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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승론 하권
2. 기론공품(4)
[보살의 몸, 나후라]
【문】 나후라는 응화의 몸인가, 아니면 실제의 몸인가?
【답】 두 가지 다 허물이 없다.
보살의 몸은 곧 천신(天身)이다.
『본기경(本起經)』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여래는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세상에 출현하셨으며, 천신으로 하여금 법륜을 굴리게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풀어져 나태한 마음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천신으로 하여금 정각을 이를 수 있도록 하신 것이지, 우리 범부가 능히 정각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시지는 않았다.
따라서 천중천(天中天: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세간에 모습을 나타내시어 부모와 아내와 자식 및 권속이 있게 된 것이다.
만약에 환술에 의해 화현되어 나후라가 있게 되었다고 해도 이 역시 허물은 없다.
또한 실제의 사람이었다고 해도 역시 허물이 없다.
보살의 방편은 불가사의한 해탈을 얻어 대지(大地)에 머무르고 중생을 성취하여 서로 부모ㆍ형제ㆍ처자를 화생케 한다.
【문】 나후라는 보살인가?
【답】 비단 나후라 혼자만이 보살인 것은 아니고 가비라(迦毘羅)국 사위성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석가족 아이들과 아난ㆍ난타ㆍ제바달다ㆍ아니룻다 등 모두가 큰 힘을 지닌 불퇴전 보살들이다.
바라루지(婆羅樓志)는 『본행경』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고 있다.
대장부든
부처님께서 화현시킨 것이든
제바달다는
대선(大仙)과 같은 도반이네.
혹은 아버지와 자식이 되거나
항상 집안의 권속이 되니
보살에게는 큰 힘이 있어
임기응변하여 이렇게 될 수 있다네.
부처님과 다른 사람들과
보살 등 모든 대선이며
아난과 난타 등과
아나율과 석마남(釋摩南)이며
발타(跋陀)와 질사(桎沙)와
우파리와 질려(桎麗) 등은
아버지와 자식과 권속이 되어
모두 함께 위요하네.
[보살의 몸, 제바달다]
【문】 제바달다는 5백 번의 몸을 받는 동안에 항상 보살과 더불어 큰 원수로 지내왔는데, 어떻게 다시 보살이라 호칭할 수 있습니까?
【답】 제바달다는 부처님의 원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제바달다가 부처님의 원수라면, 보살은 선을 닦는 사람인데 제바달다는 항상 모든 악을 지어 왔으니, 어떻게 세세생생 보살과 함께 서로 만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제바달다는 보살의 원수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각기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은 동쪽으로 나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서족을 향해 가면 걸음걸음마다 서로 멀어져 항상 서로 위배된 것과 같으니, 어떻게 반려가 되어 서로 만날 수 있겠는가?
만약 제바달다가 보살의 원수라면 여래 세존에게는 커다란 허물이 있게 된다.
【문】 어떤 허물이 있게 되는가?
【답】 만약 그러하다면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가 아니고 신력(神力)이 없으며 어리석은 이가 된다. 여래는 중생을 옹호할 수 없고 금강신이 아니며, 곧 나머지 업에 대해 끊어 다할 수 없다.
무엇으로 부처님께서 일체지가 아님을 알 수 있겠는가?
여래가 기사굴산에 있을 때 제바달다가 바위를 밀어 바위 밑에 깔리게 되었는데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따라서 ‘여래가 일체지가 아님’을 마땅히 알 수 있다.
‘신력(神力)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제바달다가 방망이로 내쳐서 살해를 입혔어도 금하여 제지하지 못하였으니, 이로써 ‘신력이 없음’을 마땅히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어리석은 이’라고 하는가?
해로움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피해야 함을 알지 못했으니, ‘어리석은 자’임을 알 수 있다.
‘중생을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제바달다가 오역죄를 지었는데도 구하여 제도하지 않았으니, 이로써 ‘중생을 옹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금강신이 아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륜성왕은 적은 복의 과보로도 원한의 해로움이 없는데, 하물며 여래이겠는가?
