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그 해 여름 윤주는 처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해 나간다.
이제 이 더위만 지나고 나면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이 힘들고 고된 것도 느끼지 못한다.
얼마 만에 딸들을 데리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벅찬 감동이 가슴 가득 차 오른다.
하루 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윤주는 어머니께 전화를 한다.
“엄마!”
“아이고, 이것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거냐?”
변자영은 눈물부터 흘린다.
그렇게 자식들을 맡겨놓고 일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딸이 늘 걱정이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온다.
“엄마!
정말 죄송하고 미안해요.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이 더위가 지나고 나면 애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정말이냐?
정말 애들을 데리고 살아갈 방이라도 얻었니?”
“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더워서 애들을 데리고 올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을 해 주세요.”
“내가 고생은 무슨 고생이냐?
네가 어디서 어떻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잠을 잘 수도 없다.”
“엄마!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보라 있음 좀 바꿔주실 수 있나요?”
“그래, 기다려 봐라!
안 그래도 그 어린 것들이 엄마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원!”
변자영은 잠시 사이를 두고 보라를 바꾸어준다.
“엄마?”
보라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엄마를 부른다.
“보라야!”
“엄마! 어 엉엉!”
보라는 말을 잇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어서 엄마를 부른다.
“보라야!
미안하다. 정말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 엄마!”
“그래, 우리 보라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보영이 잘 돌보고 있지?”
“응!
근데 엄마 언제 와?”
“엄마가 조금 있으면 데리러 갈게!”
“조금 언제?
보영이도 엄마 보고 싶다고 울어!”
“그래!
엄마도 보라와 보영이가 너무 보고 싶어!
근데 지금 너무 더워서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곧 데리러 갈게!”
“엄마!
정말 데리러 올 거지?
보영이와 나를 데리러 오는 거지?”
“그럼!
우리 딸들이 보고 싶어서 엄마도 많이 울었어!”
“엄마!
보성이는?
보성이는 어디 있어?”
보라는 동생인 보성이를 잊지 않고 있다.
“보성이는 엄마하고 함께 있다.
보라야!
엄마가 금방 데리러 갈게!”
“응!
꼭 와!
금방 와야 해!”
보라는 울면서 그렇게 전화의 수화기를 할머니께 건넨다.
“윤주야!
아픈 데는 없는 거지?”
변자영은 딸의 건강이 걱정스럽다.
“엄마!
아픈 곳은 하나도 없어요.
지금 취직을 해서 매일 일을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보성이는 어쩌고 매일 일을 나가냐?”
“보성이는 아침에 어린이 집에 맡기고 저녁이면 데리고 옵니다.
우리 보성이도 많이 자랐고요.”
“그래!
내려오기 전에 꼭 전화를 하고 오너라!”
“네!
아버지께도 안부전해 주세요.”
윤주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있는 딸들을 생각해서 이 무더위만 지나가기를 바라며 마음을 추스른다.
비 한 울도 오지 않고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도 윤주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일에 몰두한다.
이제 그렇게 그립고 보고 싶던 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다가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새로운 희망과 함께 힘이 솟아난다.
지루하던 무더위도 서서히 물러간다.
윤주는 딸들을 데리고 오기 전에 영미네 집을 찾아간다.
모처럼 노는 월요일 짐도 가지러 가야 하고 우선 영미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려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보성이를 데리고 간다.
김영미는 윤주의 전화를 받고 밥을 준비한다.
늘 제때 찾아먹지 못하고 다니고 있을 윤주를 생각하면서 따뜻한 밥이라도 먹여서 보낼 생각인 영미의 마음이다.
“영미야!”
“어서 와!
그 동안 왜 그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어?
내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
우리 보성이도 많이 컸구나?”
“이모, 안넝하세요?”
보성이는 배꼽인사를 하면서 영미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보성아!
배고프지?
어서 들어가 맘마 먹자!”
영미는 보성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간다.
“영미야! 정말 미안해!
그러나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어서 밥을 먹자.”
