원(순환)운동 즉 계속 돌아서 악순환의 과정을 겪은 것은 아닌가? 벩송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학적 사유의 기원을 대했다.
여기에 말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지위가 세계 생성과 과정에서 최고의 지위가 맞기는 한가? 나아가 그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인간 삶을 자유롭게 하는 것인가? 세상에 위계질서가 없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감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진실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 마지막 문제에서 답은 인간이 인본주의가 아니라 인성[인도]주의로, 상품자유주의가 아니라 인성자유주의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현존은 천지와 따로 떨어져 있는 중재자나 매개자도 아니고, 천지도 인간 현존도 자연의 자기생산과 생성하는 창조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자연의 길이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여러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파라독사들이 있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빛점인 중앙은 실재성의 근원이며 이유이고, 이 빛이 퍼지는 빛살만큼이나 많은 파라독스들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에서 퍼져나간 종교도, 개별학문도, 예술과 스포츠의 다양한 종류들도 파라독스들의 양태들이다. 이는 마치 구의 표면으로 퍼지는 무수히 많은 선들처럼, 80억 인구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고 삶의 양식이 다른 것도 파라독스들의 양태들이다. 이런 파라독스의 계열을 나열해 본 것이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일 것이다. 그런데 벩송은 독사 자체[성질사 또는 공감감성]가 다양체로서 근원이자 기원으로 간주하면서, 이런 독사로부터 파라독스들의 성립에는 정지가 아니라 운동, 공간이 아니라 지속(시간)을부터 시작해야 함을 사유의 단초로서 삼았을 것이다.
사유의 단초로서 운동과 시간, 이것을 기존의 형이상학자들이 정지와 공간을 통해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었던가. 그 설명 중에 하나를 반박하면, 다른 쪽에서 반박을 반박하면서, 반박의 반박은 동일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이런 형이상학이 부동의 지위, 진리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정지와 공간을 성립하는 것은 논리학적으로 동일율이다. 하나의 독사가 진리가 되고 다른 독사를 배제하는 배중율을 통해서 동일율의 지위가 굳건하였다. 원운동의 완전함처럼 순환하는 논리에게 파라독스들 중에 하나를 들이대도 다시 동일율에 돌아가는 순환론의 고리를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달걀과 암탉의 순환논법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벩송은 순환논법들이 부분들에서 전체를 설명하려는 오류라고 보고, 부분들로 자르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으리라. 이를 반박하여 사고하기를 주장하면서, 전체를 보고 전체와 부분의 연결을 보는 관점을 말한다고 해도, 전체를 설정하는 것은 동일률이라고 그들은 응답할 것이다. 동일률로 되돌아 가지 않는 전체가 있으며, 그 전체는 흐름이며 불가분성이며 불가환원성이다. 여기에서 사고와 사유 사이에 ‘차히’가 있다. 그들은 동일률이 불변이며 부동인데 비해, 벩송의 동일률(즉 정체성)은 운동이며 지속이다.
동일률과 순환논증의 오류를 지적하는 길을 모색하면서, 벩송은 서양철학사가 착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들이 설명하는 운동은 정지에서 정지로 이행을 말한다. 이를 반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는 이 반박을 철학사에서 문헌적으로 사용한 것들을 전거로서 밝히면서 운동을 설명하는 도구로서 수 또는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 그들의 오류였다는 것이다. 이는 DI 2장에서 설명한다. (55VLG)
* 참조:
플라톤의 사유 | 벩송의 구상 | (벩송)플로티노스의 이중성 |
선의 이데아 이데아들 | 상징계 - 환상 세계(유토피아) | 부동의 원동자 정신(지성, 이성) |
페라스 | 신화와 전승 | 개념들 |
추론: 분할, 미분화 | 기계적, 체계적 회고적: 개념과 수 | 로고스(공간화) |
데미우르고스 | 현존(의식, 기억, 생명) 심층자아: 회오리. | 일자(다양체) |
교감: 분류, 세분화 | 내성적: 본능과 직관 역동적, 공동체적 | 누스 (시간화) |
아페이론 | 공감, 동지애(아가페) | 신아이스테시스 |
자연(생성, 변화) 운동 플라노메네 아이티아 | - 자연: 지속과 생성 실재계 - 보살 | 영혼 우주 영혼 |
0011
벩송 사유를 따라야 할 방법 3가지.
1. 철학사를 통시적으로 보아 고대의 상층, 근대의 표면, 현대의 심층.
상식에 의한 상층 해석, 양식에 의한 표면의 이중성, 고등양식에 의한 심층의 탐구.
2. “산다”는 사유의 과정은 원인 또는 근원으로부터
근원으로서 온자연, 자연 속의 현존, 그리고 자아의 발현을 위한 사회성에서 동지애
3. 현존에서 출발의 두 경향
직관과 지성, 운동-시간 대 정지-공간, 지속성 대 영원성, 기억-유전 대 상징-절대
* 현존하는 자아의 운동과 경향: 보살행, 데미우르고스의 현실화,
“우주는 신들[보살들]을 만드는 기계”이다. (55WLG)
01 이항대립을 벗어난 철학은 가능한가?
벩송은 ‘철학하다’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말하자면 세상의 움직임과 변화를 설명하는데 수가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게다가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데 타인과 함께 살면서 입말이든 말투이든 단어와 개념을 서로 공유하면서 판단과 체계 또한 거의 필수적이다. 이 두 가지(수와 언어)의 도구의 사용에서 오류가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다루고 성찰하며 사유하겠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그의 저작들에서 계속된다.
그는 ‘뭣’을 다루고자 하였던가? 그는 저술들 속에서 항상 지속과 실재성 속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이 지속과 실재성 속에, 그가 말하는 경험적 총체성 속에 자리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하물며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이고 관습적 사회 삶과 다른 방향으로 사는 것이 쉽지도 않다. 게다가 그런 별종으로 산다는 것도 많은 부분에서 전래된 지식의 관습 속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철학자건 인식론자건 그 당대의 지적 또는 역사적 토대 위에 있는 인물이며, 기나긴 역사에서 보면 과거 위대한 인물들의 원리와 법칙들에 대한 설명도 또한 그 시대의 범위 안에서 이다.
이런 의미에서 벩송에 따르면 원리와 법칙들이, 수와 개념이라는 틀에서 보면 확연하게 임시적이고 임의적이었다는 것이고, 나아가 인간이 누린 자유라는 개념도 당대의 임의적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인간은 실재성에 위치해서 실재성을 발현하고 현실로 제시하고(présenter), 그리고 사회 공동체에서 재현할(représenter)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 얘기 게가 옆으로 걷는 것을 보고, 어미 게가 바로 걸으라고 충고하였다. 애기는 엄마에게 ‘한번 걸어 보여 주세요’라고 말하고, 그리고 애기 게는 어미 게처럼 걸어서 밖으로 놀러 나갔다고 한다. - 우화만이 아니라 인류도 마찬가지로 그 습관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서 몸짓도 있지만 사고하는 논리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진정으로 다른 사유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벩송은 과거의 인습에 젖은 사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그 사고방식이 20세기 인류 사회를 어떻게 데려가는지를 성찰하였다. 인습적 사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편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 그러나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불편함과 불안함에서부터, 개인적인 질병과 고독, 지구적인 재해와 재앙에 대할 때에는, 인간의 삶이 안정과 편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인습과 습관이 언제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사람들은 서양 철학사에서 인간 공동체에서 필수적인 개념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 신화에 대한 믿음 시대에서 자연에 대한 사유의 시대로 전환을 인간이 진정으로 사유할 방식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 탈레스 이전에는 철학적 사유가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불의 다룰 줄 안다는 이래로 돌을 다루는 시대인 구석기, 신석기를 거치면서 광물질을 다루는 구리와 청동기를 지나서 철기로 이행했다는 것을 유물과 유적에서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들 사이에 공동체이라는 것이 발전하였다는 것도 추정할 수 있다. 공동체라는 것이 위계적 사회질서로 갖추어져 온 것에 대해서 이런 저런 학설도 많지만, 인간의 개인적 이기심의 발로인지, 아니면 인간이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이타심이 내재해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그럼에도 생명체는 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모든 이들이 동의한다. 함께 산다는 점에서 조직체에서 구성원들의 이익과 편안을 추구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은 인류에게도 중요한 임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구의 발달과 공상호 소통의 발달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른 한편 도구와 소통 이외에도 분업과 분배에 관한 여러 가지 방식들을 창안해 냈다고 한다. 공동체의 삶에서 일의 분화와 분업 그리고 생산물들의 분배에서도 개인의 이기심보다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내재적 공감이 더 중요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공동체가 위계적 조직화를 갖추고 이에 상응하여 소통하는 언어 또는 기호를 갖추었을 것이다. 문자적으로 전승된 이런 시기가, 긴 인류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터키의 아나톨리아 문명을 거쳤겠지만, 나일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등으로부터 추정해보아 거의 5천년전 정도이다. 이들 문명에서는 영웅의 설화가 많고, 그 영웅들과 주변의 이야기에서 사소하지만 삶의 터전과 먹거리와 잠자리에 대한 발명과 발전을 보게 된다. 어린이들에게 영웅설화를 읽히지만, 인간사에서 영웅들만의 삶이 아니라, 사소하게 첨가되어 있는 민중의 삶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이런 사소한 소수자들처럼 보이는 인간들의 삶의 변천과 발전과정이 인간의 의식의 발달이기도 한데, 이에 비해 영웅들의 삶은 어떤 신적 영혼이 어디엔가 있으면서 계속적으로 후세 인간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전승되기도 한다. 아마도 불멸과 영원을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은 인간의 바람/원망(願望)일 것이고, 또한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일 것이다.
철기 문명으로 생산력이 높아짐으로서 영웅들과 그들의 제도에 대해, 인민 대중들도 그 비밀스런 또는 과장된 이야기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학문의 발달은 이런 반성과 성찰을 통한 일반화 또는 법칙화의 방식이 대중들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그 지식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는 시절에서 아마도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 철학이 도래했을 것이다. 지혜는 물론 영웅의 이야기도 포함하지만 그래도 자연에 대한 이해와 생성과 변화를 파악하는 쪽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서 살다가 떠난다. 이에 비해 자연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변화하고 운동하지만 터전으로서 영속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이해, 자연의 섭리에 대한 순종, 환원 불가능한 인간의 숙명을 알아차리고서도 인간이 실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지혜로서 철학이 자연의 순환과 생성과 발전에 대한 관심이었을 것이고, 이에 부수적으로 지혜의 능력으로서 개체에 내재하는 힘(영혼)도 있다. 자연과 영혼의 일정한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전적으로 대입시키기에는 불편하였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영혼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기도, 또는 자연을 다루는 방식을 알고 전승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중요하고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영혼이라는 점에서는 영혼이 자연의 부분일 것인데, 영혼이 실행하는 방식이 자연을 다루고 변형시킬 수 있다고 여길 때는 영혼이 자연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을 것이다. 이 착각은 현대에까지 전승되고 있다.
우선 자연의 일부로서 능력이 자연을 알고, 다루고, 법칙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측면에서, 그 능력에 기대를 걸면서, 그 능력을 다른 대상 또는 다른 사물로 여기면서, 그것을 이용하여 활동하는 편이 인간으로서는 보다 나은 길을 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능력의 전승이 불변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자연의 생산적인 변화와 영속성, 이에 따른 능력의 불변성에 대한 추구(욕망)라는 관심은 지혜의 전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연과 지혜에 대한 상응적이고 연대적인 의미를 찾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이런 초기적인 관점을 감안하여, 벩송의 관점을 통하여, 하늘과 땅의 연대적인 의미를 찾는 것에서부터, 영혼, 자아, 의식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존 문제에서 다시 하늘과 땅 이 둘 사이에서 인간과 관계의 정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체의 운행이 정기적이고 영속적인데 비해, 지구라는 터전은 일정한 규칙을 찾기가 어렵고, 또한 인간 개인도 너무나 유한하다는 사실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인간의 지혜는 하늘의 운행을 기준으로 삼고, 지상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겼고,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능력인 영혼의 문제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라는 삼자 관계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인간은 불변하는 천구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물론 하늘의 운행은 이미 말해왔지만 삶에서 제배이든 목축이든 일 년의 변화와 더불어 순환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은 점성술(고대 천문학)과 기상학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고, 천구 속의 별들의 운행을 헤아리면서 일 년과 계절이라는 책력을 일찍이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유적들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불변의 기준과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간도 변화하지만 그 불변의 원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인간이다. 하늘의 운행, 지구상의 계절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인식과 원리에 대한 탐구는 이루어졌을 것이고 이로부터 학문의 발달사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서부터 생각한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문명에 따라 제 각각의 설명과 해석, 그리고 일반화와 체계화(이론화)가 있었다. 우리로서는 문헌상으로 이론화의 과정을 걷은 그리스를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벩송이 자신의 사상을 풀어가는 과정도 고대 그리스의 문헌상의 전거를 통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DI)에서 수의 단위로부터 자기의 사상을 전개했다 – 나로서는 수에 관한한 당연히 피타고라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들을 읽으면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4권에서부터 라고 한다. - 벩송은 저술에서 세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으로 이미 학문의 기원(원천)과 담론의 전개방식에서 원인으로 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탐구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서양철학사의 이면 또는 심층과 같아서, 우리가 일제와 미제를 통해서 배운 철학사와는 방향이 반대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여러 번 말했지만, 저술에서 찾을 수 있었던 벩송이 본 서양 철학사에서는, 통시적으로, 상층, 표면, 심층의 역사적 과정이었다. 즉 그리스 시대에는 상층의 이데아(관념) 또는 개념(에이도스)의 실재성을 가지고 담론을 전개하였다. 근대에서는 상층으로부터 갈릴레이의 빗면을 따라 표면으로 내려와 운동의 상대성을 인정하였고, 데카르트에 의해 상층과 심층의 이원성이 둘 다 인정되었으며 이를 아는 인식의 주체로서 자아를 성립시켰다. 그리고 칸트에 이르러 순수 근거에 대한 비판이래로 심층이 토대이지만, 상층과 표면을 아우르는 현상에 머물렀다.
