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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의보살경 제4권
[4무량심이 다함없다]
[닦는 사랑하는 마음이 다함없다]
그때 무진의 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사랑하는 마음[慈]을 닦는 것도 또한 다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의 사랑하는 마음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이 제한이 없어서 중생계와 같으니, 보살이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 발심하여 두루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마치 허공이 두루 덮어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이,
이 보살의 사랑의 마음도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다 덮어주지 않음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중생계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이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도 그러하여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다함이 없습니다.
허공이 다함없기 때문에 중생도 다함이 없고,
중생이 다함없기 때문에 보살이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을 보살대사가 닦는 사랑하는 마음이 다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얼마만큼의 한계를 중생계라고 합니까?”
무진의 보살이 대답하였다.
“모든 땅의 경계와 물ㆍ불ㆍ바람의 경계가 그 양이 끝이 없다고 하더라도 중생계보다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어떤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무진의 보살이 대답하였다.
“말할 수는 있지만 조그마한 일로 비유할 수는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여기에서 동쪽으로 한 항하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부처님 세계를 다하고 남쪽과 서쪽과 북쪽 그리고 그 사이의 네 방향[四維]과 위아래의 한 항하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 하나의 커다란 바다를 만들어서 그 바다에 물을 가득 넘치게 하고,
한 항하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중생들을 모이게 하여 다 같이 하나의 털을 백 가닥으로 나누어 그중 한 가닥의 털을 가지고 바닷물 한 방울씩을 적시되,
이렇게 한 항하강의 모래알에 다 같이 한 방울씩의 바닷물을 적셔내고,
두 항하강의 모래알에 두 방울씩의 바닷물을 적셔내어 이와 같이 되풀이하기를 큰 바닷물이 다하도록 할지라도
이 중생계는 오히려 다할 수 없으니, 보살의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많은 중생들을 두루 다 덮어줄 수 있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선근이 어찌 다할 수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참으로 다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남자여, 이 허공의 성품은 오히려 다함이 있을지언정 보살의 사랑하는 마음은 다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보살이 이러한 말을 듣고서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다함없는 사랑을 얻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 사랑하는 마음은 스스로 자기 몸을 옹호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익 되게 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다툼이 없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온갖 성냄과 거칠고 더러움과 얽매임을 끊을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묶임과 번뇌를 여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기뻐하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일체 중생들의 계를 깨뜨리는 허물을 보지 않습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은 불타는 번뇌가 없어서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괴로움의 해침을 멀리 여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일체의 공포와 두려움을 여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성현의 도를 따를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성내는 자로 하여금 기뻐하게 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투쟁에서 이길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이양(利養)과 칭찬을 낳을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제석과 범천의 위덕(威德)을 장엄합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슬기로운 사람의 칭찬을 받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보통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보호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깨끗한 도를 따르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욕심 세계를 멀리 떠나 섞이지 않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해탈법문에 나아갈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승(乘)을 거두어들일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재물이 아닌 공덕을 거두어들일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공덕을 길러내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지음이 없는 공덕보다 뛰어납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은 상호(相好)를 모두 장엄할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용렬한 사람의 둔한 근기를 여의게 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 사람에게 열반의 길과 모든 착하고 바른 길을 열어 줄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세 가지 나쁜 길과 여덟 가지 어려운 일을 여읠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착한 법 등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소원대로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자재롭게 성취하게 합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발심 수행하여 온갖 서로 다른 모양을 여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계율을 지니는 문(門)에 바르게 나아가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금계(禁戒)를 범한 자를 구호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능히 위없는 인욕의 힘을 이룰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교만과 방일을 여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다툼이 없는 정진을 일으켜 바른 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은 근본적으로 성인의 선정에 들어가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을 잘 분별할 수 있어서 모든 번뇌를 여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지혜를 의지하여 다라니의 언어와 문자를 낳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선정을 짝하여 마구니와 번뇌의 짝을 여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더불어 기뻐하여 함께 머무르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이 시키는 것을 잘 합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은 위의와 법식(法式)을 굳게 지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조화나 흔들림 등을 여읠 수 있으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갖가지 모양을 없앨 수 있고,
이 사랑하는 마음은 몸에 좋은 향 바르기를 부끄러워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번뇌의 더러운 기운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사리불이여, 무릇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다 일체 중생을 옹호하여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른 중생들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성문이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에 그치지만, 보살의 사랑하는 마음은 다 한량없는 중생을 위해서 입니다.