전륜성왕이 돌에 눌려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여래가 금강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업을 짓는 데 있어 끊어 다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른 사람이 때렸으니 ‘여래에게는 나머지 업이 있어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에 부처님으로 하여금 이러한 허물을 없게 하려면 여래는 곧 마땅히 원수를 멸해야 하지만, 선교방편이 있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하여 거스르는 해로운 일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니 ‘업보는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이다.
또한 다시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여래에게 귀의하여 부처님께 구호해 주도록 간청하게 하려 함이다. 또한 미래세에 유능하고 귀한 사람이 되어 불법(佛法)에 들어가 그 세력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다시 채찍이나 막대기로 사람을 때리게 함으로써 이들 중생으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내게 한다. 즉,
‘여래의 몸도 훼범되어 핍박과 해를 받는데, 하물며 우리 범부와 같이 박복한 자이겠는가?’
그대는 역죄(逆罪)라고 말하겠지만, 이는 단지 보살의 선권방편(善權方便)이다.
이와 같은 역죄는 그것에 속하는 명칭에 비록 다섯 가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가 존재하니, 승단을 파괴하고 부처님을 해(害)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업은 세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바달다는 대빈가라보살(大賓伽羅菩薩)이었는데, 중생이 역죄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두 가지 업을 지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응하는 바에 따라 업을 지어 중생을 교화하며, 악마가 짓는 업과 동일한 업을 나타내 보인다.
악마 파순(波旬)으로 하여금 세 명의 옥녀(玉女)로 화현케 하여 여래의 탐욕이 없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게 하고,
또한 칼과 검과 온갖 창들을 비 내리게 하여 여래의 진에(瞋恚)없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게 하며,
또한 탐애와 어리석음이 없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게 한다.
[보살의 몸, 악마]
【문】 천마(天魔)가 다가와 여래의 바른 깨달음(正覺)의 마음을 무너뜨리려 하는데, 어떻게 당신은 ‘여래의 탐애 없고 진에 없음을 나타내 보이려 하는 것’이라 말하는가?
【답】 여래의 바른 깨달음의 마음은 저지되거나 끊어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만일 여래가 악마의 경계를 넘어 벗어나려 할 때 오히려 악마에 의해 저지되었다고 한다면, 대범천왕이 또한 악마의 경계를 벗어나려 할 때 어떻게 저지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리(菩提)는 도(道)의 오묘한 과(果)이니, 이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이도 없고 또한 이와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이도 없으므로 이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악마의 요란(優亂)에는 무릇 두 가지 뜻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실재하는 악업이니 악마에 의해 요란됨을 말하고,
둘째는 신학(新學)으로 나아가게 함이니 마음을 견고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악마가 핍박과 해를 입히고 시험하는 경우에 이 악마는 실제로는 보살이며, 진실한 선지식으로써 악마의 몸 모습을 지어 다가와 공덕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비유하자면, 길을 갈 때 험난한 곳을 만나면 두려움 때문에 재빨리 지나가는 것과 같고,
마치 소를 좋아하지만 약간의 채찍과 막대로 길을 들여 이로움을 얻는 것과 같다.
【문】 천마(天魔)도 보살일 수 있는가?
【답】 비단 이 세계의 악마가 보살일 뿐만 아니라 시방세계의 마왕들 대부분이 보살이니, 『유마힐경』에서는 시방세계의 마왕들은 대부분이 불가사의해탈보살에 머문다고 설한다.
손ㆍ발ㆍ머리ㆍ눈ㆍ골수ㆍ뇌를 요구하는 말을 하는 이들은 모두 불가사의해탈보살에 머문다.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아니라면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코끼리가 밟아서 다진 것은 나귀가 미칠 바가 아닌 것과 같으니, 오직 보살들만이 행할 수 있을 뿐이다.
이상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이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이 갖가지로 행하는 바를 잘 알아야 한다.