그 상층은 삼위상에서 관념을 상징으로 간주하는 현대철학에 이르렀는데도 심층을 허무, 무, 결핍, 부족, 축소 등으로 간주하는 철학적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을 때, 벩송이 등장하며 심층이 실재성이며, 상층은 상징성이라고 하였다. 심층에 또는 안에서 자리하면서 철학이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전체적 저술들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공시적으로, 심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 위에서 확장으로 펼쳐져 나가는 방향의 철학이었다.
칸트 이래로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은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도덕적 원리로부터 담론을 전개하려고 하였으며, 이 도덕성을 완수하고 개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성의 이상인 절대적 공동체로서 국가를 설정하고, 그 국가의 윤리성에다가 절대자 위치를 부여 하는 철학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런 재현의 인식은 이런 국가 속에서 지식은 절대와 보편을 확보하여 통일성을 이루는 학문으로 구성하고 구축하여 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벩송이 보기에는 절대적으로 향하는 그 철학은 지성(오성이든 이성이든) 자기 오만을 확장하여 실현하였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라고 한다. 데카르트 이후로 과학은 심층에서의 실재성을 끊임없이 길어 올리고 있었는데, 근대 철학이 절대성과 보편성 쪽으로 가면서 실재성을 버리고 논리와 개념작업으로 향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원자론적 이론을 버무린 개념작업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 철학이 중세의 스콜라주의로 은연중에 향하면서 실재성을 포기하고 방기했다는 것이다. 벩송으로서는 새로운 형이상학은, 우리가 말하는 형이심(深)학은, 실재성과 내재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하면서, 과학이 깊이와 실증적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길과 같이 나란히 가야 한다고 한다. 벩송의 이런 19세기 후반의 사유 발상은 저술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에 발간된 네 권의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에서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시작할 것이다.
11 이항 대립과 다른 길 - 원인과 근원의 사유
박홍규에 따르면 서양철학은 사물들의 총체성을 다루고 있는데, 그 총체성의 양 극한이 운동과 정지, 시간과 공간이라는 축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플라톤은 양 측면을 함께 다루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과 정지를 토대로, 그리고 벩송은 시간과 운동을 중심으로 다루었다고 하고, 그 이외의 학문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박홍규의 강의록에서는 서양학문의 발달이 모순을 해결하려는 과정이었다고 하면서 존재와 무가 모순이라 한다. 철학은 모순과 난문제(l‘aporie; ἀπορία)를 해결하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벩송도 또한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당대의 문제점의 기원과 근거(이유)를 밝히려고 했다.
고대철학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은 존재와 무 사이에서 존재가 실재하고 무는 없는 것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대인들은 현존에서 존재와 무가 섞여 있을까 아니면 무가 없는 존재가 왜 현존에서 이질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현존에서는 무가 아니라도 결함 또는 결핍이라는 요소가 들어있거나, 존재를 존재 아니게 하는 어떤 요소의 개입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존재가 존재이게 하는 것, 그 존재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항상 존재 아닌 것의 개입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물론 플라톤은 플라노메네 아이티아라고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이라 보았다. 왜 존재를 존재 아니게 괴롭히는 어떤 것이 있느냐, 또는 존재가 존재 아닌 것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현존재인 인간의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이 불완전하고, 개체로서 소멸하며 또는 시간의 거슬러 환원하는 가역성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존재가 아니라 현존일 것이다.
현존하는 인간이 무엇을 문제 삼고 무엇을 풀려고 했는지라고 생각해보면, ‘뭣’이 존재인가 라는 물음이고, 그리고 그 ‘뭣’을 아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로 바뀔 수 있다. 이런 문제제기에서 ‘뭣’이 존재인지 현상인지를 묻는 것은 관심의 차이에서 나올 것이다. ‘뭣’이 완전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 불완전한 현존과 다른 논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존은 변형하고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존하는 인간은 불변하고 부동이면서 영속하여 영원한 것에 기대어서 사유하는 방식을 찾았을 것이다.
서양의 학문은 불변하는 단위를 설정하고, 그에 비추어서 변화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길을 선택했으리라는 것은 철학사의 한 경향이며 한 방법이었다. 이와는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인데, 불변에서 변화의 설명이 인간의 삶에 편리와 용이함을 가져다주었기에 그 방향으로 길을 갔으며, 이쪽 길을 형이상학이라 부른다. 다른 길이 형이심학이리라. 물론 고대에서는 특히 플라톤에서는 형이상학이 다른 길에 대해 막무가내로 무시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편리와 안정이 부동을 기준으로 하여 사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마도 사회성과 종교성이 지배적인 권위를 차지하는 고-중세에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상에서 풀리지 않는 난제들은 논리적 사고에서는 배제되었을 수도 있지만, 고대 철학은 정확성과 증명을 통해 난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과 노력은 계속되었다.
존재와 무에서 ‘무’를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하지만, ‘무’라는 항 또는 용어는 있다. 그러면 그 ‘무’는 무엇인가? 무를 논리적으로 존재의 모순 항으로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생각하기에는, 언어학 또는 인식론에서 꾸준히 지성을 괴롭히는 과제였다. 존재의 모순의 항으로서가 아니라, 따로 ‘무’는 현존하는가? 이는 거꾸로 존재가 실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무에 대한 실재성을 물을 수 없다면, 존재의 실재성도 물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존재의 실재성이 없는데 그에 대한 모순으로서 무를 논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이 땅위에 사는 한, 존재가 아니라 현존에 대해, 왜, 어떻게를 묻는 것이 정상적이 아닐까? 그런데 현존은 변화하고 소멸하기에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무엇인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을 만드는 것도 인간의 사유의 성향이며, 또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기준으로서 ‘뭣’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회고적 철학사가 존재를 문제 삼았던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실 아포리아는 현존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원인과 기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생각해보자. 이것에 대한 정확성과 증명을 해야 한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적 사유로 되돌아 가보면, 문제를 탐구하는 방식으로서 누가, 왜, ‘뭣’을 다루었는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많은 난제들이 전해진다. 그럼에도 문헌적으로 제기되어 후대에 전해진 것은 아테네 시절이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안다는 것이 ‘뭣’인지, ‘뭣’을 아는지 라믐 문제제기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도 답을 알지 못하여 물음을 던지며 살았다고 한다. 그 ‘뭣’에 대해 플라톤쯤에서야 ‘뭣’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어의 논리로서 규정하려고 했다. 언어와 달리,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유클리드는 기하학 체계로서 정의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전에 난제들을 해결한 하였다기보다, 여전히 뭣 속에 난제들이 내재해 있었다. 이런 난제를 학문별로 간단히 들여다보자.
형이상학에서 존재와 무에 대한 모순의 해결 노력은 기나긴 과정을 겪었다. 모순의 시원과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논의 한 것은 어쩌면 현대 수학의 시발인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도, 허수와 무한의 개념 정립에서 ‘무모순’이란 것이 성립하느냐는 산술학에 까지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공간과 수는 무모순을 지니는 영역에서 정합적 체계를 갖는가? 아마도 현대 수학에서 그럴 것 같지 않는데, 특히 무한이라는 영역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고대의 존재와 무 사이에 문제제기가 사유할 수 있는 문제제기였을 까로 다시 물을 수 있다. 벩송이 올바른 문제제기는 답을 내기보다 문제제기를 해소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존재론의 근본적 물음으로 존재와 무가 모순이라는 것이 고대에서 현대 수학과 논리에서 올바로 제기된 것일까? 문제를 다루는 지성(오성, 이성)이 존재를 완전하고 부동으로 파악한 것이 원인과 기원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착각이 아닐까? 존재론과 형이상학을 등치로 놓고 생각하는 지성은 이런 존재에 대해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벩송이 보기에 지성은 자기가 만든 존재를 스스로 완전하고 부동으로 설정한 것이고, 또는 그 지성(이성)은 완전으로부터 절대성을 요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즉 문제제기가 잘 못되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논의와 달리 물리학에서, 세상에서 무와 같은 진공이 있을 수 있는가? 물론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빈 것과 같은 진공에 있을 것이라는 논쟁은 근대 물리학에서도 있어왔다. 그러나 추상적 공간 관념과 닮은 진공은 없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전자기학과 전기에서 교류전기를 다루면서 상상적 수인 허수의 등장 시기에도 전자와 전자 사이에서 진공이 있을 것이라고 문제제기되었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는 전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이온과 같은 물질로 채워져 있고, 우주의 공간에도 무엇인가의 파의 흐름들이 있다고 하여, 사고의 논리에서 나온 진공은 없다는 쪽으로 설명하고 있다. 상층 형이상학에서 무가 없듯이, 물리적 세계에서 진공이란 없다. 그럼에도 사고에서는 ‘무’도 ‘진공’도 만들어서 사용하고 또한 철학과 과학의 발달에서 여러 모티브를 제공하였다. 이는 마치 천구 저 넘어 영원히 살아있는 ‘신’을 설정했던 것이 우주가 열리고 나서, 그런 세계에 사는 신이 없다고 하지만, 그 많은 종교들의 전승에서 이야기로 남아있고 어린애들을 위한 교육의 방편으로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정확성도 없고 증명도 안 되는데, 그런 개념과 관념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고 불가역적인 점에서 허구적 개념과 관념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에서 미래에 다가갈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인간이 생명체로서 누구나, 이때는 보편적이란 말도 가능한데, 살면서 아픔(고통)을 겪고 나아가 혼자서 살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서로 돕고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고 또는 개인적 이익에 몰두하여 따로 떨어져 있다는 고독감도 있다. 형이상학적 존재를 믿는 쪽에서는 완전에서 떨어져 나온 현존의 불안과 고독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인간이 생산력의 발달로 안정과 평안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생물학과 의학에 의해 질병의 공포로부터 점점 벗어나면서 어쩔 수 없는 아픔이 아닌 한에서 준안정상태로서 건강을 유지하고 산다. 그럼에도 생산력의 발달도 소외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의 협력보다 인간과 기술 사이의 협력으로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른 생활에 적응하고자 한다. 인간과 반려동물이라는 방식도 소외와 고독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른 길로 해소하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생물체로서 집단을 형성하는 방식은 여럿이지만, 개체들의 모임에서 많은 수의 집단형성에는 막시류(벌과 개미)와 인간종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외부의 적들과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건설하며 조직화를 하였다. 그 조직화에서 인간들 사이에 소통과 세대 간의 전승을 위한 기호와 언어의 발달을 이어왔다. 그리고 이런 소통과 전승의 역량으로 언어에 체계를 갖추고 또한 이에 걸맞는 인식능력으로 지성(오성)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런 과정에서 어느 시절에선가 인간 지성은 자연의 운행과 변화에 규칙을 발견하고 또한 법칙화 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을 대상으로 삼고, 인간의 지적 능력이 우월하다고 여겼다. 이로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세계를 형성하고 또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불평등과 계층의 고착화는 인성의 자발성과 자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인성은 몇몇 소수의 것이 아니라 인민의 것이라는 것을 고대 그리스에서도 제기되었지만,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백성은 인성을 발휘할 능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배제되어 있었다. 과학적 발명의 망원경과 현미경, 그리고 생산력의 발달을 가져온 증기기관과 모터의 발명 등으로 도시사회의 확대로서 국가적 차원으로 진행함에 따라,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인성이 자연의 조건을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게 된다. 인간은 평등과 자유를 구현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공산사회의 건설을 주장하는 시기에 사회학이 발달하고, 이런 능력이 인민에게 있다고 하는 정치경제학도 발달한다. 사회성은 자연과 대비되는 새로운 창안일까? 아니면 사회제도와 체제가 일부 인간들에게 이롭더라도 인민들의 본성을 고양하는 길일까?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을 거쳤음에도 본성의 발현을 억압하는 기구와 제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 사회성이란 ‘뭣’인지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이 ‘뭣’인지를 생명체의 유기체화와 달리 사회의 조직화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철학은 사람들이 진실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한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반성은, 20세기 두 번의 전쟁으로도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못하다. 벩송은 자연의 손아귀에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제기한다.