“영미야!
나 밥 먹고 왔다.”
“밥을 어디서 먹었니?
그러지 말고 어서 밥부터 먹어!”
김영미는 윤주의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정말이야!
이제는 배를 곯고 다니지 않아!”
윤주는 그 동안의 일을 소상하게 말을 한다.
“정말이니?
정말 요즘에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있니?”
“그럼!
그래서 다음 휴일에는 딸들을 데리러 간다.
그 동안 보관했던 짐을 가지러 왔다.”
영미는 좋아하면서도 윤주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알았다.
그럼 내가 짐을 싣고 함께 가 보자.”
“그런 시간이 있겠니?”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 것이지 뭐가 걱정이니?”
“어른들도 계신데 괜찮겠어?”
“넌 그런 걱정하지 마!
어머님께서 경로당에 계시니까 전화로 말씀을 드리면 저녁 한끼는 어머님이 손수 해 주니까 걱정하지 마!”
영미는 전화로 시어머님의 허락을 받은 다음에 윤주의 짐을 찾아 자신의 승용차에 모두 싣는다.
윤주의 말대로라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영미는 윤주와 보성이를 차에 태우고 윤주가 일러준 대로 시장을 찾아간다.
시장 전체가 휴일이라 차는 가게 앞까지 들어 갈 수가 있다.
“여기 이 가게야!”
“떡볶이 집?”
“응!”
윤주는 보성이를 데리고 내리고 나서 영미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잠시 기다려!”
윤주는 대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에 윤주와 나미자가 함께 나온다.
“영미야!
인사를 해!
우리 가게 주인이시고 나하고는 참으로 은인 같으신 분이시다.”
영미는 나미자를 보고 깊숙하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윤주를 통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 잘 해 주시고 좋으신 분이시라고 윤주가 넘 행복해 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녀들은 서둘러 차에서 짐을 내려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영미는 집안을 둘러본다.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구조였다.
단칸 셋방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보기에 더 없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미자의 푸근하고 따뜻한 성품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정말 이렇게 편안하게 친구를 받아주시는데 대해서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가슴 아픈 친구입니다.”
“이제 그런 인사는 그만 둡시다.
나 역시 우리 보성이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끼리 마음을 합쳐 기대고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도 서로를 위해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니겠어요?”
“말씀을 편안하게 해 주세요.
저도 언니처럼 편안하게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보성이 엄마는 나 보다는 낫네!
이렇게 좋은 친구가 곁에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미자는 함빡 웃음을 띠우며 주방으로 가서 차를 준비한다.
윤주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짐을 정리한다.
짐이라고 해야 아이들과 자신의 옷가지와 소지품이 전부였지만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널려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이다.
서랍장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옷들을 곱게 접어서 쌓아둔다.
“어서 나와 차를 마시자.
오늘은 시장이 모두 노는 날이라서 아무것도 구입을 할 수 없지만 내일 당장 서랍장이라도 사서 들여놓아야만 정리가 되겠지?”
나미자는 방안을 들여다 보며 말을 한다.
“네!
내일 시간을 봐 가면서 구입을 해야겠어요.”
“윤주야!
내가 내일 다시 와서 필요한 것들을 사 줄게!
서랍장과 이부자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덥다고 해도 이제 금방 찬바람이 불면 아이들 덮을 이부자리는 있어야 할 것이니까 그 정도는 내가 준비해 줄게!”
“아냐!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윤주는 늘 자신으로 인해 많은 신경을 써 주는 영미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스럽다.
다음날 영미는 오전에 도착을 한다.
아무리 윤주가 말린다고 해도 영미는 서랍장과 이부자리를 사서 배달을 시킨다.
친구로서 그 정도는 자신이 해 주고 싶은 영미의 우정이다.
나미자는 그런 영미의 마음 씀이 참으로 흐뭇해져 온다.
진정한 우정이 어떤 것인가를 처음으로 느껴보는 나미자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사람의 친구도 없는 나미자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