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홍콩에서 범람했던, 그리고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던 영화(장르) 가운데 '강시 영화'란 게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영화가 한국에서 인기가 누릴 때 꼬맹이들이 청나라 복장에, 청나라 관리 모자를 쓰고는 콩콩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문방구에선 노란 종이에 붉은 글씨로 쓴 부적이 팔렸고 말이다. 그럼 오늘은 강시영화 속으로 떠나본다.
강시(殭屍)는 죽은 시체를 말한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갑자기 비명횡사하거나 길에서 얼어 죽어 딱딱해진 시체를 말한다. 우리가 보아온 홍콩 강시영화의 특징을 우선 생각해 보자. 일단 강시들은 청 나라 복장을 입고 있다. 죽은 이들이 당연히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마에 노란 부적을 붙이면 꼼짝 못한다. 그게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면 콩콩 뛰어다니며 사람을 해친다. 강시에게 한번 물리면 물린 사람도 강시가 된다. 강시를 죽이기-완전히 박멸-하기 위해서는 민간주술이 이용된다. 찹쌀이 필요하고, 먹줄이 필요하며, 마지막엔 불로 완전히 태워 죽여야한다. 이런 방식은 강시영화 대부분에서 통용되는 소도구들이다.
그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어디에선가, 언제부턴가 전해 내려오는 민간전승 기법 아니겠는가. 물론 이에 대한 전문적인 책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겨우 이러한 스토리가 얼토당토한 창작이 아니라 중국의 민국초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야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몇 고문헌에서는 이러한 '강시'를 다루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주로 이러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동네는 한정적이다. 강시는 청대 복장을 입었지만 대부분 한족(漢族)이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죽은 자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런 시체를 운반하는 방식이 강시의 이야기에 접목된 것이다. 강시을 다루는데 특별한 기술을 익힌 장례사, 즉 법사는 죽은 시체(강시)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이마에 노란 부적을 붙이고 앞에서 종을 딸랑거리며 고향 앞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제한된 지역에서 전해내려오던 강시 이야기는 1980년대 들어 홍콩에서 영화로 부활했다. 물론 기록상으로는 오래 전부터 강시를 다룬 영화가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1980년에 홍금보는 [귀타귀]라는 영화를 만들어 꽤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강시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가 많아졌는지 홍콩에 강시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1985년에 나온 임정영 주연의 [강시선생]이란 작품이 나온 것이다. 九叔 시대적 배경은 민국 초기. 청나라 복장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서구식 복장이 뒤엉켜 있는 작은 도시이다. 구숙(九叔, 임정영)은 조수 두 명을 거느린 묘산술사(茅山術士)이다. 장례사인데 하는 일이 좀더 전문적이다. 장례 절차, 이장 업무, 귀신을 쫓는 구마의식 주재, 그리고 강시에 대한 처리 등의 일을 해낸다. 방금 이 동네 최고 부자 임 선생의 부탁을 받는다. 사업이 부진한 게 아버지 묘자리 문제때문인 것 같다고. 그래서 구숙 법사는 조수를 데리고 묘를 파헤친다. (우리는 관을 수평으로 누이는데 여기서는 수직으로 누이는 법식(法式) 매장법을 볼 수 있다) 관 뚜껑을 열어보니 수십 년 전에 죽은 사람이 전혀 썩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구숙은 길일을 택해 이장을 하기로 하고 일단 관을 집으로 옮긴다. 그날 밤 관속의 시체가 관을 뚫고 나와 임 선생을 죽이고는 사라진다. 죽은 임 선생은 강시가 되어 날뛰기 시작한다. 임정영은 비장의 묘산술을 펼치기 시작한다. 강시 머리에 노란 부적을 붙이고, 강시를 잡기 위해 먹줄을 동원하고 강시를 쫓기 위해 찹쌀을 바닥에 뿌린다. 그리고 마침내 강시를 완전 끝장내기 위해 불로 태워 죽이는 방식이다.
쇼 브라더스 영화에서 곧잘 무술실력을 선보였던 임정영은 이 영화 이후 강시영화, 영환도사 영화의 단골주인공이 된다. 이 영화에서 임정영의 조수로 나오는 두 인물은 허관영과 전소호이다. 허관영은 [미스터 부] 시리즈의 허씨 형제로 유명한 인물. 개성 있는 얼굴로 편안한 연기를 해낸다. 전소호도 나중에는 액션영화 스타로 반짝 인기를 얻었다. 이 영화에서 임 부잣집 딸로 출연하는 이새봉은 초반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강시 박멸전의 조연으로 밀려난다.
이 영화 이후 강시영화는 정말 많이 만들어졌다. 임정영이 출연한 영화로는 강시가족(殭屍家族,86) 영환선생(靈幻先生,87) 일미도인(一眉道人,89), 음악강시(音樂殭屍,90), 강시지존(殭屍至尊,91) 신강시선생(新殭屍先生,92) 구마도장(驅魔道長,93) 등의 영화가 있었고 그 방계, 아류작품들로는 유가량이 쿵푸를 버물러 만든 [묘산강시권](茅山殭屍拳)이나 왕가위 감독이 참여한 [맹귀학당] 등과 함께 '강시삼촌', '강시할아버지' 등등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트윈 이펙트]라는 강시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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