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에 내가 교육대학원 논문을 지도한 이 선생님은 좀 나이가 있는 분이었는데, 지방 도시의 어느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학습부진아의 영어교육방법'이라는 주제로 동기유발에 도움이 되는 연극 교안을 소개하면서 그런 활동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더 가까워지고, 그래서 학습효과도 더 있었다는 논지였다. 그런데 심사 도중에 교수님 한 분이 불쑥 물으셨다.
"교사와 학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 선생님은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도 긴장했다. 한참 머뭇거리던 이 선생님이 갑자기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새는 우리 학생들이 뒤에서 '선생님!' 하고 쫓아옵니다."
그러자 심사 교수님은 "그런 것은 논리적 답이 못 되고 논지의 유효성을 증명할 수 없다"며 정확한 통계나 수치를 제공하라고 하셨다.
지도교수로서 논리적 허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책임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선생님의 대답은 썩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뒤에서 따라붙으며 "선생님!" 하는 것만큼 친밀도를 더 잘 증명하는 통계나 수치가 어디 있겠는가.
지난달 어느 일간지에 난 사교육비 경감 방안 공청회에 대한 짤막한 기사에는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려나는 와중에 학부모들도 일제히 학원 편을 들었다고 나와 있었다. "학원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가르칠까 연구한다. 예를 들면 학원 강사는 옷도 멋지게 입고 머리에 무스도 바르는데 학교 교사는 군자 같기만 하다. 학교가 '학생이 모르면 내가 죽는다'는 각오로 가르칠 수 있는가"라는 학부모 측의 말이 인용돼 있었다.
학원 선생은 멋지게 옷을 입고(40대 이후의 강사들은 주름살 제거 수술도 불사한다고 한다), 죽을 각오로 재미있게 가르치기 때문에 사교육을 선호한다는 게 좀 마음에 걸렸다. 서양 속담에도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선생은 학생에게 '앎'의 기회를 제공할 뿐 억지로 알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공부란 인내와 사고력을 배우는 길인데 지적 호기심이 없는 단순한 재미 위주의 학습은 결국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며칠 전에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민호가 진로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찾아왔다. 임용고사를 쳐서 합격했는데 동시에 대기업에도 취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생님, 요새 학생들은 학교보다 학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학교에 와도 잠만 자거나 학원 숙제만 하는 애들도 많대요. 선생님이 보람있는 직업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도 선뜻 "그래도 선생이 되어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골든벨을 울려라>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바로 이 선생님의 학교였다. 학교의 명예를 걸고 문제를 푸는 제자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선생님들을 유심히 보았다. 고개 숙여 기도하는 선생님, 너무 긴장해 땀이 번지르르한 얼굴에 입을 벌리고 있는 여선생님, 답을 맞힐 때마다 선생님들의 얼굴은 환희 그 자체요, 틀린 답이 나오면 절망의 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유행에 맞는 옷, 무스 바른 머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선생님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나는 민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원래 네가 원하던 대로 선생님이 되는 게 낫겠다. 뭐니뭐니해도 핏줄 나누지 않은 관계 중에서 제일 가깝고 좋은 것은 스승과 제자 관계인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 있는 선생, 특히 학생들이 뒤에서 따라붙는 선생이 되면 보람도 있을 거야."
"뒤에서 따라붙는 선생이 뭔데요?"
민호가 물었다.
첫댓글 중1때 영어 선생님 생각나요. 남자분이셨는데 미혼이시고..덕분에 영어공부만 죽어라 했는데...(울 담임이 수학인지라 저더러 수학도 하라고 문제집 한보따리 싸 주셨지요.ㅋ) 집까지 따라간 적이 있었지요. 훗훗 지금은 절대 못함.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