수학과 논리학, 천문학과 물리학, 생물학과 심리학, 사회학과 정치경제학 등 다양하게 사유의 반성과 성찰의 과정을 겪으면서 인간은 지구라는 터전에서 자주, 자치,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른다면, 철학과 학문이 ‘뭣’을 다루는 방식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지성(이성)이 이런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인식의 능력이 되는가? 벩송은 분명하게 제기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길이 있었는데, 우리가 보기에, 벨송의 농디(non-dit)로서 그 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박홍규가 제시한 두 가지 상반된 길, 운동과 시간 대 정지와 공간 이라는 두 방향성에서, 서양철학사가 한쪽 방향만을 강조하면서 걸어오다가 19세기 말에 다양한 문제제기가 일어나지는 않았는지를 생각을 할 수 있다. 두 가지 길 중의 하나인 공간화 사고에서 완전과 절대에 대한 믿음이 철학사를 거꾸로 가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22. “안다”는 근원 또는 기원(근거)
2천5백여년 동안 서양철학의 발달사는 지성과 절대의 신앙과 믿음에 젖어서, 일반인의 삶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으로, 고통과 소외를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겉보기에 편리와 후생이용 등으로 고통을 줄이고, 삶의 터전에서 소외를 해결하는 것 같이 보였다.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파편화 또는 개별화가 심해지면서 인간들 사이에 단절과 고립은 소외 이상으로 정신적 이상 현상을 발생했고, 이런 질병들은 먹거리와 잠자리의 해결로서 신체의 질병을 해소하는 것과 달리, 제도와 위계체계에서 더욱 깊은 신경증들과 정신병들이 사회에서 노출되었다. 특히 정신병들은 정신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연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신 또는 영혼을 의식의 내재성과 외재화에 연관을 논하기 시작했고, 게다가 외재화의 방식은 또 다시 이분법을 노출하여 상층 형이상학의 지배력과 명령이 강하게 남게 된다. 정치경제학의 사회 계급대결에서 상층이데올로기라는 것도 이런 이항 대립의 경계선을 긋고, 둘 사이의 대결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의식에서 상층과 심층의 대립, 정신과 물질의 대립,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등은 철학에서 형이상학과 달리 새로이 등장하는 형이심학의 대립에 기원이 있지 않을까? 벩송은 올바른 문제제기로서 철학사적 반성, 통시적 연관들의 성찰을 해야 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벩송은 1922년 문제제기(“입문2”)라는 글, 이 글은 연역적 방법인 방법서설과 달리, 삶의 과정의 통시적 관점에서 방법후설을 제기한다. ‘철학하다’라기 보다는 사는 것이 먼저다(Primum vivere, PM 54)라고 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철학이 먼저가 아니고 “산다는 것이 먼저다”에서 출발해 보자. ‘뭣’이 대상이며, 그것을 아는 것은 지성뿐인가?
‘뭣’에서, 인간이 조작적 기능과 추론적 사고의 능력을 통해, 한편으로 외부적으로 대상화 또는 객관화된 것 또는 이루어진 것만을 다루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 감화하는 것, 공감하는 것에 대한 일반성도 있고 객관화도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관습과 습관에 젖어, 과거를 되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 여겨. 과거를 풀어볼 수 없는 난제로 여겼다. 그럼에도 공감과 교감은 과거를 내재하면서 타인과의 상호침투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개념작업의 불가역성과 달리 공감과 감화에서는 불가역적 과거의 추억들도 있고 이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기억’의 능력의 실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억의 능력을 현실적 실현과 관련하여 연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지만, 의식의 지속과 기억의 활동성은, 관습과 습관에서 개념의 조작적이고 체계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언어와 추론적 논리가 당연히 인간에게 원래 주어져 있다는 것을 철학사는 그리 문제 삼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관례와 습관에 의해 인간이 스스로 조작의 틀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틀과 규약은 당연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 이유는 어떤 원인과 결과 사이에 법칙이 있다는 것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 인과성에서 원인성은 무엇인가? 인과성에서 원인과 결과로 묶어서, 두 가지 ‘항’을 단위로 설정을 하면서, 둘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의 도래, 즉 공간적으로 배열이나 시간적으로 계속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벩송은 이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첫째 작품(DI, 1889)과 둘째 작품(MM, 1896)에서 전부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문제제기들은 여러 고교 강의록이나 대학 강의록에서 있어왔다. 그 강의록은 1990년대에 4권으로 출간되었다. 그렇다고 이 강의록에서 드러내놓고 중심적으로 문제제기한 것은 아니다. 그 문제제기는 새천년인 1900년 파리에서 첫 “국제 철학자 대회”에서 「우리가 원인성의 법칙을 믿는 심리학적 기원들에 관한 노트(Note sur les origines psychologiques de notre croyance àla loi de causalite)」를 발표하면서 철학사의 기원에서부터 ‘원인’(아마도 archē)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벩송은 개념과 관념으로 철학하는 방식이 철학사적 오랜 관습에 의해 토대를 마련하고, 지성을 도구로 삼아 정립한 것이 아닌지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이런 개념화 또는 관념화의 기원은 어디서 시작했으며, 그리고 그런 방식은 무엇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것인지를 묻는다. 개념이든 관념이든, 또는 지각작용, 감각작용, 감화방식(감정) 등은 모두 심리학적인 사물의 일부분들이라는 것이다. 대상화(객관화)하여 실재하는 것으로 여긴 기존의 형이상학은 개념과 관념은 인간의 영혼(psyche, âme)과는 다른 차원으로 정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심리학적으로 보았다. 벩송은 심리(psyche)가 대상화된 영혼도 정신도 아니며, 흐르는 어떤 온의식(Conscience)으로 보자고 하였던 것이다. 온의식의 일부로서 인간의 의식이 있다. 그 의식의 흐름은 어제-이제-아제의 지속(연속)인데, 잘라서 단위를 설정하는 데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결과가 아닌 흐름에서 원인성의 문제제기는 앞의 두 저술에 내재해 있었다.
222 철학의 다른 방법, “원인성” 탐구
벩송이 제기한 “원인성”은 용어상으로 같이 쓰이지만 ‘인과관계’가 아니다. 원인성은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의식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기존형이상학적 방식에서는 과정의 변화와 운동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해서, 부동과 정지로부터 추론적 사고를 하는 철학사적 과정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아마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원인성을 심리학적으로 보자는 논문을 내고 난 뒤에, 그 해 곧 바로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에서 “원인 관념”을 다룬다.그가 존재론이 아니라 생성론, 형이상학이 아니라 형이심학으로 이미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21세기에 와서 그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 네 권이 출판되면서(2016에서 2019년까지), 그의 사유의 여정이 조금이나마 밝혀졌다고 우리는 본다.
그는 심리학적으로 사유하자고 하는데, 그것은 의식의 흐름에서, 달리 말하면 사유의 발생과 생성의 과정을 통시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이 “뭣”인지를 묻는 셈이다. 이 의식은, 한마디로 잘려진 단위가 아니며, 다른 표현으로 대상화로부터 출발하기보다, 흐름 그 자체에서 또한 그 흐름 속에서 다루어보자고 한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온의식 즉 의식의 총체(intégralité)를 대상화할 수 있을까? 현시점에서도 인간으로서 불가능하다. 그러면 전통형이상학이 이런 불가능 때문에 대상화가 되는 것만으로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대철학자는 대상화로서 단위(통일성) 설정이전에 단위라는 것도 변화와 질을 포함하는 어떤 성질로서 먼저 다루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제기는 대상화에서 개념과 관념으로 이르는 쉬운 길을 선택하여 토대를 만들고 체계를 정립한 것이 철학사의 전부일까? 벩송의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벩송은 철학사의 과정을 통시적으로 보아야 함을 저술된 작품들마다 강조하였다. 그리고 원인관념(1900-1901)(2019출간)에서 이런 문제기의 적절함을 알리기 위해 우주의 운동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음을 밝힌다(7강).
생성과 과정에 대한 논의보다 일반화를 통한 범주의 설정으로서 철학이 우선시 되었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이래로 중세 철학의 지배적 경향이었다. 이 뒷면에는 절대자에 대한 신앙으로서 종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실증적 해결이 없던 시기에 신앙과 믿음이 자리차지 하고 있었으며, 이는 21세기 현대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변화와 지속 또는 연속성과 운동성은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벩송이 보기에 일반화를 통한 개념과 관념의 설정이 철학사의 기원도 아니고, 이유를 밝히는 설명으로서 체계화도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의 시초로 여기는 탈레스를 끌어내지 않아도 된다. 소크라테스가 이뭣꼬에서는 과정의 총체로서 영혼을 문제 삼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정에서 완성된 또는 정립된 영역을 영혼의 실재성으로 보게 되면, 플라톤에서는 이데아와 같은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설정이 일반화와 추상화를 거쳐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며, 이런 설정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뭣’에 속하지 않는가? 플라톤은 설정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있고, 이를 알아들어가는 방식은 다른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플라톤의 이런 이중성을 박홍규도 들뢰즈도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벩송은 이 부정화(무화)된 원인을 다루는데 있어서, 그것을 부정성으로서가 아니라 긍정성, 실재성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방법적으로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철학사를, 다른 문헌학자들과 고대철학사가들과는 달리 읽고 있었다. 그 일부는 1900년 이전에 여러 강의 중에서 ‘고대철학사 강의’ ‘영혼론 강의’ 등등에서 자주 언급되었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문헌학자들 중에서 주목받지 않은 학자들도 인용하면서, 부정화되었던 것 속에는 긍정성을 넘어서 자발성또는 창조성이 있다고 보려고 했다. 이런 자발성과 창조성이 인간이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벩송은 스피노자 그 이상으로, 인간의 자유의 실현을 신도 정신도 아닌, 자연의 자발성 안에서 찾으려했다.
고대 철학이래로 개념 또는 관념을 실재성이라 보는 관점에서 전환하여, 의식 내부에서 자발성과 능동성이 실재한다는 것으로 바꾸는 발상을 이미 DI에서 제시했다. 그럼에도 자연의 자발성(DI, 3장), 그 다음 10여년이 지나, 철학사 속에서 ‘원인’이라는 용어를 다시 부각시킴으로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습관적 지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공간화를 기준으로 하는 부조리한 사고에 빠짐을 지적했다. 이런 원인관념을 제기하는 밑바탕에서, 벩송이 보기에, “시간”에 관한 단위 설정의 논의가 나왔을 것인데, 형이상학론자들은 그 긴 시간의 과정을 순서의 나열로서 생각하는 한,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원인 관념’에 대한 벩송의 반성은 서양 철학사를 보는 시각에서 아르케(arche)에 대한 재 해명이었다고 느껴진다. 아르케는 원래 형상으로 먼저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개념적 ‘존재’라고 개념작업에서 다루기보다, 흐름으로서 ‘현존’으로 살아가는 실재성에서 다루어야 했을 것이다. 벩송은 ‘원인’의 탐구를 통해 철학하다의 기원을 재음미하면서 보니, 철학사에서는 원인을 끊임없이 다루고 있었음에도, 현존에서 겉보기인 현상을 근거로 물체들과 관계로 다루면서, 개념과 관념으로 이어간 철학사가 철학사의 큰 줄기인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표면 위의 현상들이 아니라, 표면 밑에 심층의 흐름을 다루지 않았던(못했던) 것은 실증과학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보았다.
이런 관점의 유지는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에게 편리와 부를 가져다주어 탐욕(탐만치)에 빠진 것이라 본다. 근대철학은 이 탐욕에 빠져 주체를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특성과 같이 보고서, 주체와 자연(객체)의 이항 대립을 설정하여, 주체는 객체를 잘 다루는 것이 주체의 승리로 착각한 것이라 한다. 문제였던 ‘원인’의 탐구가 뒷전으로 밀리고 물체들 사이의 관계의 법칙을, 또는 현상적 원인과 관계의 인과관계를 다루면서, 사물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표면에서 움직임에 대한 설명으로 만족하였다.