사리불이여, 무릇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은 모든 흐름[流]을 건널 수 있으며,
사랑하는 마음이 미치는 곳은 중생을 인연함이 있고 또 법을 인연하고 인연할 바가 없음[無所緣]을 인연하니,
중생을 인연한다는 것은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요,
법의 연을 인연한다는 것은 이미 행을 익힌 것이며,
인연 없음을 인연한다는 것은 깊은 법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서 다함이 없음이라고 합니다.
[크게 슬퍼하는 마음을 닦는 것이 다함없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大悲]을 닦는 것도 다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사라불이여, 사람의 생명의 근본은 곧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으로 근본을 삼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대승(大乘)을 닦고 배움에 있어서 크게 슬퍼하는 마음으로 그 근본을 삼습니다.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윤보(輪寶)로써 근본을 삼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일체지(一切智)를 닦음에 있어서 크게 슬퍼하는 마음으로 근본을 삼습니다.
큰 장자(長者)가 외아들을 두고 그 아들에 대해 가엾이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두터운 것처럼
보살이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도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외아들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나’가 다하고 행이 다한 것이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조작이 다하고 이익이 다한 것이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다른 일을 빌리지 않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아첨하거나 굽실거리지 않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하는 일이 궁극에는 바른 결정을 낳습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종성(種性)이 하는 일이 바른 도에서 나오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마음에 삿되거나 왜곡된 것이 없어서 정직함을 낳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교만함이 없어서 중생의 경계를 벗어나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 몸을 버려 여래의 몸을 내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수명에 탐착하지 않고 나쁜 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중생을 옹호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진실한 법을 옹호하여 청정한 마음을 내게 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빈궁한 사람을 보면 구제할 방도를 마련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근본 서원이 견고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나 하늘이나 어진 사람이나 성인을 헛되이 속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그 행이 청정하여 착한 업을 내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거나 타는 듯한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중생이 무거운 짐을 버리고 굳게 정진함을 일으키도록 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인욕의 힘이 있어서 참는 힘이 없는 자를 구호합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더럽다고 여길만한 것을 싫어하지 않아서 병든 자를 돌보아 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법에 자재함을 얻어 둔한 근기를 교화하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의 공덕을 덮어 다른 사람의 공덕을 드러나게 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번뇌 없는 즐거움을 구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물건을 희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뭇 착한 업을 일으키되 번거로워 괴로워함이 없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금계를 잘 가지되 계를 훼손한 자를 버리지 않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기의 몸뚱이와 사지를 희생하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이 착한 마음을 내게 합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선근(善根)을 일으키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선정에 맛들이지 않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욕계(欲界)를 싫어하지 않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선근을 더럽히지 않고,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중생들의 소원대로 성취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을 벗어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함이 없음을 증득하지 않으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중생의 성품이 함이 없음과 같음을 알고서 교화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계를 일으키는 이를 옹호하며,
이와 같이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부처님의 계율을 찬탄합니다.
이처럼 대승의 모든 슬퍼하는 마음은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니, 이것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크게 슬퍼한다[大悲]’고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크게 슬퍼한다는 것은 반드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지혜의 모든 도를 돕는 법을 잘 행하여서 자연히 아는 지혜, 즉 스승 없이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요,
중생들이 하는 사업을 돌보아 주되 마치 자기 임무를 닦는 것처럼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크게 슬퍼한다’고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크게 슬퍼함을 닦아 행하여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뻐함[喜]을 닦는 것이 다함없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기뻐함[喜]을 닦는 것도 다함이 없으니, 기뻐함이란 무엇인가?
