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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Cambodia)와 앙코르 왕조
(2008년 1월)
캄보디아 전도(全圖) / 캄보디아 문장(紋章) / 국기(國旗)
♠ 캄보디아 개관(槪觀)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동쪽으로는 베트남, 서쪽은 태국, 북쪽은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동남방향으로는 남지나해와 닿아있으며 전체 면적은 18만 평방km로 남한면적의 두 배 정도이고, 인구는 1천 6백만 정도이다. 인종은 크메르(Khmer)족 90%, 베트남인 5%, 기타 중국인 및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도(首都)는 프놈펜(Phnom Penh)이다. 언어는 크메르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소승불교 95%로 명실상부 불교국가이다. 그러나 1인당 GDP 1,600달러(USD:2019)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이다.
국토의 70%가 평야지대이며 외곽의 국경지대는 비교적 낮은 산지로 라오스를 통과하며 흘러온 메콩강이 캄보디아 남부를 지나 남지나해로 흘러들면서 비옥한 메콩델타(삼각주)를 이루고 있다.
국토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톤레삽 호수가 있는데 건기에는 바다로 흘러들다가 우기에는 강물이 역류하여 평소의 3배 정도로 넓어지며 그 때의 넓이가 서울면적의 2배 정도나 된다고 하는데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수상가옥이 많이 있고 배로 된 학교도 있다.
♠ 캄보디아 약사(略史)
캄보디아는 크메르(Khmer)족이 세운 크메르왕조는 인근의 베트남, 미얀마, 태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또 한족(中國)의 침입(제갈량의 맹획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도 견디어 내며 성쇠를 거듭한다.
앙코르왕조는 7세기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II)에 의하여 ‘캄푸챠(Kampuchea)’란 이름으로 롤류오스 (Roluos)지역에 건국되며 당시 중국에서는 캄푸챠를 진랍(眞臘)이라 불렀다.
AD 12, 수리야바르만 2세(Suryavarman II) 때 국토를 넓히고 지금의 앙코르와트(Angkor Wat)를 건설하게 되고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에 이르러 참파(Champa:베트남)의 침입을 막아내며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의 도시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고려) 전체인구가 250만 정도였다고 하니 앙코르왕조의 번성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때 타프롬(Ta Prohm:어머니에게 헌사), 프레아칸(Preah Khan:아버지에게 봉헌), 앙코르톰(Angkor Thom), 바이욘(Bayon) 등 아름다운 불교 및 힌두교 사원들이 건립된다.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라는 의미이고, 톰(Thom)은 크메르어로 ‘크다’는 의미라고 한다.
15세기 중엽에 들어 앙코르왕조의 쇠락과 주변국들이 강대화하면서 아유타야왕국(Ayutthaya)의 침공으로 앙코르왕국은 수도를 남쪽의 프놈펜으로 옮기게 된다. 아유타야는 시암(Siam/Thai)족이 세운 국가로 현재의 태국에 있던 왕국이다. 아유타야의 왕 파라마라자(Paramaraja)는 수백 년 동안 앙코르왕국으로부터 지배와 간섭을 받았던 원한으로 철저히 유린하고 수많은 문화재, 신들의 무희(舞姬)인 압사라(Apsara), 수많은 대신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다. 앙코르를 손에 넣은 아유타야도 오래지 않아 이곳을 떠나고, 앙코르왕조도 폐허가 된 앙코르로 수도를 옮길 능력이 없어 버려진 도시가 된다.
밀림 속에 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게 완전히 잊혀진 도시가 되었는데 1860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 무오(Albert Henry Mouhot)가 재발견하여 세계에 알려지기까지 400여 년 동안 밀림에 묻혀 유령의 폐허도시로 있었던 것이다.