이런 경향은 시간에 대해서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다룰 수 있다는 여겼다. 이런 사고 방식에서 근원적 오류와 착오는 운동을 설명한다고 여기는 “수”와 관계를 체계화한다고 여기는 “논리” 사이의 정합성 또는 통일성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런 논의가 부조리이며 파라독스에 빠진다는 것을 이 주장자들이 나중에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벩송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시기에, 시간을 다루는 방식으로 수의 단위와 개념의 논리에서 찾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저술에서는 긴 논의를 생략하고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언어의 고착성과 고정성은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 출간된 강의록들에서는 개념화와 수의 단위화를 비판하면서, 이런 사고가 근저에는 근관념연합론과 고대 원자론은 같은 방식이라 한다. 이 둘은 논리상 고정(부동)을 근거로 하고 있음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에 닿아있다고 강의록에서 지적하고 있다. 세부류의 철학적 연관은 현상학과 논리실중주의로 이어진다는 것을 벩송은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시간관념’에서는 원인의 풀어져 나옴(발산)이 공간의 이어짐과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공간을 다루는 방식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르다는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벩송은 철학사적 전통에서 자연을 다루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고 보았고, 하나는 개념화의 방식에서 논리와 수로 향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일반화의 방식에서 성질사들을 성격화하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길은 고대철학에서부터 서로 다른 길임에도, 상식의 차원에서 ‘일반화’하는 방식에서 구별하여 다루기가 어려워서 하나의 방향으로 또는 두 방향이지만 거울 효과처럼 보았다는 것이다.
근대에서 양식을 통한 이원론적 입장에서 둘은 다른 방향이지만 서로가 대응하고 또는 평행하는 것처럼 여겨서 두 경향이 하나의 체계에서 두 가지 길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벩송은 이런 두 경향이 다른 방향과 다른 방식의 과정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는 플로티노스의 누스와 로고스의 차이를 드러내거나, 논리에서 형상의 ‘일반화’와 성질에 관한 ‘일반화’의 길이 다르다고 보았다. 그는 ‘시간관념’의 강의에서 수와 논리가 성립하는 항과 개념을 일반화하는 길이 공간화 위에 서있고, 종합감성론(신아시스테시스)은 다른 일반화라 한다. 그리고 종합감성론이 수론화와 개념작업보다 먼저이고 경험적 일반화이라 하며, 원인에서도 먼저이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을 설명할 때는 그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다시보자고 하다.
수(항)와 개념의 일반화도 심리학적이고, 성질사의 일반화도 심리학적이다. 사람들은 전자를 지성(오성, 이성)이라는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며 심리(영혼, 의식)와는 다른 차원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착각에는 지성이 다루는 것은 감성이 다루는 것과 기원에서 다르고, 지성은 과학인데 비해 감성은 과학이 아니라고 여긴다. 게다가 감성을 예술로 표현하거나 또는 변질하는 감정의 한 표현으로서 일반화는 학문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배제하였다. 원인을 다루는 방식에서 자연의 자발적 기원을 과학에서는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듯이, 시간에 대해서도 변화무쌍하다고 여겨 학문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벩송은 그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면서 심리 또는 의식이 실재하며, 그 의식에서 출발하여 학문의 분류를 재정립해야 할 것인가?
과학이란 이름의 사고에서 분류는 위계질서를 갖는 것처럼 수학과 논리가 먼저 있고 이것들의 체계와 정합성에 맞는 물리적 세계가 있으며, 물리적 세계를 법칙화하여 재현할 수 있듯이 물체의 내부의 변화 즉 화학적 변화도 법칙화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방식으로 심리세계도 법칙화와 같은 방식으로 개념작업으로 환원할 수 있어야 과학으로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원인 관념에서 보았듯이 원인이 귀결로 향하는 방향은 하나도 둘도 아니고 여러 갈래이다. 개념을 통한 법칙화는 갈래 중에서 통합하여 법칙에 맞는 것들을 체계 속에 포함하고 다른 것을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물체의 내부인 원자와 전자, 생명체의 내부인 세포의 내부 등으로 들어갈수록 법칙화에 정합적으로 포함되기보다 포함되지 않는 부분들이 더 많다(크다)는 관찰과 실험이 등장하게 된다. 급기야 이들은 수의 단위와 개념의 설정 및 전칭명제 등을 재검토하면서, 규정된 것이며 정의된 것이 인위적 가상일지 모른다는데 이른다. 사실상 럿셀은 전칭명제의 파라독스에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다.
33 지속과 직관 – 기억과 유전
심리학적으로 지성의 길과 직관의 길이 다르다고 벩송은 말하고 싶었지만, 오래 참아왔다고 한다. 왜냐하면 직관을 말하는 순간, 반대자들이 신비주의로 딱지를 붙이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지성(이성)으로 철학하는 자들이 파라독스 또는 선전제 미해결(악순환)에 오류를 범하지는 밝히는 것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벩송은 시간을 다루는 철학자들이 시간의 과거 또는 기억을 성질사로서 일반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개념화 아래에 성질사를 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DI와 MM에서 이런 내색을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시간관념(1901-1902)(2019 출간)에서 이 두 갈래의 길이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차히”로서 다른 경향과 방향이라는 것을 말한다. 벩송은 이런 방향 중에서 왜 수의 단위와 개념화작업이 의식의 내재성, 그리고 기억과 생명을 다루지 못하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언어는 소통과 편리를 위하여 일반화하였고, 이 일반화에서 개념은 한계 안에서 고정된 것을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수와 개념은 실체사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어의 사용에서 실체사는 성질사의 부분이지 실체사가 성질사를 포함하지도 못하고, 성질사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체사는 인위적이며, 재현(표상)될 수 있는 조작적 기능에 맞는 것만을 다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사고는 실재성을 다루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DI에서 공간화된 사고에서 정지에서 정지로의 운동을 ‘운동’으로 여기는 것은 오관을 통한 상식적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흐름이며, 그 흐름은 기억과 생명의 기나긴 과정을 내재하고 있고, 이를 인식하기 위해서 밖에서가 아니라 그 흐름 안에서 자리할 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벩송이 시간관념(1901-1902)에서 지적한 이런 철학(형상형이상학)과 과학(개념화)은 시간을 공간과 혼동하고 있다. 그 혼동의 세 가지로서, 하나는 논리적 착오이라 한다. 둘째는 인식의 표상에서 공간의 속성을 시간의 속성과 동일하게 다루는 점에서 혼동이다. 셋째는 형이상학적 혼동으로 수학적 양과 시간 지속의 질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혼동이다.
시간관념의 역사(1902-1903)(2016 출간)를 강의할 때는 이미 앞선 강의들에서 지성의 한계를 지적하였기에 다른 인식 능력으로서 직관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의를 계속하는 동안에 논문 “형이상학 입문(1903)”을 쓰고 1903년 1월에 발표하였다. 직관이 인식의 능력으로서 지성보다 넓고 깊으며, 지성은 직관 속에 고정된 일부일 뿐이라 한다. 그러면 넓고 깊은 내용을 실제적으로 파악하는 길은 무엇일까? 벩송은 이미 MM에서 의식의 내부에 대한 탐구의 다른 방식을 제시하였다.벩송은 이미 강의에서 연상심리학과 원자론적 유물론이 동류이며, 서로가 서로를 입증해주는 순환론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21세기에 정치경제학의 유물론이 원자론적 유물론의 인과론에 대한 믿음으로 인민의 자발성과 자유 실현의 능력에 대해 실질적인지, 또는 선도적 입장에서 인민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기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 나로서는 둘 다 필요한데, 전자를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후자는 사회형성론 또는 공동체론에서 할 수 있다고 본다. 개념화와 단선형의 사고를 깨는 것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사회혁명론 또는 정치경제학의 선두가 해야 할 몫이었고, 이런 노력이 역사 속에서 일어난 것은, 벩송의 언어로, 간헐적이고 폭발적이었다. 심층은 언제나 동요하고 저항하며 발산하고 항쟁과 혁명의 근원임을 벩송은 잘 알고 있었고, 자유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유화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여긴다.
벩송이 강의에서 시간을 계속해서 다룬 것은 지금까지 고정된 방식에서는, 과학이 설명이라기보다 해석하는 입장에서, 물질과 자연의 실재성을 파악하는 데 착오, 오류,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제반과학들을 잘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고정을 벗어나 운동하고 흐르고 변화하는 물질과 자연, 즉 사물자체(Ding an sich)를 다루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과학은 불가역적인 물질과 자연의 흐름과 경향에 대해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탐구하면서 사물자체(chose en soi)를 다룰 수 있는데 까지 노력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식의 문제도 깊이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의 실재성이 현재까지 미치는 힘으로서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기억은 추억들이 아니다. 추억들의 단면을 모와서 의식을 설명하는 고착적 과학이며, 정신분석학은 무의식도 대상처럼 단면으로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벩송은 무의식의 총체와 기억은 같은 성질사의 일반화이며, 기억의 총체성은 현존하는 자아에 현재 내재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실생활에 유용성이 없는 부분은 현실에서 표면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나오지 못하는데, 그래도 현재하는 실재성이다.
이런 기억을 다루는 데는 현재화(présentation)도 아니고 재현화(représentation)도 아니라고 한다. 논리실증주의와 현상학이 재현 또는 표상을 다루는 것은 강의록에서 말하기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관념연합론과 원자론적 유물론의 선상에서 있다는 것이다. 기억은 재현된 것 또는 대상화된 것이 아니며, 재현화된 것과 대상화된 것은 추억 또는 기념물이며, 유물과 유적인 셈이다. 물론 이런 흔적을 통해 생성 과정과 발전 방향들을 짜맞추기로 탐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에서 언급한 학문들은 과정의 발전 또는 생성과 진화의 실재성에 대해서 보다, 원인 결과 사이에 결과를 먼저 놓고서 원인을 찾아가는 또는 목적을 먼저 두고 목적에 맞는 형태 또는 형식을 찾아가는 전도된 사고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럴까? 나로서도 이에 대해 계속 의문이었다.
그런데 푸꼬의 글 전체를 해명하는 들뢰즈가 말하기를 푸꼬는 근대화 과정이 유용성과 편리를 추구하는 근대 지성(지성)이 완전성과 절대를 선 가정으로 두면서, 상층에서 표면으로 재현의 놀이에 빠져 있었으며, 상부가 인민을 지배하는 방식과 같은 길로서 광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발달에서 전쟁무기의 발달로, 제국주의에서 자본 제국을 형성하는 과정이 속좁은 지성(이성)의 광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들뢰즈는 이런 관점을 어디서 끌고 왔을까? 벩송의 우주발생론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의 생성과 과정, 발전과 진화의 방향에 대한 논의에서 가져오지 않았을까?
44. 자연의 자발성 - 생명과 우주발생론
인간도 온자연(Nature)의 일부이며, 긴 지구역사 속에서 한 부분으로서 같은 뿌리(리좀) 즉 다양체에서 나온 것이리라. 자연은 자기의 의한 자기 발생과 창조를 거듭하면서 생명체들을 만들어 왔으리라. 그 가지치기에서 한 가지를 이루어 가는 것도 인류일 것이다. 벩송이 심리학적으로 본다는 것은 자연의 긴 과정을 탐색하는 길과 같은 길이다. 인류가 사회성을 형성하면서 두 가지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개념화 방식의 두 가지 길에서 찾았고, 그 중에서 한 길은 현상에서 다른 길을 심층에서 보았다. 미래를 향한 길은 상징으로서 투사하는 것이지 실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문 발달사에서 심리학이 늦게서야 실증적으로 다루었듯이, 생명에 관해서도 유물과 유적을 통한 고고학과정을 다루었고, 그리고 변형론과 진화론이 나왔지만 멘델이 유전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이것을 실증적으로 확증하는 것은 1900년이었다. 벩송은 인간의 삶에서 기억과 생명의 과정에서 유전은 같은 길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의식의 분열 또는 이분화의 방향성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생명에서도 이런 분화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벩송은 여러 진화론들을 검토하면서 하나의 방향은 착각이라 한다. 그리고 하나의 목적론 또는 결정론에 맞는 방식으로 나간다는 것도 착각이라 본다. 그렇다면 생명은 과정의 검토하건데 여러 갈래일 것이고, 그 어느 하나에서 인간은 지성을 발달시킨 종으로서 남아있는가. 그렇지 않고 인간도 생명의 본래적 기능들을 내재하고 있으면서 도구 사용 방식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 본다. 이런 도구적 발달과 같은 길에서 실체사에 맞는 개념화 작업을 이루었고, 그 개념화는 사회화와 같은 방향에서 더욱 공고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재도 내재하는 의식 속에는 무의식 또는 기억이 내재해 있으며, 자연의 힘은 ‘작동하는 권능’으로서 자아 또는 인격성에 미치고 있다고 한다.