그 중생의 공덕과 지혜를 나타내려는 방편력이 있기 때문에 죽이는 일이나 죽이는 사람 또는 구걸하는 일이나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을 짓는다.
【문】 만약에 나후라가 실제로 보살이라면 무엇 때문에 다시 성문ㆍ아라한이라고 말하는가?
【답】 보살을 또한 성문이라고도 하고 아라한이라고도 만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듣게 하기 때문에 성문이라 하고,
일체의 천상ㆍ인간ㆍ아수라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하기 때문에 응공이라 하니,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성문ㆍ아라한의 모습을 나타낸다.
[보살의 몸, 성문]
【문】 나머지 모든 성문들도 보살인가?
【답】 나머지 모든 성문들 또한 보살인 자들이 있으니, 예를 들면 『법화경』에서는 사리불 등 5백 명의 제자가 다 보살이고 모두 장래에 부처가 될 예정이며, 일체의 성문은 다 아비발치보살(阿鞞跋致菩薩)이다.
이는 『불퇴전법륜경』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하기 때문에 보살이 모두 성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문】 일체의 성문은 다 성불할 수 있는가?
【답】 성문이 성불한다는 이것 또한 아무런 허물이 없다.
【문】 왜 허물이 없는가?
【답】 먼저 결장(結障: 번뇌장)을 끊은 다음 나중에 지장(智障: 소지장)을 끊고 모든 지(地)를 청정하게 닦아 일체지(一切智)를 향한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문】 곡식의 싹을 태우듯 번뇌의 결박을 불살라 없애면 어떻게 성불할 수 있는가?
【답】 만약 그대가, ‘번뇌의 결박을 끊어 없애도 성불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와 일체의 중생은 다 모든 번뇌를 갖추면 응당 부처가 될 것이다.
만약에 그대의 뜻하는 것이 ‘번뇌를 갖춘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라면, 번뇌를 떠나면 마땅히 성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곡식의 싹을 태우듯 번뇌의 결박을 불살라 없애도 성불할 수 없다‘고 한 말은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나는 번뇌의 종자를 갖추지 않게 하여 불법(佛法)의 싹을 틔우려 하지만, 그대는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전도되게 이해하기 때문에 번뇌를 불법의 종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라한은 처음 먼저 번뇌장을 끊고 나중에 지장(智障)을 제거하여 보리도(菩提道)를 닦아 정각(正覺)을 이룬다.
아라한 가운데는 얼마간 지장(智障)을 끊은 이도 있고 끊지 못한 이도 있으며,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이도 있고 무쟁삼매를 얻지 못한 이도 있으며,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이도 있고, 다섯 가지 신통을 얻지 못한 이도 있으며,
네 가지 변재를 얻은 이도 있고 네 가지 변재를 얻지 못한 이도 있으며,
선정에 들고 나는 것에 자재를 얻은 이도 있고 선정에 들고 나는 것에 자재를 얻지 못한 이도 있다.
왜냐하면 일체의 지장(智障)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쟁삼매(無諍三昧): 범어로 araṇa-samādhi이다. 무쟁삼매란 ‘공’을 잘 이해하여 피(彼)와 아(我)를 함께 잊고 중생을 고뇌케 하지 않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문】 지장이란 무엇인가?
【답】 출세간의 무명(無明)을 지장이라 하니, 사라류지(娑羅留枝)의 본행(本行) 중에서 설한 게송과 같다.
무명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세간과 출세간의 무명이다.
세간의 무명행은
현성(賢聖)은 이미 멀리 벗어났으나
어리석은 이는 오묘한 이해가 없어
여실하게 알 수 없네.
이 어리석은 심식(心識)을 의지하면
법계의 모든 험난한 곳에 처하게 되고
그 본원(本原)에도 이르지 못하니
어떻게 결정적으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법신(法身)이 열반을 증득함에 관해서는
오로지 부처님만이 알 수 있네.