학살현장 / 해골 박물관 / 살인마 폴 포트
캄보디아는 근대화 과정에서 주변국들과 함께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정권다툼을 빚게 된다. 1975년 폴 포트(Pol Pot)가 이끄는 크메르루주(Khmer Rouge)에 의하여 공산화 되었다가 1979년 공산정권이 무너지기까지 어이없는 동족 대량살육이 이어져 킬링필드(Killing Fields)라는 치욕의 오명을 남기게 된다. 전 인구 750만 중 공산정권에 의하여 살해당하거나 행방불명된 수가 250만이었다고 하니 국민의 1/3이 희생된 셈이며 숙청 과정에서 지식인이 대상이 되었는데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 안경을 쓴 사람, 심지어 양복을 입은 사람까지 무조건 인민재판-살해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국토에 깔린 지뢰와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의 불구자가 발생하였고 지뢰박물관이 등장했으며,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인당 연소득 350달러(2008) 정도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후진국 대열에서 허덕이고 있다.
1. 신들의 땅- 저주의 숲 『시엠 레아프(Siem Reap)』
눈부신 앙코르와트의 부조 / 앙코르와트 전경
영종공항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한 대만 원동(遠東)항공 여객기는 3시간 비행 끝에 대만(臺灣) 까오슝(高雄) 공항에 도착했다. 한 시간 정도 면세점을 기웃거리다 다시 9시경 출발하여 3시간 정도 비행한 후 캄보디아 ‘시엠 레아프’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쯤이었는데 현지시간으로 새벽 두 시였다.(우리나라와 시차 2시간)
시엠 레아프(Siem Reap)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유적군 인근에 세워진 도시로 ‘시엠’(시암족:태국)을 ‘레아프’(격파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크메르 족은 인근의 여러 나라들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는 경쟁을 벌이는데 앙코르왕조 때 이르러 인도차이나반도의 맹주가 된다. 그 후 끊임없는 타 민족의 도전을 받는데 시암족(태국)의 일곱 번 침공을 잘 막아내고 여덟 번째 침공에 무너졌다고 한다. AD 9세기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거대한 사원들은 자야바르만 7세 때 이르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힌두사원들과 벽화와 조각상들이 대량으로 조성되는데 그 거대한 규모에서부터 정교한 석공들의 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아유타야(시암족:태국)에 패한 후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버려진 앙코르 유적군은 유령의 숲으로 알려져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하여 아무도 접근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 앙리 무오의 탐사
1860년, 프랑스의 자연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무오(Albert Henry Mouhot)가 이곳의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 짐꾼을 모집하는데 현지인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회피하여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앙리 무오가 처음 발견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도 많은 서양 사람들이 앙코르와트를 이미 방문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보일러보 신부는 1857년 앙코르와트 탐방기인『인도차이나 여행(안남과 캄보디아/ Travel in Indochina, The Annam and Cambodia)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앙리 무오는 1년여 탐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말라리아에 걸려 현지에서 죽는데 이곳 사람들은 ‘앙코르의 저주’라고 무서워하였다고 한다. 앙리 무오의 기록이 책으로 출간된 후 이곳을 방문하였던 몇 명이 더 희생되었고 이어진 폴 포트 정권 때 250만이 희생된 것도 앙코르의 저주의 연장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 전경 / 앙코르 여왕복장 / 앙리 무오
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세워진 이 앙코르 유적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으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밀림 속에 산재해 있는데 훼손이 매우 심각하고 워낙 방대하다보니 가난한 캄보디아 국가 재정으로는 복원을 엄두도 못 내고 유네스코와 몇몇 나라에서 도와주고 있기는 하지만 복원의 진척도(進陟度)는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유네스코에서는 항공기 진동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대형항공기의 취항을 억제하여 20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는 비행기만 취항하고 있는데 비행장이 유적군과 너무 가깝게 건설된 것도 문제로 보인다.
2. 초기 유적 『롤류오스(Roluos) 유적군』
훼손이 심한 롤류오스 유적들
시엠 레아프 남동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롤류오스 유적군은 바콩(Bakong) 사원, 프레야코(Preah Ko) 사원, 롤레이(Lolei) 사원이 있는데 롤류오스는 ‘시바 신과 비슈누 신의 거처’라는 뜻이라고 한다. 9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하여 수도로 정해져 10세기 초까지 앙코르 왕조의 수도였는데 건축물들은 안타깝게도 훼손이 심한 편이었다.
