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불경의 번역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고 있는데,
한자어를 음역한 경우에는 ‘한글(한자)’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의역한 경우에는 ‘한글[한자]’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떤 형식으로 되어 있든지 간에,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자의 해독만으로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불경은 당연히 한글로만 표현된 불경이다.
한국인은 한글로만 쓰여진 불경을 그래로 읽고서도 어느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불경은 먼저 한국어에 맞게 쓰여야 하고,
또 불경에서 사용된 용어들도 그 뜻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문 용어들의 상세한 뜻을 알려면 전문 용어 사전을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설사 그 용어의 상세한 뜻을 정확히는 모른다 하더라도,
먼저 대강의 뜻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대불경을 읽어 나가는 데는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번역된 경전에서 한자를 전부 제거하고,
가능한 한 한국어의 일상어로 번역해 보고자 시도해 보았다.
이럴 경우에 생기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사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지만, 우선은 이들 예들을 제시해 두기로 한다.)
1. 동음어와 다의어
① ‘상’: 相, 想, 常
번역에서는 대개 相은 상 또는 모양으로, 想은 생각으로 변역한다.
相도 생각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想도 상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常은 보통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상’으로 번역되었을 경우에는 相인지 想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또 無相, 無想, 無常은 거의 ‘무상‘으로 번역되어 있어, 용어만 보아서는 구별할 수 없다.
물론 ‘상’이나 ‘무상’이 문맥에 따라 ‘相, 想, 常’이나 ‘無相, 無想, 無常’ 가운데 어느 것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경우라도, 불경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구별할 수 있는 것이며,
불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처음 읽는 사람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문맥과 관련된 해석의 문제는 아래의 모든 경우에도 해당된다.)
일단 相은 모양, 想은 생각, 無相은 모양 없음, 無想은 생각 없음, 無常은 무상/항상하지 않음으로 번역해 두기로 한다.
② ‘선’: 善, 禪
禪은 ‘선, 3선, 4선’ 등으로 쓰이고, 善은 ‘선법, 선업, 불선법, 불선업’ 등으로 쓰인다.
따라서 보통은 잘 구별되지만, ‘선’이 善인지 禪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특히 ‘선법’은 보통 善法을 가리키지만, 禪法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리고 ‘불선’은 한국어의 단어로 쓰이지 않는다.
③ ‘계’: 界, 戒
‘色界, 眼界, 地界’ 등과 ‘계, 오계, 계정혜’ 등에서 ‘界’와 ‘戒’가 단독으로 쓰인 것을 ‘계’로 번역한 경우에는 界인지 戒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음, 입, 계’는 ‘5음, 6(/12)입처, 18계’를 뜻하는데, 이 ‘계’가 戒가 아니라 界임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따라서 ‘色界, 眼界, 地界’ 등의 ‘界’는 ‘세계, 경계, 영역’ 등으로 번역할 수 있고, ‘계, 오계, 계정혜’ 등의 ‘戒’는 ‘계율’로 번역할 수 있겠다.
[참고]
계(界)의 갖가지 용법에 대해서는 중아함경_181. 다계경(多界經)을 참고하시오.
https://cafe.daum.net/sutta-nipata/ROxe/181
④ ‘지’: 地, 止, 智, 知
지(地)는 땅 또는 지위, 지(止)는 그침, 지(智)는 지혜, 지(知)는 지식인데, 모두 대개 ‘지’로 번역되어 있다.
⑤ ‘정’: 定, 情
정(定)은 선정이고, 정(情)은 감각기관인데, 모두 ‘정’으로 번역되어 있다.
⑥ ‘이상’: 異相, 離相, 異常
이상에 대한 위의 한자는 각각, ‘다른 모양, 모양을 떠남, 정상이 아님’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를 모두 ‘이상’으로 번역하는 경우에, 구별하기 어려움 점이 있다.
⑦ ‘수’: 數
중수(衆數), 중수견(衆數見), 심수(心數), 심수법(心數法) 등은 대개 음역으로 번역했으며, 잡아함경 번역에서는 속수법(俗數法)을 ‘세속의 수법’으로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에서 ‘수’나 ‘수법’의 뜻을 알기 어렵다. 이 예들에서 ‘수(數)’는 적어도 숫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속수법’은 ‘세속에 속하는 법’으로, ‘중수’는 ‘중생에 속하는 것, 중생의 부류’로, ‘중수견’은 ‘중생이 있다는 견해’로, ‘심수’는 ‘마음에 속한 것’으로 ‘심수법’은 ‘마음에 속한 법, 마음의 작용’으로 번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⑧ ‘신’: 身
‘身’은 여러 뜻으로 쓰이는데, ‘6識身, 6觸身, 6受身, 6想身, 6思身, 6愛身‘등의 ‘身’은 복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 경우의 ‘신(身)’은, 음역이든지 의역이든지 간에, 번역할 필요가 없고 번역해서도 안 된다.
신[身]
① 산스크리트어 kāya 몸. 신체.
② 산스크리트어 ātman 나. 자신.
③ 산스크리트어 janma 생존.
④ 산스크리트어 kāya 신근(身根)의 준말.
⑤ 산스크리트어 kāya 인식 주체.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주체.
⑥ 산스크리트어 kāya 모임·종류의 뜻으로, 어미에 붙어 복수를 나타냄.
[네이버 지식백과] 신[身]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곽철환)
⑨ ‘근’: 根
6근(根)의 근은 감각기관이고, 5근(根)의 근은 능력인데, 모두 ‘근’으로 번역되어 있다.
⑩ ‘각, 관’: 覺, 觀
각(覺)은 경전에 따라 수(受) 대신에 쓰이는데, ‘느낌’을 가리킨다. 관(觀)은 ‘관찰함’이다. 아함경의 선정에 관한 경에서는 覺은 ‘거친 생각’, 觀은 ‘미세한 생각’의 뜻이며, 그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렇듯 경전의 내용에 따라 동일산 단어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