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입문 하권
제35장 삼지三止
무릇 도를 닦고자 하면 먼저 지止를 수행해야 한다. 지란 편안하고 조용히 하며 그치고 고요히 하여 선정에 드는 것이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대개 모든 선문의 공덕은 다 안으로 안정된 데서 생기는데,
지는 마음을 제어하고 산란함을 그침으로써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경에서 “제어하여 한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지는 선을 닦는 첫 번째 문이다.
사람들의 스승이 된 자가 만일 도안道眼을 얻은 뒤 근기를 관찰하고 법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본습本習을 북돋우고 대치하는 법을 잘 알 것이다.
본습이란 숙세에 익힌 것이다. 그가 익혔던 것을 바탕으로 법을 가르쳐 주면 공부가 쉽게 이루어진다.
사리불은 근기와 인연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사자金師子에게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고, 완의자浣衣子에게 수식관數識觀을 가르쳐, 오랫동안 익혀도 아무런 효과가 없고, 도리어 사견만 생기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한번 보시고 서로 바꾸어서 수행하도록 가르쳐, 곧 도를 이루게 하셨다. 이것을 본습을 북돋우는 것이라 한다.
나머지 사람들, 즉 도의 안목이 없고 근기를 알지 못하는 스승일 경우엔 모름지기 먼저 지止의 문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번뇌의 생각들이 점차 잦아들고 도의 마음이 점차 늘어나면 곧 홀연히 선정 가운데에서 선과 악의 근성이 일어나게 된다.
선근이 일어날 때에는 그 나타난 근성에 따라 본습을 북돋워서 닦고, 악의 경계가 나타날 때에는 많은 것부터 대치해 없앤다.
이러한 까닭에 지의 문은 후세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쳐 주는 바른 뜻이 된다.
진실로 그렇지 못할 경우 선과 악의 근기를 분별하기가 어려워 인연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된다.
[계연지]
첫째는 계연지繫緣止이다.
‘계繫’란 마음을 한곳에 붙들어 두어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매어 두는 곳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이고,
넷째는 마음을 배꼽 사이에 매어 두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이다.
(첫째)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어둡고 가라앉으면 잠이 많아지므로 머리 위쪽에다 마음을 안치한다. 그러나 오래 하면 사람의 기운을 들뜨게 해 갑자기 중풍이 든 것처럼 되기도 하고, 신통을 얻어 날 것만 같기도 하니 항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머리털은 검은색이고, 살은 흰색이어서 마음이 머물기 쉬우며 숙세에 익힌 백골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하면 눈이 위쪽으로 쏠리기 쉽고, 혹은 꽃이나 구름 같은 노란색, 빨간색 등이 보여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전도시키니, 또한 항상 사용해선 안 된다.
(셋째)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코는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지각하면 무상을 깨닫기 쉽다. 또한 숙세에 안반安般을 익혔던 것을 북돋워안安은 생生이고 반般은 멸滅이다. 안반이란 수의삼매守意三昧로서 호흡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져 능히 선정을 일으킬 수 있다.
(넷째) 마음을 배꼽 아래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배꼽은 기의 바다(氣海)이며, 또한 중궁中宮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배꼽에 매어 두면 여러 가지 병을 없앨 수 있고, 혹은 안으로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볼 수 있어 십육특승 등의 선정이 생긴다.
(다섯째)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발은 가장 아래에 있어서 기운이 마음을 따라 내려가면 사대가 조화로워지고, 또 숙세에 익힌 부정관을 북돋우게 된다.
이 다섯 곳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비유하면 원숭이는 뛰어오르고 건너뛰고 집어 던지며 잠시도 조용히 있을 때가 없지만, 만약 기둥에 매어 두어 오래 지나면 저절로 길드는 것과 같다.
마음 또한 이와 같다.
마음이 멈추어 머무르긴 했으나 아직 선정에 들어가기 전인 때에, 다시 하나의 지가 있으니 이것을 응심지凝心止라고 한다.
만약 선정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모두 사라진 듯 자유자재하고 저절로 고요해지면 이것이 곧 선정에 들어간 지이다.
[제심지]
둘째는 제심지制心止이다.