바콩 사원은 ‘시바’에 봉헌된 사원으로 수미산(須彌山/불교의 우주관에서 나온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산)을 형상화한 첨탑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프레야코 사원은 ‘신성한 소’라는 의미로 시바가 타고 다니는 신성한 흰소(난디)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훼손이 심하여 안타까웠다.롤레이 사원은 야소바르만에 의하여 세워진 사원으로 4개의 첨탑이 있는데 각각 부모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지금은 메워졌지만 원래에는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 세워졌다고 한다.
롤류오스 지역은 대체로 흙도 붉고, 돌도 붉은 빛이어서 모든 것이 붉게 보였다.
3 반데이 스레이(Bantaey Srei)
아름다운 건축물 반데이 스레이 사원
붉은 사암의 눈부신 조각이 돋보이는 『반데이 스레이』는 앙코르톰 동북쪽 약 25km 지점에 떨어져 있는데 차로 약 1시간 걸린다. 털털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보면 캄보디아의 농촌모습과 가난이 곳곳에 묻어나는 듯하다. 일 년에 3모작이 가능하고 풍부한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가난에 시달린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사원은 전체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분홍빛 사암으로 지어졌는데 전체가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환상적인 작품으로 채워져 있어 너무나 아름다워서 ‘여인의 성채’ 란 이름이 후일 붙여졌다고 한다.
원래는 시바에 봉헌된 사원이라는데, 1998년인가 미국의 여성관광객 2명이 만류를 무릅쓰고 관광에 나섰다가 이 지역에 근거지를 두었던 크메르루주(Khmer Rouge) 잔당에게 살해당하고 그 후로는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관광이 이루어 졌다는데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4~5년 정도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사원건물은 비교적 보존이 양호한 편이며, 정교한 꽃의 문양에서부터 비슈누와 크리슈나의 전설과 일상생활의 모습까지 마치 연한 나무를 다루어 조각한 듯 들여다보면 볼수록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서 앙코르 유적군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4. 프놈바켕(Phnom Bakheng)
오후에는 저녁놀이 특히 아름답다는 ‘프놈바켕’ 사원으로 툭툭이(오토바이가 끄는 2인승 간이차)를 타고 갔다. ‘프놈’은 ‘산’이라는 뜻인데 ‘프놈’ 이라는 말 자체가 신성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니 프놈바켕 사원은 ‘신성한 바켕산 사원’ 쯤의 뜻이겠다.
바켕산은 높이 67m로 산꼭대기에 사원이 지어져있어 산 전체가 사원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원은 원래 평지에서부터 사원까지 4면에 가파른 계단을 설치했는데 거의 무너져 내려 사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산을 빙 돌며 걸어 올라야 한다. 산 정상에는 거대한 사원(탑)이 들어서 있는데 약 70도 정도 경사의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조심해야 하고 제법 숨이 찬다.
저녁놀이 아름다운 프놈 바켕
산 밑 입구 부근에 지뢰로 다리를 잃거나 눈이 먼 7~8명 초라한 차림새의 장애인들이 고유의 악기로 우리 민요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이곳 말고도 몇 군데서 아리랑을 연주하는 이런 무리들을 보았는데 5달러를 모금함에 넣어 주면서도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년(2006) 캄보디아를 찾은 전체 관광객 중 25%가 한국인이었다는 가이드의 답변이 아리랑을 연주하는 이유이리라.
커다란 돌로 쌓아올린 사원에 도착하여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르면 광활한 밀림이 펼쳐지고 밀림사이로 앙코르와트를 비롯하여 밀림에 흩어져 있는 사원들의 높은 첨탑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 밀림 속에는 사원들이 100개도 넘게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일몰은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거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밀림 속을 빙빙 돌며 오르는 참배로(參拜路)와 거대한 사원 자체가 인상적이랄까... 그런데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이곳의 사원들은 사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알맞을 듯하다. 기도를 드리는 방이라든지 제단이라든지 도무지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그 윗부분의 빈 공간에 수미산을 형상화 한 거대한 첨탑들로 구성된 형식이다. 방이라 이름붙일 공간이 있기는 하나 극히 좁아서 작은 부처나 힌두의 신 하나를 모시면 가득 찬다. 대부분 회랑(回廊)이 있고 벽면마다 가득 찬 정교하고 눈부신 부조(浮彫)들이 눈길을 끈다.