항상 법을 생각하여 환희 용약(踊躍)해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뜨거운 번뇌가 없으며, 다섯 가지 욕락(欲樂)을 여의고 법의 즐거움에 머물며, 마음은 화락하고 몸은 가볍고 유연하며,
뜻으로는 부지런히 권하여 독려하고 마음으로는 항상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여래의 위없는 법신(法身)을 즐겨 구하며, 상호를 닦아 스스로 장엄하기를 즐거워합니다.
법을 듣고서 싫어함이 없으며 바른 법 행하기를 생각하고,
바른 법을 행하기를 생각하고 나서는 마음으로 기뻐하며,
기뻐하고 나서는 법과 비심(悲心)을 갖추어서 항상 중생들에게 꺼리는 마음을 내지 않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법을 부지런히 구하며,
욕망을 일으켜 법을 구하고 나서는 깊은 마음으로 깊고 깊은 불법을 이해하며 이승(二乘)을 멀리 여의고 위없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모든 인색함을 없애버리고 기꺼이 주는 마음을 일으켜 와서 구걸하는 자를 보면 마음으로 기뻐하고 줄 때에도 기뻐하며 보시한 뒤에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보시하기 전과 당시와 후의 삼시(三時)가 깨끗하며 깨끗해진 다음에는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계율을 지니는 자에겐 언제나 보시하고, 계율을 헐뜯는 자에 대해서도 기쁜 마음으로 거둬주며,
스스로 금계를 지녀 마음이 깨끗해져서, 나쁜 갈래에서 두려움에 떠는 중생들을 두려움이 없게 하여 나쁜 곳에서 멀리 떠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여래의 금계(禁戒)에 회향하니 굳게 지녀 견고해서 파괴할 수 없고,
욕설을 듣고서도 그대로 참아 보복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에 대하여 교만한 마음이 없고,
어른에겐 겸손하고 공경히 하며 말씨는 언제나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찡그리는 일이 없이 먼저 사랑스럽게 말하되 끝내 아첨하거나 굽실거림이 없습니다.
삿된 마음으로 남을 꾀거나 속이지 않고, 이양(利養)을 위해 남에게 붙들려 일하지 않으며,
그 마음이 깨끗하여 거친 허물이 없고,
옳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서 그 허물을 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단점을 캐내거나 다른 사람의 죄를 들추어내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화합과 공경의 법을 마음으로 염원합니다.
보살들에겐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고,
설법하는 이를 사랑하여 자기 몸뚱이보다 소중히 여기며,
부처님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자기 목숨 아끼듯이 하며,
스승과 어른에게는 부모라는 생각을 내고,
모든 중생에게는 자식이라는 생각을 내며,
위의를 갖추되 머리를 보호하듯이 하며,
모든 바라밀에 대해서는 손과 발을 아끼듯이 합니다.
모든 착한 법을 값진 보배처럼 생각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에겐 다섯 가지 욕망을 생각하듯이 하며,
만족함을 아는 행에 대해서는 몸에 병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법 구하기를 즐거워하여 묘한 약을 얻는 것처럼 생각하며,
잘못을 들춰내는 자에 대해서는 훌륭한 의원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모든 감관을 잘 조절하여 게으름이 없으니,
이것을 ‘기뻐함’이라고 합니다.
이 기뻐함은 고요하니 미묘한 것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영원히 사라짐[寂滅]이니 비웃거나 자만함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행함에 의지하니 희론 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근본이 있으니 마음이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들음이 많으니 착한 말을 취하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평등하니 마음이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이 기뻐함은 용맹스러우니 업을 잘 짓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후회하지 않으니 오로지 착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바르게 머무르니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움직이지 않으니 의지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함께하지 않으니 꺾어 조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실다운 이치이니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뻐함은 진실하니 변하여 달라짐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참된 진리이니 지은 바와 같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버릴 수 있으니 힘이 견고하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힘이 세니 능히 이길 자가 없기 때문이며,
이 기뻐함은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을 지을 수 있으니 모든 불법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기뻐함을 수행하여 다할 수 없다고 합니다.
