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하권
13. 도륵범지경(兜勒梵志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오리산(於梨山)에 계셨다.
그때에 칠두귀(七頭鬼)장군이 격마월귀(鵙摩越鬼) 장군과 자기가 다스리는 구역에서 진귀한 보물이 나면 서로 말해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때 격마월귀 장군이 다스리는 구역의 연못에서 한 연꽃이 피었는데 잎이 천 개이고 줄기가 수레바퀴처럼 굵었으며 전체가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격마월귀 장군은 곧 오백 명의 귀신들을 거느리고 칠두귀 장군이 있는 곳으로 와서 말했다.
“그대는 내가 다스리는 곳에 있는 연못에서 잎이 천개 이고 줄기가 수레바퀴만큼이나 굵으며 전체가 황금빛을 띤 연꽃이 핀 사실을 아시오?”
칠두귀 장군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대가 어찌 아리오. 내가 다스리는 곳에서도 역시 신묘하고 귀한 보배라 할 수 있는 정각(正覺)을 이루신 여래(如來)께서 나오셨다는 사실을….
여래께서는 수행하여 삼활(三活:삼해탈문)을 건너셨으며, 설법하시어 모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안락과 위없는 법열(法悅)을 얻게 하셨고, 이미 보배가 나타났으니 이 어찌 그대의 보배에 비기겠는가?
이 달 보름에 계율을 말씀하여 죄를 풀어주신다고 하네.”
이에 격마월귀 장군이 칠두귀 장군에게 대답했다.
이 달 보름은 크게 맑은 날이 되어
밤의 밝기가 대낮같이 되어지이다.
세존을 대체 무슨 수로 찾을까.
그 어디에 계신지 보이지 않으시니.
세존께선 지금 왕사국에 계시면서
마갈 땅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치시네.
일체를 보시어 고통을 끊으시고
현상계의 진리를 환히 꿰뚫어 보시네.
고통에 이어 다시 고통이 생기는데
고통을 끊어 다시는 생기지 않네.
속히 팔통도(八通道)를 듣고
원망이 없기를 감로처럼 바라노니
이제 가서 함께 공경히 예배하세
이 분이야말로 우리의 스승일세.
마음으로 도를 배우면
일체의 유무가 그치나니
어찌 미움과 사랑이 있겠는가.
생각하는 바에 마음이 따라가네.
행주좌와에 뜻을 굳게 지니고
마음이 고요하여 가진 것이 없으니
미움도 사랑도 모두 사라지고
생각이 비니 어디에도 끌려가지 않네.
남의 것을 탐내도 취하지 않고
대상에 의지해도 고뇌하지 않네.
모든 것을 버려도 참다운 행실 있고
은혜를 베풀어도 집착함이 없네.
탐욕을 버려서 취하지 않고
꿈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가엾이 여기네.
망념을 끊어 삿된 집착 하지 않아도
괴로움을 느끼나니 무엇을 몸소 해야 할까.
입을 잘 지켜 남을 속이지 않고
질투심을 끊어 나쁜 평판 없고
정도를 지켜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생각을 비워 남과 다투지 않고
입을 잘 지켜 마음을 속이지 않고
질투하지 않음에 나쁜 평판 끊어지네.
행실을 잘 지키니 어찌 남에게 아첨하겠으며
모든 것을 비웠으니 남이 나를 괴롭히랴.
진정 사랑과 욕망에 물들지 않으면
마음은 티없이 깨끗하기만 하다네.
모든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고
진리에 머물러 지혜롭게 생각하네.
진정 삼활(三活)을 얻고
행하는 바가 모두 청정해졌으니
일체를 끊어서 집착하지 않으니
진정 다시는 세상에 나지 않게 되었네.
삼활의 진리는 이미 보았으니
행하는 바가 깨끗하여 더러움 없네.
행법(行法)을 남김없이 성취하여
진리에 따라 자재로이 마음이 고요하네.
존귀한 덕성은 선행(善行)에 머물고
몸과 입의 업이 모두 이미 고요하고
부처님께서 숲 속에서 선정에 드나니
모두 가서 구담(瞿曇)을 뵈옵세.
진인(眞人)은 녹전장(鹿★ (足+專) 腸)이라
적게 먹어 나쁜 탐욕 없애나니.