5. 대 왕궁『앙코르 톰(Angkor Thom)』
시엠 립 북쪽 약 6km 지점에 있는 대 왕궁 앙코르 톰은 캄보디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앙코르와트」와 인접하여 있다. 앙코르와트(Angkor Wat)는 단일 건축물로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 때 지어졌고, 앙코르 톰은 수많은 건축물이 모여 있는 거대한 왕궁으로 자야바르만 7세(1200년 경) 때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AD 890년 경 야소바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옮긴 이후 13세기(1431년)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에 점령당하기까지 앙코르 왕국은 이곳을 중심으로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차지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던 강대국이었다.
건축물들은 건축당시 시바(Shiva)신, 비슈누(Vishnu)신 등을 모시는 힌두사원으로 건축되었으나 그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복합된 건축양식과 묘한 조각상들을 볼 수 있으며, 인도의 우주관에 따라 한가운데에 수미산(須彌山/메루산)을 배치한 피라미드식의 사원이 되었다. 앙코르 톰은 거대한 도시를 상징하는 5개의 성문이 있고 폭 100m의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는 남쪽 문을 향하여 들어갔다.
멀리서 바라본 성문은 거대한 얼굴 조각상이 문 위에 조각되어 있어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의 난간은 왼쪽에 선한 신들, 오른쪽은 악마들이 커다란 몸통의 뱀을 들고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돌로 조각하여 세워놓았는데 실물보다도 크다. 힌두신화에 근거한 ‘우유바다 젓기(乳海젓기)’를 하는 모습인데 줄지어 있는 석상(石像)들이 장관이다.
◐ 불교사원 바이욘(Bayon)
거대한 두상조각 / 뱀 몸통을 들고 하는 신들의 줄다리기
앙코르톰 한가운데 위치한 바이욘(Bayon) 사원은 200여 개의 거대한 얼굴 조각상들이 있어 경이롭다. 이 조각들은 사원을 조성한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과 관세음보살의 합성모습을 띄고 있다고 하며, 피라미드식 계단을 오르면 수미산을 형상화한 50여개의 탑이 있고 수많은 얼굴 조각상들이 모든 방향을 향하여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엄숙함과 감동을 준다.
◐ 바푸욘(Baphuon) 사원과 타프롬(Ta Prohm) 사원
바푸욘 사원도 앙코르 톰 안에 있는데 시바신에 바쳐진 사원이라고 하며, 훼손이 심하여 한창 공사 중이어서 입장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팀이 보수를 맡고 있다고 하였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를 숭상하던 그 어머니에게 바쳐진 사원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부분에 사방 벽면이 온통 보석들로 가득 채워진 방이 있었다는데 태국의 아유타야의 침공 때 모두 약탈당하고 지금은 벽면에 보석을 박았던 무수한 구멍들만 남아 있다.
높은 원추형 천정과 사면으로 뚫린 창문을 보면 햇빛이 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의 그 찬란하였을 보석의 광채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바프욘 사원 / 타프롬 사원
처음 발견당시 이 사원은 무수한 열대 나무들의 뿌리로 휘감겨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보수하는 과정에서 나무뿌리를 잘라내다 보니 유적의 붕괴가 두렵고 또 도저히 모두 제거할 수도 없어 나무뿌리들과 함께 그대로 보존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하늘을 찌르는 거목들, 그리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휘감긴 엄청난 크기들의 나무뿌리들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함께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나무줄기와 뿌리들 사이로 드러난 수많은 문들, 미로와 같은 건축물의 설계는 환상으로 다가왔으며, 여기에서 영화 툼 레이더(Tomb Raider)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 왕궁(王宮) 터와 코끼리 테라스
천상의 무녀(舞女) 압사라 / 코끼리 테라스
목조건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는 왕궁은 주춧돌만 남아있고 모두 없어져 그 크기만 짐작할 수 있었는데 왕의 신전이었던 피미아나카스(Phimeanakas), 일명 ‘천상의 궁전’이라는 힌두사원이 우뚝 솟아 있다. 높이 10여 미터의 피라미드형 사원으로 거의 7~80도 경사로 조성된 사면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데 무척 위험하다.
