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플래시"라는 음악 영화를 보았다. 대략 줄거리를 말하면
"드럼"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 아이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학생들을 휘어잡으면서
독재에 가까운 카리스마를 휘두르는 유명한 지휘자가 있는 학교에 들어가
그 선생 밑에서 연습을 하는 동안 아주 작고 미묘한 실수조차라도 하거나
선생님의 기준에 아주 조금이라도 맞는 실력발휘를 못했을 때에는, 온갖 모욕적인 말과 대우를 들으며 강하게 훈련을 받는다.
하루는 타고 가던 버스 바퀴가 고장나, 급하게 렌트카를 빌려, 공연장소에 갔지만,
"드럼 스틱"을 가지고 오지 않아 차를 타고, 다시 가서 돌아오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손가락을 다치고,
몇 군데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도, 가까스로 도착한 공개 연주회에서 다친 손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엄격한 스승은 그를 짤랐고, 화가 난 천채 드러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공격하여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그 후 그 선생님도 자신에게 모욕을 당한 다른 한 학생이 자살하여 학교에서 짤린다.
짤리는데 비공개로 법정 증언을 한 이가 주인공 천재 드러머였다.
나중에 우연히 재즈 클럽에서 학교에서 짤린 선생님이 특별게스트로 연주하는 포스터를 보고 들어가는
천재 드러머는 그에게 같이 공연할 것을 제안 받아, 공연을 하는데
그 공연은 선생의 복수를 위한 공연으로 그 천재 드러머를 골탕 먹이기 위한 것이었는데
선생님에게 당한 그도,
그도 고집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선생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인상을 주고 끝나는 내용의 참 좋은 영화이다.
서양 악기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이 음악에 무지한 이에게는
"드럼"하면 좀 시끄러운 악기 정도로만 여겼는데, 다른 악기도 많은데, 드러머를 주인공으로 해서
음악 영화를 개성있게 이끌어 간 것도 좋았고, 주인공 천재 드러머와 그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나와 후배는 그 영화를 보고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었다.
같은 선생님을 두고 공부를 했기에 느낄 수 있는 우리만의 감정이었다.
우리는 종로에 있는 학원에서, 미국의 시사주간 잡지인 "TIME"를 공부했다.
같은 스승인 송재원 영문학 박사이시며, 전 동아일보 기자, 번역가이셨던 분에게서
그 여자 후배는 요즘까지 1년 3개월을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고,
동덕여대에서 고려대학으로 편입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만한 친구였다.
이전에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찾아가 뵐때,
당시 수업을 듣는 제자들 중에서도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한다고 인정하시는 몇 명에게만
" TIME 선배라며 나를 소개시켜주시며 서로 인사해"라고 하신 기억이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이 여자 후배였다.
그런데 아주 잠시간의 인사였던지라, 나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햇다. 그 여자 후배를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 수업을 듣고 있던 학원 제자 분들이 송선생님 추모 모임을 했다.
이 모임에 새로이 TIME 강의를 하실 선생님도 함께 참석하셔서, 송선생님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고맙게 연락이 와서, 가서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한 여자분이 "전에 인사했다"며 아는 척을 하길래.
생각해 보니, 기억에 있었다. 얼마나 반갑고 아는 척 해주는 것이 고맙던지 .......
나는 1999년 7월부터 36개월을 그에게서 배웠다. 아마도 2003년 정도 까지, 그 후에는 몇 개월간 작문 수업을.
나는 지금 생각해도 참 열심히 공부했다. 영어 공부와 운동 이외에는 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나의 기억이다.
정말 열심히 해서 나중에는 아는 후배나 어떤 사람이 물어보아도, 혼자서 연구하면,
"이때 이 문장에는 어떤 것이 생략되어 있고, 해석은 이렇다"고 말해주어 무시는 당하지 않았다.
그는 성격이 지랄맛게 꼼꼼했다. 나와 같이, 그래서 우리는 엄청 잘 맞았다.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제자로서, 그는 스승으로서, 각자의 직분에 충실했고 그래서 그 신뢰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의 공부적 측면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 있어 문제가 있으면 가만히 놓아 두지를 않았다.
옥상에 조용히 끌려가서, 골목길로 따라오라고 해서, 때로는 맥주를 한 잔 사 주시며,
한 두번 정도는 사람들이 많은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나를 야단쳤다.
가끔 억울한 경우도 있었다.
상황을 잘 모르시고 그러실 때는 정말 섭했다.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나를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시고 야단을 치시는지 알기에 .....
선생님은 열심히 하는 제자를 아끼고, 좋아하고, 사랑했고, 도와 주려고 했지만
겉으로는 항시 칭찬보다는 야단이 먼저였다.
그 여자 후배도 나와 같은 과정을 선생님 밑에서 겪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 후배를 선생님이 얼마나 아끼셨느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참 잘 해주고 싶었다.
그 느낌을 알기에 그리고 송선생님이 정말 아끼셨던 제자였다는 이유만으로도.
( 한참 열심히 하던 그 후배가 자신을 이뻐해주던 선생님을 잃었을 때 느낀 그 느낌을 알기에,
나도 선생님이 몇 년 더 사실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 허한 마음을 느끼기에.
제대로 깊이 있게 가르쳐주어 실력과 자신감을 쌓게 해주셔, 내 인생을 바뀌게 하셨던 스승님이 돌아가셔서,
마음 속 깊이 느껴지는 "나를 실력적으로 키워주고,나를 알아주는 이가 죽었다는 그 암담한 느낌"이 .... 나를 ...." )
영화 "위플래시"의 그 선생님을 보면서,
우리는 송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각자가 그리워했다. 깊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송선생님 밑에서 정말 열심히 했고, 야단도 남들보다 많이 맞았고, 그의 배려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했다.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위플래시"의 그 선생님이 옛날 배웠던 한 제자가 교통사고로 죽어, 그를 잠시 추모하기 위하여,
그 제자가 연주한 음악 CD 한장을 가지고 와, 지금 배우고 있는 제자들에게 들려주며, "미안하다"고 하며,
죽은 그 제자 이야기와 추억를 이야기하면서 눈물과 감정을 억제하려는 장면은
그가 지금 배우고 있는 제자들에게 야단을 치지만, 그가 느끼는 제자들에게 대한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송선생님이 열심히 하는 제자들에게 주셨던 '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야단을 치셨지만, 속에서 느껴지게 하셨던 "정" '처럼 말이다.
이제는
내가 잘못해도,
진심으로 내가 잘 되라고,
나를 야단쳐 줄 스승님들이 없다.
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