부처님 바가바(婆伽婆)께서는 그것의 체성을 잘 아시어 지혜와 대비(大悲)로 번뇌를 끊게 하시니, 이를 성문이 지장을 끊는 것이라 한다.
성문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선정(禪定)을 부지런히 닦는 근기가 하열한 사람이고,
둘째는 보리를 회향하여 지장을 끊을 수 있는 근기가 뛰어난 사람이다.
선(禪)을 행하기를 즐겨하는 이에 대하여 『보량경(寶良經)』에서
“수정이 끝내 마니보주를 될 수 없듯이 성문이 선을 닦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끝내 보리과(菩提果)를 이룰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지 내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일승(一乘)이나 다승(多乘)에 관해 지금 단지 간략하게 그 뜻을 거론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밝혀 위배되지는 않게 하였으나 아직은 내가 완전히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장자(長者)가 먼 길을 떠나 피로가 극에 이르자 화성(化城)을 지어 나타낸 것과 같이, 이 경 가운데서는 단지 일승만 있고 실제로 삼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도 역시 스스로
“오직 일승만이 있고 다시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문】 여래는 어떤 행(行)으로 번뇌의 부림을 끊어서 성불할 수 있는가?
【답】 경 가운데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은 자는 일 겁을 머무르든 많은 겁을 머무르든 생사를 다한다”고 하셨으니,
일체의 모든 경전에서 다 이와 똑같이 설한다.
만약 그대가 번뇌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나를 친애하여 믿고 귀의한다면 응당 그대를 위해 말해 주겠다.
【문】 수명에 머문다[住壽]는 것은 어떠한가?
【답】 아라한은 번뇌가 없으므로 8주(八住)의 보살과 마찬가지로 여의족을 잘 닦기 때문에 마음이 뜻하는 대로 세상에 머물거나 생사를 다해 마친다. 나후라ㆍ빈두로 등은 세상에 머무는 일을 다할 수 있으나, 이들 몸으로 세상에 머무는 것은 다시 나머지 다른 몸이 머무는 것이니, ‘실제의 몸이 세상에 머문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만약에 변화신이 다겁 동안 수명에 머문다면 이는 이치에 맞는다.
또한 『승기(僧祇)』에서는 청안여래(靑眼如來) 등이 보살을 교화하기 위하여 광음천(光音天)에서 모든 성문 무리들과 함께 무량백천억 나유타겁 동안 머무니, 그 천상[天]의 성문은 다겁 동안 수명에 머문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세계에도 역시 성문이 존재하여 이와 같이 머물 수 있다.
성문이 번뇌가 없으면 이와 같이 머물고, 8지(地)보살도 또한 이와 같이 생사에 머무는 것을 다함을 알아야 한다.
[일생보처, 미륵보살]
【문】 부처님께서는 미륵보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라 말씀하셨다.
이러한 인연이 있으니, 보살에게는 태어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태어남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답】 태어남이 있다는 말은 희론의 법이다.
보살마하살은 방편력이 있기 때문에 몸을 받아 태어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예컨대 유마힐은 미륵에게 태어남이 없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어떻게 여래께서 훌륭한 이에게 수기하여 일생(一生: 한 번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남)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하여 과거에 태어나거나 미래에 태어나거나 현재에 태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일 과거에 태어난 것이라면 과거에 태어난 것은 이미 멸하였고, 미래에 태어날 것이라면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에 태어나는 것이라면 이 또한 머무는 바가 없기[無住] 때문에 과거ㆍ현재ㆍ미래를 관찰해 보아도 다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8주 보살은 제2 아승지겁 동안 유작행(有作行)을 다하여 무작행(無作行)에 머문다고 말하며, 아라한이 번뇌의 결박을 끊는 것에 관해서는 게송으로써 말한다.
초발의(初發意)이래로부터
방편으로 모든 지(地)를 수행하여
제8지에 이르면
자재하게 모든 번뇌 결박을 다할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