자아는 추억들만을 길어 올리기보다 추억들의 총체로서 기억을 능력을 보존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신체에 자기 능력을 보존하는 본능의 방식도 내재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현전화에 닿아있다. 단지 현실적 삶에서 지성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사회성에 도움이 되고 편안과 안녕에 더 많이 도움이 되기에, 신체의 도구적 사용과 지성의 개념화 작업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벩송은 생명의 근원적 밑층에서 이어져 오면서 척추동물로서 인간에게, 본능과 지성의 분화로서 분명하게 세분화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성이 우월하게 또는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는 것은 착각이라고 본다. 게다가 지성을 통한 개념화의 체계를 이루었다고 여기는 것도 착각이라 한다. 즉 두 착각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어느 것이 먼저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두 착각은 인간의 삶에서 철학이 먼저이고 삶이 뒷전 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형상]형이상학이 전도된 사유를 한 것이라고 본다.
심리학적 탐구에서 내재성의 자기 생성과 발전을 인정하여야 하듯이, 생물학적 또는 유전학적 탐구에서 생명의 자발성과 자기생성의 기원에서 사유하면 결과와 목적을 먼저는 사고가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진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상 존재가 먼저라는 것도 착각이며, 무가 있다고 하는 것도 착각이라는 것이며, 생명의 질서가 하나의 질서이며, 세계가 통일된 질서로 되어 있다는 것도 착각이라고 한다. 현존이 있고, 현존에서 의식의 분화를 거치면서, 자아의 이중성이 있듯이, 자연에서도 두 개의 상반된 질서가 있고, 이 두 가지 경향이 생명체에 내재해 있는데, 생명체에 따라 어느 쪽이 더 많이 발현했는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의 현존, 두 질서가 있고, 인간에서는 활동과 제작, 그리고 사회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종들과 다른 사회성을 만들었는데, 그 사회형성 작업에서 언어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 언어를 분석해 보면 실체사(명사), 성질사(형용사), 신체 운동의 움직임의 표현(동사)이 있다고 한다.
움직임이 기원으로 있어서, 존재가 철학사의 기원이 아니라 움직이고 활동하고 그 속에는 의식의 흐름이 있기에 동사가 기원이다. 동사 즉 ‘작동하는 권능’(puissace d’agir) 이 실재성의 기원인 셈이다. 이 기원을 통해서 성질사를 중심으로 다루는 방식을 플로티노스 ‘누스’ 측면이라면서, 기원에서 다른 분화로 실체사를 중심으로 개념화는 ‘로고스’ 측면일 것이다. 이런 분화의 관점을 벩송이 직접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플로티노스 강의와 “창조적 진화(EC)”의 4장에서 드러내고 있다. 권능의 발현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고, 폭발에서, 그리고 그 폭발의 파편에서 폭발 등으로 계속적인 폭발과 같은 단속적 방식으로 여러 갈래로 세분화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명체의 유기적 조직화를 거치면서, 크게 보아 체계화의 여러 갈래 중에서 회오리처럼 돈다고 비유를 들거나, 눈덩이처럼 부푼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 비유는 비유이다.
진화 과정에서 지성과 직관(본능 포함)의 두 방향을 인간은 왔다 갔다 한다하면서 진행하는 것인데,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에는 지성 쪽으로 기울어졌다. 전쟁은 지성의 과도한 맹신에 있을 것이다. 이런 주지주의적 사고에서는 지성이 아닌 다른 쪽을 악의 축정도로 여겼고, 전후의 냉전과 21세기의 규소의 주도권 다툼에서도 여전히 이항 대립적 사고는 전쟁을 품고 있다.
벩송은 의식, 기억, 생명이 공연적(coextensif)라고 한다. 이 표현은 기원에서 과정을 겪는 방식이 원이 부풀어가는 방식 동연적(coextensif)과 다르다. 동연적은 같은 중심에서 동일성에 의해 포개진다. 이에 비해 공연적은 온자연(la Nature)과 부분들로서 인간적 자연/인성(nature humaine)은 동근원적이면 세분화가 달라서 사람들 각각은 각각의 개성을 지니지만 각각은 자기 고유성을 갖는 자치적이고 자발성을 지닌다. 벩송은 불가분의 개별성이 자기 성질사를 갖는 것은 자연이라는 기원에서부터 곱태성(다양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반화에서 성질사가 실체사보다 크며, 생성 또는 창조의 과정에서는 지성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부이고, 보다 넓게 신아이스테시스에서가 작동하고 이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게 보아 두 갈래이지만,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사로서 현존, 즉 인격은 총체적 기억과 유전으로서 지속하는 덩어리이다. 개념으로 설정하지 않아도, 어제-이제-아제의 경험적 총체로서 현존은 실재성이며 구체적 삶이다. 벩송은 1922년 글에서 “삶이 먼저이고, 사색은 다음이라” 한다. 벩송은 삶의 경향성에서 일반화 즉 성질사의 일반화로서, 교감과 공감이 먼저이며, 이런 내성적인(introspective) 지각작용을 탐구하고 난 뒤에, 사색하면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색에서 왜 사회성과 더불어 언어, 그리고 공간화로서 개념작업이 지각 작용보다 더 우월하거나 더 중요한 것처럼 형성되었는지를 생각한다. 사회성은 인간이 자연의 손아귀를 벗어나 인간다움의 인격성을 완성하는 방식을 만들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신체의 고통과 삶의 편리를 위한 공동대처로서 사회성을 구축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원시공산사회, 노예제, 참주(황제)제, 농노의 봉건제, 산업사회의 계급사회라는 도식이 먼저가 아닐 것이다. 근대에서 계급을 타파한 공산사회로 이행하는 역사라는 생각도 도식적이고 체계화된 개념적 사변이지 않을까? 자연재해에서 벗어나는 노력으로 그리고 가족제도를 이루고 사회 공동체를 이루면서 고통과 소외(고독)에서 벗어나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던가? 그렇다면 자연에 대한 대응으로서 소통과 상호부조와 사회적 삶에서 자주와 자유의 실현은 같은 방향에서 같은 경향성의 질서를 만들려하지 않을까?
55. 행동의 터전 : 공감과 사회성
자연의 자기 생산과 창조 그 다음으로, 그 생산물인 인간이 자기 보존과 편리를 위한 사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벩송은 사회성이 지성과 도구 사용을 위한 체계와 나란히 형성되었다고 보고, 인간이 자연보다 상위로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치와 자주를 형성하듯이, 인간 스스로 만든 사회 속에서도 자치와 자주가 성립할 것으로 여겼으나, 사회화의 체계가 이루어짐에 따라, 인간이 오히려 사회에 구속되고, 사회라는 질서와 규율이 인간의 자연(본성)에 개입하고 규제하며 억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던가?
체제의 견고함이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위계제도를 구성하였다. 이에 저항하는 인간본성에 대해 사회화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관례와 습관에 따라, 인성을 억압하는 기구로서 도덕과 의무 등을 앞세웠던 같다. 이런 규칙과 법칙의 준수에는 사회성을 보존하고 인간의 삶을 보호해 준다는 구실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체제와 제도가 인간을 속박하고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는 경향에 대해, 인성을 지닌 자들이 끊임없이 저항하였다. 그러나 제도에 밀려 인성과 자유 추구자들은 사회에 암적인 것, 또는 등애 같은 방해물로 취급받아 외면의 대상이었다. 인민의 저항에 대한 제도의 유지를 위한 저항은 사회성을 견고히 하였다. 이에 대해 민중의 각성을 알리는 이들로서 싯달다, 소크라테스가 있다. 싯달다는 성 밖으로 나가 자연과 더불어 무소유로 행하면서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다가 세상을 떴다. 그런데 벩송이 보기에 체제와 제도에 저항하고 인민을 고양시키면서 개인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음을 알린 두 도덕적 영웅,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있다.
사회제도에서 황제(참주)제에 대해 반대하고, 기존의 관습과 습관의 사고(신화적 사고)에 대해 저항했던 소크라테스는 현대식으로 보면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기존의 가족적 기복신앙에 반대하는 행동가였다. 그는 청년(인민)에게 말투를 전한다. 그는 참주파와 통속적 민주파에 의해 단죄 받고 사약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상층에 대한 이로니가 있고 심층의 고양을 위한 이야기(대담)와 같은 말투가 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지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이로니를 통해 인민에게 실천의 ‘뭣’을 전하려 했다면, 그것은 순수 논리(주지주의)를 넘어서려는 것이었고, 소크라테스의 교육적 대화의 말투가 플라톤의 대화편에 여러 곳에 씌어져 있다고 하나, 소크라테스의 서정적인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변증법적 대화라 하며, 벩송은 크세노폰이 귀 기우렸던 스승의 언어(말투)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열정(enthousiasme)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생애 동안에 제자들에게 불붙이려고 했던 열정은 퀴니코스, 스토아, 퀴레네, 에피쿠로스 등 모든 도덕론자들에게 깊은 내면으로 전달되었다.
예수는 참주같은 로마제국에 저항하고, 관례를 따르는 산헨드리아(종교지도자집단)의 종교에 저항하는 인성의 발현 자였다. 그는 인민에게 ‘산상수훈’의 예에서처럼 현실적으로 살아갈 것을 말하면서, 그 현실적 삶 속에, 인민 속에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말하였고, 모든 인간들에게 신성이 있음을 서정적인 말투(parole)와 더불어 실행했다. 로마 총독이 그를 살려줄 것인가를 “호모 에케”라고 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인민재판이 사약을 주장했듯이, 인민들은 “십자가로”를 소리쳤다.그러나 복음서의 말투는 중기 스토아의 말투이며, 중요한 것은 실행에서 아가페(우리나라 번역이 문제다)인데, 자기의 가진 것을 내주는 것, 자비, 자애가 사랑이다.
정의의 실현은 개념과 담론에 의한 추론으로 실행되는 것도, 거대한 체계를 세우고 위계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윤정부의 방식도 아니고, 신천지의 줄 세운 위계의 집회방식도 아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아테네의 데모스 거리에서, 예수처럼 로마 식민지의 언덕 아래서, 서정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이는 벩송이 말하듯이, 지속 안에서이듯이 “인민에 섞여 살면서 인민이 되는 것”(MR 60)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생성되었듯이, 제도 속에서 임의자유가 아니라, 자연 속에 인민들과 함께 하는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인류애(camaraderie)이다.
자연의 손아귀에 벗어남이란 자연과 공감과 공명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는 지성의 자만에 가깝다. 이런 지성의 능력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면에서 자기불합리에 이른다는 것은 여러 번 말했다. 지성이 자신의 경향의 한계를 깨닫고 다른 본능(직관)을 동원하기보다, 지성이 본능을 뛰어넘는 상위 기능을 만들고자 하였다. 상상을 넘어서 공상과 환영으로 가는 경향에서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대리 만족하게 하는 미래에 투사의 방식을 사용한다. 그것은 근본적 해결은 아니지만, 일시적이고 인위적으로 임시방편으로 위안이 된다는 것도 인간이 안다.
인간은 사회성과 체계를 버리거나 무너뜨리지 않고서,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환상을 통한 자기 방어를 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에서 생의 집착으로 ‘우화적 기능’이 발생하며, 그 기능으로 정태적 종교가 발생한다. 생명이란 종의 자기보존의 한 해결책이다. 우화적 기능은 어린애를 잠재우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사회에 집착하게 한다(MR 223). 이런 사회성의 고착과 언어의 개념화는 정지의 사고를 강화한다. 그러나 지성의 습관적이고 고착적 사고 방향이 해결하지 못할 때, 자연이 깨어나 방향을 전환하게 하기도 한다. 지성이 자기 방식이 진전되지 못해 의기소침할 때도, 지성이 나가가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도, 기복신앙처럼 믿었던 미래도 성공도 없을 때도, 자연은 생명에 대한 자기방어의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정태적 종교의 역할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간헐적으로 이어왔다. 몇몇 보살들이 제시하듯이 직관을 통한 새로운 길의 경향이 간헐적으로 등장했다. 무상보시와 희생정신은 이런 종류의 것이며, 생즉사 사즉생, 꽉 막힌 진로에서 몸을 던져 방어하며 새로운 길을 연다는 이야기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연의 자기방어가 곤충과 같은 본능에서 몽유병자처럼 자동주의에 빠지는데 비해, 인간은 지성을 통한 거푸집과 같은 개념화를 통해 제작적 방식으로 발명으로 나갔다. 그러나 지성은 공리주의적 성격을 이용하여 이기심과 상의하여 자신사랑(amour propre, 이기심)으로 간다. 물론이 이런 이기심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개인에 한정하는 이기심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인류라는 차원(동지애)의 차원에서 자기사랑(amour de soi, 세계공동체주의)으로 전환을 인류가 생각해낸 것이 18세기 중엽 자본주의 발달과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인간은 생산도구와 생산력의 발달로, 노예제도와 농노제도에 벗어나 인민들도 스스로 자주와 자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본성의 사유가 18세기에 민중화의 길을 가지만 이미 과거 인류사에서 소수에 의한 여러 분출이 있었다. 신비가들이 불렸던 선구자, 선각자, 선지자 등이 심층에서 표면으로 간헐적으로 분출했지만, 인민들 속에서 불꽃의 확장으로서 타오르지 못했다. 이들은 심층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도약을 그리고 생성과 발전의 길을 제시하였고, 거대한 도약의 길로 밀고 나갔다. “이들은인류전체에게 이 도약을 각인시키고자(imprimer) 원했고, 그리고 이항 대립을 떠나서 인류애를 실현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창조적 노력으로 전환하고자(convertir) 원했고, 지성의 기반인 정지에서가 아니라 운동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을 만들고자(faire) 원했다.”(MR 249).