어서 가서 해탈법을 물어 보세
고통을 끊고 어떻게 해탈하는지
부처님을 우러르니 사자와 같아
모든 공포 남김없이 사라지니 부처님께 머리숙여 예배하세나.
칠두귀장군과 격마월귀장군이 각기 오백 명의 귀신을 거느리니 합하여 천 명이나 되었다. 모두가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한 쪽에 섰다.
격마월귀장군이 문득 게송으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인(眞人) 녹전장(鹿★ (足+專) 腸)은
적게 잡수시고 평등한 마음을 행하시며
거룩하게도 나무 사이에서 선정을 익히시니
저희들은 구담(瞿曇)께 아뢰옵니다.
이 고통은 어디서부터 멸해지며
또한 어디서부터 벗어나야 합니까?
의심을 끊고자 분명한 도리를 묻자옵나니
어찌하여야 벗어나서 고통이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고통을 끊어서 없애려 하면
이렇듯 고통을 다하는 도를 행하되
의심을 버리고 묘한 말씀 지니어
이치[義]대로 행하면 그 고통 없어지리.
격마월귀장군이 다시 여쭈었다.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으며
누가 집착할 만한 것들을 만들었습니까?
누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만들었으며
누가 세상의 고통을 만들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육조(六造)가 이 세상을 만들었고
육조가 집착할 만한 것을 만들었으며
육조가 세상에 있는 것을 만들었고
육조가 세상의 고통을 만들었느니라.
격마월귀장군이 다시 여쭈었다.
누가 이 세상을 벗어나
밤낮으로 흘러 멈추지 않으며
집착도 매달리지도 않고
뉘라서 깊은 못에 빠지지 않으리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였다.
누구든지 지계[持]를 닦아 갖추고
지혜로운 생각을 닦아 행하되
안으로 기억하여 의식 속에 간직하면
이 공덕으로 바라밀[無極度]을 얻으리.
이미 세상을 생각하는 욕심을 여의어
색이 모인 곳엔 가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매달리지도 않으면
이것이야말로 연못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격마월귀장군이 다시 물었다.
어디서부터 육향(六向)과 육환(六還)이며
어떤 것이 가함과 불가함이며
어떤 것이 아픔이며 또 즐거움이며
어떤 것이 남음없이 멸해 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육환과 육향은
생이면서도 생함이 아니어서
이름조차 멸하여 이미 색도 없나니
이미 다했는데 무슨 남음이 있으랴?
크게 기뻐하면서 길을 걸어갔네.
대장군 칠두귀(七頭鬼) 등이
중대한 은혜를 갚을 기회를 만나
무리를 인도하여 큰 어른께 뵈오니
그의 법보시 위없이 높네.
지금의 귀신 무리 일천 대중이
모두가 합장하고 제자리에 섰는데
모두가 몸을 굽혀 스스로 귀의하면서
세존 큰 스승 위하네.
이제 모두 하직하고 떠나기를 구할 때
제각기 제나라에 돌아가서 정치를 하겠다면서
모두 정각(正覺)에게 예하여
법을 기억하고 법에 귀의하였네.
그때에 좌중에 도륵(兜勒)이라는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그가 생각하기를
‘열반[泥洹]에서 후퇴함[脫]은 몸[支體] 때문이다’ 하고는
이로 인하여 의혹을 일으켰다.
부처님께서 곧 그의 마음에 의심이 생긴 것을 아셨다.
곧 한 부처님을 변화로 만들어내니 단정하여 형(形)과 호(好)를 견줄 데 없으며 보는 이마다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형상이 하늘무리의 몸보다 뛰어나서 서른두 가지 대인상(大人相)과 자마금색(紫磨金色)이 있고, 또 대법의(大法衣)를 입은 제자가 있는데 그 역시 변화로 사람을 만들어내었다.
변화한 사람[化人]이 이내 말을 하면 제자도 따라 말하고,
제자가 말을 하면 변화한 사람도 말을 하는데
부처님께서 변화해낸 사람은 변화로 만든 사람이 말하면 부처님은 묵연(默然)히 계시고,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변화로 만든 사람은 묵연히 계셨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모두가 망념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변화한 부처님[化佛]이 문득 합장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현자 신유(神兪)에게 묻노니
고요함조차 멀리 하여 기쁨이 충만하시니
어디서부터 배워야 적멸을 깨달아서
세상에 있는 것 모두 받지 않으리까?