[버림[捨]을 수행함이 다할 수 없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버림[捨]을 수행함도 또한 다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보살이 버림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는 것인가?
보살이 버림을 수행함에 버림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모든 번뇌를 버림과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함을 버림과 때라든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번뇌를 버린다는 것은,
공경하고 공양하여도 그 마음이 잘난 체하지 않고,
깔보거나 헐뜯더라도 마음이 비굴하지 않으며,
이양(利養)을 얻더라도 탐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어떤 곤란에 처하여도 근심하지 않으며,
칭찬을 받아도 기꺼워함이 없고,
헐뜯더라도 물러서거나 위축되지 않으며,
조롱을 받아도 얼굴을 일그러트리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칭찬하여도 마음이 법계에 잘 머무르며,
괴로운 일을 당해도 꿋꿋하게 참고 견디며,
즐거운 일을 만나도 덧없음을 분명히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놓아버리고, 성냄을 끊어버리며,
친하거나 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얻으며,
계율을 지키거나 계율을 깨더라도 생각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착한 일을 하거나 나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다르다는 생각을 두지 않으며,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 집착함이 없고,
좋거나 좋지 않은 말을 들어도 참고 견뎌내며,
착한 말과 나쁜 말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으며,
몽매한 자와 허물 있는 자에게 차별함이 없어서 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얻으며,
상ㆍ중ㆍ하에서 평등한 광명을 얻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아 좋고 나쁜 소문이 법계와 같으며,
실상(實相)의 법에서 마음이 깨끗해지며,
세간법의 평등함에서 보살의 버림[捨]을 얻으니,
이것을 보살이 번뇌를 버린다고 합니다.
보살이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함을 버린다는 것은,
만약 몸뚱이와 팔ㆍ다리ㆍ뼈마디가 베이고 끊기더라도 마음에 성내거나 미워함이 없어서 원수로 여겨 보복하지 않는다면, 버리는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버릴 수 있는 것이니, 안과 밖 몸과 입 같은 이런 두 가지 중에 다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눈과 빛깔에도 애욕의 물듦이 없고,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감촉과 뜻에 대한 법도 다 이와 같기 때문에 둘 가운데서 다툼을 일으키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고 합니다.
서로 다치게 하거나 해를 입히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 하고,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 하며,
이롭거나 이롭지 않거나 간에 심행(心行)이 평등하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 하고,
으뜸가는 이치에 대해 논란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고 하며,
자기의 마음속에서 잘 분별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고 하고,
자기의 몸까지 버릴 것을 관찰하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의 몸을 해치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림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모든 선정에서 버림을 수행하여 항상 버리는 마음을 행하지만 모든 불세존께서는 보살이 중생들에게 버리는 마음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왜냐하면 보살은 항상 수행 정진하되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선근을 부지런히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이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함을 버린다고 합니다.
때와 때 아님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릇이 못되는 중생은 버리고 이끌어 접촉하지 않으며,
헐뜯거나 조롱하고 괴롭히는 것은 버리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성문을 구하여 성취하겠다고 결정한 자도 버리는 것입니다.
보시를 행할 때엔 지계를 닦음을 버리고,
지계를 닦을 때엔 보시를 버리고,
인욕을 닦을 때엔 보시와 지계와 정진을 버리고,
정진을 닦을 때엔 보시와 지계와 인욕을 버리고,
선정을 행할 때엔 보시를 버리고,
지혜를 닦을 때엔 다섯 가지 바라밀을 버려서 마땅히 하지 않아야 될 일은 마침내 다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법으로 계행에 편히 머물러서 부지런하고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수행을 원만히 갖추니, 이것을 보살이 다함이 없는 버림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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