벩송이 세상을 떠날 때, 세계사에서 이기심은 탐욕과 탐진치를 인간의 욕망이라 호도하는 길로 나감을 걱정하였다. 벩송의 한탄에도, 양차대전 사이에 젊은 맑스주의자들은 벩송의 사유에 대해 현상적 비판을 했었다. 2차 대전의 전쟁이 끝날 때쯤 18세의 들뢰즈(1925-1995)가 먼지에 쌓인 벩송의 저술들을 깊이 읽고서 새로운 동지애의 확장을 설명하려 하였다. 다른 한편 아시아 대륙 한쪽 끝에서 벩송의 철학적 사유가 서양 사고의 난문제를 해소하는 것으로 보고서, 시간-운동의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공간-정지철학과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을 밝히는 박홍규(1919-1995)가 있었다.
66 자유의 실현: 동포애를 넘어서 동지애(보살행)
벩송은 출판된 저술들 속에서 철학사의 통시적 관점을 잘 보여주었다. 즉 고대철학의 상층에서 근대철학의 표면으로 그리고 당시의 현대철학은 심층으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다른 철학자들처럼 철학에 대한 사변적 방식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철학이 과학과 더불어 변화를 겪어왔다고 보았다. 그에게 행운일 것인데, 과학들이 실증적 차원에서 제반 과학으로 분화하는 시절에 살았기 때문에, 철학이 모든 과학의 토대라기보다 철학과 과학은 같은 길을 가고 있으며, 과학의 분화만큼이나 철학도 통시적 관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시태의 관점으로 본다 해도 심층에서 표면으로, 표면의 이중성에서 현존으로서 인간이 상층으로 투사하는 관점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심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에서 상층으로, 삶의 방향이 시간상으로 과거-현재-미래와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어서, 상층으로 투사와 미래의 인간 지향과 같은 경향성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 철학이든 과학이든 학문은 상층에서 표면으로, 표면에서 심층으로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다른 한편 공통의 기원으로서 심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미래를 향한 상층으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미래는 인성에서 자유의 실현을 이룰 것으로 보았다. 그의 바람대로 누구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벩송은 당시에 낙관적이었다. 그럼에도 이항대립의 학문과 종교가 지배하는 한에서, 관점의 승리와 패배라는, 또는 진리와 허위라는, 선과 악이라는, 이원성(이중화가 아니다)의 경향이 지배적인 것을 걱정을 하였다. 그는 세상을 뜨기(1941) 전에,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차 대전만이 아니다. 나로서는, 그가 설탕물이 녹기를 더 기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사든 우리 터전이든 이항대립의 철학이, 즉 앵글로색슨의 철학이 지배적이고, 이 철학에서 상층의 실재성의 주장은 여전하여 제국의 형성으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로 대항하는 방법도 여전히 이항대립 구도에 닮았다. 그렇다고 탐만치에 빠진 앵글로색슨철학이 자기의 방향을 바꿀 것 같지 않다. 러셀(1872-1970)은 이런 구도로서 세계평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말년에서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인성자유주의(libertaire)를 실현하기 위해 투사(millitant)로 나섰다. 그 이후에 앵글로 색슨 계열에서 인문주의자(humaniste)가 아니라 공동체주의자(humanitaire)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로서는 하버마스(1929-)도, 촘스키(1928-)도 자유주의자(liberal)로 보이지 인성자유주의(libertaire)로 보이지 않으며, 지젝(1949-)도 또한 그러하다.
일제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국과 독일의 철학적 배경만이 남았다. 1970년대 이후에 현상학과 하이데거가 널리 퍼진 것도 이항 대립의 주지주의의 사유였지 삶이 먼저가 아니었다. 지금도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롤즈(John Rawls, 1921-2002)의 정의론이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도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주의로서 네오스콜라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이들은 자신의 학문이 제국을 옹호하는 학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플라톤의 정의론은 조화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들뢰즈처럼 로마화된 철학을 버리고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앵글로 색슨에 젖은 사고자들에게 경향성을 바꾸라고 한들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나. 소크라테스 김나지움 앞에서 청년을 만난 이야기는 소중하다. 우리 젊은이가 ‘안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현존으로서 이 터전에서 자치와 자주를 실행할 수 있으며, 인성을 발휘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아마도 벩송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철학은 문제제기를 정확하게 하고 그 문제를 해소하는 작업이라고. 문제제기로서 안다늬 다른 길을 가보자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별종이되라고.
서양 철학사 도입이래로 이 땅에서 일제와 미제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앵글로색슨철학이 지배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아테네를 다시 사유하자고 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여길 정도이다. 들뢰즈에서처럼 가족관계가 아니라 동지애(camaraderie)를 실현하자고 한들 탐욕을 욕망으로 읽고, 인성자유를 빨갱이라 취급하려 하며, 심판론을 정의라고 하는 종교집단이 공공연하게 정치행위를 하는 윤석열 정부 시절에 누가 읽기는 하겠는가?
우선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토대로 삼고 세계사에서 한글을 쓰는 소수자인 8천만을 토대로 하면서, 인류역사의 흐름과 시대사의 다양성을 사유하는 길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97퍼센트나 이항대립 구도에 빠져있었다. 결선투표제와 국민소환제를 실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인데, 젊은이들이 함께 새로운 방향과 경향성을 분출해야 할 것이다.
자치, 자주, 자유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는 시대를 맞이할 때이다. 시작은 어느 때라도 늦다는 법은 없다. 리베르떼르 위마니떼르로 살아보자고, 소수자의 이야기가 전지구적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터전에 살고 있다. 우리의 문제제기가 세계사적 과제이며 이항대립이 아니라 심층에서부터 솟아오른 힘으로 바꾸는 과정을 실현할 때, 세계사의 일반성을 성립시키는 것이리라.
이항대립의 극한에 있는 남북관계의 해소,
심층의 다양체로부터 현존의 곱태성의 긍정: 금수강산 유별종(유덕후)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 (55WLE)
(21:04, 55WLE) (22:21, 55WLF) (23:10, 55WLG)
*** 참조: 아래 글은 벩송 전집을 조망하는 글이었다. - 위 글은 17년이 지났는데, 조금 더 보탠 것 같다. (55WLF)
박사학위 논문 소개글(2005, 수정 2006: (39OLJ)
베르그송 철학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
- 새로운 철학의 탄생: 베르그송 철학
베르그송의 철학사적 성찰
서양 철학사를 개괄하면 그리스 로마의 고대철학, 중세 스콜라철학, 인간의 자각에서 시작하는 근대 철학이 있고, 그 다음에 19세기에 다양한 갈래의 철학이 등장한다. 19세기에는 키에르케고르, 맑스, 니체, 프로이트 등이 있었으며, 이들을 프랑스 철학자 데꽁브는 새로운 낌새를 알아차린 철학자들이라 한다. 이 새로운 성격의 철학을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일부는 차이와 반복의 철학으로 읽는다. 이 철학자들이 각 분야(종교, 역사, 윤리, 심리)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면, 베르그송은 서양 형이상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철학자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에 따르면, 고대철학은 불변의 원리를 근거로 정태적 형이상학을 전개하였고, 스콜라철학은 불변의 원리와 종교의 결합에 머물었다. 근대 철학에서는 물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하여 법칙을 찾고 그 인식의 틀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그 법칙이라는 것도 고대의 불변의 원리를 닮아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은 변화하면서 운동하는 실재성에 근거를 두고 경험에 근거한 새로운 철학을 시도하였다. 그는 이에 대한 검증과 정확성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19세기의 새로운 실증적 자료를 검토하였다. 변화와 운동의 실재성에 맞는 실증적 자료를 새로이 등장한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에서 길어온다. 고대철학이 논리와 수학에서, 근대철학이 보편수학과 물리학에서 길어온 것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베르그송의 철학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실재성이란 개념을 바꾸었다. 고대철학에서 실재[성]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나 아리스토텔레스 에이도스(eidos)처럼 불변하며 불가분의 존재로서 모든 현상의 모델(또는 원본)이 되는 존재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이런 의미를 이어받아 천상의 존재를 실체로 파악하고 현실을 그것보다 실재성이 모자라는 것으로 여기는 관점을 그대로 전승하였다. 근대 철학자들은 이런 실체(실재성)이 순수 관념이나 정의에 의해 설정된 개념에만 존재하기보다, 사유 존재와 대상 존재, 둘 다 실재성이 있다는 관점에 이른다. 근대 사유는 주객 분열적 사유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런 생각은 대상을 조작하는 방식에 유리하고, 또한 근대의 기술과 산업화에 추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고대의 완전과 충만에 대한 사유가 근대에서는 분열과 분리의 사유로 변하면서, 한편으로 인간에게 편리와 재화를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성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배제하였다. 또한 그것은 지배와 피지배, 절대선과 소외 등에 따른 불안과 비관을 방치하여 두었다. 19세기에 팽배한 염세주의와 실재에 도달 불가능성에 대한 소외로부터 베르그송은 인간성의 실재성을 밝히고 인간이 생성과 발전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난관과 고통을 해소하며 살아왔는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실재성은 고대와 근대의 실재성과 본성상 차이가 있다.
본성상의 차이는 존재와 당위의 구분과는 다르다. 존재와 당위는 삶과 행위에서의 문제이다. 지성에 의한 양적 차이의 문제도 정도의 차이이다. 차이의 우월성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이다. 이에 비해 본성상의 차이란 보편수학의 잣대가 물리학에 전적으로 맞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특히 생물학에서도 잣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즉, 보편수학과 생명과학은 본성상 차이가 있다. 순수논리와 보편수학의 실재성은 생명과 심리의 실재성과 본성상 다르다는 것이다. 근대성이 논리와 보편수학을 기반으로 생명과 심리를 다루었는데 비하여, 베르그송은 이제 생명과 심리의 차원에서는 극히 일부분만이 논리의 원칙과 보편수학의 원리에 일치한다고 본다.
베르그송의 철학적 태도 중의 하나는 문제제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잘 제기된 문제제기 속에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심리적 사실과 공동체의 삶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논리의 원리나 수학의 법칙을 강제로 주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당한 문제제기는 생명질서에서나 사회조직화에 적합하다. 베르그송에서 실재성인 생명은 진화과정에서 장애물을 거치면서 겪었던 경험을 자신의 전과거로서 담지하고 있으며, 현재 행위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창조의 방향으로 개방되어 있다. 그는 이 총체적 과정을 다루고자 하였다.
인간의 경험은 단지 개인의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어느 개인이든지 무인도에 떨어지면, 그가 살아온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그가 개인의 삶의 역정과 과거 전 역사를 총체적으로 응용하여, 그가 속했던 사회의 삶의 방식 이상으로 인류적 방식으로 행위할 것이다. 인간은 단지 한시대 한 사회에 정태적으로 머문 존재가 아니라, 미래로 여려 있으면서도 긴 인류의 역정을 거쳐온 과정을 담지한 존재이다. 이러한 시간적 과정을 지닌 존재가 인간이며, 불가분의 생명이다. 베르그송은 이를 “지속(durée)”이라 새로이 명명하였다. 한 개인이라도 인류 또는 생명의 전 역사과정과 불가분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지속이다. 그러면 이런 사상의 태동의 배경을 살펴보자.
19세기를 넘어서며 - 새로운 형이상학의 발생
어느 철학자든지 과거를 수렴하고 미래를 여는 과정에 있으며, 시대의 상황과 지정학적 위상의 영향을 입고 있다. 베르그송이 그의 첫 저술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DI), 1889)』의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대부분 철학은 언어와 그 시대의 상식과 사회적 전통에 매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조건을 넘어서 철학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베르그송에게도 당연히 철학사적 반성과 더불어 근대철학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새로운 성찰이 있다. 그는 고대 철학의 정지와 부동성에 대한 반성, 근대철학에서 인식론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적 대안을 마련하였다.