본래 욕심 하나에서 아상[我]을 많이 나타냈고
하나의 꾸밈[綺]에서 모두가 어지러웠고
차지할 수 있다면 모든 애욕 받아 드리나
모두가 변화따라 무너짐을 항상 느껴 압니다.
그대로 두고도 자신이 부족한지
아니면 동등한지 스스로 아시고
대중의 칭찬과 명예를 차지해도
거기에 끄달려 도도한 체 않으시네.
안에 있건 밖에 있건
모든 법 이미 아셨고
어디서나 힘써 정진하시되
얻은 것도 취한 것도 모두 없으시네.
또한 스스로 수행(守行)하여 적멸을 구해야지
남으로부터 적멸 구하는 일은 배우지 말게.
안으로 의식을 모아 열반을 생각하시고
일정한 곳을 따라 들어가지도 않으셨네.
설사 바다의 복판에 계신다 해도
좌도가 없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그밖의 동작도 그러하여서
식(識)과 의(意)의 증감이 없으시네.
원컨대 큰 지혜의 눈으로
이미 증득하신 법을 다시 저들에게 나투시고
원컨대 어질고 착하고 용서하는 광명을 뿜어
모두를 살피시어 선정을 이루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눈길을 거두어 좌우에 두고
남의 말을 막아 듣는 길 막으며
맛나는 것을 경계하여 탐내지 말고
세상에 있는 것이 내게는 없게 하라.
내게 있는 것, 거칠건 곱건
더 생각하지 말고 자비로 바꾸며
생각하는 일 서원으로 생각하고
두려운 일 닥쳐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겁내지 말라.
양식이나 마실 것이나
그밖의 도구나 입을 것 얻으면
만족한 데서 그칠 뿐 훗날을 걱정말며
여기서 그치고는 더 참하지 말라.
항상 선정 행하기를 좋아하며 숲 사이에서 즐기고
이 이치에 평등하여 장난삼아라도 범하지 말며
앉거나 눕거나
한가롭고 고요한 곳에서 힘써 수행하라.
스스로 원망하여 일삼아 잠자지 말고
배우고 행하는 일에는 항상 엄하게 하여
경망스러움[晻忽]과 장난을 버리고
세상의 좋은 일에 대한 욕망 멀리 여의라.
무기[兵] 다듬는 일이나 해몽(解夢)을 말며
전생 일을 보거나 좋은 일 궂은 일을 예언치도 말며
뱃속의 아기를 점치지도 말며
하늘의 비밀을 엿보는 일도 하지 말라.
사고 파는 일을 하지 말고
남을 속여 이익을 챙기지도 말며
탐욕을 위하여 관청[縣國]에 머물지도 말고
저들에게 이익을 구하려 하지도 말라.
성실하지 못한 말을 즐겨 행하지 말고
이간질하는 말도 모두 하지 말며
이 목숨 다하도록 지혜로운 행을 구하여
계를 지니되 행여라도 경솔히 굴지 말라.
뜻밖의 질책을 만나도 두려워 말고
존경하는 이를 보거든 크게 말하지 말며
탐욕을 버리고 질투하지 말며
양설(兩舌)로써 자비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마라.
말할 것이 있을 때엔 탐착에 빠지지 않기를 배우고
소리를 낼 때엔 거칠고 삿되게 말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에게는 따라 배우지 말고
베푼 것에 대하여 원망을 하지 말라.
추악하고 착하지 못한 소리를 들으면
동학(同學)이건 범인(凡人)이건
잘 막아 그와 더불어 사귀지 말며
지혜에 어긋나는 일은 행여 몸에 스치지 않게 하라.
여래의 진리가 이미 빠르다는 것을 알고는
장난삼아 하지 말고 뜻을 들어 행하며
선정[宴淨]에 의해 잡된 소견 사라지면
구담(瞿曇)의 가르침에 의심치 않네.
스스로가 지혜를 이루고 법을 잊지 않으면
증득한 법이 없으나 자주 보게 되리니
항상 지혜로운 여래를 따라 배우되
좋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 지혜만을 따르라.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비구들이 모두들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