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제2권
13. 불설한거경(佛說閑居經)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류국(拘留國)의 여기저기를 유행하시면서 대비구 대중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조금씩 가시다가 성 안쪽에 있는 마을에 다다르셨다. 거기에는 자연의 좋은 소리가 들렸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가운데 머무르셨다.
그때 그 마을에 범지장자(梵志長者)가 있었는데 무앙수의 사람들과 함께 이런 말을 들었다.
‘위대한 적정의 뜻을 가진 이가 있는데 성은 구담(瞿曇)이고 석가족의 아들로서 나라를 버리고 유행하다가 성 안쪽에 있는 마을에 왔는데, 대비구 5백 명과 함께 있다.
그는 깨달은 이로서 대성인이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시방에 두루하여 선양되지 않은 곳이 없다. 의심하던 자는 놀라서 전전긍긍하게 되고 흔쾌히 그를 공경하게 된다. 그를 일컬어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導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라고 부른다.
하늘과 인간과 여러 악마와 범천을 사랑하여 하늘과 사람을 모두 교화하고 여섯 가지 신통력을 성취했으며 홀로 3계(界)를 활보한다.
[여섯 가지 신통력: 6통은 신족통(神足通)ㆍ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ㆍ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가르침은 처음 하는 말도 옳고 중간에 하는 말도 옳고 끝에 하는 말도 옳다. 그 뜻을 분별해서 미묘하게 진리를 보고 청정행을 닦았다.
이와 같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뵈올 수 있으면 좋은 일이고 경사이며 만일 예배를 드리고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 공덕이 무량하다.’
그때 범지 장자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발아래 예배를 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서 경건하게 인사의 말씀을 드렸다. 그곳에는 또한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리는 사람도 있고 겸양의 예를 다하는 사람도 있고 멀리서 보며 묵묵히 있는 사람도 있고 한쪽에 물러나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범지 장자에게 물으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사문은 어떤 때 공양을 받을 수 없는가?’라고 하면
어찌 하겠는가?”
범지 장자는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문 범지가 눈으로 보는 미묘한 색에 대해 집착하고,
귀로 듣는 다섯 가지 소리에 대해 탐하며,
코로 맡는 좋은 향기를 갈구하며,
입으로 맛보는 좋은 맛에 대해 아쉬워하며,
몸으로 섬세한 것과 부드러운 것에 대해 의지하고,
뜻을 모든 법에 두었으되,
욕심을 버리지 않고 은애를 탐하고 질투를 하며 불타는 듯한 고통을 싫어하지 않고 구하는 이러한 사문 범지는 공양을 받거나 존경을 받을 수가 없느니라.”
범지 장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와서 묻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그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옳은 뜻이며 법다운 교화에 합당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들은 색깔[色]과 소리[聲]와 향기[香]와 맛[味]과 촉감[細滑]과 법(法)에 집착하고 사랑에 집착하고 탐하여 구함에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무리들은 5음(陰)과 6쇠(衰)에 미혹되고 관작(官爵)과 봉록(俸祿)이나 재물과 부귀 등을 구하는 데 게으르지 않아서 세속 사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6쇠(衰):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6경(境)]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무리들에게는 공양을 올려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범지 장자에게 물으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대에게
‘어떤 사문 범지에게 마땅히 공양을 올리고 받들어 공경하고 존중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그대는 어찌 하겠는가?”
범지는 세존께 아뢰었다.
“그는 5음과 6쇠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집착하지 않고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잘 익혀야 합니다.
그들은 덕을 쌓고 온화하며 화순하니, 이러한 사문 범지들에게는 공양을 올리고 받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 안의 마을에 사는 범지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와 같이 말하는가?
어찌 이러한 무리들이 있기에 알고서 사문 범지가 이미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떠나도록 가르치며,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에 대한 생각과 사랑에 대한 집착과 마음의 번뇌로 인해 일어나는 번열과 여러 가지 정(情)을 싫증내지 않는 것에 대해 떠나도록 가르친단 말인가?”
범지 장자가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저희들은 여러 번 사문 범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단정하고 특히 좋은 모습이며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에 대한 욕구를 버리고 한가한 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나무 아래에 앉아 있든지 아니면 들판의 무덤 사이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나쁜 악을 멀리 합니다. 생각하여 구하는 바가 없이 홀로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물질[色]ㆍ느낌[痛:受]ㆍ생각[想]ㆍ지음[行]ㆍ의식[識]의 여러 법에 대한 생각을 영원히 없애고 구하고자 하는 것을 단절하면서 공(空)에 대한 생각만을 합니다.
이러한 사문 범지들을 늘 살펴보면 그들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에 대한 생각을 버리도록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들으니 그것이 기쁨이 됩니다.
사랑에 대한 집착은 영원히 소멸되고 색욕에 대한 생각과 여러 가지 갈망하는 것에서 떠나버립니다. 그리하여 알맞은 때에 공양을 올리고 받드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5음(陰)과 6정(情)도 또한 그렇습니다.
제가 이러한 사문 범지들을 살펴본 바로는 그들은 한적한 곳에 머무르며 나무 아래에 앉거나 들판이나 무덤 사이에 앉아 홀로 좌선을 합니다.
이미 눈으로 보는 색깔과 귀로 듣는 소리와 코로 맡는 향기와 입으로 보는 맛과 몸으로 느끼는 감촉과 마음으로 아는 법에 대한 것을 아주 버리고 여러 가지 덕의 근본을 쌓으며 공경할 줄 알고 순종하며 화목하고 단정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우리들은 봅니다.
이런 사문 범지들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또 사람들에게 그것을 버리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들은 오늘 스스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해서 다섯 가지 계율을 받고 청신사(淸信士)가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