왕이 출정하는 군인들을 사열하였다는 왕궁 앞의 코끼리테라스는 총 길이가 약 300m, 높이가 약 5~6m 정도였는데 앞 광장 쪽으로 조성된 계단의 양 옆은 커다란 코끼리가 3마리 씩 조각되어 있고, 벽면은 수많은 코끼리와 사람들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광장에는 완전무장을 한 코끼리 부대가 도열하여 있고, 이 테라스 위에서 왕이 병사들을 사열하는 장관이 환영처럼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다. 시엠 립 북쪽 약 6km 지점에 있는 대 왕궁 앙코르 톰은 캄보디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앙코르와트」와 인접하여 있다.
서기 890년 경 야소바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옮긴 이후 13세기(1431년)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에 앙코르를 점령당하기까지 앙코르 왕국은 이곳을 중심으로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차지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던 강대국이었다. 건축물들은 건축당시 시바신, 비슈누신 등을 모시는 힌두사원으로 건축되었으나 그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복합된 건축양식과 묘한 조각상들을 볼 수 있으며 인도의 우주관에 따라 가운데에 수미산(메루산)을 배치한 피라미드식의 사원이 되었다.
앙코르 톰은 거대한 도시를 상징하는 5개의 성문이 있고 폭 100m의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는 남쪽 문을 향하여 들어갔다. 멀리서 바라본 성문은 거대한 얼굴 조각상이 문 위에 조각되어 있어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의 난간은 왼쪽에 선한 신들, 오른쪽은 악마들이 커다란 몸통의 뱀을 들고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석조상으로 세워놓았는데 실물보다도 크다. 힌두신화에 근거한 ‘우유바다 젓기(乳海젓기)’를 하는 모습인데 줄지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 신비의 문둥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바로 북쪽에 연이어 문둥왕 테라스가 있는데 기단부의 정교하고 이를 데 없는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문둥왕 좌상 / 문둥왕 테라스 부조
문둥왕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어떤 왕이 밀림에서 싸우다가 뱀의 피가 튀어 문둥병에 걸렸다고도 하고, 또 문둥왕 조각상에는 남성의 심벌과 손마디를 조각하지 않아 문둥왕 조각상이라고도 했는데 나중 조사한 바로는 오랜 세월에 마모된 것이라고도 하는 등 견해가 분분하다.
당시 앙코르에는 문둥병이 얼마나 많이 창궐했는지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문둥병 병원만 100개가 넘었다고 하고 자야바르만 7세 자신도 문둥병 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둥왕 조각상 보다는 기단부의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볼만하다.
◐ 승리의 문
문둥왕 광장 / 승리의 문
코끼리 테라스 건너편, 즉 광장 끝에는 웅장한 승리의 문이 우뚝 솟아 있다. 앙코르톰은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동, 서, 남, 북 문과 승리의 문이 그것이다. 승리의 문은 동문 방향으로 나 있는데 군대의 출정이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맞이하던 문이라고 한다. 문의 좌우로 여러 개의 첨탑이 솟아 있는데 축하 연회 때에는 첨탑 위쪽에 줄을 건너 매고 줄타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승리의 문 아래쪽에는 작은 방이 있어 대신(大臣)들 중에서 이견(異見)이 있을 경우 양쪽 독방에다 가두고 사흘간 물과 음식을 주지 않고 신의 계시를 기다려 사흘 후 더 건강한 사람이 옳다고 판단하였다고도 한다.
코끼리 테라스와 광장
- 앙코르 톰은 이상의 건축물들이 안에 모두 있고, 정사각형의 담장과 그 밖으로는 폭 100m의 악어가 우글거리는 해자(垓子)가 둘러싸여 있으니 하나의 대 왕궁이자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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