그리스 고대철학은 학문의 발생초기에는 만물의 근원적 성질을 다루고자 하였다. 그 원질(arche)의 생성 문제가 존재의 문제로 바뀌면서 존재의 불변의 원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 원리는 정의상으로 주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존재하는 것임과 동시에 현상과 별개로서 존재하는 실재로 여겨졌다. 이 원리는 그 자체로 지배적 힘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천상의 원운동만큼이나 아름답고 완전하다. 이 원리가 모든 사실의 근거가 되고 원인이 된다. 베르그송은 이 원리가 그 자체적으로 성립하는 것은 정의상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원리의 발생적 근거에 대해서 아무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고대 형이상학의 원리는 결국 논리와 순수 수학에서만 정립되는 구성물일 뿐이다. .
근대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원리 자체는 이미(a priori) 인간에게 태어나면서 주어진(innée)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와 그에 걸 맞는 대상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가를 다룬다. 한편으로는 대륙의 합리론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영국의 경험론이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사유하는 실체와 부피[너비]를 가진 실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합리론의 특징은 사유의 풀림처럼 분석적으로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부터 전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경험론의 특징은 빈 종이 위에 조금씩 첨가하듯이 인간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둘의 지식 각각은 엄밀한 정합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었다. 칸트는 수학의 완전하고 정합적 지식이 물체에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선천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지식의 완전성과 통일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세 부류의 담론은 보편 수학과 물리학이 학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을 말한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또한 위의 세 부류의 철학은 자신의 완벽한 정합성을 지니기 위하여 은연중에 고대철학의 동일성의 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성의 원리를 선전제로 삼는다는 것을 미리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제기된 비유클리트 기하학은 이미 보편 수학의 완전성이 여럿 중의 하나의 정합적 담론이며, 다른 정합적 담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물리학에서 물체에 대한 형상이나 개념의 논의가 크기와 무게에서 정합성을 가질지라도 화학에서 결합과 용해에서 다른 매카니즘이 있고, 그 귀결에도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학의 담론은 결합이라는 사실이 논리와 수학의 결합과 다른 구조의 결합이 있다는 것을 새로이 제시한다. 이 결합에는 동일성에 의한 원인과 결과의 방식과 다른 결과를 산출한다. 게다가 물질의 결합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원인 유기물질의 결합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리 화학의 발전은 힘과 운동의 문제를 에너지와 열의 관심으로 나아간다. 원리상으로 우주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편에서는 우주의 총 열량은 일정하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정부분에서는 열의 총량이 평균으로 향하기보다 거역하는 방식이 있음을 발견한다. 열역학 제일 법칙은 열역학 제이 법칙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생물의 경우에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설명할 다른 방식이 모색된다. 또한 물리학에서도 소립자에서 입자론의 설명뿐만 아니라 장이론의 설명도 가능하며,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이 양립한다. 거대 우주나 작은 미립자에서 하나의 원리가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의 발전은 새로운 철학을 낳게될 것이다. 생명체에서 세포의 결합 또는 단위의 통일성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화학의 결합과 달리 유기체화하는 생명체에는 생명에 고유한 새로운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는 생명의 원리는 논리의 원리와 본성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생명이란 물체에는 어떤 적용과 실험도 다시 할 수 없는 불가역성을 지니며, 개체로서 불가분적 통일성을 갖는다. 게다가 생명체는 물체의 생성과 달리 긴 발달의 과정을 거쳐 왔으며, 그 진화와 과정도 불가역적이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생명 있는 물체를 한 순간에 원리나 지시에 따라 창조된 것으로 여기는 관점과 달리,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 진화론의 담론도 나온다.
사회의 구성은 개인의 집합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구조와 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조직화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원리에 매인 정태적 사회에 비하여, 새로운 사회의 유기적(조직적) 구성은 새로운 사회 형태를 건설할 수 있다는 동태적 사회학이 나온다. 이 시점에서 인간 개인의 성격에 대한 반성은 새로운 심리학을 낳는다. 나아가 인간의 심리(즉 영혼)도 생명체처럼 외적 원리에 의해 단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생명의 발전 과정과 마찬가지로 성숙되고 확장된 것으로 여기는 담론이 전개된다. 이 점에서 심리학은 실험심리학이나 형태심리학과는 달리 정신병리학적 문제 제기가 나오고, 나중에는 인지 심리학과도 다른 방향으로 정신분석학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아 19세기는 전반적으로 전환의 세기였다. 사물의 실재성을 기하학적으로 크기를 재거나 수적으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학문들이 한계에 부딪힌 시기였다. 다시 말하면, 경험론과 합리론 그리고 칸트의 비판이론은 보편수학과 물리학을 정립시킬 수 있을 지라도,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에 접근하는 방법으로서는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이다. 베르그송은 이런 시대적 교차점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서의 심리학, 생물학, 공동체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경험의 철학 즉 새로운 형이상학을 정초 하고자 노력한 철학자이다.
그러나, 유럽 사상사에서 베르그송 사상이 그보다 앞 시대의 철학과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베르그송은 가계 상으로 폴란드계 아셰키나제(ashékinazé) 유태인이지만 프랑스에 태어나서 살았던 세파라드(sépharade) 유태인이다. 그는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사상과 유태-그리스도 사상 속에서 인간(자아), 세계(대상), 신(종교)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려는 철학자에 공통된 것이다. 그는 고대철학과 근대철학도 인간의 자유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인식과 실천의 근본으로서의 완전한 원리 또는 절대적 주체로서 신에 관한 관심을 평생동안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관점은 고대 형이상학적 관점이나 근대 인식론적 관점과는 다르다.
그의 형이상학에 관한 한, 크게 보아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철학 담론과 차이를 갖는다. 서구의 전통에서 형이상학의 주요 과제는 인간의 자유와 신에 관한 것이다. 전통에 따르면, 창조적 신이 먼저 존재하고 세계를 만들고, 그리고 인간을 만든다. 다른 한편 신은 완전하고 자족적이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래서 인간도 신의 의도를 이어받거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을 잘 발휘하면 인간도 자유롭다고 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이런 사유 방식의 근거를 파고 들어가 보면, 신과 자유가 경험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순수 논리에 의한 담론 즉 정의를 먼저 내리고 그에 맞추어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베르그송은 신을 포함하는 대상에 관해서 서양 철학사가 당시까지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담론을 전개하여, 인간이 대상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베르그송은 그 대상 중에서 우선 인간이라는 대상도 마음대로 조작하고 또는 실험하여 다룰 수 있는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이 대상은 스스로 생성하면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인격을 지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주체와 대상이란 구별로서 생각하여 대상에 대한 주체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과 달라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인격적 자아 존재가 표출하며 드러나는 장면을 하나의 방식(원리 또는 법칙)으로 규정하는 것은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표출과정에서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서 또는 제외되어 무심하게 버려져 있는 부분에서도 자아의 진솔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소외된 부분이 자아의 새로운 창조의 한 부분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수도 있다. 표출되는 것에서 한 측면과 다른 측면이 대립되는 것은 두 개의 속성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이 두 측면은 인간에게 서로 혼합되어 있으면서, 경우에 따라서 한 측면만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두 측면의 극한은 스피노자의 두 속성과 닮았으나, 베르그송은 스피노자처럼 인간이 알 수 있는 두 속성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두 속성은 인간의 능력의 두 극한이며, 이 둘은 혼합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이 중에서 한 극한에 너무 치중되고, 다른 극한(심리적인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한편으로는 자아가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가 표출하여 생기는 다양한 담론을 밝히려 한다. 그리고, 이 존재자들이 서로 관련을 맺는 새로운 삶의 발명 또는 조직화에까지 관심을 갖는다. 이런 조직화는 물체의 결합에 대한 담론이나 생명체의 유기화에 대한 담론과는 달리, 인간들 사이의 어떤 유대를 강화하고 장애물을 우회하고 위험에 대비하려는 방식이다. 생명의 도약으로 생명의 창조적 진화의 한 극한에 이른 인간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형성체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성립을 유지하고 그리고 새로운 개척을 실행하며, 나아가 좀더 나은 삶의 터전을 위하여 새로운 조직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베르그송은 철학사에서의 주요 문제제기를 검토하여 수렴하면서, 각 시대의 철학이 각각의 정합성에 의한 담론의 형식일 뿐이라고 여기고, 새로운 경험의 형이상학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베르그송에서 인간본성의 세 가지 측면
베르그송의 새로운 철학 또는 새로운 형이상학은 칸트(E. Kant)의 형이상학 불가능성의 극복하고자 노력에서 나왔고, 다른 한편 영국의 경험론과 관념연합 심리학을 계승한 스펜서(H. Spencer)의 진화론에서의 시간개념의 오류와 총체의 인식불가능성을 비판하면서 나왔다. 또한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세기말적인 사조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에 대한 저항 의식에서 나왔다. 쇼펜하우어류의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자아의 자유와 새로운 인류성의 실현을 제시하려는 베르그송 철학은 낙관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이런 배경 하에서 시간[지속]과 생명도약을 설파하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두 번째 분석」에서 오성에 의해 형성된 판단의 총체를 세 가지 선험적 이념(Idées transcendantales)으로 만드는 상위 통합의 원리를 생각해 냈다. 권리상으로는 현상들을 모으지만, 사실상으로는 진상 또는 사물자체(chose en soi, Ding an sich)에 근거하는 이 세 가지 이념은 인식의 통일 원리로서 자아(영혼), 세계(우주), 현상의 총체성을 표현하는 신의 이념[이상 Idéal]이다. 이 세 가지 이념은 원리의 부당한 사용 때문에 생기는 착각 또는 환상이다. 형이상학은 성립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베르그송은 새로운 형이상학의 성립가능의 근거를 이성보다 총체적 경험에서 찾고자 한다. 칸트의 선험적 오류추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베르그송은 심층자아를 제시한다. 세계에 대한 안티노미에 대해서 우주 발생론으로서의 생명자아의 발생론을 제시한다. 순수 이성의 이상에 대해서는 열린 공동체의 세상의 실현을 갈망하는 실천 자아를 제시한다. 그래서 첫 번째 심리자아의 존재론적 근거를 밝히는 것은『의식의 무매개적 자료에 관한 시론(DI)』과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MM), 1896)』에서, 생명자아의 발생론적 진화와 창조를 설명하는 것은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EC), 1907)』에서, 금기와 미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의 성립할 수 있는 실천자아의 행위에 대한 노력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MR), 1932)』에서 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에서 칸트는 인간은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행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원하는[욕망하는]가,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였다. 이에 비해 세 가지 방향의 탐구를 위하여 베르그송은 『정신적 에너지(L'énergie spirituelle(ES), 1919)』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ES 2)”라고 묻는다. 베르그송의 의도는 생성하고 생활하고 다음(미래)을 가늠하는 인격에 대한 탐구이다. 베르그송 사유는 인격적 삶에 대한 담론, 즉 그 공동체내에서 자유롭게 사는 인간에 대한 경험 철학의 담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인간 본성을 탐구한 철학자이다. 이런 방향에서 베르그송 사상을 살펴보기 위하여 세 가지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심리 존재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이 존재는 변화하며 연속적이고 비가역적 존재이다. 이 존재는 순수지속이며, 변화를 지속하고 현재 속에 과거를 보존하면서 성립하는 실재이다. 이 실재가 곧 의식이며, “대양(l'océan)”에 비유된다. 의식이라고도 부르는 이 심리적 존재가 존재론의 근원이다. 이 존재는 플로티누스처럼 은유적으로 태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스피노자처럼 자연 즉 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베르그송은 물체의 총체인 우주도 비가역적이고 지속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주의 생성 변전도 되돌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변화하는 존재의 현존은 우주에서든 의식 있는 존재에서든 이질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변화하고 운동하면서 존속한다. 우리는 우주 전체의 변화를 단번에 알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의 의식의 내부를 성찰하면서 유추할 수 있다. 