마음은 형체와 색깔이 없고 일정하게 머무는 곳도 없는데 어찌 경계에 매어 둘 수 있겠는가. 이것은 허망한 생각으로 대상을 반연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그것을 억제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른다면 다시 억제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저 그 마음을 집중하여 여러 어지러운 생각을 그치기만 하면 곧 이것이 지를 닦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들뜨고 요동치면 의지로써 마음을 아래에 두어 그치게 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위에 두어 그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아래에 두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이익이 많으니,
첫째 마음이 쉽게 안정되고,
둘째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체진지]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바른 지혜로써 음陰ㆍ입入ㆍ계界ㆍ삼독三毒ㆍ구십팔사九十八使ㆍ십이인연十二因緣ㆍ삼계인과三界因果 등 모든 법이 다 공적하다고 체득한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 설한 것처럼,
색이 그대로 공이요, 색을 멸하여 공한 것이 아니다.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니 공이 곧 색이고, 색이 곧 공이며, 색을 떠나서 공이 없고, 공을 떠나서 색이 없다.
수ㆍ상ㆍ행ㆍ식 등 일체 모든 법이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음ㆍ입ㆍ계 등의 모든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我ㆍ인人ㆍ중생衆生ㆍ수명壽命 등 일체의 전도된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이라는 것을 아는가?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모든 법은 다만 무명으로 전도되어 허망하게 헤아린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허망하게 헤아려 생긴 법은 일체가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 꿈이나 허깨비와 같고 이름만 있는 것인데, 이름이라는 법 또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곧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 또한 없어지며 마침내는 텅 비고 고요하여 허공과 같아진다.
만일 수행자가 일체법이 허공과 같다고 체득하여 안다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무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없게 된다. 마음에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물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곧 일체의 전도망상과 생사에 묶어 두는 업을 짓는 일이 모두 다 그친다. 하는 것도 하고자 함도 없고, 생각이나 행위도 없으며, 만들거나 짓는 것도 없고, 보여주거나 말함도 없으며, 논쟁이나 다툼도 없어서 텅 빈 듯이 청정해지니 마치 대열반과 같다.
이를 ‘참된 지(眞止)’라고 한다.
이는 그칠 바 없는 것을 그치는 것이요, 그침 없이 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진지이다.
다음으로 지를 닦으면 오륜五輪이 발생하는 것을 증득한다.
오륜이란 첫째 지륜地輪, 둘째 수륜水輪, 셋째 풍륜風輪, 넷째 금사륜金沙輪, 다섯째 금강륜金剛輪이다.
‘윤輪’이란 구른다는 뜻으로 이곳을 떠나 저곳에 도착하는 작용이 있다. 예를 들면 지륜의 경우 낮은 곳을 떠나 굴러서 더 높은 곳에 이르고, 내지 금강륜은 굴러서 가장 높은 무학과無學果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윤이라고 한다.
지륜地輪이란 다음과 같다.
땅에는 머물고 지탱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지止로 인하여 미도지정을 증득하면 홀연히 마음이 맑아지고 몸과 마음의 상이 공한 것을 자각하여 텅 빈 듯이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선정법이 마음에 유지되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머물고 지탱한다’고 한다.
미도지정으로 인해 초선의 여러 가지 공덕이 생겨나는 것이 땅에서 만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므로 지륜이라고 한다.
수륜水輪이란 다음과 같다.
물은 윤택하게 적시어 생장시킨다는 뜻이 있고, 또한 체성이 유연하다.
수행자가 지륜의 단계에 있다가 수륜삼매를 증득하면 선정의 물이 마음을 적셔 주어 마음 가운데 선근이 늘어나고,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만심을 꺾고 선법을 잘 따르기 때문에 수륜이라고 한다.
풍륜風輪이란 다음과 같다.
바람에는 허공을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움직이게 하며 능히 파괴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풍륜삼매風輪三昧를 얻으면 궁극의 깨달음과 비슷한 지혜(相似智慧)와 걸림 없는 방편(無礙方便)이 발생해 바람이 허공을 돌아다니듯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된다.
이런 방편의 도로 세간을 벗어나는 여러 가지 선근을 일으키고, 또한 지혜의 방편으로 온갖 견해와 번뇌를 타파하므로 풍륜이라고 한다.
금사륜金沙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金’은 참된 마음을 비유하고, 모래(沙)는 집착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수행자가 견혜見慧와 사혜思慧의 참된 지혜를 일으키면 물들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그리하여 삼도三道의 과果를 얻어 일체의 티끌과 같은 번뇌를 타파하므로 금사륜이라고 한다.
금강륜金剛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강은 체성이 굳고 작용이 예리하여 모든 물건을 부술 수 있다.
금강삼매金剛三昧도 이와 같아 망상과 미혹이 침범하지 못하고 모든 번뇌를 끊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루게 한다.
만일 보살의 마음을 가졌다면 곧 이 금강과 같은 반야로 무명의 미세한 미혹을 타파하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할 것이다.
또한 청정선淸淨禪이라고도 한다.