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하권
[잘난 체하고 교만한 자]
이에 샤야말 도사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뒷날 5탁악세(濁惡世)에 잘난 체하고 교만한 자가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족성자(族姓子)여, 뒷날 5탁악세의 중생으로서 낮고 천한 자들이 잘난 체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4선(禪)을 갖추지 못하고서 스스로 훌륭한 체하기 때문이다.
5탁악세에 떨어질 그때엔 다시 비구를 공양하지 않음으로써 이 여러 비구들은 뜻을 안정하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제4선에 이를 수 있겠는가?
저 뒷날 세간엔 모든 결함과 어려움이 있음으로 해서 5탁악세가 되어 스스로 훌륭한 체하고 교만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족성자여, 모든 선남자는 두 가지 일이 있어서 교만을 일으키니,
이른바 두 가지란,
첫째는 스스로 지혜를 자처하기 때문에 잘난 체하고,
둘째는 의복과 음식을 공양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계율ㆍ지혜ㆍ공덕을 나타내어 곧 그 존재[有]에 떨어진다.
지혜로 자처하는 그 잘난 체만은 바로 여래의 법을 비방하는 것이어서 마땅히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질 것이다.’
그는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잘난 체하는 뜻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대답하였다.
‘≺범부로서 그 뜻이 산란하여 안정되지 않는 것을 아라한이라고 이르지 않는다.≻는 이런 말을 가령 듣고서 두려워하는 자라면 그는 곧 잘난 체함인 줄을 알 것이며,
범부인 사람이 ≺여래를 볼 수 있어도 아라한을 볼 수는 없다.≻라고 하는 이런 말을 가령 듣고서 두려워하는 자라면 그 역시 잘난 체함인 줄을 알 것입니다.
≺범부가 중우(衆祐)를 위해서는 마땅히 보시하고 슬기로운 아라한에게는 보시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는 이런 말을 듣고서 가령 두려워하는 자라면 그 역시 잘난 체함인 줄을 알 것이며,
≺여래가 범부를 찬탄하긴 하여도 아라한을 찬탄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이런 말을 듣고서 가령 두려워하는 자라면 잘난 체함인 줄을 알 것입니다.
그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집착함이 없는 이다.
이른바 세간에서의 최후(最厚)일 것이고, 가령 번뇌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 있다면 이는 아직 집착되어 있는 이라, 세간의 중우(衆祐)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행을 짓는 것이 있다면 곧 잘난 체함이 될 것이니, 일체 법을 말로써만 느끼는 이것이 이른바 잘난 체함이다.
일체를 알지 못해 끊는 것도 없고 행하는 것도 없고 증득함을 짓는 것도 없어야만 이것이 바로 진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잘난 체하는 자의 말]
그는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지혜로써 잘난 체하는 자는 어떠한 말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싸울 것도 없고 싸우지 않을 것도 없으면 교만이라 하지 않으니,
마치 사자가 온갖 짐승의 왕으로서 한 번 부르짖을 때 일체가 다 그 음성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비구로서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는 일체 음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른바 음성이란 부르는 소리에 대한 메아리의 대답과 같은지라,
그 메아리는 마음과 뜻과 의식이 없고 인연의 화합 때문에 그 음성의 메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성자여, 마음과 뜻과 의식은 저 음성의 메아리처럼 분별하는 것이 아니니,
모든 인연에 따라 음성은 다 메아리를 응하여 퍼지는 것이고,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저 부처님의 음성도 오는 데가 없고,
외도들의 음성도 근심할 것이 없으며,
부처님의 음성에도 뭇 음성이라고 깨닫지 않고,
모든 성내거나 결함 있는 음성이라도 뭇 번뇌의 메아리를 근심하지 않는 만큼
일체 음성은 가고 오는 것과 근본 되고 종말 되는 의식이 없습니다.
인(印)은 곧 즐겨 하는 것 없는 인이고,
모든 말에 있어서 높음도 낮음도 없는 인이고,
이 인은 평등을 세우는 인이고,
그 모양이 자연스러운 인이고,
한 가지 인으로써 법계에 들어가 평등하게 거느리는 인이고,
파괴함이 없는 인이고,
진리 그대로 머묾이 없는 인이고,
참되고 공한 이치의 인이고,
3세의 평등한 인이고,
생멸이 없는 인이고,
자연 그대로 나타나는 인이다.
이 인으로써 모든 법을 인하기에 즐겨 할 것도 즐거움도 없고 잘난 체할 것도 없으니,
비구가 이것을 듣고서 의심하지 않고 망설임이 없다면 그는 나[我]라는 것을 얻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