의식 있는 자아(인격)가 변화하고 운동하고 있음을 우리는 “무매개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존재의 자기 현전은 개인의 인격(자아) 실현의 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의 현전의 문제는 심리(영혼) 문제이다. 실재 존재는 즉자적 존재가 아니라, 심리적인 의식 존재이다. 이것이 생명있는 실재의 존재론적 의미이다. 이 존재는 스스로 지속하며 변화한다는 점에서 “근원적 자유”이다(DI). 그리고 변화의 지나간 흔적(운동의 궤적)이 아니라 “불가분의 과정”인 자아(인격)는 과정을 함축하는 기억과 더불어 자기를 구현하려고 한다(MM). 베르그송은 현재 이전의 “심층의식의 현전(무의식의 의식화)”을 “꿈의 도식”으로 설명한다. 심층 자아의 자기 현전으로서의 자유와 창조의 구현은 단적으로 종교적 영웅들의 신비적 직관과 예술적 감성에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이 현전에 신비적 색채가 있다는 것을 1901년에 르화(Le Roy)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둘째는 발전 자아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존재의 현전은 시간 지속에서 생성과 진화 과정을 통하여 드러난다. 베르그송은 위의 존재론적 해명의 불충분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억과 생명을 공연적(coextensif)으로 간주하고, “대의식(la Conscience)”에서 출발한다. 대의식은 자신에 의한 자기 생산의 과정을 걷는다. 우주 발생론과 맞먹을 진화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두 가지 인식의 두 방식, 즉 직관과 지성이 나온다. 이것은 생명현상의 긴 진화과정에서는 본능과 지성이다. 모든 생명체의 본능은 신체 자체의 무매개적(무의식적) 인식이며, 지성은 사물을 대상화하여 물체를 도구적으로 측정하는 인식이다. 인간에게서는 무매개적이고 직접적인 인식(본능)은 삶의 행동에 편리한 지성의 도구적 인식 때문에 뒤로 밀려나 있다. 그래서 지성이 중심으로 보이고 본능은 지성을 둘러싼 성운처럼 지성의 인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지성이 사물에 대한 실험에서 자신(개체적 자아)의 이익을 벗어나서 전체를 조망하게되면, 지성을 관류하는 다른 인식 즉 직관이 있음을 알게된다. 생명의 진화과정에서 본능과 지성은 분화하였으나, 같은 근원적 충력에서 나왔기 때문에 상보적이다. 진화과정에서 막시류와는 다른 한 끝에 있는 인간의 지성은 표상화의 방식을 극대화하는 능력이고, 외적대상을 다루는 능력이다. 본능은 생명의 인식 기능인 신체와 연관하여 역동적으로 확장하는 ‘사유의 한 질서’이고, 지성은 대상에 대한 도구적 인식기능으로서 물체를 분절화하여 기계적으로 조작하는 ‘사유의 다른 한 질서’이다. 이 두 기능의 질서가 생명질서와 기하질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학의 발전도 생명과학의 진보도 인식론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다. 지성과 직관 모두 발전하는 것이며 따라서 기하학적 논리도 생명의 실재처럼 진화한다(「철학적 직관(1911)」). 이런 두 인식의 능력은 생명의 차원에서는 지속적이고 개체의 차원에서는 불연속적으로 발전 진화, 즉 창조적 진화를 한다. 이 두 능력이 함께 내재함을 깨달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명 진화의 여러 방향 중의 한 끝에 이른 인간은 만인이 자유로운 개방적 공동체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는 실천적 자아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진화의 한쪽 극한에 있는 인간이 왜 원만한 인류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는 자기 생존을 위해 사회형성에서 “금지(금기)”를 만들었으며, 사회에서는 생명의 보존과 관습의 유지를 위하여 공동체의 이념을 닫힌 “신앙(미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식이 발전하면서 두 개의 방해 요인을 뚫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기존의 저항을 극복한 자들은 도덕적 영웅이며, 종교적 신비가이다. 이 후자는 극히 소수였지만 도덕 영웅만큼 많은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감동의 힘이 있다. 그러면 왜 이런 금지 조항과 미신을 일반인은 타파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인간이 자기 생존에 필요한 만큼 필수품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노동은 항상 생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성의 발달로 인간은 “원동기(moteur)를 발명”하면서 생산력이 증가하였고, 인간은 누구나 노동과 무관하게 자아 형성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노예경제 위에 있었던 고대의 거짓 민주주의와 농노의 수탈 위에 있었던 중세의 신앙(미신)적 평등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시험하려고 한다.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상반된 모순을 지닌 두 자매와 같다. 이 상반된 두 성질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인류애라는 인간본성을 실현하려는 실천 자아이다. 이 자아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식(sens commun)과 데카르트가 말한 양식(bon sens)을 지닐 뿐만 아니라, “고등양식(bon sens supérieur)(MR 241 259)”도 지닌다. 이 능력 때문에 인류는 대립된 문제를 해결하는 “다음측정(recoupememt 측량의 용어로서 본능과 지성의 상반된 두 방식의 귀결로서 직관 사용이 나오듯이, 상반되지만 상호보충적인 두 현재에서 미래를 예참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MR 263)” 방식을 활용할 줄 안다. 이렇게 새로이 발전된(창조된) 공동체는 공감과 사랑으로 상호 삼투되어 사치와 허영 없이 담백하게(simple) 살아가는 사회라고 베르그송은 보았다.
인류는 ‘심리 자아’의 존재, ‘발전 자아’의 전개, 인류애를 행하는 ‘실천 자아’의 구현으로 나아간다. 자아의 자기 형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신비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베르그송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본능(직관)과 지성(지능)을 상호보충할 수 있는 것처럼, 평등과 자유사이의 상보관계를 아는 것도 이성(큰 의식)을 통하여 자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생의 충만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형상 형이상학의 경우는 이미 주어진 목적과 규정된 완전을 미리 상정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강제와 지배를 행사한다. 이 이론은 항상 인간을 비천하게 여기면서,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하려 한다. 그래서 무력과 권력을 사용하면서도 금지와 환상으로 자율적 인간 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형상 형이상학에도 신비주의가 있다. 이 신비주의를 강요하는 곳에서는 항상 총과 대포를 수단으로 하는 전쟁이 있다. 이 지배의 신비주의를 공감의 신비주의와 구분하기 위하여, 우리는 전자의 사유 배경을 형상형이상학으로 후자의 사유 배경을 ‘질료형이상학’이라 한다.
이상으로 보아 인간의 본성의 세 가지 측면은 세 가지 위상적 지위, 즉 심리자아, 발생자아, 실천자아로 성립한다. 이 총체의 통일성은 ‘자유와 행복’의 구체적 실현 가능성의 기초이다. 이 세 측면들의 역량은 인간에게 작용하는 초월적 기능이나 섭리가 아니라, 인간 속에 함께 내재하는 어떤 것[권능]이다. 인간 본성의 세 측면은 특별한 인격에게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종 전체에 관통하여 내재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유의 표상도 아니며, 외적 대상도 아니다. 이것을 인격성이라 부르든, 본성의 권능으로 부르든, 생성 원리라 부르든 간에 인간 본성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생명 있는 존재에 내재하며 변화하고 지속하며 발전하며 확장하는 어떤 권능이다. 이 무엇을 베르그송이 표현하는 대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신’이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이질적이고 충만한 전체이며 지속하는 존재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완전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inconnaissable)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내재함을 “무매개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직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며’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을 형이상학적으로 운동하는 질적 동일성(통일성)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베르그송 사유는 서양 철학사에서 새로운 철학함의 한 시도이다. 그 무엇은 어떤 초월적 지지점도 없는 것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내재적으로 의식하는 어떤 ‘힘(권능)’이다. 이 힘은 인류의 공감 즉 인류애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은 ‘그 무엇’에 대해 감지하고 ‘그 무엇’의 경향에 합일하고 ‘그 무엇’과 동화(공감)하면서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가지 위상적 측면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베르그송의 사유를 따라가 보면, 그는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철학의 정확성을 위한 새로운 문제제기의 틀로서 ‘세 가지 측면’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 대한 올바른 규명으로 ‘진솔한 인격성의 형성’, ‘인간의 행복한 삶’, ‘인류애의 실현’을 추구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그송 철학의 평가와 계승
베르그송은 20세기의 인류는 공상적 우화를 좋아하는 유아기나 사물의 이용이나 실용을 실험하는 청년기를 지나 완숙한 장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칸트가 계몽기로 규정한 성년기를 성향의 계속하고 있다고 보았다(PM 제1장). 아직도 인간은 정태적 종교의 구복 신앙에 머물어 자기 부정(결함존재)과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는 자신을 양도(소외)하며 나약한 존재로 취급한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생명체가 얼마나 많은 장애물과 위험을 극복하였는지를 성찰하면서, 인간이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이 경험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미래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따르면, 이제까지 쌓아와서 이미 내재해 있는 총체적 경험을 통한 새로운 조직화의 시도는 현실 사회의 공동체 이상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점을 되새겨보면, 고대 철학에서 원본이 우리의 경험을 초월하여 있다고 여기거나, 근대철학에서 원본이 우리의 선천적 능력으로 있다고 여기는 것에 비하여, 경험의 형이상학은 원본이 있다고 선규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원본이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권능이 내재해 있다. 이 내재성의 권능은 물론 기억 및 생명과는 공연적이며, 질적 다양성임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통일성이다. 이 통일성(동일성)이 수학적 통일성과 다르다는 점에서 생물학적이라고 하고, 이 차이를 들뢰즈(Gilles Deleuze)는 미분화(differentiation)와 세분화(differenciation)로 구별하여(t/c) 설명한다. 전자는 수학적 양적 차이이며 후자는 생물학적 질적 차이이다.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8)』)
베르그송 사상의 전반적 도식은 프랑스 제3공화정에서 철학 교육체계와 내내 나란히 나아갔다. 프랑스 철학교육의 개론서들은 - 19세기말 마지막 10여 년에 성립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전반세기에 이르기까지 - 심리학(의식, 기억, 지각, ...), 논리학(언어논리, 수리논리, 물체논리, 생명논리, 심리논리, ...), 도덕론(사회, 노동, 국가, 폭력, 자유, ...)으로 이루어졌다. 이 체계와 베르그송의 철학적 방향은 일치하며, 이 각 학설들이 성립하는 근원에 그의 형이상적 시도가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전반기에 심리학 개론의 중심축은 베르그송을 이어받은 프라딘느(M. Pradine, 1874-1958)의 심리학 개설서였다(베르그송의 『강의록 I (Cours I: Psychologie, 1887-1888, 출판 1990)』이 있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베르그송이 자신의 저술 전체에서 단 한번 정신분열증(schizophrénie)이란 개념을 썼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문제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실증적으로 설명해줄 사람은 프로이트 제자들 중에 있다고 언급한다(PM 81). 20세기 후반세기에 철학 개론서에서는 ‘심리학’이란 표제어보다. ‘인간의 문제’라고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으로 되었다. 1973년 문교부가 제기한 개념에 “의식”개념 항목 앞에다가 “무의식”의 개념 항목을 삽입하면서 프로이트의 중요성이 들어섰다. 무의식 문제와 연결하여 라깡이 편집증(paranoïa)에 관심을 두었다면, 들뢰즈와 가타리는 정신분열증을 주제로 삼았다. 이들은 공동으로 『안티외디푸스(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72)』와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80)』썼다는 점(부제 속에 정신분열증 단어가 있다)에서 베르그송의 내재적 계승자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에서 베르그송의 지위는 심리학적 견해에 머물지 않고, 프랑스 철학에 지속적 영향이 미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베르그송에게는 직계 제자도 없고 또한 뚜렷한 계승자가 없다고 한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겉보기에 철학사적으로 불연속이지만 내재적인 연속성이 있다. 그에게 제자가 없는 것은 베르그송이 강단(대학소속) 철학자가 아니라 꽁트처럼 제자 없이 일반인에게만 강의하는 꼴레즈 드 프랑스 교수였다는 특수 상황에 있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대학교수로 지내면서 직계제자와 방계제자도 두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에는 직계제자는 없으나, 그를 옹호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은 있었다. 예를 들면 르화(Edouard Le Roy, Une philosophie nouvelle: Henri Bergson, 1912), 쟝겔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 Bergson, éd. nouvelle, 1930 초판, 1959), 트로티뇽(Pierre Trotignon, L'idée de vie chez Bergson et la critique de la métaphysique, 1958), 들뢰즈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들뢰즈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철학자이다. 그야말로 불연속적 연속성 예가 될 수 있고 생명 진화의 원초적 충력에서 솟아 나오는 한 철학자로 기록될 수 있다. 위에서 든 저술 이외도 들뢰즈는 『베르그송주의(Le Bergsonisme, 1966)』를 썼으며, 베르그송의『물질과 기억』의 <이마쥬 이론>을 영화에 적용한 두 작품(『영화(Cinéma 1: L'image-mouvement, 1983)』과 『영화(Cinéma 2: L'image-temps, 1985)』) 때문에 베르그송의 계승자로 알려졌다.
우리가 말한 베르그송의 ‘질료 형이상학’은 들뢰즈에 와서야 문제제기를 보다 넓게 전개된 것이 아닐까? 베르그송의 철학은 형상의 원본도 없고 지지점도 없다고 하더라도, 내재성 질료 자체가 문제해결을 하려고 형성 중에 있고, 우리는 이 형성중인 질료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란된 듯이 보이는 형성중인 질료를 베르그송의 철학으로 이어가는 들뢰즈는 카오스모스(chaosmos)라고 부른다(들뢰즈와 가타리의『철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philosophie?, 1991)』). 이것은 혼재의 생성과정에서 새로운 질서가 창출된다는 의미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 형성중인 실재성에 뿌리 박고 있는 인간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그 가능성은 인간 본성에서 나온 고등양식의 발현에 있을 것이다. (39OL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