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이 익는 풍경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 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 주병선의 ‘칠갑산’ 노랫말 중에서
나는 요즘 토요일마다 칠갑산 산자락이 둘러쳐져 있는 곳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칠갑산’이란 노랫말을 읊조리는 버릇이 생겼다. 어렸을 때 우리집은 호법면 단내 와룡산 자락에 있는 옥수암이라는 절의 산밭을 경작했다. 산밭은 유난히 돌이 많기도 했지만, 경사가 높은 곳이 많아서 농사일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부모님은 그곳에 주로 콩을 심었다. 아직 잘 일구어지지 않은 산밭은 거의 돌밭에 가까워 그곳에 경작할 수 있는 농작물이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갑산’이라는 노랫말을 읊조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그곳에서 하루 종일 쪼그려 콩밭을 매던 어머니가 일을 끝내기를 기다리며 절마당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유년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을 간 어린 처자가 산밭에 매달려 일하면서 베적삼을 흠뻑 젖도록 흘린 것은 결코 땀방울만은 아니리라.
나는 어렸을 때 콩 음식을 좋아했다. 명절 때만 되면 어머니가 맷돌로 콩을 갈아 만든 두부, 그 두부를 누르기 전에 퍼 주신 순두부, 그리고 두부 비지로 끓여주는 된장비지국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유독 내가 싫어해서 어머니를 귀찮게 해 드렸던 콩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청국장찌개였다. 겨울만 되면 따뜻한 아랫목에 삶은 콩을 깔아 놓고 발효시키는 냄새가 너무나 싫었다. 그리고 그 위에 살며시 피어오르는 곰팡이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온가족이 좋아하는 청국장을 끓이는 것과 동시에, 나를 위해서 별도로 된장찌개를 끓여야 했다. 지금에야 가스렌지가 있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니까 한 끼 식사에 두 개의 찌개를 끓이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지만, 예전에는 조그만 화롯불에 찌개를 끓여야 했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개의 찌개를 끓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어머니가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내가 청국장을 먹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에 자취를 하면서부터였다. 대학 부근에 동치미를 맛있게 하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그곳 음식에 입맛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청국장에도 자연스럽게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내가 싫어한 것은 청국장이 아니라 방 아랫목에서 매캐하게 발효되는 그 냄새 때문에 청국장 자체를 싫어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로 나는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가 화롯불에 끓여주었던 청국장찌개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내가 청국장을 먹기 시작하니까 굳이 된장찌개를 끓이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시다며 좋아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느덧 팔순을 넘기시면서 예전 맛을 잃어버리신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 청국장맛이 은근히 그리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나는 은근히 토요일을 기다리는, 나도 모르게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를 읊조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곤 한다. 나는 지난 여름에 음식맛을 지독하게 잃었었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오르고,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아무리 좋아했던 반찬과 찌개를 봐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밥을 먹는다는 것이 고역처럼 느껴졌던 날들이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정말 먹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칠갑산 산자락에 있는 허름한 음식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청국장찌개의 새로운 맛을 보게 되었다. 칠갑산 산자락에서 청국장의 재료인 콩을 생산해 내기 위해 베적삼을 흠뻑 적셨던 아낙네의 정성이 스며든 것은 아닐까? 음식맛은 손끝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에서 나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청국장 익어가던 유년시절 아랫목마저 그리워 지는 날들이다.
첫댓글 오늘 청국장 끓여 먹었는데.....ㅋㅋㅋ 맛은....흠 냄새만 진동할뿐.....솜씨가 없어 ㅠㅠ 슬픈 현실이었어요 ㅎㅎ
ㅎㅎㅎ 저는 오늘 아침에 청국장 끊여서 밥을 먹고 치우고 이렇게 선생님 글을 보니 더 반가운거 같아요~
3살 딸은 잘 먹는데 6살 큰딸은 약간 얼굴을 찡그리면서 먹는 모습인데 그래도 먹으라고 하니 어쩔수 없이 먹긴하네요~
제 친정 홍성 옆이 청양인지라 칠갑산 노래를 들으면 저도 은근 반갑더라구요~ 칠갑산 꼭대기에 가면 머리에 수건을 두른 콩밭매는 아줌마의 동상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아직도 있겠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